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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이 어수선한데 지난 연말부터 희망퇴직의 찬바람이 직장가에 불고 있다. 금융, 유통, 심지어 제조업 까지 희망 퇴직을 실시한다는 소식들이 들린다. 그간 튼실했던 것으로 알려졌던 강소기업들 사이에서도 희망퇴직을 모집한다고 한다.
희망퇴직은 물론 강한 고용 문화를 갖고 있는 한국과 일본만의 얘기가 아니고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직장인들이 느끼는 체감도는 훨씬 을씨년스럽고 불안하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는 새로운 직장을 잡기가 쉽지 않고, 옮긴다고 해도 평행이동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회사는 장기적 내수 침체로 인한 경영상 어려움 때문에 희망퇴직을 실시해왔는데 최근에는 AI 도입 확산으로 인력 구조의 쇄신 차원에서 이뤄지는 사례도 엿보이고 있다. 회사의 희망퇴직 사유가 어떻든간에 사원들에게 희망퇴직 실시 자체가 큰 스트레스를 준다. 회사 입장에서는 희망퇴직을 원하는 사원에 한해서 심사를 해 선별한다고 하지만 전체 사원들에게 주는 심리적 압박감은 결코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림은 물론 회사에 대한 충성심, 일체감은 단박에 잃어버리게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퇴직했으면하는 사원 대신에 유능한 사원들이 이직을 결심하게 만드는 악수가 될 수도 있다.
◇ 희망퇴직이 한국 직장의 '새로운 노멀' 될까 우려
지난 1월 12일 경총이 발표한 우리나라 대졸 초임 분석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기업의 초임이 평균 5,300만원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의 초임은 300인 미만 중소사업체의 평균 초임보다 2,000만원이나 많았다. 우리나라 대기업 초임을 달러로 환산하면 5만7,000달러로 일본 대기업의 초임 3만6,000달러보다 57.9%나 높았다.
이렇게 많은 임금을 주고 뽑았는데 왜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30대 후반의 직원들까지 희망퇴직 대상자를 확대하는 것일까. 이것은 경영상의 어려움과 AI 도입 외에 초임만 한껏 높여놓은 다음, 해마다 꼬박꼬박 연공형으로 임금이 인상되는 것에 부담을 느끼자, 인력을 정리하려는 회사의 속셈이 깔려 있지 않은지 의심스럽다.
경총이 지적하듯이 강력한 노조의 프리미엄까지 더해진 결과 대기업 임금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을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희망퇴직의 상례화는 사실상 구조조정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전 사원들에게 기업의 수익 창출이 지지부진함에도 연공형으로 해마다 임금을 인상하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우리나라도 저성장 시대에 진입한만큼 기업의 임금 부담을 덜어주는 대신에 장기고용을 유도하는 변화가 필요 해 보인다. 일본 기업들의 임금이 우리나라보다 전반적으로 낮은 것은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30년 동안 구조조정 대신 임금 자제를 선택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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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퇴직이 나에게 닥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직장인은 퇴직 후 일시적 실업 상태를 대비한 저축이 필요한 듯하다. 임금 생활자가 미래를 위해 평소에 착실히 저축하기는 쉽지 않지만 기업 경영 악화로 졸지에 실업자가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저축해야 한다. 실업보험만으로 안심할 수 없다. 더욱이 자녀를 둔 가장은 갑자기 지출을 줄일 수도 없다. 보험사들도 사회안전망을 위한 보험 상품 개발을 추진할 만하다. 정부가 사회안전망 보험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기를 바란다.
직장인들이 암호화폐 등 재테크에 열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문 투자자가 아닌 직장인은 단기 매매보다는 장기적인 가치 투자가 바람직할 것이다. 아무튼 임금 소득자가 임금만 바라보지 않고 다양한 투자에 걸쳐 건실한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는 것은 선진국에선 일반적인 모습이다.
희망퇴직 시 받은 위로금으로 창업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목격되는데, 과연 자신이 해낼 수 있는지를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섣불리 프랜차이즈 본부의 말만 믿고 거액을 투자하다간 큰 낭패를 당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목돈 퇴직금을 노린 ‘사업 사기’는 예전부터 그 모습과 수법을 달리하면서 순진한 월급쟁이들에게 접근해 왔다. 퇴직자는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업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희망퇴직의 추세를 보면 대부분 사무직, 서비스 직임을 알 수 있다. 기술직과 전문직은 인력이 모자라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회사가 갑작스런 경영 위기 를 겪지 않는 한 희망퇴직은 없다. 따라서 사무직과 서비 스직들은 희망퇴직 이후 새로운 기술과 자격에 도전하는 것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각종 AI 도구가 속속 기업 현장에 활용되고 확산하는 추세를 볼 때, 사무직과 서비스직에서 퇴직한 사람들은 다시 유사한 직종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보다는 기술과 기능 등 전문직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미래를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실업자를 위한 교육과 재훈련 제도는 매우 발달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외환위기 이후 역대 정부가 노동부 주관 아래 꾸준히 직장인 교육과 훈련 제도를 업그레이드 해온 결과다. 문제는 실제로 직장인들이 이를 많이 이용하지 않는 데 있다. 노동부의 폴리텍 과목을 현실에 맞게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에 덧붙여 기술기업이 자체적으로 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개설한 아카데미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기업이 실시하는 기술 아카데미의 경우 주로 대상자들을 청년들에게 한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늘어난 수명에 맞추어 40~50대 중장년에게도 문호를 열어야 한다. 60대도 일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
어떠한 기술직과 전문직도 6개월이면 기초를 끝내고 현장에 투입될 수 있다. 부족한 능력은 현장에 투입된 이후에 실무를 해가면서 익혀나가면 다 해낼 수 있다. 그러므로 사무직과 서비스직 희망 퇴직자들은 이전에 전혀 해보지 않았다고해서 기술직과 전문직 도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필요한 기술과 기능을 익힐 수 있다.
AI 도입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미래도 그렇지만 지금도 제조업은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 당분간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은 세계 최고의 수준이며 중국과 경쟁하고 있는 미국이 가장 필요로 한 분야이다. '트럼프 시대'에 한국 제조 업이 크게 호황을 일으키며 인력 부족이 예상된다. 이런 호기를 타고 새로운 직업 전환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기업은 작업 안전과 복지 향상을 위해 인센티브를 마련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
◇ 희망 퇴직자 멘탈 관리의 필요성
우리나라에서는 60대 이후 정년 퇴직자의 멘탈 관리의 필요성은 알려져 있으나 요즘처럼 30대까지 확대되는 희망 퇴직자들의 멘탈 관리는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다고 할 수 있다. 10여 년 전쯤인가 라이프코칭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다. 아마도 유료 수요자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AI 확산은 희망퇴직이든 어떤 형태이든 간에 대규모 구조 조정을 예고하고 있다. 기존 직장인들을 위해 재교육 및 훈련 분야, 진로와 직업 분야 상담과 퇴직자들을 위한 라이프 코칭 등의 필요성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분야에 대한 정부의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당부할 것은 이 분야를 공공기관이 직접 하려고 들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공공기관이 이런 분야를 하면 예산만 낭비하고 실효는 거두지 못할 것이다. 직업상담과 진로, 재훈련, 라이프코칭 분야를 민간산업으로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정부는 지원만 하면 된다. 지금 한국의 각종 요양복지 시스템도 과도하게 정부가 개입하고 주도하는 방식으로 하는 바람에 고비용, 빈약한 효과에 그치고 있음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에서 얻는 교훈
1980년대 말 일본경제는 버블 붕괴 이후 30여년 동안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일본경제가 조금씩 회복될 기미를 보이고 임금 수준도 가파르게 상승하는 모습이다. 문제는 지난 30년간 저임금으로 겨우 고용됐던 직장인들이 매우 가난해졌다는 점이다. 1990년대 이후에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취업이 매우 어려웠고 취업을 했다손 치더라도 매우 낮은 임금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기간이 30년 이상 지속되면서 집단적인 무기력 상태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1997~8년 외환위기 무렵에 큰 타격을 받았으나 우리 경제는 1~2년 내 금방 회복돼 세대 문제로까지는 확대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1~2%의 저성장 시대가 고착화된다면 일본과 같은 장기 실업 상태와 불안정한 저임금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서 알 수 있는 것은 장기적 저임금과 고용 불안 상태에 대해 해당 세대 전체가 집단적으로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처지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고, 미국의 러스트 벨트의 고졸출신 백인들 노동자들도 경제 환경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한 사례가 있다. 세대 전체가 무기력증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본인들의 노력도 있어야 하지만, 정부와 사회의 높은 관심과 세심한 가이드가 필요하다.
정부의 복지정책을 보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져 경제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 사람들에게 복지를 베푸는 방식이다. 이것은 복지비용을 계속 증가시키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보다는 희망 퇴직자들이 즉시 일자 리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각종 제도와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훨씬 복지의 효과도 높이면서 궁극적으로 국가의 복지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 복지 선진국의 실패 경험에서 나온 지혜다.
정부는 진심으로 희망 퇴직자와 장기적으로 ‘쉬는’ 청년들이 일본의 ‘히키코모리(외톨이)’와 같이 집단적으로 낙오하고 빈곤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조기에 대처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