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푸틴의 ‘파트너십’? 요동치는 글로벌 질서

  • 등록 2025.03.08 17: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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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21일 백악관에서 열린 주지 사들과의 모임에서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과 관련해 푸틴 대통령과 좋은 대화를 나눴으나 우크라이나와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카드가 없는데도 카드를 거칠게 사용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제시한 종전안과 특히 희토류 광물자원 사용 제안을 거부 한 데에 대해 불만을 터뜨린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눈에는 ‘힘’과 ‘현실’이 중요하고 정의는 안 보이는 것 같다.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러시아가 결정한 대로 따르는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태도로 비친다. 또 전쟁 기간 무기를 대여해 준 만큼 희토류로 받아내겠다는 것이고 이에 대해 미적거리는 젤렌스키에 대해 ‘모욕감’을 느낄 정도로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외교적 수사는 걷어차고 직설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날 폭스뉴스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당초 러시아에 양보하지 않아 전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그에게는 국제 사회의 정의보다는 현실적인 힘이 중요하고, 약소국은 강대국에게 양보할 것은 양보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트럼프와 푸틴의 세계관이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3주년을 맞아 유엔에서 통과된 결의안을 갖고서 미국과 유럽 자유진영 간의 이견을 노출 했다.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 북한과 같은 편에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종전안에 따르면 미국은 러시아가 점령 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인정하고 역시 러시아가 요구하는 대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는 현재 우크라이나 영토의 5분의 1을점령하고 있다. 이 종전안은 거의 러시아가 원하는 안으로 추정된다. 종전 이후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는 협상을 통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 과 프랑스는 안전 보장책으로 군대를 파병할 것을 제안했는데, 러시아는 이를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트럼프 1기 정부에서 안보 보좌관을 역임했던 존 볼턴은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일련의 트럼프 정부의 종전안을 ‘거의 항복에 가까운 안’이라고 혹평했다. 그러면서 이런 수준의 종전안이 결정된다면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안보는 약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정부는 이번 우크라이나 종전을 계기로 나토에서 탈퇴하는 수순을 밟을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

 

볼턴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해 그동안 통일된 의사결정 을 내리지 못하고 효과적인 군사적 지원을 하지 않았던 EU는 러시아의 안보 위협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차라리 EU를 통해서보다는 상당한 군사력을 가진 영국과 프랑스 등 전통적인 유럽 강국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우크라이나에 치명적인 무기를 지원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충고했다. 

 

볼턴의 말은 한마디로 군사력을 가지고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이끌어가는 방향을 보면, 푸틴과 파트너십을 가지고 가겠다는 의도다. 트럼프가 중국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푸틴과 손을 잡는 것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냉전 시대에 소련의 군사력을 두려워한 미국이 중공과 화해하고 중-소 간 사이를 벌어지게 만드는 갈라치기 전략(Wedge Strategy)을 구사하고자 하는 것 같다. 이른바 키신저 전략에서 적과 친구를 뒤바꾸는 전략을 말한다.

 

핵탄두 보유 수를 보면 미국과 러시아 5,000개 정도 가지고 있고, 중국 500개, 프랑스 290개, 영국 225개를 갖고 있 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밖에 인도와 파키스탄이 각각 170 개, 이스라엘 90개 북한도 50개 핵탄두를 가지고 있을 것 으로 전문가들은 추측한다. 모든 대상을 거래적 관계로 바라보는 트럼프 시각에서는 러시아와 거래를 하고 세계 의 이익을 나누기로 합의한다면 중국과 유럽을 제압 또는 ‘패싱’ 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미-북 핵 협상에서 한국 ‘패싱’ 대비해야

 

현실주의자인 트럼프가 보기에 북한은 핵탄두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므로 북한과 직접 협상하겠다는 발상이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그에게는 정의, 동맹은 그리 중요하지 않고 상대가 힘이 있으면 거래 상대자로 일단 인정하고 협상하려는 자세를 보여왔다. 그동안 트럼프 행동에 대해 우리나라 대다수 전문가의 시각은 거래를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일종의 ‘돌출’ 전술로만 인식했는데, 이건 너무 순진한 착각일 수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의 세계관은 2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목격했던 미국 대통령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인물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미국과 북한과의 협상에서 트럼프 정부의 ‘한국패싱’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현실로서 경각심을 갖고 우리는 이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의 세계 전략에 중국·유럽 반발할 듯

 

중국은 이미 지역 패권을 넘어 미국과 러시아와 대등한 정도로 핵전력을 포함한 군사력 강화에 매진하고 있다. 볼턴의 말대로 미국이 나토를 탈퇴하거나 잔존한다고 해도 EU 를 계속 무시한다면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강국들이 군사력 강화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유럽 강국들은 앞으로 미국과는 별도의 세력을 형성 하여 미국과의 협력을 거부하는 사례를 종종 보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에서도 트럼프의 패권주의에 실망하고 미국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 결과 일본, 한국, 인도, 사우디 등이 군사력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만약 핵보유를 인정하기라도 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위기가 닥칠 것이다.

 

◇강대국들이 느끼는 ‘국가안보 불안’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폭탄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의 푸틴이 늘 입에 달고 있는 것이 안보 불안이다. 그는 자국의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고 말한다. 이런 논리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도 마찬가지로 강대국들이 한결같이 가지고 있는 ‘안보 불안감’ 또는 ‘안보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강대국의 과도한 안보 위기감은 동전의 한쪽 면만을 본 것이고 다른 면도 있다. 강력한 군사력을 보여주고 싶고 타국을 지배하려는 욕망이다. 이것은 독재자가 혼자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데도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돈을 많이 갖고 있는 부자가 인색하고 욕망은 줄어들지 않는 것과 유사한 이치다.

 

위기의식과 욕망의 표출은 동전의 양면이다. 이 두 가지를 다 이해해야만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 3개 강대국 정치지 도자와 국민들,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강대국들은 서로 경쟁자이면서 때로는 협력하는 척하다가 감쪽같이 배신하기를 일삼는다.

 

청교도 정신으로 건국한 미국도 한때 제국주의 욕망을 일시적으로 표출한 적이 있었지만, 줄곧 보편적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이상을 견지해 왔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같은 미국의 전통을 훼손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정학이란 학문 영역이 있는데, 이것은 강대국의 논리다. 강대국의 지정학 전문가들은 자신들도 강대국의 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강대국에게 희생당하는 약소국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논리를 편다. 약소국의 권리는 전리품과 다름없다. 지정학자 들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전쟁으로 간다.

 

한국의 소위 안보 전문가들이 강대국의 지정학 논리를 앵무새처럼 전달하면서 도덕성과 가치를 폄하하는 세계관을 전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지정학자 중에는 안보 장사꾼, 위기론 전파자로 활동하는 이들이 많다.

 

러시아의 안보 위기론의 근거는 나토의 확장이다. 만약 이번에 미국이 나토에서 정말 빠진다고 하면 러시아가 안보 불안에서 해소될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새로운 불안 요인을 중국으로 삼을 수 있다. 트럼프는 푸틴의 중국 불안감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전통적으로 러시아는 중국 불안감을 항상 가지고 있어 왔다.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놓고 중국은 겉으로는 이견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 같지만 속으로 불안을 느낄 것이 틀림 없다.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가 가까워지는 것 자체를 안보 위기로 보기 때문이다. 군사력을 대만에 집중하려는 전략을 수정하고 등 뒤에 있는 러시아를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강대국들의 경제 쇠퇴는 군사력 증강과 분쟁 개입이 주원인

 

강대국들은 힘을 투사하는 욕망을 이기지 못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속내는 힘을 과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많은 러시아 청년이 죽거나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신체장애자가 되었다. 독일 등 유럽에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었고, 새로 공급을 확대하려던 천연가스 수출길도 완전히 막혔다. 그밖에 해외자산 동결 등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의 상당한 몫은 아프가니스탄 내전 개입에서 비롯됐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거의 전체를 영해선을 그어놓는 바람에 군함 건조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핵탄두도 현재 500개에서 최소한 1,000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므로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될 것이다.

 

핵무기에 반대하는 글로벌 NGO인 ICAN(International Campaign to Abolish Nuclear Weapons)에 따르면, 핵무기 를 보유하고 있는 지구상 9개국의 2023년 유지비용이 914 조 달러에 달한다. 이중 미국이 515조 달러로 절반이 넘고, 다음은 중국이 118조 달러, 러시아 83조 달러를 차지했다. 이들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3개국의 핵무기 유지비용은 전체의 80%에 육박한다.

 

◇강대국의 군사력으로는 국제 분쟁 해결 못 해

 

미국과 러시아가 종전안에 합의한다고 해도 우크라이나 수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 크다. 종전의 당사국인 우크라이나가 종전안을 거부하면 미국과 러시아는 이를 강요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어떤 군사력과 첨단무기도 민족정신과 종교적 신앙심, 개인의 신념을 이길 수 없다.

 

초기에 물리적 힘이 강한 듯 보여도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은 더욱 끈질기고 강해진다. 핵탄두보다 더 강한 것이 민족정신과 신앙심이다. 더욱이 팔레스타인인들은 민족주 의와 신앙심이 결합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제어할 수 있는 길은 없다. 트럼프의 가자 지구 발상에 ‘헛웃음’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자의 팔레스타인들을 다 이주시켜 그 곳에 휴양지를 만들겠다고 호언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을 했다. 만약 미국이 그런 시도라도 한다면 미국이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 수렁에 빠졌듯이 가자의 수렁에 빠져들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양대 강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갔다가 철저히 패배하고 도망치듯 나왔다. 중세 이전의 전쟁에서는 몽골군이 그랬듯이 도시 전체의 주민들을 몰살시켜 씨를 말릴 수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21세기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 해결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소외시키고 그들만의 협상으로 끝내려고 한다면 두고 두고 후회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더욱 강해질 것이고 유럽인들을 깨어나게 만들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분쟁 당사국 간의 평화 협상이다.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 협상을 수 차례 성공한 적이 있어 노벨평화상까지 받는 일이 있었으나 평화의 길은 멀어져만 갔다. 현재 가자 문제를 트럼프식 힘으로 밀어붙이면 오히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정책이 우려스러운 점은 동맹과 우방을 밀어내고 오히려 러시아와 북한과 친밀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그동안 누려왔던 도덕적 우위성을 스스로 발로 걷어차고 있다. 미국 외교 목표가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라면 더욱 동맹과 우방국을 챙겨도 모자랄 판인데, 그 반대로 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 세력들이 미국의 힘을 과신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무튼 트럼프 2기 정부의 등장으로 세계의 중견국과 약소국들은 새로운 상황을 마주하며 더욱 각성하고 자주적인 힘을 키우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은 미증유의 기후 위기에 처해 있으며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3대 강대국은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패권 의식에서 하루빨리 탈피하여 세계의 중견국과 신흥국들과 더불어 인류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협력하기를 바란다.

 

이상용 주필 기자 mair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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