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자충수 ‘핵무장론’

  • 등록 2025.03.15 14:4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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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하는 문제를 놓고 정책 검토를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 뉴스는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유발하는 시나리오를 경고한다는 점에서 무시무시한 뉴스다.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할 경우 원자력 에너지와 관련해 미국과 최첨단 수준의 연구, 기술, 산업 협력이 위축되면서 사실상 한국에 대한 경제 제재 효과가 발생한다.

 

미국의 조치는 다른 핵보유국으로 확산돼서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는 국제적 차원으로 확장하고,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과 기관, 임직원들은 실질적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민감국가 지정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그렇지만, 오히려 한국에서는 민감국가로 지정해달라고 애걸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정치권 특히, 국민의힘 쪽에서 '핵무장론' 또는 '핵잠재력' 보유론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일본 수준의 핵 잠재력 확보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최근 토론회에서 “핵무장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나토식 핵공유를 하든지 아니면 자체 핵개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명 정치인들이 '핵무장론' 또는 '핵잠재력' 보유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 국민의 70% 정도가 핵무기 보유를 원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에 반응해서 지지세 확장을 위해 좋은 방법이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주장이 궁극적으로 한국이 핵무장을 하는데 치명적인 장애물이 되고, 국가 쇠퇴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핵무장론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하게 토론이 됐는데도 핵무장론에 편승하는 정치인들이 많아지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개탄스럽다. 차제에 핵무장론이 왜 위험한지, 그리고 왜 금지돼야 하는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핵무장론을 반대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역설적으로 핵무장 가능성을 봉쇄하는 접근법으로 최악의 자충수기 때문이다. 핵무장에 대해 적용되는 국제법은 NPT, 즉 핵무기확산금지조약이다. 핵무장을 하려면 NPT 차원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NPT가 생긴 이유는 핵무기 보유국을 미국 등 5개국으로 한정하고, 추가적인 핵무기 확산을 금지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절대로 승인이 나올 리가 없다.

 

일부에서는 미국이 한국 정도의 동맹국에 대해서는 핵무기 보유를 묵인할 수 있다면서 외교를 잘하면 가능하다고 말한다.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해 완벽하게 무지한 소리다.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패권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두 개의 무기가 달러와 NPT다. 달러는 경제 분야, NPT는 안보 분야를 통제하는 무기다. 두 개의 무기가 작동하지 않으면 미국은 패권국 지위를 상실하고 막대한 이권도 포기해야 한다. 그러므로 미국 국제정치학계나 과학계에서 핵무기 비확산을 전공한 사람들은 NPT를 종교와 같은 수준으로 신봉하고 있다. 미국 이익을 생각한다면 너무나도 당연하다.

 

어떤 사람은 미국이 동맹국인 이스라엘의 핵무기 개발과 보유를 묵인했다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역사적 맥락을 모르는 이야기다.

 

이스라엘은 NPT가 체결된 1968년 이전에 이미 핵무기 제조 기술을 사실상 보유한 상태였다. 미국이 반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인도와 파키스탄 사례를 들면서 강대국의 압박과 견제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개발을 진행하면 결국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역시 맥락을 모르는 이야기다.

 

인도와 파키스탄도 1968년 이전에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기 때문에 1968년 비확산조약에 불참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두 나라는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고, 국제 사회 묵인도 받아냈지만, 국가 발전에서 심각한 수준의 대가를 치른 것도 사실이다. 과연 그런 대가를 치를 정도로 핵무기 보유가 필요했는지 따져볼 일이다.

 

어찌 됐든 1968년 이후에 NPT 회원국으로서 핵무기 개발을 시도해서 국제법 위반국으로 지목된 나라는 북한이 유일하고, 그러기 때문에 무지막지한 국제 제재를 받는 것이다. 한국이 시도한다면 사상 두 번째가 되고, 국제 사회는 당연하게도 이스라엘이 아니라 북한에 적용한 지침을 적용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나라 몰래 개발하면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 모르거나 외면하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는 사실이다. 최근 수십년 동안 엄청난 국가 발전을 이룩했고, 대단히 멋진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핵무기 개발 의지를 갖고 있는 위험한 나라로 알려진 것도 사실이다.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주국방의 기치 아래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다가 미국에 의해 강압적으로 중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8년에 체결되고 1970년에 발효된 NPT에 대한민국이 1975년에 가입한 이유는 핵무기 개발 추진 및 좌절 상황과 직결된 것으로 봐야 한다.

 

또 지난 2004년 한국이 IAEA의 사찰을 집중적으로 받은 전력이 있다. 1982년과 2000년에 일부 원자력 연구자들이 소량의 핵물질 추출 실험을 진행한 사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 30년 넘게 핵무기 비확산 문제에 대해 차근차근 쌓아올린 신뢰의 탑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결국 2005년 미국과의 원자력협력협정에서 재처리와 우라늄농축 권한을 받아내서 핵잠재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일부에서는 핵무장론이 문제라면 핵잠재력을 확보하는 것이 현실적인 타협책이라고 말한다. 강대국 전문가들을 과도하게 무시하는 말이다. 한국의 핵무기 개발 의지를 의심하는 강대국 전문가들이 수십년동안 한국이 보여준 행태를 알고 있는데 핵잠재력 보유가 핵무장론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그대로 믿을 것 같은가?

 

핵잠재력 보유론은 국제 사회를 기만하려는 시도라는 지적을 받으면서 핵무장론보다도 더 부정적인 상황을 만들어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핵무장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고, 미국에 대해 협상용으로 제시하고 협상 과정에서 핵잠재력을 확보하거나 전술핵무기 재배치를 받아내는 전략이 좋다고 말한다. 답답한 이야기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달러와 NPT는 미국에 생존과 번영의 필수적 도구다. 핵무장과 핵잠재력 보유, 전술핵무기 재배치 등은 모두 비확산 지침을 위반하는 요소다.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을 제시하고 협상용이라고 말한다면 협상의 근간인 신뢰만 해칠 뿐이다.

 

어떤 사람은 일본의 전례를 보고 핵잠재력 보유를 말하기도 한다. 일본은 비핵3원칙을 국가 정책으로 내걸고 철저하게 비핵화 지침을 준수한 결과 핵잠재력을 보유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일본 사례에서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핵잠재력이라도 갖춰야 한다는 피상적인 결론은 정답이 아니다.

 

그런 결과를 만들어내기까지는 철저하게 비핵화 지침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는 것이 핵심이다. 강대국들이 한국을 의심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오히려 핵잠재력 보유, 나아가서 핵무장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최근 한국에서 핵무장론을 말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을 보고 강대국 관계자들은 역시 한국은 핵무기 개발 의지가 충만한 나라라는 기존의 판단이 옳았다고 여길 것이다. 앞으로 핵무기 개발과 관련한 한국의 행보에 대해 철저하게 감시하고 견제하고, 방해할 것이다. 핵무장을 하자고 외치는 핵무장론이 결국 한국의 핵무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인 셈이다. 

 

 

편집국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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