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밭도 아니고...'싱크홀 포비아'에 추락사 걱정

  • 등록 2025.03.27 15:5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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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2천건 땅꺼짐 '하수관 손상' 42%...지반 안전점검 강화 목소리
지하철 연장공사 주변 주민들 불안감 호소 "역세권보다 안전이 최우선"
인천 검단사거리역 일대 '싱크홀 의심' 112 신고에 긴급 현장점검까지

 

“이제는 운전 중에 땅 꺼지는 것까지 걱정해야 하나?”

 

지난 2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발생한 ‘대형 싱크홀(땅 꺼짐)’ 사고로 오토바이 운전자 박모 씨(34)가 숨진 채 발견되면서,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누구에게나 우연찮게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고 당시 오토바이 운전자가 싱크홀로 빠지는 모습이 삽시간에 퍼졌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블랙박스 사고 영상을 무방비 상태로 보고 경악했다”며 “앞서가던 스포츠유틸리티차(SUV)는 차체가 길고 커서 바퀴만 걸리고 튕겨 나갔지만, 오토바이는 불가항력적으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추락하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고 토로했다.

 

 

●2014~2023년새 싱크홀 2천건 발생...지난해 대형사고만 3차례

 

2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염태영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14∼2023년 전국 싱크홀 발생 건수는 2,085건이다.

 

지역별로 보면 경기(429건·20.6%), 강원(270건·12.9%), 서울(216건·10.3%), 광주(182건·8.7%) 등 순으로 싱크홀이 많이 발생했다. 싱크홀 발생 원인은 ‘하수관 손상’(876건·42%)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다짐 불량’(350건·16.8%)·‘상수관 손상’(263건·12.6%)·기타(210건·10%) 등 순이었다.

 

해당 기간 싱크홀로 인한 사망자는 2명이었다. 2019년 12월 서울 영등포구에서 지하공공보도 건설공사 중 싱크홀이 발생해 작업 중이던 인부 1명이 추락사했고, 2022년 7월 인천 부평구에서 고소 작업대를 이용해 건물 외벽 방수 작업 중이던 인부 1명이 싱크홀에 떨어져 사망했다.

 

서울로만 좁혀보면, 지반 침하 건수는 2021년 11건, 2022년 20건, 2023년 22건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싱크홀이 발생한 데 이어 종로5가역 인근과 지하철 9호선 역삼동 언주역 인근 도로 등에서 잇따라 땅꺼짐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지난해 8월 29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일어나 대형 싱크홀 사고는 승용차가 통째로 빠질만큼 피해 규모가 상당했다. 

 

부산에서는 2024년 9월 21일 사상구에서 대형 싱크홀이 발생해 부산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해당 사건은 가로 10m, 세로 5m, 깊이 8m가량의 땅꺼짐으로 트럭 2대가 빠질 만큼 싱크홀의 구멍이 컸다. 

 

생계를 위해 이륜차를 타야 하는 배달 기사들은 더욱 마음을 졸일만하다. 배달 기사 이모 씨는 “도로 위에서 10시간 이상 보내는 배달 기사에겐 불가항력적인 싱크홀 사고는 재앙이나 다름없다”라며 “사고 전에 위험 신호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언론보도를 통해 들었는데, 위험 지역을 사전에 경고해주는 시스템이 조속히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고의 원인으로 지하철 9호선 연장 및 상수도관 공사가 거론되면서 지하철역 인근에 거주하는 ‘역세권’ 주민들의 불안이 커지기도 했다.

 

경기 수원시 지하철 공사장 인근에 거주하는 서모 씨는 “이번 사고로 도로를 지날 때도 괜히 바닥을 한 번 더 살펴보게 되고, 지하철 공사 구간에서는 더 조심스럽게 걷게 된다. 지하철이 새로 뚫린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이제는 겁도 나고 걱정이 앞설 것 같다”고 우려했다.

 

 

●부실공사가 주원인... 지하철 공사 관련 '지반 안전관리' 강화 필요

 

30대 남성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강동구 대형 싱크홀 사고의 원인으로 지하철 공사가 거론되고 있다. 서울시 강동구 ‘지하철 9호선 4단계 연장사업 1공구’ 공사 과정에서 지반을 단단하게 하는 일부 공정이 부실하게 진행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해당 공사에 참여했던 관계자 A씨는 “부실 공사로 싱크홀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10월과 올해 2월, 서울시에 두 차례에 걸쳐 민원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반 붕괴가 우려된다”며 민원을 넣었지만, 서울시는 “이상 없다”는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도 확인됐다.

 

A씨는 “연약한 토질을 강화시키는 작업이 부실하게 진행됐기 때문에 많은 차량이 지나다니며 토지에 가해지는 압력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번 사고는 100% 인재”라고 확신했다. 실제, 싱크홀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점은 암석이 아닌 풍화토로 이뤄져 있다.

 

A씨에 따르면, 사고 지점은 단단한 돌이 아니라 흙으로 이뤄져 있는 특성상 지반 안정성을 확보하는 단계인 ‘그라우팅 공법’(연약한 지반을 보강하거나 지반과 구조물을 연결하기 위해 시멘트, 모르타르, 약제 등을 주입)이 중요했다. 특히 사고 지점과 맞닿아 있는 터널 구간은 경사로로 이뤄져 있어 그라우팅 공정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사고 징후를 파악하기 위해 계측하는데, 계측기를 통해 땅의 침하 여부 등 움직임을 볼 수 있다”며 “당시 터널 구간에 계측기를 점검한 결과 이상 징후가 없었기에 그렇게 답변을 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현재 이번 사고와 관련해 입건 전 조사(내사)에 착수한 상태다. 경찰은 사고 원인 조사 결과를 토대로 위법 사항이 있는지 들여보겠다는 방침이다. 서울시는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국토교통부와 함께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위를 꾸려 원인 규명에 나서기로 했다. 또한 시는 강동구청과 함께 이날부터 지하철 9호선 연장 공사장 주변에 대해 지표투과레이더(GPR) 장비를 이용한 탐사를 진행한다.

 

 

●노후된 하수관 집중점검 필요...운전자 경각심 부족과 안전불감증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최근 5년간(2020년~2024년 8월 말) 싱크홀 사고 현황’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서울에서 발생한 80건의 싱크홀 사고 중 31건(39%)은 강남·서초·송파구 등 서울 동남권에서 주로 발생했다.

 

보통 ‘노후 하수관’이 싱크홀을 발생시키는 주요 원인이었지만 ‘장기 침하’(12건)나 ‘굴착 공사’(11건)로 인한 사고도 적지 않았다. ‘열수송관이나 통신관 공사 이후 되메우기가 미흡’해 싱크홀이 발생한 경우도 4건 있었다. 이처럼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싱크홀이 생기는 경우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10여 년 전 ‘대형 싱크홀’이라는 이슈를 만들어 2014년, 서울시는 송파구 석촌지하차도 인근에서 발생한 대형 싱크홀 사고 이후 대형 공사장에 대한 ‘도로함몰 전담 감리원 배치’ 등 후속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번 강동구 사고 현장에는 이 역할을 하는 감리원이 배치되지 않았다. 안전불감증의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싱크홀을 전담하는 감리원을 모든 현장에 배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대형 공사에는 지속적인 감시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며 “감리원 배치를 포함해 싱크홀과 같은 안전 문제 관련 대책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싱크홀에 대해 알려진 정보가 적어 경각심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지속적으로 제기 돼 왔다. 명일동 싱크홀 사고 현장에 있었던 블랙박스 영상에서도 사고 직후 맞은편 도로 차량이 아슬아슬하게 싱크홀 옆을 지나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조계춘 한국과학기술원(KAIST)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운전하다 갑자기 노란불이 켜졌을 때와 같이 대처하는 것이 좋다”며 “옆차선에 싱크홀이 나타났다면 그것을 정지선처럼 여겨 이미 이를 밟았다면 빠르게 지나가고, 그렇지 않다면 멈춰서서 갓길에 세운 뒤 차량을 빠져나오는 것이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도심은 도로를 포장해두기 때문에 땅이 꺼져가고 있다는 것이 눈에 안 보이고, 현재 기술적으로도 이를 파악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며 “그에 따라 시민들도 경각심을 갖고 도로 균열 등 전조 증상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명일동 싱크홀 사고 현장을 방문한 서울시의회 도시안전건설위원회에서 의정 활동 중인 김혜지 의원(국민의힘·강동1)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한 번의 전수조사로는 앞으로 있을 땅 꺼짐 사고를 완전히 예방할 수 없다”며 “시민들이 운전 중 도로에서 갑작스러운 추락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지하철 9호선 4단계 공사 등 대형 굴착공사장에 대한 주기적인 전수조사를 즉시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모경종 더불어민주당(인천 서구 병) 의원은 인천 검단사거리에 싱크홀 의심 신고가 112에 접수됐다는 제보를 받고 경찰, 인천도시공사, 상수도본부 관계자들이 긴급하게 현장 점검을 했다.

 

인천 서구 관계자는 “도로 아래 지하에서 물이 올라오고 있어서 관계기관과 함께 원인을 파악 중이다”고 밝혔다. 모 의원 역시 "일단 싱크홀 문제는 아니다. 상수도관 문제로 현재 공사중이다. 도로 복구 완료 시까지 수시로 점검 중"이라고 밝혔다. 
 

심승수 기자 sss23@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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