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도우체국에서 챗GPT를 이용해 만든 홍보 이미지. 이미지=인도우체국 X 캡쳐
챗GPT가 이용자 사진을 ‘스튜디오 지브리’ 등 유명 에니메이션 화풍으로 제작해주는 서비스가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일본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등이 이끌며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곳이다.
미국 ‘Open AI’의 샘 알트먼 CEO는 최근 챗GPT 이미지 생성기능 업데이트 후 주간 평균 활성 사용자 수가 1억5,000만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또 이 기능에 힘입어 챗GPT 가입자 수가 지난달 말 5억명이 돌파됐다고 전했다.
이는 챗GPT가 출시 된지 2년 4개월만으로, 지난해 말 3억5,000만명에서 3개월 만에 30% 이상 급증해 올 연말까지 10억명을 목표로한 챗GPT 이용자수는 무난히 달성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가입자 수 증가의 가장 큰 원동력은 지난달 25일 선보인 ‘챗GPT-4o 이미지 생성 모델’이다. 오픈 AI는 대표 AI모델 챗GPT-4o에 고급 이미지 생성 기능을 더해 보다 정교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했다.
특히 사용자가 업로드한 사진을 일본의 에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풍이나 미국의 심슨·디즈니·픽사 등의 화풍으로 변환해 주는 기능이 화제다. 해당 기능을 이용해 자신의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 그림체로 바꿔 프로필 사진이나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는 식이다.
이는 올트먼 CEO가 최근 X에 “오픈AI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녹아내리고 있다”며 “우리 팀이 좀 자야 한다. 제발 이미지 생성 좀 자제해 달라”고 말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큰 방향을 일으키고 있다.

▲ 챗GPT를 이용해 만든 장원영 지브리 이미지. 사진=아이브 X 캡쳐
◇ 웹툰작가 56% AI, 창작에 부정적... "챗GPT, 창작자 모독해"
챗GPT 기능에 세계가 열광하고 있지만 이를 두고 예술계와 창작자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브리 스튜디오 측은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2016년 생성형 AI의 이미지 생성에 대해 "삶 자체에 대한 모욕을 느낀다"고 말한 바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TV 연출을 담당했던 이시타니 메구미도 자신의 X계정에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챗GPT가 창작자를 모독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연출자 헨리 서로우는 최근 “이걸 예술의 민주화라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며 “훌륭한 예술가나 감독이 되는 것을 민주화할 수 없는 것처럼, 올림픽 선수가 되는 것을 민주화할 수 없다. 평생의 노력이 필요한 건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내 최장기 연재만화 '안녕 자두야'의 이빈 작가도 지브리풍 이미지에 "보기 힘들다"는 평가를 내놨다. 이빈 작가는 자신의 X 계정을 통해 "대부분의 SNS(소셜미디어)와 자주 가는 여행 카페에서조차 서로들 경쟁하듯이 자신의 프사를 지브리 스타일로, 또는 짱구 스타일로 만들었다고 자랑하며 올리고 있다"며 "보기 힘들어서 들어가질 못 하겠다"고 토로했다.

▲ '안녕 자두야'의 이빈 작가 X(옛 트위터) 캡쳐.
창작자들은 생성형 AI가 창작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 우려하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올해 초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웹툰 작가 232명 중 56.0%가 "AI 기술 활용이 향후 창작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AI 기술이 웹툰 작업 활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 응답은 23.7%에 그쳤다.
◇ '지브리풍 프사' 저작권 침해일까... "AI 학습에 사용됐다면 문제될 수도"
뜨거운 반응과 동시에 저작권 침해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AI가 특정 작가나 스튜디오의 화풍을 모방하는 것이 창작권 침해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미국에선 작가협회 등이 오픈AI를 상대로 무단 저작물 사용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특정 화풍이 저작권 보호를 받진 않지만, AI 학습 과정에 특정 콘텐츠가 활용될 경우 저작물에 대한 복제 행위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관계자는 M이코노미뉴스와의 통화에서 "기본적으로 화풍이나 스타일은 저작권에서 보호하는 영역은 아니다. 화풍은 아이디어에 가까워 저작권법으로는 보호되지 않는 게 일반적인 견해"라면서도 "다만 AI가 특정 애니메이션을 학습에 활용했다면 복제 행위 등이 발생할 수 있어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경복궁 사진을 지브리, 심슨 스타일로 변환해 봤다. 사진=권은주 기자
미국에서도 AI 제작사가 특정 업체의 데이터를 학습했다면 이는 저작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AP통신에 따르면 로펌 프라이어 캐시먼의 조시 와이겐스버그 파트너 변호사는 "AI 모델이 지브리의 창업자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을 훈련 데이터로 활용했는지 여부가 법적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라며 "창작자의 동의절차나 적절한 보상체계 없이 저작물을 AI 학습에 활용하는 행위는 명백한 저작권 침해 요소를 내포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오픈AI 측은 "개별 예술가의 고유한 표현 양식 복제는 지양하나, 보다 광범위한 스튜디오 스타일의 활용은 허용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자사의 이미지 생성 AI가 어떤 데이터를 학습했는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고 있다.
김덕진 IT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은 "지브리 스타일이라고 하면 느껴지는 감성과 이미지가 있는데 이 '스타일'이라고 하는 걸 저작권으로 걸기가 애매해 지금은 줄타기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소송이나 여러 논란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 국내 언론협회, 저작권 침해로 네이버 등 제소... "상생협력방안 모색도 필요"
국내에서도 AI학습에 활용된 데이터의 저작권 침해관련 소송이 진행 중에 있다. 지난 2월, 전국 53개 일간신문과 뉴스통신사를 회원사로 둔 한국신문협회는 생성형 AI 학습에 기사를 무단으로 활용한 네이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신문협회는 “네이버가 자사 생성형 AI 서비스 학습에 뉴스를 이용했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이번 공정위 제소를 통해 구체적인 뉴스 이용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언론사와 생성형 인공지능 기업의 공정한 거래 관계 기반 확보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신문협회는 미국의 오픈AI, 구글 등 국외 생성형 AI 기업도 언론사 기사를 무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 만큼, 이들 기업에 대해 대해서도 단계적으로 공정위 제소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 생성형 AI의 저작권 침해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이미지=권은주 기자
국내 지상파 방송 3사(KBS·MBC·SBS) 중심의 한국방송협회도 지난 1월 방송사 기사를 인공지능 학습에 무단으로 활용했다며 네이버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 등을 제기해놓은 상태다.
AI 제작사의 저작권 침해 문제가 불거지는 가운데 정부도 'AI 저작권' 관련 규정 마련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지난 1월 발족한 '2025 인공지능(AI)-저작권 제도개선 협의체'는 AI 산출물을 활용한 창작물의 저작권 등록 기준과 저작권 침해 판단에 대한 안내서를 제작해 올해 상반기 배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협의체는 AI 관련 저작권 규제 방안을 마련한 유럽연합(EU)의 입법모델과 미국, 일본 등 해외 국가의 최근 AI 정책동향 등을 참고할 것으로 전해졌다. EU가 지난해 승인해 단계적으로 시행 중인 'AI 법안'(AI Act)에는 고위험 AI에 대한 위험관리 의무와 함께 AI 학습 과정에 사용한 콘텐츠를 명시해야 한다는 규정 등이 담겼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관계자는 "해외 각 국에서는 유럽 등 입법 모델을 참고하여 법제도 개선 방안 마련을 검토하거나 혹은 이해 당사자 간의 상생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