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미국의 통상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지난해 개정된 반덤핑 및 상계관세 규정이 한국 기업들에게 실질적인 수출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21일 발표한 ‘2024년 미국 반덤핑·상계관세 규칙 개정 이후 1년간 수입규제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개정 이후 미국 내 특별시장상황(PMS) 및 초국경 보조금과 관련된 제소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한국이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국가 중 하나로 분석됐다.
미 상무부는 지난해 4월 반덤핑·상계관세 산정 기준을 전면 수정했다. 주요 변경 내용은 덤핑 마진 계산 방식 강화, 보조금 판정 기준 확대, PMS 적용 확대, 초국경 보조금에 대한 제재 가능성 증가 등으로 요약된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겨냥한 조치지만, 그 여파가 한국을 비롯한 다른 주요 교역국에도 고스란히 미치고 있다.
PMS는 수출국 내 가격 및 원가 자료가 왜곡됐다고 판단될 경우, 미국 정부가 기업의 실제 회계자료를 바탕으로 구성가격을 산정해 덤핑마진을 계산하는 제도다. 통상적으로 구성가격을 활용하면 수출국 입장에서 불리한 결과가 도출되며, 높은 덤핑률이 책정되는 경향이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PMS 적용 사례가 총 17건으로, 전 세계 국가 중 가장 많았다. 이는 태국(4건), 인도(2건), 튀르키예(2건)보다 훨씬 많은 수치다. 특히 최근 4년 만에 한국산 유정용 강관(OCTG)에 대한 PMS 청원이 재개되면서, 다시 고율의 관세 부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초국경 보조금과 관련한 청원도 급증했다. 과거에는 제3국 정부의 보조금은 원칙적으로 제재 대상이 아니었으나, 작년 규칙 개정 이후 해당 제한이 폐지되면서 규제 가능성이 크게 확대됐다.
실제로 2024년에는 초국경 보조금 청원이 10건 제기됐고, 올해 상반기에만 9건이 추가로 접수됐다. 한국산 에폭시 수지가 중국 정부 보조금 수혜를 받았다는 이유로 상계관세가 부과된 데 이어, 베트남산 하드 캡슐 및 인도네시아산 매트리스가 한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 혐의로 조사 대상에 올랐다.
보고서는 "이 같은 조치들은 중국을 주요 타깃으로 하지만, 한국 역시 그 불똥을 맞고 있다"며 "중국산 저가 원재료를 활용한 한국 기업의 제품도 조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을 향한 미국의 수입규제는 국가별로 비교해도 압도적인 수준이다.
무역협회 조사에 따르면 2025년 6월 기준, 미국은 한국에 대해 총 52건의 수입규제 조치를 적용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반덤핑이 37건, 상계관세 11건, 세이프가드 2건, 우회수출 규제 2건이 포함돼 있다. 이는 인도(18건), 튀르키예(16건), 중국(13건), 캐나다(13건)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이유진 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강화 기조와 맞물려, 개정된 반덤핑·상계 규정은 한국 기업의 대미 수출 리스크를 심화시키고 있다”며 “기업들은 사전에 미국의 조사 프로세스를 면밀히 검토하고, 선제적인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