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이주노동자' 생산의 수단 아냐..."동반자로 인식해야"

  • 등록 2025.10.18 12: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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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청·이민처 등 이민정책 총괄 정부 기관 신설 필요
現사업장 변경제도, 구직 기간 최소 6개월 이상으로 연장 필요
생애주기에 따라 사회에서 공생할 수 있도록 권리 보장해야

 

우리나라는 지금 역사상 유례없는 인구 절벽에 직면해 있다. 이대로라면 현재의 총부양비는 0.4명에서 2072년에는 1.2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우리 사회의 구성원 중 하나로 자리잡은 이주민에 대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외국인 노동자 100만 명 시대 ...그러나 인권침해 여전

 

지난해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외국인 노동자 100만 명 시대에 들어섰다. 외국인 거주자 수도 지난 20년간 약 5배나 증가했지만,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이주민들에 대한 구조적 착취와 인권침해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하는 심각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외국인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도 최근 5년 사이 3.5배나 증가했다. 2024년 이민자 체류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외국인 5명 중 1명이 "차별을 경험했다"고 털어 놓았다. 

 

이주민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거리와 마트·대중교통·일터·학교·공공시설 등 일상의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피해당사자는 일상적 불안과 배제, 정체성의 위협을 동시에 겪는다고 호소한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은 임금체불·산업재해·열악한 주거환경·단속과 추방의 두려움 속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 李 대통령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차별 용납할 수 없어”

 

이재명 대통령은 국정과제를 통해 이주민 보호와 인권 보장을 명확히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24일 온라인에 확산된 외국인 노동자 인권침해 영상을 언급하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범죄”라고 말하면 엄중 대응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으이 “낯선 타국에서 생계를 위해 일하러 온 분이 그런 방식으로 모욕당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다”라고 위로했다.

 

이주노동자 관련 현행 사업자 변경제도 사용자 중심으로 설계 

 

지난 14일 국회에 열린 토론회(일상화된 이주민 혐오와 차별, 제도로 대응하기)에서도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현행 사업장 변경제도가 지나치게 사용자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이주노동자의 직업선택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한국의 노동·결혼 이주·출입국 정책이 이주민을 ‘낯선 자’로 규정하고 혐오의 토대를 만들어 왔다는 지적과 함께, 행정 편의적 제도 운용으로 재난·위기 상황에서 이주민의 권리 박탈이 매우 심각하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주민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이주민의 문제를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라며 “피해자 구제·예방 교육 및 공론화 형성·제도 운용의 민주성 확보, 지역사회와 이주민 당사자의 참여 강화 등이 함께 엮여야 할 과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 고용허가제, 노동자 아닌 사용자 중심으로 설계돼

 

이어진 발제에선 이주노동자의 직업선택의 자유 및 인권침해에 대한 문제도 지적됐다.

 

최정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주노동 팀장은 “2004년 산업연수생제도의 대안으로 도입된 '고용허가제'는 국내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고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시행됐다”면서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사업장 변경 제한’ 규정은 이주노동자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제약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한 노동자를 사업장에 종속시키는 등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전남 나주의 한 공장에서 이주노동자가 지게차에 매달려 조롱당하는 사건이 발생해 사회적 공분을 산 바 있다”며 “이 사건은 단순히 이주노동자의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아니라 괴롭힘을 당하고도 즉각적으로 해당 사업장에서 이탈을 막고, 다음 사업장 구직 실패의 책임을 고스란히 이주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고용허가제 사업장 변경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임시방편적 대응이 지금껏 반복됐다"며 "이번 피해당사자도 고용허가제도 운영의 주무부처도 아닌 전남도지사의 선의로 구제를 받게 됐지만, 이러한 임시방편적 대응과 누군가의 선의로 넘길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고용허가제'는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를 중심으로 설계돼 이주노동자를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노동력 수급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외국인고용법)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극히 예외적인 사유에 한해서만 허용하고 있다. 이는 내국인 근로자가 자유롭게 직장을 선택하고 이직할 수 있는 것과 비교할 때 명백한 차별이다.

 

최정규 팀장은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사업장 변경을 위해 퇴사한 노동자가 3개월 이내에 새로운 근무처를 구하지 못하면 본국으로 출국해야 하는 현행 규정도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구직 기간을 최소 6개월 이상으로 연장하고 지역 내 동종 업종의 구인난 등 노동자의 책임 없는 사유로 구직에 실패한 경우 추가적인 기간 연장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구직 기간 동안 실업급여에 준하는 생계 지원 방안을 마련해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호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그는 또 "성실근로자 재입국 특례와 같은 장기근속 인센티브는 특정 사업장에 대한 종속이 아닌, 한국 사회에 대한 기여도를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며 "사업장 변경 여부와 관계없이 국내 총 근속 기간을 합산해 재입국 특례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필요할 때만 쓰고 버리는’ 정책 – 이주민의 무권리 상태

 

이주민 권리 보호를 위해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양혜우 ‘사회적협동조합 네트워크 RE’ 활동가는 “한국에서 이주민은 처음부터 ‘사람’이 아니라 ‘노동력’으로 받아들여졌다”며 "그러다 보니 이주민은 필요할 때는 받아들여지지만 문제가 생기면 쉽게 내쳐지는 권리 없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1990년대 산업연수생제도부터 2000년대 고용허가제, 미등록체류자 단속과 외국인보호소 운영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설계한 제도는 값싼 인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며 "‘연수’, ‘허가’, ‘보호’ 같은 온화한 단어 뒤에는 권리 제한·통제·구금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1990년대 농촌은 고령화와 인구 유출로 공동화 현상을 겪었다. 열악한 환경과 도농 간 소득격차, 가부장적 문화는 여성들을 도시로 떠나게 만들었고 남은 건 결혼하지 못한 남성들이었다"며 "정부와 지자체는 이를 사회문제로 규정하고 국제결혼을 해법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중수교 이후 지자체들은 중국 도시와 협정을 맺어 ‘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을 추진했고, ‘문화적·민족적 동질성이 크다’는 이유로 중국동포 여성은 이상적 신부로 간주됐다”면서 “결혼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국가·지자체·중개업체가 주도한 정책이었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개정된 국적법은 외국인 배우자에게 일정 기간 거주 후 간이귀화를 허용했지만 체류권과 국적취득 열쇠는 한국인 배우자가 쥐었다"며 "남편의 통장잔고·재직증명서·신원보증서가 필요했고 아이가 없으면 허가가 지연됐다. 남편이 사망하면 결혼 종료를 이유로 외국인 배우자가 강제출국 당하는 일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1999년 제정된 ‘재외동포법’은 처음엔 미국·일본·독일 등 선진국 교포를 중심으로 한정적으로 적용돼 중국동포와 CIS국가 동포를 배제했다. 서구권 동포는 인재·투자·연구자 비자 등 우대 정책을 집중적으로 받았지만, 중국동포는 고용허가제·방문취업제 같은 값싼 노동력 공급 프로그램으로 편입됐다.

 

이주민을 권리 밖으로 내모는 또 다른 장치는 ‘신고제도’와 ‘통보의무’였다. 2018년 경인전철 전광판에는 ‘불법체류자 외국인 발견 즉시 신고’ 문구가 10분마다 뜰 정도였다.

 

그는 “국가가 직접 ‘신고하세요’라고 독려할 때 이주민은 언제든 의심받고 추방될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며 “공무원은 직무 중 출입국법 위반자를 발견하면 즉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신고해야 하기 때문에 임금을 받지 못해 노동부를 찾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경찰 통역을 도운 미등록 청소년까지 ‘선의’의 방문과 협조가 곧 추방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주민 권리 보호를 위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인권 교육과 대중 캠페인을 실시해 차별을 줄여나가며 국적·체류자격이 아니라 정주성을 권리 접근의 기준으로 삼아 이주노동자에게 동일한 기여-동일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인종차별적 폭력을 규제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수단 부재

 

현행 한국 법체계에서는 명백한 혐오 표현과 인종차별적 폭력을 규제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부재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오래전부터 발의를 반복했으나,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계속해 좌절됐다.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 역시 제도적 틀은 존재하나 인종차별 및 혐오 금지 조항을 포함하지 않는다”며 “이러한 법적 공백은 이주민 당사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못하며 혐오와 차별이 구조적으로 심화되는 것을 방치하게끔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회보장권 측면에서도 이주민은 차별을 경험한다. 국민건강보험, 기초생활보장 등 주요 사회보장제도 접근에서 국적·체류자격에 따른 제한이 존재하거나 실제 이용 과정에서 차별적 경험이 보고된다”며 “코로나19 팬데믹과 재난지원금, 최근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과정에서도 절대다수 이주민은 지원에서 원천 배제되거나 절차적 불편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주민에 대한 도구적 접근에서 벗어나 지역 주민으로서 정주하고 동일한 권리를 누리며 생애주기에 따라 사회에서 공생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고 법·제도적 차별을 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발생률, 내국인 비해 2~3배 높아

 

한편,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발생률이 내국인에 비해 2~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6월 기준, 외국인 체불액은 855억원(전년 동기 대비 51.4% 증가)에 달했고 이 추세라면 역대 최고를 기록할 전망이다.

 

정영섭 이주노동자노동조합 활동가는 “사업주를 엄중히 처벌해야 하고 피해 이주노동자가 체불 청산을 할 때까지 체류와 노동을 보장해야 할 것”이라면서 “간이대지급금을 비법인 5인 미만 농어업 사업장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임금채권보장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노동자 신청을 통한 체류 기간 연장, 가족 재결합 허용과 가족 취업 허용·비자 변경 요건 완화·농어업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 상담·통역·교육 등 지원체계를 강화하고 차별 철폐와 권리 보장을 위한 전면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만권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현재의 관이 주도하는 다문화주의는 이주민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기보다는, 국가에서 필요한 행사에 동원하고 국가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모으는 도구로 활용된다”면서 “이주민(특히 이주여성)을 무능하고 무기력한 사람들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어 다문화가 낙인의 언어가 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각국의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 이주민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면서 “모두가 자신 삶의 터전에서 고향 같은 안정감과 미래를 누릴 수 있도록 포용적 네러티브를 형성하고 확산시켜야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이 밖에도 △이민청·이민처 등 이민정책을 총괄하는 정부 기관 신설 △이주민의 혐오와 차별 문제를 저출산·고령화 등의 해소 수단이 아닌 하나의 정치적 어젠다로 설정 △이주노동자 사망시 후속처리 보완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이날 토론회 주최를 맡은 이학영 국회부의장은 “이주노동자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노동과 생산의 수단으로 여기고,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다.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한국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동환 기자 photo7298@m-e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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