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런던 마라톤 남자 엘리트 레이스에서 케냐의 시웨(31살)가 1시간 59분 30초로 결승선 테이프를 끊었다.
인간 마라톤의 마지막 성역으로 여겼던 2시간의 벽이 마침내 무너졌다. 이는 단순한 스포츠 뉴스가 아니다. 42.195km의 두 시간 이내 주파는 오랫동안 인간 능력의 경계선처럼 여겨졌다. 불가능은 아니지만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이로써 과학자들이 계산한 이론적 한계치 1시간 57분 58초까지는 불과 2분여 남짓 남겨두고 있다.
세계적 기록 뒤에는 인간 의지와 현대 문명의 총력이 숨어 있다. 241km에 이르는 고강도 훈련, 당일 빵과 꿀 섭취 같은 정교한 영양 전략, 아디다스 초경량 레이싱 신발과 같은 기술 혁신과 재료공학, 데이터 분석이 한 데 모였다. 이제 스포츠는 과학과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과 로봇이 모든 분야에서 사람을 대신하게 된다는데 인간이 마라톤의 기록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계산은 AI가 더 잘하고, 반복 노동은 로봇이 대신하며, 효율은 기계가 인간을 앞선다. 심지어 로봇 마라톤 대회도 열리고 있잖은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은 굳이 땀을 흘리며 달리려 할까? 로봇에게 시키면 더 정확하고, 더 빠르고, 덜 힘들 텐데 말이다.
인간은 효율적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가장 오래된 인간의 언어 가운데 하나다. 우리는 사냥감을 쫓기 위해 달렸고,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렸으며,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렸다.
오늘날 우리는 생존을 위해 달리지는 않지만, 여전히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달린다. 숨이 차오르고 다리가 무거워질 때, 포기하고 싶은 순간 한 걸음을 더 내딛는 경험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고 느끼고 있다.
AI 시대에 마라톤 인구가 늘어나는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머리는 디지털 공간에 묶여 있다손 치더라도 몸은 여전히 아날로그다. 종일 화면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오히려 흙길과 강변길을 걷고 캠핑을 한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삶 속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한 고통을 통해 자유를 확인한다. 이때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회복력, 절제, 자기 신뢰, 그리고 내일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인간이 극한에 도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바다를 건너고, 사막을 횡단하는 모험은 실용성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꼭 필요한 일이라면 기계에 맡기면 된다. 반면 인간은 필요한 일만 하면서 살아가지 않는다.
문명은 불필요해 보이는 도전 속에서 진보해 왔다. 하늘을 날 필요가 없다고 말하던 시대에 비행기가 나왔다. 달에 갈 이유가 없다고 하던 시대에 우주선이 발사되었다. 한계에 도전하는 정신은 늘 새로운 길을 열었다.
마라톤에서 두 시간의 벽이 무너진 날, 우리는 인간의 종을 초월하는 빠른 다리와 인간의 정신력을 보았다.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그러한 인간의 도전과 모험 정신이 살아 있는 한 인간의 위치는 그 무엇에 의해서도 뺏기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