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사태로 정신적 피해를 본 시민들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례적으로 ‘정신적 피해에 대해 시민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옴에 따라 ‘계엄 손배소’가 일파만파 커질 전망이다.
지난 2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단독 이성복 부장판사는 이 모 씨를 비롯한 시민 104명이 윤 전 대통령을 상대로 1인당 10만 원을 배상하라며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위헌·위법한 비상계엄과 그로 인한 일련의 조치를 통해 국민 대의기관인 국회 등 국가기관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국민의 생명권, 자유,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야 하는 대통령의 의무를 망각했다”며 “12·3 비상계엄 조치는 원고들이 당시 공포·불안·자존감·불편·수치심으로 표현되는 정신적 고통 내지 손해를 받았을 것임이 경험칙상 명백하다”고 밝혔다. 이어 “원고들에게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고, 액수는 적어도 원고들이 구하는 각 10만원 정도는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이 정신적 피해 대상자...‘손해배상 책임’ 소송의 범위 확대될까
이금규·김정호 변호사는 지난해 12월 소송참여단을 공개 모집해 소송을 제기, 결국 1심 손해배상 승소를 이끌었다. 특히 김 변호사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추가 소송을 예고했다.
‘채해병 순직 외압 사건’에서 박정훈 대령을 변호했던 김경호 변호사는 “1인당 10만원 배상판결을 환영한다”며, 이제 국민 손해배상 청구를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또 다른 소소을 진행 중인 이금규 변호사가 무려 1만 명 넘는 국민 참여자를 추가 모집했다. 여기엔 국회에서 계엄군을 저지한 국회 직원과 보좌관 191명도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12·3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법원 판결이 광주 시민들이 제기한 별도의 손해배상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광주여성변호사회는 국민 23명을 원고로 유사한 소송을 광주지법에 제기한 상태다.
광주여성변호사회는 지난해 12월, 광주 시민 23명을 대리해 윤 전 대통령을 상대로 1인당 10만 원씩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광주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이들은 “무장 군인이 국회 주변에 투입된 한밤의 계엄으로 충격과 공포를 겪었다”며 정신적 피해를 호소했다. 그러나 이 소송은 8개월째 재판기일조차 잡히지 않은 상태로 계류 중이다.
나아가 이번 비상계엄 관련 손해배상 판결로 인해, 추가 민사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실제 온라인을 매개로 만들어진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단’에는 하루 만에 700명이 넘게 모였다.
법조계에서는 윤 전 대통령 측이 이번 1심 판결에 항소할 가능성이 있고, 항소에 따른 추가 판결에서 결과가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법원까지 갈 경우, 법원의 반대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지만 법리상에 ‘쉽지 않은 싸움이다’고 바라보고 있다.

●전 대통령과 시민의 싸움 역대 사례...‘이례적 정신적 피해’ 인정될까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당시에도 비슷한 소송이 제기됐지만 대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손배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1만여 명의 시민이 ‘국정농단으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1인당 50만 원씩 배상하라는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2020년 최종 패소했다. 당시 법원은 “대통령은 정치적 책임을 지는 데 불과할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해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6공화국으로 돌아가, 대법원 1994년 3월 10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지방자체단체장 선거 관련 ‘93다30877 판결’에 따르면, 노태우 대통령이 선거일 공고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일반 국민에게 손해배상을 할 의무는 없다’고 판결했다. 이는 규범목적설을 근거로 한 것인데, 이 법리가 이번 손해배상 사건에도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반면, 2022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5년 발령한 ‘긴급조치 9호’가 위헌일 뿐 아니라 민사적 불법 행위에 해당해 국가가 당시 체포·처벌·구금된 피해자들의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한 사례가 있다. ‘국가의 위법 행위’로 인한 국민의 피해 범위를 폭넓게 인정한 것이다.
추은혜 변호사(법률사무소 더든든)는 최종적으로 국가가 정신적 손해보상을 인정한 케이스는 없다고 말한다. 추 변호사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윤 전 대통령에 의한 내란 행위로 국민이 받은 심리적 상처와 스트레스는 인정할 만하다”며, “하지만 법리적으로 이 특별한 비상사태에 대해 물질적인 피해나 직접적인 정신적 증거를 확정 판결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대통령에 의한 국가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판례로 남길 지가 핵심이다. 항소심이나 대법으로 갈 경우, 판결이 바뀔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내다봤다.
한편, 비상계엄 선포에 윤석열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김건희 여사의 가담 여부에 따라 그의 재산까지도 손해배상 배상금에 포함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계엄 손배소’에서 승소한 이금규·김정호 변호사는 “국정 농단은 개인적 비위 측면이 있지만, 윤 전 대통령의 불법 행위는 위법을 넘어선 위헌적인 사건으로 헌재에서 탄핵까지 된 만큼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며, “국가의 위헌, 위법 행위가 명백한 경우에 국민들의 권리 구제 범위를 넓혀준 판결”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만약 전 국민 5000만명이 모두 소송에 참여한다면 배상 금액은 무려 5조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행정안전부 인구통계에 따르면 2025년 6월 현재 한국 인구는 5116만4,582명으로, 이들에 대해 모두 10만 원씩을 지급해야 한다면 그 총액은 5조1,165억 원에 달한다.
윤 전 대통령이 서류상 재산이 79억 원에 불과하기에, 배상을 받더라고 모든 국민에게 보상 금액이 전부 돌아갈 가능성은 낮다. 실제 민사상 배상은 은행 거래상 예·적금, 잔고나 부동산 재산에 대한 압류만이 그 대상이 된다. 또한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가 공동정범으로 인정되더라도, 배상에 있어서는 별개로 인정된다. 사실상 민사상 국민 손해배상에 대해 김 여사에 대해 금전적 배상 의무는 없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