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새로운 노사관계 출발점 되기를

  • 등록 2025.09.10 13:48:49
크게보기

 

일명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조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마침내 통과됐다. 정부와 압도적 다수 의 석을 가지고 있는 여당으로서는 노조가 정치적 기반이기 때문에 반대를 무릅쓰고 집권 초기에 숙제를 처리해 놓고 보자는 의도로 파악된다.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간단하지만 복잡하다. 현재 노동계 와 경영계의 입장은 극명하게 갈려 있는데, 간추려 보면 근 로계약을 맺지 않고 있는 비정규직, 파견·하청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등도 원청 기업을 상대로 쟁의를 벌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단기적으로 볼 때 파업이 증가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기업이 직접 고용을 증가시키려는 유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의 경영 사정상 고용을 늘리는 데는 한계를 느낄 것이다. 더욱이 현대의 선진국 및 중진국 기업들은 고용에 대해서 최소한에 그치고 핵심 인력만 고용하는 추세인 까닭에 노란봉투법은 고용에 관해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테면, 기 업들은 AI화된 로봇 도입을 늘릴 것이고, 고급 인력 중심 경영을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국가 전체적으로 실업률 증가와 임금 양극화의 심화가 예상된다. 또 노란봉투법에는 쟁의행위 대상에 근로조건이 포함됐다. 즉 임금 혹은 정리해고 등 여러 가지 근로조건에 대해 노동자가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 이것은 지금도 이 부분을 놓고 불법파업의 형태로 쟁의를 해왔던 것을 합법화하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노조는 이제 합법적으로 근로조건 의 변화를 준다고 판단할 경우 파업을 벌일 수 있다. 이것 역시 쟁의 증가 요인이 된다. 세 번째 쟁점은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파업 중에 기물 파손은 물론 생산 차질, 여러 가지 물적 피해가 발생하는데 노동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손해배상은 안 된다는 취지다.

 

파업은 격한 감정을 수반하기 때문에 기물 파손을 넘어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 과격 행동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 조항이 실제 쟁의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될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과격한 쟁의행위가 증가할지 아니면 과격 행위를 자제 하는 것으로 나타날 것인지 예측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 예상하면 이제 엄청난 손해배상을 당하지 않을 수 있게 됐으므로 과격 행동을 일삼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경영계는 이 부분을 우려하고 있다. 회사의 기물과 시설은 회사의 주주 소유이고 나아가 나라의 경제 및 사회 자산이다. 그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이 함부로 손상을 가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이번 법 개정을 통해 노조들은 그간 격렬한 쟁의 양식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국민 여론도 파업 증가 우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민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인식조사에서 노란봉투법을 시행할 경우 76.4%가 노사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국민의 80.9%는 “개정안 통과 시 파업 횟수와 기간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실제 한국의 자동차, 조선, 전자, 물류 산업 등은 업종별 단계별 협업체계로 구성돼 있는 상태여서 법안이 통과되면 원청기업들을 상대로 쟁의행위가 상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경영계 의견이었다. 같은 기간 600개 국내기업, 167개 외국인투자기업 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외 기업들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협력업체 계약조건 변경 및 거래처 다변화’(45.0%), ‘국내사 업 축소·철수·폐지 고려’(40.6%), ‘해 외사업 비중 확대’(30.1%)할 것을 꼽았다.

 

‘중요부품 외주화 축소와 내부화’(26.2%), ‘하청노조와의 교섭대비 조직을 만들겠다’(21.5%)고 응답했다. 중소기업은 법적분쟁, 거래축소, 영업 차질을 우려했다. 응답자 중 중소기업들은 개정안 통과 시 우려되는 사항으 로 ‘법률, 노무 대응 역량 부족으로 인한 법적 분쟁 대응이 어렵다’(37.4%), ‘원-하청노조 갈등 시 거래축소와 철회, 갱신거부 등 불이익 생길까 두렵 다’(36.2%), ‘불법 파업 면책 확대에 따른 영업차질 우려된다’(35.5%)는 입장이다.

 

이외에도 ‘인사노무 결정에 있어 독립성 상실’(13.5%), ‘신속한 경영권 행사가 어려워져 시장대응력 저하’(16.9%) 등을 꼽았다. 외투기업은 ‘본사의 투자결정 지연’을 우려했다. 외투기업의 우려는 ‘본사 투자 결정 지연 또는 철회 가능성’이 50.3%로 가장 많았다. 이어 ‘본사 정책과 한국 노동법 규제 간 괴리 확대’(39.5%), ‘한국시장 투자매력도 하락’(33.5%)이 뒤를 이었다. 이외에도 ‘한국내 생산 차질, 공급망 안정성 저하’(18.0%), ‘외국인 경영진과 해외 인재 유입 저하’(13.2%) 등을 지목했다.

 

대한상의 이종명 산업혁신본부장은 “우리 기업들의 영업 이익이 전반적으로 줄고 있는 가운데 관세 압박, 중국의 산업경쟁력 강화, 폐쇄적 규제환경, 저출생, 고령화 등에 대응하는 가운데 AI 전환, 새로운 성장모델 발굴까지 해야 할 숙제도 많아지고 있다”며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노란봉투법, 외국인 투자 기업들에 부정적 영향 불가피

국내기업들의 해외 이전은 불투명, 중소기업들 곤경에 빠질 우려 커


 

국내외 기업들의 인식조사에서도 드러났듯이 외국투자들의 투자는 확실히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대부분의 중소기업 협력사들은 ‘벼랑 끝 경영’을 하고 있는 마당에서 극단적인 노사 혼란이 지속된다면 견뎌낼 기업들이 많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글로벌 자유무역 시대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각국 당국과 기업들은 대미 무역에서는 자국 기업 우선 정책을 펴나가는 한편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 간에는 활발한 무역 거래가 점쳐지고 있다. 그렇지만 기조는 자국기업 우선주의가 도드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기업들이 선뜻 외국으로 공장을 옮긴다는 결정은 쉽지 않다. 다만 시장 다변화를 목 적으로 여러 나라에 분산할 여지는 있다.

 


국가 경제 경쟁력은 노사 관계와 기술에 달려 있어


 

한 나라의 경제 경쟁력은 복잡하게 바라보면 한없이 복잡한데, 단순하게 보면 노사관계와 기술 발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기술 개발과 혁신도 결국 기술계 노동자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보면 원만한 노사관계가 기술 개발의 조건이자 기반임을 알 수 있다.

 

노사관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영국의 산업혁명 이래 참으로 험난한 여정을 걸어왔다. 근대 시장자본주의 발상지 인 유럽의 노사관계는 투쟁 일변도였다. 그 배경은 중세의 계급 족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를 향한 혁명이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영국의 노동당처럼 노동자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들이 일찍부터 존재했던 까닭이다.

 

유럽의 후발주자였던 미국은 유럽에 비해 새 출발 모습이 었으나 인종문제가 뒤섞이면서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 유럽과 미국의 노사관계는 계급적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미국은 2차대전 승전 직후 황금시대였던 1950-60년대는 허니문에 가까운 노사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서 미국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원만한 노사관계가 갑자기 파탄났다.

 

필자가 볼 때 노사관계는 대립이 주종하고 허니문, 또는 원만한 관계는 일종의 환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립’을 파업으로 가지 않고 잘 관리할 수 있으면 최상이 아닐까. 한국과 같이 막 선진국 단계에 진입한 나라의 기업에서 노사관계에 금이 가는 이유는 임금 인상과 고용 안정이다. 이전에는 복지 확대도 포함됐는데, 지금처럼 경쟁이 치열한 무역 환경에서 어느덧 복지 확대는 사치가 된 것 같다.

 

노동자들이 간절히 소망하는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이 전반적으로 좋았던 시절이 한국경제에도 있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경제가 성장을 가파르게 할 시기에 민주화 운동과 노동쟁의가 극심한 적도 없지 않았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그러나 경제가 점점 더 선진화 단계로 들어서면 둘 중의 하나를 포기하거나 둘 다 포기해야만 하는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지금 노동계는 그 옛날 좋았던 시절을 그리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시대가 다시 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어떤 법이라도 양 당사자가 존재하는 법은 한쪽이 한사코 반대하면 실제 시행되기는 어렵다. 법이라는 게 만능일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경영계가 우려하던 대로 노사 분규와 파업이 빈발하면 경영계도 살아남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할 것이다. 그 수단 가운데는 앞서 상공회의소 조사에서도 나타났듯이 회사 해외 이전, 고 용 축소, 업종 변경이라는 극단적인 선택도 포함된다. 한국경제의 강점인 제조업은 지금 힘겹게 유지되고 있다. 이번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그나마 국제 경쟁력을 가지고 있던 제조업을 쇠락의 길로 본격적으로 접어들게 하는 변 곡점이 될까 걱정스럽다.

 

정부와 노동계는 법이 개정되고 나서 부작용이 드러나면 즉시 개정할 것을 촉구한다. 한국 경제는 여유를 부릴 시간도 여력도 없다.

 


한국적 노사 관계 모델 모색할 때


 

노사관계에 관한한 세계 어느 나라에 서든 벤치마킹할 모델은 없는 것 같다. 우리 식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한국 사회는 조선이 멸망해 일본 식민지가 되면서 왕족과 양반 사대부 등 지배 계급은 사라졌다. 해방 후 토지개혁으로 지주들도 소멸됐다. 이어서 터진 6.25전쟁은 남한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국민들 간의 격차는 없어지고 모두가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그래서 전후 복구 이후 1950년대와 1960년, 1970년대까지 우리의 노사관계는 운명공동체의 성격이 주조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노사 관계가 운명공동체의 성격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유럽과 미국 기업은 물론 이웃 일본 기업과도 다르다. 이와 같은 경제개발 시기의 운명공동체로서의 노사관계가 임금 투쟁과 민주화 운동에 휩쓸리면서 완전히 타인 관계가 돼 버렸다. 이번 노조법 개정으로 운명공동체로서의 노사관계로 조금이나마 복원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서로 양보하고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고 한 식구로 받아들이는 의식 혁명이 노사 모두에게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이상용 주필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Copyright @2012 M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회사명 (주)방송문화미디어텍|사업자등록번호 107-87-61615 | 등록번호 서울 아02902 | 등록/발행일 2012.06.20 발행인/편집인 : 조재성 |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대로72길 4. 5층 | 전화 02-6672-0310 | 팩스 02-6499-0311 M이코노미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무단복제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