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살리기비상대책위원회 인태연 회장

  • 등록 2014.11.14 12: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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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가 곧 경제활성화입니다”

지난 해 남양유업 사태로 가맹사업의 불공정관행이 대대적으로 이슈화되자 전국 ‘을’들의 권리를 찾고 공정거래문화를 확산하겠다는 취지로 같은 해 5월22일 ‘전국을살리기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을살리기비대위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인태연 회장은 2006년 카드수수료 인하운동을 주도하며 당시 전무했던 ‘상인운동’을 시민운동사에 첫 등장시킨 인물이다. 그는 대기업들도 전체적인 소비시장과 공생하는 마인드로 경영을 펼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을살리기비대위는 대기업들의 불공정한 거래관행과 소비시장 잠식을 막아 대기업-중소기업·상인들의 공생경제를 실현하고 소비자들의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중소업체·상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상인운동 단체다. 설립 당시만 해도 대기업들의 대리점에 대한 불공정거래 관행이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대기업 본사들은 대리점이 주문하지 않은 제품들을 일방적으로 공급하고 대리점에 판촉행사 비용을 부담할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또 판매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 등으로 계약을 중도해지하고 과도하게 위약금을 물리는가 하면 편의점의 경우, 24시간 영업을 강요하는 관행이 지속됐다. 게다가 대형유통업체들의 소비시장 장악으로 전통·골목시장이 문을 닫는 일이 비일비재해 1,660개였던 전통시장이 1,540개로 줄어들기도 했다.

18대 대선부터 박근혜 정부 초기까지 중소상공인 보호, 재벌·대기업 규제 등을 내용으로 한 경제민주화 열풍이 불었지만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재벌대기업 ‘슈퍼갑’의 횡포와 불공정약관은 여전히 중소기업과 상인들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영세상인과 가맹점, 하청업체 등 다양한 ‘을’들이 중소시장을 파괴하는 불공정한 사회를 바꾸자는 목표 아래 모인 곳이 을비대위다. 여기에 시민사회단체인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이 합세했고 전문가단체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정치단체로는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등도 힘을 싣고 있다.

인태연 회장은 “예전에는 중소상인들과 기업들이 불공정한 거래로 인한 피해를 자신의 문제로만 받아들이고 체념했다. 하지만 재작년부터 발생한 편의점 가맹점주의 자살사건, 남양유업 사태 등이 사회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상인들의 인식도 피해를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에 상인운동단체로서 을비대위가 출범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을비대위는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골목시장 파괴, 중소상인들의 생존권과 권리를 보호하는 운동과 대형마트나 SSM규제, 중소기업적합업종 법제화 운동 등을 벌이고 있다.

상인운동, 첫 발 떼다

인태연 회장이 상인운동에 첫 발을 내딛었던 2006년 당시에는 ‘상인운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을 정도로 상인운동 환경 자체가 척박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상인들은 자기 밥그릇 챙기는 존재일 뿐이었다”며 ”실제로 그때까지는 상인들이 먹고 살 만하기도 했었다”고 2006년 카드수수료 인하 운동을 펼쳤던 당시 상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회고했다.이후 대기업과 대형마트의 장악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등 대기업 중심·독점체제로 시장이 개편되고 있다는 것을 그는 감지했다.

 

실제로 카드수수료도 중소·영세업체는 3.6% 수준인데 비해 대기업들은 1.5~1.8% 수준이었다. 그는 더 많이 가진 자들에게 더 많이 걷어야 하는 법인데 이러한 카드수수료 부과는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인들을 모아 설득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이·미용, 귀금속, 주유소 등 다양한 자영업자들이 관심을 갖고 집회에 참가했으며 당시 민주노동당이 힘을 실으면서 전국 규모로 퍼져 나갔다. 그는 2007년 자신의 사업장이 있는 부평역 인근에 기존에 있던 롯데마트 2곳 외에 또 다른 롯데마트가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이를 저지하는 반대운동을 벌였다.


대형마트 하나가 2~4km까지 시장을 파괴하는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롯데마트 신규오픈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처음에 ‘중립’을 외치며 지역 상인들과 대기업의 싸움을 구경만 했던 공무원들에게 그는 “롯데마트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중앙으로 다 가져간다. 진정한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 상인들의 편을 드는 게 맞지 않느냐”고 설득했고 이를 수긍한 공무원들도 이 운동을 돕기 시작했다.


상인운동이라는 불모지를 개척하면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논리에도 부딪혔지만 그는 시장을 장악해가고 있는 대기업에 지속적으로 저항하고 공생하는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발생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386세대라면 누구나 학생운동 안 해 본 사람이 없거든요. 불의를 보면 참지 못 하는 의식이 저에게 내재돼 있었던 거 같습니다(웃음).” 학생운동 세대로서 정의감과 투지, 타고난 리더십을 바탕으로 그는 상인운동의 선봉에 서서 경제민주화 법들을 통과시키는 주역이 된다.


 

법개정운동으로 경제민주화 불 지펴


인태연 회장은 2012년 출범한 유통상인연합회에서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대형마트의 전통시장 500m 이내 접근규제를 내용으로 한 유통사업발전법을 통과시켰다. 당시 대형마트의 진출 규제에 대한 반대논리로서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막는 것은 안 된다”, “WHO 체제에서 통상마찰이 우려된다”, “(대형마트를 이용할) 소비자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막는다”는 논리들이 제기됐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반대논리들을 벽돌을 부수듯이 하나하나 깨나갔다. 첫 번째 논리에 대해서는 경제민주화를 위한 규제를 국가가 할 수 있다는 것이 헌법에 나와 있다는 논리로 반박했다. 헌법 119조 2항에는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두 번째 논리를 깨기 위해 변호사와 통상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면서 묻고 또 물었다. 결과는 “통상마찰과 대형마트 규제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 소비자문제는 이들 논리 중 깨기가 가장 어려웠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다양한 선택권이라는 것은 다양한 시장이 있어야 보장되는 것이며 재벌들이 독점하는 시장에서는 담합이 가능하기 때문에 소비자 선택권이 오히려 유린될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이러한 법 개정운동에서 시민사회단체의 동참이 가장 큰 힘이 됐다. 상인단체를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중산층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던 시민단체들에 그는 상인들이 이제는 대기업에 밀려 위기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중하층일 뿐이라는 점을 설득했고 대기업의 횡포를 막고 경제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데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상인운동에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상인운동을 시작한 지난 2006년 무렵부터 10년에 걸친 설득과정을 통해 이뤄낸 값진 성과였다.


이러한 법개정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을비대위 출범 이후 편의점 등 프랜차이즈 본부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규제하는 내용의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를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24시간 영업 강요 금지 ▲과도한 해지위약금 금지 ▲사업자단체의 결성 및 협의권 부여 등을 담고 있다.

편의점 가맹점들은 15%에 불과한 마진에서 경비와 인건비 등을 떼야 한다. 장사가 잘 되는 큰 곳들은 사정이 좀 낫지만 작은 점포들은 아르바이트조차 두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심야영업까지 하려면 가맹점주가 모든 일상생활을 포기하고 가게에만 매달려야 한다. 가맹사업법 개정안은 이러한 살인적인 가맹점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법안이다. 법안 통과에는 편의점주들의 단합 뿐 아니라 옷, 식자재 등 할 것 없이 유통상인들과 시민단체, 정치권 등의 합세가 큰 힘이 됐다.


을비대위의 또다른 성과로 대형마트 의무휴무제가 담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통과를 들 수 있다. 법개정운동 과정에서 전통시장의 생존권 문제 외에도 대형마트 노동자들의 살인적인 노동환경에 대한 문제제기가 일어났고 그들이 합세하면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인태연 회장은 대기업의 외부에 있는 업체든 내부에 있는 직원이든 대기업에 의해 피해를 보는 건 마찬가지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점이 가장 의미 있는 대목이었다고 평가했다.

경제민주화 포기하면 국민경제 파탄 ‘불 보듯’


인태연 회장은 경제민주화는 경제선순환을 유지하고 건강한 국민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고 말한다. “혈관 중에 대동맥도 있지만 온 몸 구석구석 영양분을 전달하는 실핏줄도 있어야 몸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사회구성체도 큰 부분을 움직이는 구성체와 중간부분, 작은 부분의 구성체가 있잖습니까? 어느 한 부분이 망가지면 사회 전체가 삐걱거리게 되니까 각 부분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지시켜 주는 것이 바로 경제민주화라고 봅니다.”


또한 그는 경제민주화는 서민들의 사회안전망을 유지시켜 주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대기업에 의해 독점된 시장에서 명예퇴직을 당한 가장, 은퇴한 노인, 미취업 청년 등이 희망을 걸 ‘장사’라는 제3의 터전이 없어진다면 이들은 대기업 아래에서 살인적인 노동환경을 견뎌야 하는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정책 흐름을 보면 경제민주화는 없어지고 경제활성화를 과장한 재벌소원수리제도 일색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정부의 유통산업발전기본계획(2014년∼2018년)을 보면 대형유통 규제는 축소하고 소형유통 지원을 축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기본계획의 핵심 내용은 ▲대형업체 규제 대신 민간자율의 상생·협력 ▲중소유통업체 선택적 지원 ▲대형업체의 해외진출 지원 등이다. 정부는 복합쇼핑몰, 드럭스토어, 편의형 슈퍼 등 신산업이 골목상권 침해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며 중소상인이 정부지원금에 안주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시장 시설현대화사업 등의 정부지원을 축소키로 했다.


인 회장은 “박근혜 정부는 어떻게 하면 중소자영업자들이 대기업과 상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이들을 건강한 중산층·소비자로 만들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없을까를 고민하는 대신 대기업들이 시장 파괴하는 것을 돕고 중소업체에서 떨어져나간 사람들을 대기업이 저임금 노동에 쓰도록 방조하는 정부”라고 힐난했다.


그는 또 현재의 이 시점이 중소·영세업체들에게 가장 위기라고 분석했다. 영세자영업자들이 대기업의 시장침탈이 부당하며 중소업체들도 상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기는 했으나, 정부와 국회가 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중소상인들을 보호·육성해 유지·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아울러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탐욕과 시장파괴를 막는 법들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은 파괴되고 국민들은 하층민으로 전락하고 노동시장의 질도 노예화될 것이라고 그는 경고했다.


그는 “한 부부가 동네슈퍼를 운영해서 자녀 둘을 대학 보내면서 먹고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 은퇴한 노인이 치킨 프랜차이즈를 통해 노후자금을 벌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중산층 양산과 내수시장 활성화 등 경제활성화로 직결되는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상인운동가로 우뚝 서다

을비대위가 최근 가장 주력하는 운동은 바로 중소기업적합업종제도의 법제화다. 현행 중소기업에 적합한 업종에 대기업이 진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동명의 제도는 민간기관인 동반성장위원회 주도의 합의제도로 운영되고 있어 강제성도 없고 적합업종 선정여부도 모호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청 등 정부기관이 중소기업적합업종을 지정하고 대기업이 이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 이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을 만들기 위해 ‘중소상인적합업종특별법제정추진본부’를 출범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본은 스스로를 확대시키려고 하는 속성만 있을 뿐 양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법과 제도로 통제해 대기업에게 공생하는 기업경영 마인드를 가르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지난 해 7월부터 한 인터넷방송국에서 ‘인태연의 을짱시대’를 진행하고 있다. 1주일에 한번 방송되는 이 방송의 1부에서는 중소업체와 영세상인들이 출연해 자신들이 처해 있는 대기업으로 인한 피해 등을 털어놓고 2부에서는 변호사, 국회의원 등 전문가들의 전문적인 소견을 듣는다. 그는 오늘도 상인 인태연을 넘어서 상인운동가 인태연으로, 영세자영업자와 중소업체의 권익보호를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MeCONOMY November 2014

박영신 기자 rainboweye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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