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지나

  • 등록 2015.03.13 13: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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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물가지수는 2012111.6%를 기록한 이후로 27개월 연속 1% 대를 유지했다. 더군다나 올해 1월에는 소비자물가지수가 0.8%를 기록했다. 여기에서 담뱃값 인상요인을 빼면 0.2%에 그친다는 견해도 있다. 이에 우리나라가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악순환의 고리


반적으로 디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보다 위험하다고 본다.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하락하고, 그에 따라 기업들의 투자가 줄어들어 고용률이 낮아지며, 낮은 고용률로 일자리가 없어지면 소비자들이 물건을 사지 않아서 가격은 더 낮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태이다. 따라서 한 번 디플레이션에 진입하면 마치 더 밑으로 가라앉는 늪에 빠지듯 경기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한국경제연구원 오정근 초빙연구위원은 1992년부터 2011년까지 0.2~0.3%의 물가상승률을 겪은 일본의 잃어버린 20이 대표적인 디플레이션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연평균 20% 가까이 주가가 하락했으며, 1992년 이후 3년간 토지가격이 폭락하면서 자산시장의 버블 붕괴를 겪었다. 이후 극심한 내수부진으로 20년 간 장기침체를 겪어야만 했다.


또한 1930년대 세계 대공황도 대표적인 디플레이션이다. 대공황은 1929년 미국 뉴욕증권시장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시작되었다. 주가폭락으로 기업과 은행이 파산했는데, 1929년부터 1933년 사이 9천개의 은행이 파산할 정도였다. 곳곳에서 공장가동이 중단되면서 1933년 실업자가 1600만명에 이르렀다.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지자 미국과 교역을 하던 세계 각국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오스트리아의 크레디탄슈탈트 은행이 1931년 파산해 오스트리아와 독일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었으며, 독일에서는 1929년부터 1932년까지 600만명에 이르는 실업자가 발생했다. 일본에서는 도쿄증권시장이 폭락했고, 오스트레일리아는 1932년 실업률이 30%를 넘어섰다. 이렇듯 대공황은 세계 각국을 파탄에 빠뜨렸으며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까지 세계 경제를 괴롭혔다.


 

유로존의 디플레이션 우려

 

최근 세계경제는 주춤하고 있는 상황이다. 2008년 주택가격 하락으로 150년 역사의 대표적 미국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그 이후 세계 각국은 경기를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리먼 사태는 클린턴 정부 시절(2005), 아메리칸 드림으로 미국 내 모든 사람이 집을 갖게 하겠다는 공약이 문제의 시초였다.


오정근 초빙연구위원은 집값을 제대로 갚을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도 돈을 빌려주다 보니, 결국 이들이 부채를 갚지 못해 금융기관들의 연쇄도산으로 이어지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왔다고 밝혔다. 유로지역 주요 4개국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회복에 어려움을 겪는 등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낳기도 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유로 제1의 경제대국인 독일은 러시아와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성장률이 주춤하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독일은 러시아에 대한 오일, 가스 등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30% 후반대이며, 러시아에 대한 수출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유로지역 주요 4개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러시아와의 교역관계 악화 시 0.3%p 내외의 독일 경제성장률이 줄어들 소지가 있다. 프랑스는 지난해 2분기 연속 제로성장을 보였다. 특히 재정운용상의 제약, 노동규제, 조세부담 등으로 경쟁력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탈리아는 정부부채 비율이 2014년 현재 135%로 유로지역 주요 4개국 중 가장 높으며, 잠재성장률도 2012년 이후 3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이탈리아가 늘어나는 채무부담으로 인해 위기 상황 시 대응능력도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 밝혔다스페인은 유로지역 주요 4개국 중 가장 낮은 물가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기대비 연율 1.1% 하락해, 20097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와 함께 유럽의 통화정책이 크게 엊나가며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기도 했다. 미국의 경우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양적 완화 시 국채를 발행한 것과 달리, 유럽에서는 회사채를 발행해서 자금경색을 해소하려 했다. 하지만 경기가 안 좋아서 우량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는 기업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 오정근 초빙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이로 인해 유럽시장 내에 돈이 많이 안 풀려서 회복이 안 되었으며, 유럽중앙은행은 지난 122일 미국식 양적완화 정책을 펴기로 결정했다. 유럽중앙은행은 3월부터 내년 9월까지 총 11400억유로를 공급할 예정이다. 양적완화의 효과는 추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고도성장 멈추나

 

중국은 1983년부터 2012년까지 30년간 경제성장률 연평균 10%가 넘는 고도성장을 통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한국이 1960년대 이후 30년간 9.8%의 성장률을 기록한 이후 처음이다. 하지만 중국은 2012년부터 3년 연속 7% 대를 기록했으며, 올해는 7% 방어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 전문가는 6% 대로 떨어질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수출 품목의 20%가 유럽으로 팔리기 때문에 유럽경제의 회복여부가 중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12월 중국 100대 도시의 신규주택 평균가격은 8개월 연속 하락했. 또한 지난해 12월 생산자물가 상승률이 상품가격 하락, 부동산 경기 위축 등으로 3.3%(전년 동월대비)를 기록하며 20123월 이후 34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중국 해관총서는 지난 2월 중국의 수출은 전년 동기대비 3.3% 감소했으며, 수입은 전년 동기대비 19.9%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수입량 감소에는 석탄(-40%)과 철광석(-9.5%), 원유(-7.9%)이 포함되어 있어 원자재 수출 의존도가 높은 신흥시장(브라질, 동남아)의 경제성장률도 동시에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경제는 디플레이션인가?


유럽의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고, 중국의 고도성장이 정체되는 동시에 세계경제의 디플레이션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전세계 연평균 성장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3~2007년에는 3.7%였으나, 금융위기 이후인 2009~2014년에는 2.9%에 머물고 있다고 밝혔다. 경제전문가들은 국내 경기도 세계 경기 침체와 국내 여건으로 인해 디플레이션에 진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오정근 초빙연구위원은 GDP갭이 3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점을 들어 디플레이션에 빠졌다고 보고 있다. GDP갭은 실질GDP에서 잠재GDP를 뺀 수치를 말한다. 잠재GDP는 물가상승률을 가속시키지 않으면서 생산요소를 완전히 투입했을 때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능력이다. 만약 GDP갭이 플러스이면 경기가 과열되어 인플레이션이 우려되며, GDP갭이 마이너스이면 디플레이션으로 여겨지게 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지난해 국내 경상수지가 8942천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종전 경상수지 흑자 최대치인 20138115천만달러보다 10.2% 오른 수치다. 오정근 초빙연구위원은 이를 불황형 흑자라고 강조했다. 수출은 62154천만달러로 전년 대비 0.5% 증가에 그쳤는데, 이는 2009년 이후 5년 만에 최저수치이다. 반면 수입은 국내 수요부진으로 52866천만달러로 전년 대비 1.3% 감소했다. 결국 사상 최대의 경상수지 흑자기록은 수출액이 급격히 상승해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수출이 정체됨과 동시에 수입이 그 이상으로 줄어들어 생긴 현상인 것이다.

 

고령인구 증가와 기업 투자위축

 

한국경제연구원 오정근 초빙연구위원은 우리나라가 디플레이션에 빠진 원인은 고령인구의 증가와 기업투자 위축에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살펴본 GDP갭이 장기화되는 데에는 인구고령화로 저축이 투자보다 많은 과잉저축, 즉 과소투자현상이 지속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먼저 우리나라의 고령인구 증가는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65세 이상의 인구 비율이 12%이며, 2017년에는 65세 이상의 인구비율이 14%에 이르러 고령화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인구는 대부분 현업에서 은퇴한 관계로 소득이 없으며 이로 인해 소비를 줄이게 된다. 오정근 초빙연구위원은 생산가능인구가 평균소비율(소득 중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60%인데 비해, 고령인구가 50%라고 지적했다. 고령인구는 자신의 노후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소비보다는 저축에 신경을 쓰게 된다.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전성인 교수도 고령화의 촉진을 디플레이션의 원인으로 제시했다. 고령화는 공급측면에서는 잠재성장률을 하락시키고, 수요측면에서도 복지부담이 늘고 내수 수요 확대가 지체되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의 투자 위축도 심각한 수준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기업의 설비투자는 201025.7%, 20113.6%, 20120.1, 20131.5%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오정근 초빙연구위원은 이처럼 투자가 위축된 데에는 정부 규제의 증가와 노동자유도의 경직을 들고 있다. 연간 기업투자규모는 140조원이며, 이중 대기업의 투자규모가 120조원인데 대기업에 대한 규제로 인해 국내기업들이 투자를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린다는 것이다. 더불어 노동자유도가 경직되어 있음을 강조했다.


기업의 입장에서 한 번 채용된 사람은 해고가 어렵고 작업배치전환도 쉽지 않으며, 기존 직원의 존재로 인해 신규채용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이 능력있는 직원을 채용하지 못해 기업의 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디플레이션 극복을 위한 해법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다양한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다. 오정근 초빙연구위원은 획기적인 상품의 개발, 정부의 규제완화와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를 들었다. 획기적인 상품의 개발은 소비위축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다. 소비자들이 아무리 어려운 시기에도 갖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다. 자동차나 칼라TV, 개인용컴퓨터(PC)의 등장이 소비자의 마음을 조리게 했으며, 최근에는 스마트폰이 그런 기능을 수행했다. 특히 우리나라 국민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76.9%이며, 전 세계적으로도 스마트폰 보급률(24.5%)PC(20.0%)를 앞선 상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획기적인 상품이 나온다면 고이고이 숨겨놓은 돈 봉투를 여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정부나 교육계에서는 획기적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창조적 인재를 육성하고, 기업에서는 연구개발비에 과감히 투자하는 결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오정근 초빙연구위원은 기업 투자를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완화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규제개혁을 위한 대통령 주재 끝장토론에도 불구하고 규제개혁이 지지부진하다고 지적했다. 설상가상으로 법인세 인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KT ENS18천억원 사기대출 사건 이후로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의 대출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벤처기업들이 거래업체의 계약서를 가지고 은행이나 투자회사를 찾아가도 은행권이나 투자회사는 전년도 매출액을 요구하며 그 이상의 자금을 빌려주는 것을 꺼리는 실정이다. 벤처기업은 비만한 조직체를 거느린 대기업이 갖지 못한 혁신성과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만큼,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획기적 상품의 개발도 가능하다. 작지만 실력있는 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오정근 초빙연구위원이 제시한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에 있어서는 엇갈린 의견이 존재한다. 오정근 초빙연구위원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강성노조의 등장으로 6년 동안 임금상승률이 연평균 20% 올라갔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서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전성인 교수는 오히려 저소득층의 가처분 소득을 올려주는 것이 현재 활용가능한 유일한 경기부양책이라고 밝혔다. 소비자 관점에서 볼 때, 소비수준이 낮은 것은 소득의 정체 때문이므로 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소득층에서부터 소비능력을 끌어올려서 사회 전체적으로 수요를 촉진하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과연 임금인상 억제를 통한 기업체의 투자금 확보냐, 보편적 가처분소득 확대를 통한 소비능력 향상이냐의 선택적 기로에 놓여있는 듯싶다.

 

미국이 나 홀로 경제호황을 누리는 이유

 

오정근 초빙연구위원은 최근 세계적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나 홀로 경제호황을 누리는 이유에 대해 글로벌 금융위기 때 준비된 인재인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전 의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버냉키는 연준 의장이 되기 전 1930년대 대공황을 연구한 전문가로 2006년에 취임했고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다. 이때 버냉키는 양적완화를 실시하며 자금을 풀어서 기업이나 국민들이 돈을 쓸 수 있게끔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물가상승률이 1.5~1.6%인 상황에서 연준 기준금리를 0.1% 정도로 유지해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가도록 했는데 기업들은 자금을 빌리면 오히려 이득을 보는 구조였다. 덕분에 미국 경기가 회복될 수 있었다.


오정근 초빙연구위원은 버냉키는 대공황의 전문가답게 당시의 경제학자들이 저지른 큰 실수를 기억하고 자금을 무조건 푼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풀어갔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 다음에는 0.1%의 낮은 금리를 조금씩 올려 정상화시켰으며 자금 회수도 경기 회복 속도를 봐가면서 조금씩 회수했다결국 버냉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치밀한 전략 하에 금융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미국의 경기회복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미국의 당파를 초월한 금융제도도 큰 역할을 했다. 버냉키 역시 당파를 초월한 사람이었다. 버냉키를 2006년 처음 임명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공화당 출신이었고, 2010년 재임명한 오바마 대통령은 민주당 출신이었다. 우리나라의 중앙은행과 같은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도 완벽하게 독립적인 기관이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운영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독립이 보장되고 있다. 오정근 초빙연구위원은 이처럼 돈이라는 것은 한 번 손대기 시작하면 오염되므로 정치와 독립시켜야 한다. 금융감독기관은 정파를 초월해서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MeCONOMY Magazine march 2015

김경한 기자 santa-07@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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