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일 대화를 통해 지식을 전수한다

  • 등록 2015.03.25 13: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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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북 서비스

우리 도서관은 책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빌려드립니다.” 언뜻 듣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말이 안 되는 일이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다. 휴먼북은 덴마크 출신의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이 2000년 덴마크에서 창안한 신개념 책대여 서비스다. 책이 아닌 사람을 빌려주지만 그 맥락은 책대여와 같다. 휴먼북과 열람자가 11로 만나 대화를 나누고 휴먼북의 지식과 경험, 지혜를 열람자가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로니 에버겔은 비행청소년으로 지내다가 사람들에게 자기를 이해받고 싶은 생각에서 휴먼북을 시작했다. 휴먼북은 점점 확산되어 성적소수자, 비만인 사람, 사회적으로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동참했다. 이후 유럽사회에 퍼져나가며 점차 라이브러리화되었고 국내에도 알려지면서 노원휴먼라이브러리가 2012321일 전국 최초로 상설 개관했다. 현재 국내에는 서울시, 위즈돔 등 10여 곳에서 유료 또는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각 분야 전문가가 포진한 휴먼북 


현재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휴먼북 도서관은 올해 ‘321’ 3주년을 맞는 노원휴먼라이브러리다. 노원휴먼라이브러리는 590명 남짓한 휴먼북을 보유하고 있다. 휴먼북의 분야도 주부9단에서부터, 변호사, 펀드매니저, 가야금연주자, 북디자이너, 소방관,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각 분야에 걸친 전문가가 포진해 있다.


, 정치인의 경우에는 정치 분야가 아닌 해당 정치인의 실질적인 전문분야에 대한 휴먼북 서비스를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안철수 의원(서울 노원구병)IT산업과 기업경영에 대한 것만 열람할 수 있다. 휴먼북의 열람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먼저 휴먼북라이브러리 홈페이지에서 휴먼북 보기를 클릭한 후,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서 지식을 전해 듣고 싶은 휴먼북을 클릭한다. 이후 열람신청하기를 클릭해서 열람신청을 하면 된다.


한 번은 휴먼북을 열람 신청한 학생으로 인해 학생의 부모님이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평소 정치인이 꿈이었던 서라벌고 1학년에 재학 중이던 해당 학생은 김성환 노원구청장 휴먼북 열람을 신청한 것이다. 학생의 부모님는 아침에 집을 나서는 학생에게 어디를 그리 바쁘게 가냐고 물었고, 학생은 구청장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부모님은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노원휴먼라이브러리 정상훈 사서는 그 학생은 구청장과의 만남을 통해 진중한 말을 많이 들으며 알찬 시간을 가졌다며 기뻐했다고 전했다.


휴먼북에는 이런 유명인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은 노원휴먼라이브러리의 휴먼북 1호가 임정애 씨라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임정애 씨는 아파트 동대표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주부경력 40년이 넘는 주부9이다. 지식을 전수하는 분야도 살림비법, 음식 잘하기, 이웃사귀기등이다. 임정애 씨를 찾는 이들은 새내기 주부에서부터 50대 이혼남까지 다양하다. 새내기 주부도 그렇지만, 50대 이혼남이 막상 음식을 하려니 방법을 찾지 못해 임정애 씨를 찾는 것이다.


휴먼북은 다방면에 걸쳐서 포진해 있지만, 사회적 이슈에 따라 인기 있는 휴먼북이 변하기도 한다. 평소에는 주부9단이나, 변호사, 간호사 등이 인기가 있는데, 지난해에는 세월호 사태가 터지자 갑자기 잠수사 열람을 신청하는 건수가 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라이브러리 내에서는 최근 어떤 직업군의 휴먼북 열람이 많이 들어오느냐에 따라 청소년 사이의 인기직종을 예측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하곤 한다.

 


소통의 부재 해소에 탁월한 휴먼북

    

노원휴먼라이브러리의 허정숙 관장은 휴먼북의 주요 독자층이 청소년과 24세 이하 청년층이라고 밝혔다. 그 근거로는 우리 사회의 소통부재가 하나의 요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친구나 부모, 선생님에게도 하지 못하는 얘기들을 들을 수 있는 곳이 휴먼라이브러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청소년기에 고민하는 진로를 결정하는데 있어서는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알지 못하는 전문직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휴먼북은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대학교에 들어간 청년들도 입학 당시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전공과목의 특성을 깨닫고 휴먼북을 열람하는 경우가 있다. 한 공대 졸업반 학생은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다가 휴먼북을 열람하고 나서 요리전문학교에 들어갔다. 취재 당일에도 백운중학교 2학년 학생과 경인여대 경영학과 김동수 교수의 휴먼북 열람이 진행되고 있었다.


신청학생은 학교에서 캠프를 가서 경영컨설턴트라는 직업을 알게 되어 관심을 갖게 되었고 노원휴먼라이브러리에 휴먼북 열람을 신청했다. 진동수 교수가 경영학과 교수이므로 서로 매칭이 되어서 라이브러리에서 휴먼북을 진행할 수 있었다. 처음에 진교수는 학생과의 열람시간이 30분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 교수의 예상과는 달리 열람시간은 1시간을 훌쩍 넘었다. 신청 학생이 워낙 경영컨설턴트에 관심이 많아서 그 동안 상당한 지식을 쌓아놓은 상태로 교수를 만났기 때문에 상당히 진지하면서도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더불어 학생이 스마트폰을 자제하지 못하는데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상담도 해주었다고 한다.


마침 진 교수의 둘째 딸이 신청학생과 같은 중학교 2학년생이어서 딸같은 심정으로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이처럼 휴먼북은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무시되었지만 가장 절실한 소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요소가 많이 내포되어 있다. 진로나 재취업, 세상살이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방향타 역할을 하는 지식(지혜)제공자가 될 수 있다. 또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바쁘게 살아가는 전문직업인들은 소명의식을 되찾고 사회에 기여한다는 자긍심과 보람을 선물 받을 수 있다.

 

우리 사회의 필수영양소 


허정숙 관장은 휴먼북을 진행하면서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 신청자와 휴먼북 사이를 매칭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휴먼북의 상당수는 현재 생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은 관계로 쉽게 시간을 내기 어려운 면이 있으며, 주요 열람신청자인 청소년의 경우도 밤 10시 이후에나 수업을 마치기 때문에 전화연락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휴먼북 수시열람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온라인 시스템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현재 는 휴먼북 열람신청이 들어오면 라이브러리 직원들이 일일이 휴먼북과 신청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매칭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를 컴퓨터 시스템 보완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즉 홈페이지에서 신청자가 열람신청을 하면 자동으로 신청자의 신청내용이 휴먼북에게 메일이 발송되어 상호매칭이 쉬워지게 하는 방식을 도입한다는 취지다. 단 신청자는 자신이 왜 휴먼북을 만나고 싶어 하는지, 또한 어떤 문제로 지혜를 구하고 싶은지에 대해 설득하는 문장을 기재하도록 해서 휴먼북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라이브러리 직원이 신청자와 휴먼북 사이를 연결하다 보니 신청자의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라이브러리 측은 신청문장을 통해 사람의 마음이 전달되는 구조로 온라인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휴먼북이 상주하는 체계도 수립할 것이라고 허정숙 관장은 덧붙였다. 일반적인 도서 열람실이 항상 오픈되어 있는 것처럼, 사전에 휴먼북을 배치해서 열람자들이 라이브러리를 방문하면 항상 휴먼북이 반갑게 맞이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휴먼북이 우리 사회에 익숙치 않은 시스템임에도, 휴먼북 도서관은 계속해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것에 발맞춰 휴먼북을 하겠다고 나서는 이들도 증가추세에 있다. 어쩌면 휴먼북이 우리 사회의 소통 부재를 해소하며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살찌우는 필수영양소의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MeCONOMY Magazine march 2015

김경한 기자 santa-07@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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