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운행과 경영개선은 함께 가야

  • 등록 2014.06.11 12: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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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초 발생한 서울지하철 추돌사고는 안전운행과 경영개선이 반비례한다는 잘못된 성과주의 경영에서 비롯됐다는 게 서울지하철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는 성명서를 내고 “그동안 서울지하철는 경영개선이라는 이름으로 정원을 축소해가며 주요사업들마저도 아웃소싱하면서 구호로만 안전운행을 외쳐왔다”고 지적했다.


조직경영에서 비용과 효율을 강조하다보면 인력을 감축하고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 구조조정의 핵심이다. 성과를 내세우다보면 매출액과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이는 안전관리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우리 사회에 계속되는 안전사고는 조직경영의 비용과 효율, 그리고 성과와 관련이 있다. 성과는 곧 돈이고 탐욕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주의에는 매출에 대한 과대포장과 함께 약자에 대한 밀어내기 본능도 도사리고 있다.

서울지하철 노조는 “2003년 대구지하철 대참사이후에도 서울시는 지속적으로 비용과 효율을 강조하며 안전인력을 줄였고 안전예산마저 축소했다”며 “지나친 비용절감, 성과중심의 문화가 안전을 소홀히 하고 생명경시와 안전 불감증을 불러들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추돌사고는 부실한 안전점검 탓


지난 5월 2일 오후 3시30분쯤 성수역 방향으로 가던 2258호 전동차가 상왕십리역에 정차했다가 승객을 태우고 출발하려던 중 뒤따르던 2260호 전동차가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두 전동차에 탑승한 승객, 기관사 등 1000여 명 가운데 249명이 부상당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상왕십리역 지하철추돌 사고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이는 것은 부실한 안전점검이다. 사고 당일인 지난 2일 오전1시30분쯤 서울지하철 신호팀 직원이 신호기계실에서 모니터상으로 신호 오류가 난 것을 확인했고 지난달 29일 신호기 데이터 수정 시점부터 오류가 있었지만 통상적 오류로 생각해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서울지하철 측은 사고 14시간 전에 신호체계 오류를 발견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 결국 같은 날 오후 3시30분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구간을 지나는 열차는 하루에만 550대에 이른다. 서울시는 지난 4월 17일부터 30일까지 2주간 지하철 특별점검을 했지만 신호기는 일상점검 대상이라는 이유로 제외했다. 사고가 나자 외주업체의 책임론까지 등장했다. 외주업체인 유경제어는 지난 4월 29일 오전 1시쯤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서 선로전환기 연동장치 데이터를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 서울 지하철의 경우 200m 간격으로 열차 속도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일부 조정하는 작업이었다.

 

서울지하철는 사고 발생 직후 자체 조사를 통해 “외주업체의 작업이 끝난 뒤 2시간 후인 4월 29일 오전 3시 10분쯤 신호에 오류가 발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외주업체의 데이터 수정 작업으로 인해 열차자동정지장치(ATS) 신호에 오류가 생겼다는 것이 서울지하철의 주장이다 또 서울지하철는 “유경제어가 작업을 한 뒤 70여 개의 전반적인 지하철 신호체계에 오류가 발생했는지 여부에 대해 사업소에서 검수를 했지만 ATS 신호 오류를 잡아내지 못했다”며 “ATS 신호에 문제가 있었지만 드러나지 않았다가 상왕십리역 열차 추돌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서로 다른 시스템의 오류 발생


ATS(Automatic Train Stop·자동 열차 정지) 장치는 추돌 우려가 있을 때 열차를 자동으로 멈추게 하는 장치인데 이번 상왕십리역 추돌 사고는 이 장치에 작동 신호를 주는 신호기가 고장 나 발생했다.


ATO(Automatic Train Operation·자동 열차 운행) 장치는 열차를 자동으로 운행하는 시스템인데 기관사가 특별히 조작하지 않아도 열차가 자동으로 출발하고 멈출 수 있다. ATS보다 신형 시스템으로, 서울지하철는 2006년부터 지하철 2호선의 운행 시스템을 구형인 ATS에서 ATO로 개량하고 있다. 현재 서울지하철 2호선에서 운행 중인 열차 88편 중 50편은 ATS 차량이다.


서로 다른 시스템인 구형 시스템(ATS)과 신형 시스템(ATO)을 이렇게 오랫동안 섞어 쓰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없고 이로 인해 발생한 시스템 오류는 드러난 것보다 더 많았을 것이라는 게 국토교통부 관계자의 얘기다. 이 관계자는 조사 결과 서울지하철는 선로에 설치된 ATO의 정보를 ATS 신호기에 전달해 신호를 표시하는 이중 방식을 쓰고 있어서 오류 발생 가능성이 더 높은 구조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서울지하철는 자체적으로 평가한 안전부문 성과점수는 만점을 매긴 것으로 나타나 안전점검이 관행적으로 ‘챙겨주기식’ 경영평가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서울지하철 경영관리처가 작성한 경영평가를 보면 서울지하철가 지난해 추진한 실행과제 257건 중 ‘정상’으로 평가돼 만점(100점)을 받은 항목은 252개로 집계됐다. 취소된 과제 2개를 제외하면 98.8%에 이르는 경영성과를 달성한 셈이다.


개선대책 믿어도 될까


이번 사고와 관련 서울시는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당면조치사항 중 하나는 2호선 신호기 특별점검이다. 신호기 633개를 156명이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신호기는 일상점검대상이므로, 지난번 특별점검대상아 아니었다는 점이 언론의 비판을 받자 이번 대책에서 기존 점검 외에 별도로 다시 신호기를 점검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번 데이터를 수정하면서 문제가 발생했고 신호기에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알았지만 수리는 하지 않은 상태라는 게 서울지하철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신호기 설치 업체는 외부업체이지만 외부업체이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는 것은 아직 확인된 바 없다고 해명했다.


개선대책에는 열차운행 상황 감시 및 운행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있다. 서울지하철 17개 곡선구간에서는 앞 신호기가 연속으로 보이지 않는데 이번 사고 장소도 이 구간에 해당한다. 이번 사고는 뒷 열차가 128미터 앞에서 앞 열차를 보고 정차하려다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뒷 열차 기관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제동장치를 다 동원해서 빨리 멈추어서 대형사고는 모면했지만 안전관리의 허점을 모두 드러낸 사고가 되고 말았다. 앞 열차와 뒷 열차 간 안전거리는 300미터이다. 따라서 개선대책에서는 안전거리 확보를 위해 하반기에 뒷 열차가 앞 열차에 300미터 접근 시 자동경보가 울리는 시스템을 설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승객안전구호장비도 확대될 전망이다. 추돌 시 일부 전동차가 정전됐다는 보도에 대해 서울지하철 관계자는 “조명은 계속 켜놓고 있다”며 “무정전 전원공급 장치는 외부에서 전력이 끊어져도 내부에서는 유지되게끔 하는 장치인데 역사에도 무정전 전원공급 장치 많이 해놓았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왜 승객들은 “조명이 들어오지 않아서 스마트폰으로 비춰서 간신히 문을 열고 탈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을까?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승객 안내방송 있었나


사고 당시에 승객 안내방송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앞차와의 간격 때문에 잠시 정차 중’이라는 안내방송만을 들었고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았다”는 게 승객들의 얘기다. 승객들끼리 벽을 더듬으며 강제로 문을 열고 탈출한 것이 당시 상황에 대한 승객의 진술이다. 사고 발생 시 승객들이 스스로 상황을 판단해야지 안내방송을 기다릴 수 없다는 얘기다.


서울지하철 관계자는 “앞 열차는 방송장치가 망가져서 육성으로 승객대피를 유도했고 뒷 열차는 차장이 안내방송을 31분부터 37분까지 실시했다”고 해명했다. 그래서 일부는 안내방송을 듣고 일부는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관제소는 32분에 상황 접수하고 34분에 추돌상태를 확인했는데 관제소 방송은 모든 열차에 동시 방송되도록 돼 있다. 34분에 외선 중지하고 승객 대피 방송을 했는데 그 이유는 외선 중지해야 승객 하차가 가능하고 외선을 중지하지 않고 승객 하차를 유도한다면 옆 열차나 뒷 열차에 치일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게 서울지하철 측의 해명이다.

 

서울지하철는 1인 승무원제와 1인 역무원제를 실시하고 있지 않아서 열차에 앞뒤로 각각 한 명씩 두 명이 승차한다. 관제센터 교신은 기관사가 하지만 필요시 차장도 한다. 기관사는 운행을 하고 차장은 승객 승하차 시 안전상태를 확인한다. 앞 열차 기관사가 내부 규정을 어겼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사고 당시 앞 열차는 오후 3시 28분 10초쯤 상왕십리역에 도착했다. 이 열차는 3시 30분까지 약 2분간 정차했다. 열차가 한 곳에 40초 이상 정차할 경우 기관사는 지체없이 관제소에 이 같은 사실을 알려야 하지만 기관사는 관제소에 이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스크린도어에 문제가 생겨 앞 열차 기관사가 문을 수차례 여닫느라 열차 출발이 늦어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게 서울지하철 측 해명이다. 심지어 사고발생 약 2분 후 승객이 승강장 비상전화로 신고한 후에야 상황을 인지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59%가 20년 이상 된 노후 전동차


서울지하철의 전체 1954대 가운데 23.8%인 466대가 20년 이상 된 차량이고 16~19년은 36.8%(718대)였다. 서울지하철 노조 관계자는 “정부가 2009년 철도차량 내구연한을 25년으로 정하고 정밀진단을 통과하면 5년씩 최대 15년까지 연장, 운행 연한을 40년까지 늘리는 내용으로 철도안전법을 개정한 것은 사실상 사고 가능성을 제공한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 관계자는 “애초에 기술사양으로 보면 열차는 15년 정도의 사용시간을 가지고 납품이 되었는데 지금은 25년, 40년 계속 규제완화의 일환으로 내구연한을 법적으로 늘렸고 현재는 내구연한 자체를 없앴다”고 말했다. 또 “일본 같은 경우에는 지하철도 도심을 운행하는 주요 노선에서는 대략 15~20년 이전에 폐차하며 특이하게 교외선이나 운행횟수가 많지 않은 데서는 20년 이상 된 차도 운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장 1차 시정 TV토론회에서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추돌 사고와 관련해 노후 된 전동차와 시설을 전면 교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시장은 “서울 지하철도 20년 이상 됐다. 노후화된 전동차는 사고와 직접 관계는 없지만 20년 이상 된 전동차들이 전체 59%나 된다. 전면 교체가 필요하고 지하철 적자가 일 년 5천억 원정도 되므로 한꺼번에 하기 어려워 중앙정부가 철도청만큼만 지원해 달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번 사고를 계기로 현대화된 전동차와 관제실, 여러 시설들을 교체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2022년까지 1조 8천억 투자해 운영시스템 개선


서울시와 서울지하철는 서울지하철 운영시스템 10대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오는 2022년까지 8천억 원을 들여 노후 차량을 교체하고 1∼9호선 관제센터를 하나로 통합한다고 밝혔다. 시에 따르면 현재 1∼4호선 전동차는 모두 1954량이고 이 중 36%인 714량은 사용연수가 18년 이상으로 고장이 잦다. 서울시는 2호선 노후 전동차 500량은 계획보다 4년 앞당겨 2020년까지 ATO(자동운전장치)차로 교체하고, 3호선 150량은 2년 앞당긴 2022년까지 ATO차로 교체한다. 현재 호선 별로 운영되는 관제센터는 오는 2019년부터 ‘스마트(SMART) 통합관제센터’로 통합 운영된다.


시는 철도 사고와 주요 운행 장애가 발생할 때 5분 내에 상황 전파에서 시민보호, 초기 대응까지 완료하는 ‘골든타임 목표제’를 도입한다. 아울러 243개에 이르는 협력회사에 대한 감독도 강화하고, 차량·궤도·신호 등 시민안전과 직결되는 업무는 직영 또는 자회사 운영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지하철는 철도안전교육을 전문적으로 시행하는 ‘철도안전학교’를 개설하고, 외부 전문가 200명으로 ‘감시 인력풀’을 구성해 신호 등 11개 분야를 점검한다. 서울시는 대책 발표와 함께 지하철 내진 성능 보강과 노후시설 재투자, 무임수송 보전을 위한 국비 지원을 강하게 요청했다. 시는 현재까지 마련된 지하철 운영시스템 개선안에 들어가는 비용은 노후 차량 교체 비용 8천775억 원을 포함해 2022년까지 총 1조 8천849억 원이라고 설명했다.


적자상황에서 안전관리에 힘쓰려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서울시와 서울지하철의 주장이다. 물론 안전관리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는 것은 중요하나 같은 재정 규모에서도 어떻게 예산을 안배하는지를 지켜봐야겠다.


MeCONOMY June 2014

송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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