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유럽, 우크라이나가 우크라이나 전후 안보체제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비무장지대(DMZ) 모델을 차용한 ‘완충지대 구상’이 핵심 의제로 다시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1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유력지 라 스탐파는 복수의 EU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유럽 정상들이 워싱턴 회동에서 국경 완충지대 설치 방안을 중점적으로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미국은 러시아의 위협 억제를 위해 다국적군과 EU 병력이 국경을 보호하고, 미군은 군사·병참·기술 지원을 제공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이는 수십 년간 한반도에서 유지돼 온 불완전하지만 현실적인 ‘현상 유지 모델’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다.
특히 미국은 전략 수송기, 방공 체계, 위성·드론 기반 감시망 등을 제공하고, 여기에 미 방산기업 팔란티어의 인공지능(AI) 정보분석 시스템을 결합하는 시나리오도 논의되고 있다. 라 스탐파는 “이 경우 완충지대는 단순한 군사적 방어선이 아니라 디지털 기술로 상시 감시되는 공간이 된다”고 전했다.
다만 이번 구상은 한반도의 미군 주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미군이 영구적으로 주둔하지 않고, 유럽군이 지상 병력을 맡으며 미국은 기술·항공·방공 자산을 지원하는 ‘혼합형 배치’라는 점이 차별화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러시아가 나토(NATO) 확장을 명분으로 반발하는 수위를 일정 부분 낮출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유럽 정상들은 워싱턴 백악관 회동에서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이후 안보 보장 체계 마련을 주요 의제로 삼았으며, 이후 3자 위원회를 발족해 구체적 실행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한국식 완충지대 구상은 그동안 여러 차례 제안돼왔다. 지난 3월 스위스의 제네바안보정책센터(GCSP)는 1,100㎞ 전선에 최소 폭 9.6㎞ 규모의 완충지대를 두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이날 미국과 유럽이 고려 중인 4가지 시나리오로 △영·프가 무기와 훈련을 제공하고 미국이 방공망과 정보 지원을 담당하는 방식 △유럽이 방공 임무와 드론 감시를 집중 수행하는 방식 △러시아가 합의를 위반할 경우 자동 제재를 부과하는 방식 △나토 5조와 유사한 집단방위 합의 도출 등이 거론됐다고 전했다.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도 “모든 주권국은 동맹을 맺을 권리가 있다”며 한국·일본과 맺은 안보협정을 우크라이나 모델로 참고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