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철학자 들뢰즈가 정치에 던지는 질문

  • 등록 2025.11.05 16:3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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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세상을 이상(理想. 이데아)이라는 기준으로 보았다.

 

그의 이상론에 따르면, 현실은 이상을 불완전하게 베낀 것에 불과했다. 이를테면 가장 이상적인 통치자와 정치의 형태가 존재하고, 사람이나 제도는 그 이상에 다가갈수록 훌륭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상을 기준으로 삼는 순간, 우리는 서열을 만들 수밖에 없다. 이상형에서 더 가까운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좋은 제도와 안 그런 제도. 옳은 편과 그른 편, 이상형에 가까운 동맹과 그렇지 않으면 적대자라는 식으로 세상사를 둘로 나누고 말았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정면으로 뒤집은 사람이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다. 기존 서양철학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도전한 그는 폐 기능 부전으로 인공호흡기를 달고 살다 안타깝게도 70세인 1995년 11월 4일, 파리 근교의 아파트 창문에서 투신하여 생을 마감했다.

 

그는 “세상이란 차이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사람이란 이래야 한다는 게 아니라 각자의 차이가 있는 게 사람이라는 식이다. 그에게 있어서 각자의 다름(차이)은 누군가의 부족함이 아니라 오히려 창조를 이루게 하는 동력이자 시작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이 없음은 나와 다른 생각, 다른 취향, 다른 신념을 인정하라는 말이리라. 그렇지 않으면 정치든, 사회든 기업이든, 뭐든 정체되어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요즘 새로운 흐름을 만든다는 서로의 다름(차이)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나와 비슷한 영상과 말을 보여주고 들려줄 뿐이며 각자 또한, 자신만의 이상적인 기준을 상정해 그 기준에 근접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배척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는 마치 1450년 인쇄가 발명되고 약 70년 뒤에 종교개혁(1517년)이 시작됨으로써 종교적 내전이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중반까지 유럽 전역에서 벌어졌던 상황과 유사하다.

 

세상은 뉴미디어의 혁명이 일어나 개인과 개인 간, 세상과의 소통이 원활해졌지만 내 편과 네 편끼리 싸우는 내전을 벌이고 있다. 공적인 논의보다는 사적인 확신들만이 충돌하고, 내 생각이 옳고 네 생각은 틀렸다며 이미 편 가르기가 끝났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분열의 정치를 넘어설 수 있을까? 들뢰즈라면 다름을 존중하는 리좀(rhizome)의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하리라. 리좀은 나무의 뿌리처럼 중심이 있는 구조가 아니다. 여기저기서 뻗어나가며 연결되고 서로 얽히고설킨 상태다. 정치도 그런 유기적 네트워크가 되어야 한다. 중심의 이념이 아니라, 주변의 다양함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어야 한다.

 

왕도정치를 주창한 맹자의 정치 목표는 혼란한 사회에서 백성들이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니 정치는 '함께 사는 기술'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들뢰즈는 우리에게 바로 그 기술의 출발점이 무엇인지 일깨워 준다. 이상이 아니라 다툼에서 시작하고, 진리는 위에 있지 않고 서로의 차이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 말이다.

 

내년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에 뜻을 둔 후보들이 뛰고 있다. 혹자는 SNS 시대 디지털 데이터 노출 빈도에 승패가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떤 식으로 나를 노출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내 생각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 편, 네 편의 조직에 의존하지 않는 가운데 양자의 다름을 수렴하는 장치를 마련해 보면 어떨까?”

 

국회의 국정감사를 보면서 SNS 시대에는 플라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들뢰즈의 빛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내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유권자들의 말을 경청하여 수렴하는 선거 혁명, 내년 지방선거에서 꼭 일어나길 바란다.

 

 

윤영무 본부장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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