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지 능력 저하'’ 가져오나?

  • 등록 2025.12.18 18: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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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로 쓰는 글을 글이라 할 수 있나?

 

최근 뉴욕타임스의 수석 소비자기술 기자(lead consumer technology writer)인 브라이언 X. 첸이 〈Tech Fix〉 칼럼에 기고한 「To avoid ‘brain rot’, try using your brain」이란 제목의 글에 따르면, 올해 AI가 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가장 주목할 만한 연구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에서 나왔다.

 

이 글에 따르면 MIT 연구진은 OpenAI의 ChatGPT와 같은 도구가 사람들의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 하고자 했다. 54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 연구는 표본 규모가 작았지만, 결과는 AI가 인간의 학습 능력을 저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 연구는 일부 학생들에게 500~1000단어 분량의 에세이를 쓰도록 했고, 그들을 여러 그룹으로 나누었다.

 

한 그룹은 ChatGPT의 도움을 받아 글을 쓸 수 있었고, 두 번째 그룹은 전통적인 Google 검색으로만 정보를 찾을 수 있었으며, 세 번째 그룹은 그들의 두뇌에 의존하여 과제를 작성할 수 있도록 했다. 학생들은 뇌의 전기 활동을 측정하는 센서를 착용했다.

 

시험 결과 ChatGPT 사용자들은 가장 낮은 뇌 활동량을 보였다. 이는 AI 챗봇이 작업을 대신 처리해 주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사실은 에세이를 완성하고 1분 후, 학생들에게 자신이 쓴 에세이의 아무 부분이나 인용해 보라는 요청을 했을 때 나타났다. ChatGPT 사용자의 대다수(83%)는 단 한 문장도 기억하지 못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구글 검색 엔진을 사용하는 학생들은 일부 내용을 인용할 수 있었으며 아무런 기술도 사용하지 않는 학생들은 많은 문장을 암송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일부는 자신의 에세이 전체를 거의 그대로 인용하기도 했다.

 

◇자신이 썼다는 글을 한 문장도 기억할 수 없다면?

 

자신이 무슨 글을 썼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면 아마 내 글이라는 의식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또한 그 정도의 의식이라면 자신이 쓴 글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의미도 된다. 그렇다면 그렇게 쓴 글을 글이라고 해도 좋은 것일까? 답은 각자의 생각에 맡긴다.

 

지난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의 시리 멜루마드 교수는 250명의 학생에게 간단한 글쓰기 과제를 주었다.

 

건강한 생활 방식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친구에게 조언 해주는 글을 쓰라는 것이었다. 글감을 얻기 위해 일부 학생들에겐 전통적인 구글 검색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다른 학생들은 구글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생성한 정보 요 약만을 참고하게 했다.

 

AI가 생성한 요약을 사용하는 학생들은 건강식을 먹고,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수면을 충분히 취하라는 등의 일반적이고 당연하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을 했다. 이에 비해 전통적인 구글 웹 검색을 통해 정보를 찾은 학생들은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건강을 포함한 다양한 웰빙 요소에 집중하라는 등의 더 섬세한 조언을 했다.

 

기술 업계는 챗봇과 새로운 AI 검색 도구가 우리의 학습 및 발전 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며, 이러한 기술을 무시하는 사람은 도태될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AI가 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지금까지 발표된 다른 학술 연구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연구 결과 역시, 에세이 작성이나 연구와 같은 업무에 챗봇과 AI 검색 도구에 크게 의존하는 사람들이 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일 반적으로 성과가 저조하다는 게 확인됐다.

 

저품질 인터넷 콘텐츠에 노출되어 머리씀이 악화(惡化)된 상태를 속어로 ‘두뇌 부패(brain rot, 인지능력저하)’라고 한다. 이 단어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을 발행하는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가 2024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던 것으로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 앱의 짧은 영상에 중독되어 뇌의 사고 능력이 퇴화해 가는 과정을 지칭한다.

 

기술이 사람을 멍청하게 만드는지 아닌지의 여부는 기술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질문이다.

 

소크라테스는 글쓰기의 발명이 인간의 기억력을 약하게 한다고 비난했다. 연구자들은 ‘인지 기능 저하’와 AI 및 소셜 미디어 사이에 강력한 연관성이 있다는 증거가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AI 도구 사용과 인지 기능 저하 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힌 최근 연구 외에도 소아과 전문의들이 주도한 새로운 연구에서 는 소셜 미디어 사용이 읽기, 기억력, 언어 시험을 치르는 아동의 학업 성취도 저하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난달 의학 저널 JAMA에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프란시 스코 캠퍼스(UCSF)에서 수행한 연구가 게재되었다.

 

이 연구를 주도한 소아과 의사 제이슨 나가타 박사와 그의 동료 들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9세에서 13세 사이의 청소년 6500명 이상을 추적 조사한 ABCD(청소년 뇌인지 발달) 연구 프로젝트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모든 어린이는 소셜 미디어 사용 시간에 대한 설문 조사를 1년에 한 번씩 받았다. 2년마다 여러 가지 테스트를 치 다.

 

예를 들어, 시각적 어휘 테스트는 그림과 귀로 들은 단어를 정확하게 연결하는 것이었다. 데이터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를 적게(하루 1시간) 사용한다고 보고한 어린이부터 많이(하루 최소 3시간) 사용한다고 보고한 어린이까 지 소셜 미디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보고한 어린이에 비해 독해, 기억력, 어휘 테스트에서 점수가 상당히 낮 은 것으로 나타났다.

 

◇AI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려야

 

전문가들은 부모가 화면없는 구역을 시행하고, 침실과 식탁 등의 공간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여 자녀가 공부, 수면, 식사 시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제안했다.

 

한편 MIT 연구에 따르면 글쓰기와 학습에 챗봇을 활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마치 수학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연필과 종이를 사용하여 공식과 방정식을 익힌 후에 계산기를 사용하여 문제를 푸는 것처럼 AI 도구를 활용하여 수정하기 전에 스스로 학습 과정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챗봇에게 광범위한 주제에 관한 모든 연구를 맡기기보다는 역사적 날짜를 찾는 것과 같은 작은 질문에 답하는 것을 연구과정의 일부로 활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특정 주제에 대해 더 깊이 배우고 싶다면 책을 읽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책은 오랫동안 저자의 숙고와 수정, 그리고 검증을 거쳤기 때문이다. AI와 디지털 혁명은 인간의 삶에 많은 편리함과 효율성을 가져다주고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우리의 사고능력-즉 인지 능력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지적 창조 능력을 퇴화시 킨다는 점을 여러 연구는 보여주고 있다.

 

각자의 인지능력이 떨어지면 절대 다수의 대중과 AI 혁명을 주도하는 소수의 개발자, 과학자, 자본가와의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되어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는 중세와 같은 지식의 독점화가 이루어지거나 대중은 특권층의 지배를 받는 노예로 전락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러한 사회가 이미 와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우선 대중에게서 멀어진 독서 습관을 되살려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책을 읽고 나서 요약하는 힘을 기르고 나만의 글쓰기 연습을 지속하면서 아날로그적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AI의 진화가 이루어지고 부작용이 나타나 봐야 알겠지만 지금으로써는 이것이 지식의 독점화를 막고 특권층의 지배에서 벗어나 진정한 인간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윤영무 본부장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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