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중국은 국가 ESS 인프라 구축...한국은 여전히 ‘시장 실험’에 머물러

  • 등록 2026.02.09 19: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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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2027년까지 ESS 1.8억kW 확충
제주 장주기 수요 1730MW, 조달은 40MW에 그쳐
계통 안정 자원과 중앙계약시장 조달 구조의 불일치

 

중국이 국가 주도의 에너지저장장치(ESS)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5년 8월 ‘ESS 대규모 건설 특별행동계획(2025~2027)’을 발표하고, 2027년까지 자국 내 ESS 설비 용량을 1.8억kW(180GW)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3년간 투입되는 재원만 2500억 위안(약 52조8000억원)에 달한다. 보조금, 현물시장, 용량보상제 등 시장 제도와 함께 표준·안전·기술 로드맵을 동시에 정비하겠다는 점에서, ESS를 단순 설비가 아닌 국가 전력 인프라로 규정한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의 ESS 정책은 물량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고비 사막 등 대규모 재생에너지 기지에는 출력 변동을 흡수하는 ESS를 집중 배치하고, 퇴역 화력발전소 부지와 기존 송전망을 활용하는 방안도 병행한다. 부하가 밀집되거나 재생에너지가 집적된 지역, 대용량 HVDC가 유입되는 지점에는 독립형 ESS 발전소를 구축해 계통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ESS를 재생에너지 확대의 ‘보조 장치’가 아니라 계통을 지탱하는 기반 인프라로 설계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 제주에서 ESS는 ‘보조 수단’이 아니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의 ESS 구축은 상대적으로 더딘 편이다. 산업통상부가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제시한 제주 지역 장주기 ESS 필요 규모는 2030년 기준 설치용량 1730MW, 저장용량 4만6000MWh다.

 

그러나 이달 결과가 발표될 전력거래소 중앙계약시장 ESS 공개입찰 물량은 총 540MW(육지 500MW·제주 40MW)에 그친다. 제11차 전기본에서도 ESS는 연간 수백 MW의 단계적 도입에 머물러 있으며, 제주처럼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지역을 전제로 한 장주기 ESS 전용 목표치는 별도로 제시되지 않았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급격히 높아진 제주 전력계통에서 ESS는 더 이상 선택적 보조 수단이 아니다. 출력제한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ESS는 계통 안정과 유연성 확보를 위한 필수 인프라로 지목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2024년 말 발간한 ‘효율적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에너지저장장치 비용(LCOS) 전망 및 최적 믹스 수립 시스템 구축 연구’ 보고서는 “제주 지역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유연성 부족이 구조적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며 ESS 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 제주에서는 재생에너지 발전량 증가와 함께 출력제한이 빠르게 늘고 있다. 2022년 제주 지역 출력제한 횟수는 125회로, 2019년 대비 2.7배 증가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추세가 지속될 경우 출력제한이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 상시적 계통 리스크로 고착화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특히 문제는 시간 스케일이다. 몇 분, 몇 시간 단위의 잉여 전력을 흡수하는 수준을 넘어, 일·주·계절 단위로 전력 수급을 조절할 수 있는 장주기 저장자원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 ‘필요한 ESS’와 ‘사들이는 ESS’의 간극

 

그러나 이러한 계통 진단이 정책 집행 단계로 내려오면서 구조적 간극이 드러난다. 현재 중앙계약시장 ESS 공개입찰에서 제주를 대상으로 공고된 물량은 40MW에 불과하다. 에경연이 제시한 장주기 ESS 필요량과 비교하면 두 자릿수 이상 차이가 난다. “제주의 ESS 중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실제 조달 정책은 지나치게 소규모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이는 단순히 물량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겨냥하는 문제 정의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에경연 보고서가 다루는 ESS는 출력제한 완화와 계통 안정, 장주기 유연성 확보라는 ‘계통 인프라’ 관점의 자원이다. 반면 중앙계약시장은 전력시장 내에서 정산 가능한 서비스, 즉 주파수조정(FR)이나 예비력 대체와 같은 계약 가능한 상품을 구매하는 제도다. 제주 계통이 요구하는 기능과 시장 제도가 보상하는 기능 사이에 구조적 어긋남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보고서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에경연은 정책 시사점으로 “저장장치 필요 지역을 명확히 제시하고, 기술별·주기별 최적 조합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의 조달 방식이 제주라는 특정 지역의 계통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사실상 인정한 대목으로 해석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기본에 제시된 제주 장주기 ESS 목표치와 실제 조달 물량 간 간극에 대해 “제10차 전기본에 제시된 제주 지역 장주기 ESS 설치 물량은 특정 연도에 한 번씩 설치하는 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누적되는 목표 용량”이라며 “매년 일정 물량씩 단계적으로 확보해 나가는 구조”라고 말했다.

 

다만 2029년 제주 지역 ESS 필요량이 급격히 증가하는 전기본의 전망과 관련해서는 해상풍력을 주요 변수로 지목했다. 그는 “2029년 이후 설치 용량이 큰 폭으로 늘어나는 것은 해상풍력이 본격적으로 계통에 연계되는 시점과 맞물려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제주 지역 ESS 공공 입찰 물량이 40MW 수준에 머물러 있는 데 대해서는 “전기본 이 2년 단위로 롤링되는 구조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1차, 12차 전기본을 거치면서 목표 용량은 단계적으로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며 “이 사안과 관련해 정부와 전력거래소는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도 했다.

 

조승범 기자 jsb21@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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