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포성이 들릴 때마다 떠오르는 식량 안보와 농업의 위기,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해답은 젊은이에게 무상(無償)이 아닌 유상(有償)으로 농지나 산지를 넘겨주는 것이다.
필자의 주장이 혁명 구호 같은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땅보다 100배가 큰 미국에서도 농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농지 보전을 담당하는 단체인 미국 농지신탁(American Farmland Trust)에서 일하는 브록스 램은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충격적인 전망을 내놨다. 앞으로 20년 안에 약 3억 에이커(9,915억 평, 1에이커=3305평)의 농지와 목장주들이 은퇴하거나 사망하리라는 것이다. 미국 농업의 거대한 세대교체가 눈앞에 다가온 셈이다. 문제는 그 땅을 이어받아 농사를 지을 젊은이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이 현상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농촌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농가 경영주 평균 연령은 67세 안팎에 이르렀다. 65세 이상이 절반을 넘는 초고령 산업이 된 것이다. 반면 40세 미만 청년 농업인은 1% 남짓에 불과하다. 농촌에서 젊은이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은 이제 과장이 아니다.
농지가 사라지는 속도도 빠르다. 산업화와 도시 확장 속에서 농지는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농업의 수익성은 낮고 노동 강도는 높다. 젊은이들이 농업을 직업으로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땅을 얻기 어렵고, 얻는다 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지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고령 농민의 땅을 임대하거나 매입해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주는 방식이다. 제도 자체는 의미가 있지만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임차농으로는 장기적인 투자와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농사는 땅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다. 소유와 책임이 합쳐질 때 비로소 땅에 대한 헌신이 생긴다.
역사를 돌아보면 토지 문제는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이란이 오늘날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든 여러 요인 가운데 토지개혁의 실패도 그중 하나였다. 팔레비 국왕 시절 추진된 토지개혁은 농민의 삶을 안정시키지 못했고 농촌 사회의 기반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토지개혁은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해방 이후 농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지주제를 해체한 것은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이었다. 한국전쟁 발발 직전 시행된 이 개혁은 농민에게 땅을 소유할 기회를 주었고, 이들 농민 다수가 자유민주 체제를 지지하는 기반이 되었다. 많은 역사학자가 이 토지개혁을 대한민국 사회 안정의 토대로 평가하는 이유다.
반대로 토지를 완전히 국유화한 북한의 경험은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사유지가 사라지면서 농민의 책임과 동기도 함께 사라졌다. “내 땅”이라는 의식이 없는데 생산성과 혁신이 나오기 어려웠다. 너나 나의 것도 아닌 토지는 동시에 누구의 땅도 아닌 게 되어 버렸다. 내 땅이 아닌데 어느 누가 혼신으로 힘을 쏟겠는가?
농지와 산지를 체계적으로 정비해 젊은 세대에게 무상이 아닌 유상으로 공급하는 새로운 토지 정책을 고민하자. 단순한 보조금이나 임대 정책이 아니라, 땅을 삶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도록 소유와 책임을 함께 부여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농업을 하나의 산업으로 보고, 장기적인 투자와 혁신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전쟁의 포성을 들을 때마다 식량이 곧 안보라는 생각이 필자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앞으로 20년, 우리나라 농촌도 거대한 세대교체의 문턱에 서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농지는 버려진 땅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산업의 토대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