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는 사상 처음으로 수출 7천억 달러를 돌파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지난해 중소·중견 수출기업의 수가 처음으로 10만 개를 돌파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수출기업의 저변이 튼튼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보게 된다.
정부 분석에 따르면 수출 다변화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고, 고부가가치의 소비재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점도 포착됐다. 5대 수출 소비재로 농수산식품, 화장품, 생활용품, 패선, 의약품 등이 꼽힌다. 이와 같은 고무적인 수출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작년 경제성장률은 1%의 저성장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출을 책임지고 있는 산업통상부와 코트라 등은 수출기업의 수를 더 늘리고 품목 다변화에 노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왜 수출 다변화가 이뤄지는데도 성장률이 저조한지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현실에 우리 경제는 직면하고 있다. 트럼프 관세 압박 등 외부 탓만 해서는 안 된다. 저성장은 선진국들의 공통된 현상이기도 하다. 저성장은 각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공통점도 있다.
현재 한국의 1인당 GDP는 35,000-36,000달러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반도체와 조선, 방산이 잘 나가고 있으나 우리 경제 전체의 낙수효과가 크지 않다. 몇 개 산업에 쏠려 있는 국제 경쟁력을 다른 산업 분야로 더욱 확장할 필요가 절실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1인당 GDP 4만 달러 돌파는 요원해 보인다. 수출 다변화의 낙수효과도 뚜렷하지 않다.
한류는 1990년대부터 불기 시작해 중간에 여러 번 휴지기를 거쳐 이제는 성장 궤도에 안착해 인근 문화 장르로 퍼져나가는 모양새다. 드라마, K-팝, 영화, 뮤지컬, 클래식 음악까지 주목받고 있다. 우리의 숙원이었던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한 바 있다.
또 지난 1월 20일 한국 전통 무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서울시 무용단의 <일무>가 뉴욕 무용계 최고 권위의 베시 어워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국악은 일찌감치 세계의 관심을 받아왔으나 이번에 현대 창작 무용으로 수상한 것은 K-무용의 가능성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 세대를 훌쩍 넘기고 있는 한류가 이제 산업계로 확실히 전이되어 K-소프트파워 산업으로 발전되기를 바란다. K-소프트파워 산업을 발전시키고자 하면 소프트파워에 대한 개념과 비전을 확실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소프트파워 국가는 미국이다. 지금은 미국 소프트파워가 많이 퇴색되고 있지만 미국은 록과 재즈, 블루스, 힙합 등 수많은 음악 장르를 쏟아냈다. 할리우드 영화는 현대 영화의 산실이고 여전히 세계 영화계를 이끌고 있으며 뉴욕은 뮤지컬과 연극의 본고장으로서 런던과 짝을 이루고 있다. 미국 대학과 실리콘밸리도 미국 소프트파워에서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을 제외하고 소프트파워 국가는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일본을 꼽을 수 있다. 영국은 팝 음악과 뮤지컬, 연극 등 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패션 등 상업 미술 강국이다. 영국 왕실도 영국을 대표하는 소프트 파워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는 패션과 화장품, 요리의 나라이고 이탈리아는 패션과 함께 오페라의 본고장이다.
독일은 철학과 과학의 나라이자 클래식 음악의 발상지답게 흔들림 없는 클래식 명가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 애니메이션과 컴퓨터 게임, 패션, 음식, 일본의 차 문화(tea) 등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일본이 관광 대국이 된 것은 소프트파워가 결정적인 요인이며 소매치기가 득실한 유럽 관광 대국들보다 훨씬 안전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는 점에서도 덕을 보고 있다.
◇ 소프트파워 산업의 요소
소프트파워는 소프트와 힘을 합성한 말이다. ‘힘’은 기술, 기량, 제품력, 서비스력을 의미하고 ‘소프트’는 ‘문화적인’, ‘선한’, ‘순수한’ ‘감성적인’ ‘정의로움’ 남을 잘 도움‘ ’헌신적인‘ ’친절한‘ ’평화‘ 등을 함축하고 있다.
소프트한 속성은 어떤 국가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 인간 본성 속에 내재된 선함과 양심의 분량이 적어서 잘 나타나지 않지만, 위급한 사람을 보면 선한 본성을 드러내듯 어떤 국가와 민족도 도움을 요청하면 돕는 행동을 한다. 한국인은 단군신화에서 나타나 있듯 재세이화, 홍익인간 정신을 자랑하고 있다. 재세이화는 이치 정신으로서 정의감에 민감한 성질이고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정신은 오늘날 한국인의 ’정‘, ’평화‘ 지향성으로 나타난 것 아닐지 생각해 본다.
소프트한 속성이 아무리 풍부해도 기술과 기량, 제품력과 서비스력이 없으면 소용없다. 사람이 능력 없이 좋기만 하면 괜히 실없는 인간으로 취급받는 게 세상인심이다.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소프트한 속성이 있을 때 타인의 칭송을 받고 부러움을 사고 본받기를 바란다.
그런데 한 나라의 소프트파워는 역사적으로 증명해 내야 한다. 즉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다. 브랜드 파워가 한 개 히트 상품 냈다고 생기지는 않는다. 소프트파워의 대표적인 국가인 미국은 제1,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유럽과 세계를 건져냈다. 2차대전 후 마샬플랜과 막대한 원조로 유럽과 일본, 한국을 도왔다. 이것이 미국의 선한 이미지를 형성했다.
1900년대 미국의 거대한 산업력과 과학기술력은 영국의 자본력과 기술력의 도움을 받아 형성됐다. 그리고 2차대전 전후 기간에는 나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독일계 유대인 과학자들과 금융인, 전문가 그룹들이 미국 국력 신장에 큰 기여를 했다.
미국산업이 유럽의 그늘에서 벗어나 그들만의 독창적이고 압도적인 산업력으로 부상한 것은 유명한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대량 조립 생산력이었다. 1920~30년에 확립한 대량생산 제조 능력으로 미국은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을 폄하하는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는데 영국과 독일로 대표되는 유럽이 없었으면 초강대국 미국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미국과 유럽의 소프트파워를 돌이켜보면,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서구를 모방하며 발전해 온 일본의 소프트파워는 인위적으로 육성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이제 기술력, 기량 면에서 그간 오랫동안 노력하고 축적한 결과 독창적인 뭔가를 만들 정도로 역량을 갖춘 듯하다. 우리나라는 식민지에서 광복하자마자 뒤이은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놀라운 경제성장 스토리를 세계인들에게 각인시켰다. 민주주의에서도 위기의 고비마다 넘나들며 잘 지켜낸 역사가 바로 소프트한 파워로서 굳건히 뿌리를 내려왔다.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한류로 간간히 표출되다가 이제는 안정적인 소프트파워로 자리 잡아가는 느낌이다.
이제 우리도 일본처럼 소프트파워 산업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갈 단계에 이른 것 같고 기초적인 준비는 마련된 것 같다는 기대를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