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에게 경종을 울리는가?

  • 등록 2024.12.27 09: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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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내란 사건과 관련해 내란 중요 임무 종사자로 수사를 받고 있는 김용현 전 국방장관이 26일 변호인단을 통해 입장문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정당한 것으로 내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변명을 반복했다. 이런 주장은 국회 탄핵 이후 윤 대통령의 담화 내용과 동일한 것으로 입장문 발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계엄포고문 작성과 관련해 자신과 대통령 역할을 과도하게 자세하게 정리한 부분이 있는데, 공개적으로 말맞추기를 시도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다만 다른 내용을 보면 법적 다툼에서 불리한 내용을 쏟아냈다는 점에서 오해와 편견, 망상에 사로잡힌 결과 자신의 불만 해소를 위해 저지른 자해 행위일 수도 있겠다.

 

 

입장문은 국가와 사회, 역사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뒤틀려 있고, 그런 인식에 기초한 변명으로 일관돼 있어서 분노와 참담함을 넘어서 동정과 연민의 정도 느껴질 정도다.

 

김 전 장관은 이번 계엄선포가 거대 야당의 패악질에 맞서 경종을 울리기 위한 조치로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국무위원 탄핵 22차례, 방탄 국회 운영, 예산안 폐지 등을 들었다. 야당이 국무위원들을 탄핵한 것은 인사청문회 당시부터 야당이 반대 의견을 냈는데도 대통령이 야멸차게 장관 임명을 강행했고, 그 이후에도 야당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언행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사례라면 22번이 아니라 220번 탄핵하는 것도 정당하다. 야당은 대통령이 폭정을 할 경우 견제하는 것이 주요 임무이기 때문이다.

 

방탄 국회 운영도 당파적인 주장이다. 0.7% 차이로 겨우 이긴 대통령이 야당 대통령 후보를 상대로 무자비하게 수사권을 남용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생존을 위해 법적으로 가능한 모든 조치를 다하는 것은 야당 처지에서 불가피한 대응일 뿐이다. 예산안 폐지는 일부 예산을 삭감한 것을 과장한 표현으로 사실상 거짓말이다. 야당이 정상적으로 정부와 여당을 견제하는 것을 패악질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저열한 수준이고, 정치력으로 해결할 사안이라는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백치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경종을 울린다는 말도 황당한 표현이다. 누가 누구에게 경종을 울린다는 말인가?

 

국회는 물론 국회의원 하나하나가 모두 헌법 기관이고, 국가의 실체를 구성하는 요소다. 국회의원 한 명을 탄압해도 중대한 헌법 위반이고, 반국가 세력이 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무와 역할은 다르지만, 대통령이 국회의원에 비해 더 높은 사람은 아니다. 사실 대통령은 행정부 모든 공직자의 수반이지만, 우리 국민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더 높은 사람이 아니다. 하물며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는 것은 단지 폭군의 행동이고 그런 인식 자체가 민주주의의 적이며, 반국가 세력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선거에 대한 의혹이 있어서 군대를 선관위에 보냈다는데, 계엄령 선포와 무슨 상관이 있고, 하필 방첩사령부 요원을 파견하는가? 선거에 대한 의혹이 있다면 검찰과 경찰, 또는 국가 정보원이 담당인데, 왜 군이 나서는가? 선관위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당국 조사를 받았고, 혐의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선관위를 조사할 일이 아니라 선관위를 조사했던 수사 당국자들을 족쳐야 할 것이다. 선관위 조사를 위해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주장을 도대체 어떻게 믿으라는 것인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암약하는 종북 주사파, 반국가 세력을 정리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라고 주장했다. 그 말에 일 말의 근거가 있다면 지난 2년 반 동안 윤 대통령은 도대체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대선에서 패배한 야당 지도자에 대해서는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인원 동원과 압수수색을 감행하면서 반국가 세력을 정리할 시간과 인력은 없었다는 말인가?

 

대통령 취임 이전도 생각해 봐야 한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지낸 사람으로 이른바 적폐청산의 돌격대장 역할을 수행한 사람이다. 수년 전부터 종북 주사파를 방치했다는 것을 실토하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는 바로 자신을 종북 주사파로 체포해야 할 것이다.

 

반국가 세력의 정의는 또 무엇인가? 국가로서 대한민국은 헌법에 주요 특징이 규정돼 있다. 2000년 이상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면서 3.1운동과 4.19혁명 정신에 입각하고, 분단된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존중하는 민주공화국이 대한민국의 실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현재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고 세계 5위권 군사 강국이다. 도대체 대한민국 국민 중에 어느 누가 세계 200위권 경제실패국에 불과하고, 독재와 국가 폭력이 난무하는 북한에 동조해서 대한민국을 전복하려고 하겠는가? 대통령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을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하고 탄압하려는 것 외에 무슨 설명이 있겠는가?

 

비상사태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대통령 고유권한이라는 말도 황당한 거짓말이다.

 

1987년에 채택된 우리 헌법은 1980년 내란 사태의 교훈을 담아 쿠데타 방지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작성됐다. 계엄령 선포가 가능한 비상사태를 전시나 사변으로 특정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조건에 맞지 않는 계엄을 선포했다면 내란에 해당하는 것은 자명한 것이고, 이미 판례에서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도 고유권한 운운하는 것은 무슨 속셈인지 궁금할 뿐이다.

 

계엄 투입 병력이 최소한의 운용이라는 주장도 뻔뻔한 거짓말이다.

 

서울 인근에서 동원할 수 있는 병력 가운데 최고의 전투 역량을 보유한 정예병력 중심으로 1,500명 이상을 동원했다. 계엄군이 불출한 실탄은 만 발 이상으로 파악됐다. 그러고도 최소한의 병력을 동원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누가 믿겠는가? 특수전 사령관 증언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전화를 직접 걸어서 ‘국회 본회의장 문을 부수고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 국회를 무력화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1년 이상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고, 지난 3일 밤 전격 실행했다가 국민적 저항과 군인들의 해태, 국회의 기민한 대응 등 민주주의 요소들이 작동하면서 실패했을 뿐이다.

 

국가와 민주주의에 대한 황당한 인식과 어리석은 계산으로 내란에 실패한 이후에 단지 경종을 울리기 위한 행보였다고 시덥지 않은 거짓말을 늘어놓는 모습이 참으로 가증스럽다.

 

김 전 장관 발표문은 윤 대통령 담화문에 이어 또 하나의 자폭 문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왜 불리한 입장문을 발표했을까?

 

아마도 세상을 보는 인식, 특히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에서 엄청난 오해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젊은 시절부터 고급 엘리트로 살아오면서 다수 국민이 이해하는 상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허상, 또는 소수 엘리트끼리만 통하는 허구적 세상에서 살아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알고 있는 세상은 아마도 일제시대나 군사독재 시대일 것이다. 대의명분과 국가 봉사보다는 엘리트 카르텔에 가입하는 것이 잘 사는 방법이고, 국민은 단지 피지배층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역사에 보면 그렇게 해서 성공한 사람이 없지는 않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

 

러나 그런 인간들은 반드시 응징을 받았고, 결론 부분에 보면 응징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역사책을 읽을 때 중간에 덮지 말고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그리고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이해하고 각자의 삶의 철학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도 윤석열 내란의 교훈으로 꼽아야 하겠다.

 

편집국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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