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주의 개혁

  • 등록 2014.05.03 19: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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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는 거의 무엇인가 잃어버린 사람처럼 지내고 있다. 온갖 언론에서 쏟아져 나오는 세월호 관련 기사들은 나를 완전히 하나의 무기력한 인간으로 만들어놓았다.

 

되풀이되는 후진국형 사고에 화가 치미는데다, 사고 이후 처리과정에서 하나둘씩, 마치 양파껍질 벗기듯이 계속하여 흘러나오는 각종 비리와 무원칙들은 또다시 나를 패닉상태로 만들었다. 더군다나 사고를 관할하는 정부부처들과 정치인 등이 보여주는 우왕좌왕하는 모습과 부도덕한 행동은 이 나라를 떠나고 싶은 생각마저 들게 한다.

 

대한민국은 무역규모로는 세계 10위권의 경제선진국으로 진입했지만, 이번 사고로 각 정부부처와 관련기관들의 부패와 안전불감증은 거의 후진국에 머물러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95년 500여 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와 성수대교 붕괴, 1993년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 등 뇌리에 남을 만한 대형사고 뒤에도 개선되지 않는 안전시스템들을 보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무기력감을 느끼게 한다.

 

한편으로는 경제적으로 선진국 흉내를 내고 있었으나, 우리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아직 할 일들이 많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고 현장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갖가지 의혹과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사고현장에서 여객선 직원들이 왜 탑승자들에게 비상시 행동수칙을 알려주지 않았는지, 구조현장에 도착한 구조대는 왜 1시간여 동안 침몰해가는 선내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머물면서 구조했는지, 일본에서 건조하여 20여 년이 된 여객선을 도입해야만 하는 현실과 여객선을 도입한 이후 무리한 증축까지 했는데 어떻게 안전검사에 통과했는지, 팽목항에 민간인 자원봉사자와 각종 물품들을 효율적으로 지휘하고 운영하는 모습이 왜 보이지 않는지, 일부 정부관료들이 보여주는 어이없는 행동이 왜 되풀이 되는지, 10여 개가 되는 사고대책본부가 단일화 되어 움직일 수는 없는지, 유가족들의 마음을 달래고 어루만지는 행동들은 왜 안 보이는지, 무슨 비리가 이리 많아 매일 언론을 접할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지, 누구 하나 책임질 사람 없이 서로 미루는 모습과 일부 몰지각한 언론인과 정치인들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또 얼굴을 내미는 모습에 좌절과 불신과 분노가 한꺼번에 치밀려 올라온다.


가장 시급한 것은 대대적인 시스템 개혁


이번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가장 시급한 것은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관료사회의 대대적인 시스템 개혁이다. 물론 1차적인 책임은 운영회사인 청해진해운,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에 있다. 하지만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전관예우형 재취업을 고리로 한 관피아(관료+마피아)의 연결고리, 그리고 공무원들의 팽배한 보신주의와 안일·무사주의가 어린생명들을 앗아갔다. 이런 사고를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국가시스템을 과감히 개조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국가시스템의 개혁은 이미 독버섯처럼 퍼져있는 관료조직의 수술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미 전관예우형 재취업과 퇴직인사의 낙하산인사는 각 관련기관에 관피아를 심어놓았으며, 그로인해 국민의 주인이 아닌 그들만의 이익을 주고받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이번 사고와 관련된 관피아, 예를 들면 한국해운조합은 12명의 이사장 중 10명이 해수부 관료출신이고, 한국선급은 12명 중 8명이 관료출신, 그리고 현재의 선박안전기술공단 이사장은 국토해양부 출신이 맡고 있다.

 

자기들끼리 서로 이익을 주고받으면서, 국민의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있었던 것이다. 목포해양경찰서와 해양수산부가 실시한 여객선 한 척에 걸리는 안전점검 시간은 13분으로 그냥 겉모양만 둘러봤을 것이다.

 

이번 사고를 뒤돌아보면 사고 첫날부터 구조자와 탑승자 숫자조차 집계하지 못하여 계속 숫자가 바뀌는 웃지 못할 현상이 벌어졌다. 더군다나 TV를 통해 중계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주로 회의하는 모습만 보일 뿐 현장에 대해 지시를 내리거나 지휘를 통솔하는 광경은 보이지 않는다.

 

사고가 진행되면서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은 서로 책임을 미루는 듯한 인상을 주고, 누구하나 속 시원하게 애기해주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서로 발표를 미루고 책임을 떠넘기고, 실종자 가족의 눈치를 보다가 대통령이 방문한 후에 실종자 가족을 위해 진도체육관에 대형스크린 설치되는 광경은 이 사회의 경직성과 관료주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가슴속이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공무원을 비롯한 관료사회 바꿔야


이번 사고를 계기로 국가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재의 공무원을 비롯한 관료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공직사회가 책임을 지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일하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

 

공무원은 국가를 움직이는 시스템의 주역인 동시에 국민들의 심부름꾼이라는 의식부터 심어주어야 한다. 지금까지 기득권을 지키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보신주의와 국민위에 군림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국가 재난 매뉴얼은 그런대로 갖춰져 있지만 항목별로 너무 많고 현실성이 떨어져 무엇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모르고, 평소에 훈련받은 적도 없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에 주인 의식 부재가 가혹한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몸을 위해 배를 몰래 빠져나갈 때 여직원과 교사들, 그리고 의로운 학생들은 자기 몸을 던져 승객들을 구했다. 선원들은 도망가고, 구명보트는 작동되지 않고 분초를 다투는 구조작업은 관료들의 무책임과 보신주의 속에 늦어질 때, 언제나 그랬듯이 평범한 민초들은 자기 몸을 던져 승객들을 구조했다.

 

 학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반복되는 방송만 믿고 서로 의지한 채 ‘사랑해’를 외치며 남아있었다. 가족 간, 사랑하는 이와의 주고받았던 문자들을 보면서 혼자 한동안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말았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주면서 선원으로서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한 박지영 씨의 존재가 우리사회에 희망을 주고 있다. 사고가 날 때마다 책임자들은 뺑소니치고, 정부는 언제나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고, 본인의 책임을 다한 사회적약자들과 꽃다운 학생들은 싸늘한 시체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제 정부는 답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이 울분과 분노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 이번기회에 관피아는 물론 국가안전시스템을 완전히 개조했다는 말을 듣고 싶다. 아니 앞으로 보신과 무책임의 관료주의를 어떤 방법으로 개조하겠다는 청사진을 먼저 듣고 싶다. “민주주의의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바로 관료주의”라고 말하고 싶다.


김남용 신한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MeCONOMY May 2014

박영신 기자 rainboweye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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