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공공의 적인가 물주인가

  • 등록 2014.05.03 18:5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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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법원의 담배소송 원고패소판결과 국민건강보험의 담배소송 제기 등으로 담배소송 논란이 뜨거웠다. 건보가 공공기관으로서 최초로 KT&G 등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흡연 때문에 추가로 부담한 진료비 537억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은 정부의 국민건강에 대한 책임과 역할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정부는 담배회사와의 유착관계를 유지하고 흡연경고그림을 미도입하는 등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을 위반하면서 담배회사를 비호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금연구역 흡연에 대해 과태료를 도입하고 금연운동을벌이고 있다. 정부의 담배에 대한 이중적인 정책 중 무엇을 따라야 할까. 국민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꼴초왕국, 정부 책임 없나


담배에는 4천여 가지의 유해화학물질과 60여 종의 발암물질이 들어있다. 특히 국제질병분류표에 실린 5천여 개 질환 가운데 흡연과 전혀 관계 없는 것은 하녀무릎병(걸레질을 자주 하는 하녀의 무릎에 생기는 관절낭염)밖에 없다는 의학속담이 있을 정도로 흡연은 거의 모든 질병과 직·간접적인 관계가 있다. 이 중 흡연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질병은 폐암, 식도암, 기관지암, 심장병 등 25가지이다.


WHO의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흡연자는 5명 중 1명 꼴인 11억 명에 달하며, 매년 350만 명이 흡연관련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흡연율 통계(2009년)에 따르면 우리나라(44.3%)는 OECD 34개국 중 그리스(46.3%) 다음으로 흡연율이 높다. 매년 5만8천 명이 흡연으로 인해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백해무익하고 치명적인 담배를 국민들은 왜 피는 것일까. 담배회사와 정부를 상대로 흡연피해의 책임을 묻는 소송에서 대법원이 원고패소판결을 내린 걸 보면 사법부는 흡연과 흡연피해를 개인의 문제로 판단하는 모양이다. 대법원은 “흡연자들은 니코틴의 효과를 의도하고 흡연을 하고 있다”며 “니코틴이나 타르를 완전히 제거할 수있는 방법이 있다고 해도 이를 적용하지 않은 점이 설계상 결함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당시 원고 측 변론을 맡았던 배금자 변호사는 “흡연은 개인의 습관이 아니라 ‘중독’의 문제”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담배회사들이 600종의 첨가물을 넣어 니코틴의 흡수를 높이고 향을 좋게 해서 담배에 대한 거부감을 없앤다”며 “그러나 소송과정에서 담배회사들은 첨가물에 대한 자료공개를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서홍관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은 “담배회사들이 담배의 안전성을 위해 대체설계를 할 수 있는데도 중독성을 높이기 위한 의도로 첨가물을 첨가하고 있다”며 “이게 바로 위법성인데 법원은 그걸 위법성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건강보험이 제기한 소송은 건보가 그동안 축적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그간의 담배소송에서 증명이 어려웠던 담배회사의 위법성과 흡연의 유해성을 입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제야 제대로 된 싸움이 가능한 셈이다.


그러나 소송결과가 어떻게나오든 담배가 해롭다는 것은 과학적·의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그렇다면 공공기관이 담배의 유해성을 입증하겠다고 나선 가운데 정부는 담배에 대해 어떤 정책을 취하고 있는가. 헌법은 국가가 국민은 보건에 대해 국가의 보호를받는다고 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담배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확인해 볼 일이다.


이율배반적인 담배정책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말까지 2주에 걸쳐 전국 100㎡이상 일반음식점, 휴게음식점, PC방, 의료기관 등 공중이용시설 5만7천 개 업소를 대상으로 금연합동단속을 실시, 총 2,401건의 흡연위반자를 적발하고 2억 2,27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지난 해에도 16억 917만 원의 과태료 수입을 거뒀다.


정부는 지난 2011년 7월부터 공공청사, 도서관, 공연장, 목욕장 등 공중이용시설을 금연구역으로지정하고 흡연 시 1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100㎡ 이하의 모든 음식점으로 금연지역이 확대될 전망이다. 또 담배값에 흡연이 폐암 등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내용과 발암물질 등을 표기하도록 하고있다.


그러나 복지부가 국민건강증진법을 통해 금연구역을 확대하는 등 금연노력을 기울이더라도 가장 힘이 센 정부부처인 기획재정부 소관법인 담배사업법이 담배사업을 장려하는 한 담배정책은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담배사업법은 담배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고 국민경제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다.


한편 정부는 국제협약도 위반하면서 담배사업을 비호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FCTC에 2003년 7월 서명하고 2005년 5월 비준했으며 지난 2012년에는 FCTC 당사국 총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FCTC는 담배가 인류에 미치는 해악에 대해 국제사회가 함께 대처하자는 취지로 2003년 발효된 공중보건에 관한 최초의 국제협약으로 176개 당사국이 비준했다. 비준에 따라 정부는 담배제품의 광고, 판촉 및 후원에 대한 전면적 금지 또는 규제를 협약 발효 후 5년 이내인 2010년까지 이행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2011년 3월 KT&G가 투자당사국으로 참여하고 있는 투자콘소시움 ISIH를 인천경제자유구역 영리법인병원의 우선투자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또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공단은 국민연금기금의 위탁투자로 담배 관련주 KT&G에 1,013억 원(2012년 6월 현재)을 투자하고 있다.


이는 특정행사에 대한 광고나 판촉 후원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FCTC 협약에 위배되는 정도가 아니라 정부가 담배기업과 직접적인 계약을 맺거나 투자를 하는 행위다.


또한 WHO가 가장 확실한 금연정책으로 추천하고 있는 흡연경고그림은 2012년 보건복지부가 국민건강증진법 정부안을 마련했지만 부처 간 이견으로 아직까지 국무회의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담배경고그림이 담배사업 규제인 만큼 기재부 소관법인 담배사업법에 담아야 한다고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복지부안에서 그림 크기를 담배값의 50%로 규정한 데 대해서도 20%~30%로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복지부 관계자는 “담배사업법은 담배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법이고 국민의 건강과 금연에 관련된내용은 국민건강증진법에 담겨 있다”며 “기재부가 담배경고그림을 도입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담배경고그림 도입을 늦추고 있어 정부가 사실상 금연을 반대한다는 이미지를 주고 있다.


정부의 담배규제 및 금연정책도 허술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건강증진재단이 지난 1월22일 발표한 ‘우리나라 담배규제및 금연정책 모니터링’에 따르면 담배규제 정책은 5.00 만점에 2.61점으로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가장 큰 성과로는 금연구역 확대에 따른 간접흡연 예방정책을 꼽았으나 이밖에 다른 정책은 정체됐던 시기였다. 담배가격 인상 등이 국회에서 논의되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평가됐으며 담배규제 정책에 대한 국가 노력의 의지, 리더십 부족도 지적됐다.


이처럼 정부가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담배 회사와 유착관계를 유지하고 담배규제를 소홀히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2,500원 짜리 담배 한 갑에는 담배소비세 641원, 지방교육세 321원, 부가가치세 227원과 국민증진부담금 354원, 폐기물부담금 7원의 세금이 부과된다.

 

정부는 2012년 한 해 담배소비세 2조 8천억 원, 지방교육세 1조 4천억 원, 부가가치세 8천억 원, 국민건강증진부담금 1조 5천억 원, 폐기물 부담금 330억 원 등 종 6조 7천억 원을 거둬들였다. 같은 해 징수된 지방세 규모는 53조 2천억 원이다. 담배수익금에 부과된 세금 중 지방세로 들어가는 담배소비세와 지방교육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지방세의 6%에 해당하는 것이다.


기재부가 KT&G의 최대주주인 중소기업은행의 지분 70%를 갖고 있는 관계 또한 기재부가 KT&G를 비호하는 이유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이중적인 담배정책에 흡연자들은 분통을 터뜨린다. 7년간 담배를피웠다는 한 흡연자는 “정부가 돈 벌려고 담배회사를 밀어주면서 왜 금연구역은 넓히는지 모르겠다”며 “담배를 피워야 정부 수입이 되니까 겉으로는 금연정책 하면서도 피우라고 부추기는 것 아닌가”고 질타했다.


국민 건강 위해 법부터 바로잡아야


정부가 이러한 오명을 벗고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현행 담배관련 법조문은 담배사업법, 국민건강증진법, 청소년보호법 등 20여 가지의 법에 산재돼 있고 주무부처의주체 및 역할이 불명확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는 담배사업법을 대체하는 담배관리법 초안을 2006년 2월 마련한 바 있다. 이 법은 정부가 비준한 FTCT 기준에 맞게 담배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담배없는세상연맹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8개 단체는 ‘담배제조·매매 등 금지법(안)’을 지난 2008년 입법청원한 바 있다. 담배제조 및 판매가 법으로 전면금지된다면 사회적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민적인 공감대가충분히 형성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담배가 마약보다 더 중독성이 강한 독성물질덩어리라는 것을 감안해 규제가 필요하다는 정책적인 인식은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금연정책으로 담뱃값 인상이 있다. 유럽연합 산하 담배규제위원회가 OECD 가입국 중 22개국을 대상으로 가장 잘 팔리는 담배가격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2,500원으로 가장 저렴했다. 아일랜드가 1만4975원으로 가장 비쌌으며 영국이 1만1,525원, 프랑스 9,400원 등이었다. 질병관리본부가 1995년부터 2006년까지 국내에서 시행된 금연정책 가운데 흡연율 감소에 미친 효과를 분석한결과 남성의 흡연율을 줄이는데 담뱃값 인상이 54.4%로 가장 강력한 정책수단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홍관 금연협회장은 “선진국 수준으로 담배값을 인상해야 한다”며 “물론 서민들의 물가충격이 크고 밀수 등 불법이 발생할 수 있겠지만 그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금연정책으로 금연경고그림 적용을 들 수 있다. 담배경고그림은 세계 55개국 이상이 도입했다. 호주는 담배값 전면의 75%, 후면의 90%에 건강경고그림을 의무화했다. 태국은 기존에 55%였던 담배경고그림의 비율을 85%로 확대적용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담배경고그림 도입 후 흡연율이 줄어든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캐나다는 2001년 세계에서 처음 이 그림을 도입한 이래 2000년 24%였던 흡연율이 2000년 21%, 2004년 20%, 2006년 18%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금연왕국으로 가는 길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점은 국민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간접흡연 또한 건강에 해로운 것으로 알려져 간접흡연 방지를 위해 금연구역을 확대하는 추세이지 않은가.


그런데도 사람들이 담배를 피는 이유가 담배의중독성에 의한 것인지 개인의 습관으로 판단해야 할지는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국민의 건강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는 한 담배회사를 비호하거나 금연정책을 소홀히 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은 “정부가 소중한 국민건강을 위해서 담배와 관련한 장기적인 정책 비전을 마련해야 한다”며 “적극적인 금연정책을 펼치고, 이 때문에 줄어드는 세수 대체 확보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MeCONOMY May 2014

 

박영신 기자 rainboweye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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