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불안석’ 쌀 관세화

  • 등록 2014.08.11 10: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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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발표한 ‘쌀시장 관세화’ 방침에 대해 후폭풍이 거세다. 정부는 9월 말께 WTO에 쌀관세화 의지를 담은 양허표를 통보한다는 계획인데 성난 민심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는 것이다.

불통논란에 이어 고관세율 유지에 관한 논란, 국회 동의에 관한 논란 등 끊임없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한 일은 쌀시장 개방화가 단순히 몇몇 농민단체를 달래면 끝나는 문제가 아닌 식량주권과 관련된 국민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정부가 잊고 있다는 것이다. 쌀시장 개방 관련 쟁점들을 정리하고 정부가 앞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지 짚어 봤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7월18일 오전 정부중앙청사에서 쌀 관세화 결정 발표문을 낭독했다.
그 전전날까지도 국회와 농민단체 등 국민과의 소통과 협의를 위해 발표시기를 8월이나 9월까지 내다본다던 농림부였다. 그러던 농림부가 발표 전날인 17일 “예고기사도 안 된다”, “기사 송출은 브리핑 이후여야 한다”며 단단히 엠바고를 걸고 다음 날인 18일 오전 발표예정임을 밝혔다. ‘기습적’이라는 표현이 가히 어울렸다.


발표 내용은 “쌀산업의 미래를 위해 관세화가 불가피하며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또 이동필 장관은 “올해 말까지 관련 법 개정 등을 거쳐 내년부터 관세화를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지난 1994년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모든 농산물에 대해 관세화 원칙을 채택했으나 우리나라 쌀은 지난 20년 동안 두 차례에 걸쳐 관세화를 유예받아 올해 말로 유예기간이 만료된다.


현재 유예에 따른 의무수입물량으로 국내 쌀 소비량의 9%에 해당하는 40만9천톤을 수입하고 있으며 만약 또다시 관세화를 유예할 시 이 물량의 2배에 달하는 94만톤(22%)의 물량을 의무수입해야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쌀 소비량 감소추세를 고려해 쌀 수급에 매우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여 쌀 시장을 개방하고 높은 관세율을 통해 국내 쌀시장을 보호하는 방침을 확정했다. 쌀시장 개방 대책의 기본방향을 ▲안정적인 국내 생산기반 유지 ▲농가소득 안정 ▲경쟁력 제고 ▲국산쌀과 수입쌀의 혼합 유통 금지 등으로 잡았다.


정부는 9월 수입쌀에 매길 관세율과 구체적인 쌀산업발전대책을 발표한 뒤 WTO에 수정양허표를 제출해 3개월 간 회원국의 검증 과정을 거친 후 내년부터 관세화를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 등 농민단체는 삭발농성도 불사하며 “정부는 국민과의 협의도 없이 국회의 질타도 거부하고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쌀 관세화를 선언했다”며 “농민들은 국민의 힘을 모아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모든 힘을 다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또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번 정부의 이번 선언에 대해 ‘독단적 불통농정’, ‘식량주권포기’라며 재검토를 촉구했다. 새정치연합은 “농민과 국민에게 제대로 된 설명 한번 없이 쌀 전면개방을 독단적으로 발표한 박근혜정부의 ‘불통농정’이 농민을 절망에 빠트리고 있다”며 “대선 후보 당시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한 박 대통령의 약속이 허언이 되고 만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여야 정치권과 정부, 농민단체가 참여하는 '쌀 관세화 논의를 위한 4자 협의체' 구성을 요구했다.
통합진보당도 "쌀 개방 선언은 식량주권 포기 선언이자 협상포기 굴욕 선언이며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 사기 선언"이라고 비난했다.


개방이 최선인가


정부의 발표대로 ‘쌀시장 개방이 불가피하고 최선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WTO 협정문에 우리나라가 쌀 시장 개방을 해야 할 의무조항은 없으며 시장개방론자들의 억측일 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관세화로 쌀시장을 개방한다고 해도 현재의 의무수입물량을 수입을 해야 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송기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쌀대책팀장은 “농업협정문과 쌀협정문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정부의 주장대로 쌀시장 관세화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그러나 쌀 관세화를 하지 않으면 의무수입물량을 2배 이상으로 늘려야 된다는 규정은 협정문 어디에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제조약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협상의 산물”이라며 “쌀 관세화 선언 이전에 농업국가로서 국내 쌀시장을 보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 마련이나 국제 사회와의 협상 노력이 우선적으로 진행됐어야 하지 않나”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현재 쌀 부족국가도 아닌데 쌀 생산량의 약 10%에 가까운 많은 물량을 의무적으로 수입하고 있다는 점을 쌀 수출국들에게 제기하고 협상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정부는 식량주권 문제에 너무 안일한 대처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부소장은 “농업협정문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나라가 그동안 관세화 의무를 안 한 것이 아니라 의무수입물량을 통해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해석에 대한 문제가 있으면 WTO에 공식질의를 하든지 또는 상대국들과 협상을 통해 절충점을 찾든지 해야 될 것”이라며 “심지어 쌀 주요 수출국인 미국의 수출할당을 확대하거나 유지해 주고 의무수입물량을 현상유지를 하는 방향으로 협상할 수도 있지 않았나”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한국의 현상유지 행보를 선진국들이 용인할 리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정부는 “쌀 수출국에서 한국이 하자는 대로 움직여주지는 않는다”며 “의무수입물량을 더 늘려야 한다고 요구를 해 올 것”이라고 밝혔다.


불통’이 가장 문제


우선 정부가 쌀시장 개방을 하기 위해서는 쌀수입 허가제에 대한 내용을 담은 ‘양곡관리법’을 국회에서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즉 정부가 쌀시장 개방 발표 이전에 우선 양곡관리법 개정을 위한 국회 절차부터 거쳤어야 한다는 것이다.


송기호 변호사는 “정부가 국회의 사전동의도 받지 않고 시장 개방과 쌀 관세율을 결정한 뒤 WTO에 통보하려고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정부가 쌀시장을 개방하기 전 쌀수입 허가제 규정을 없애는 게 우선적인 절차”라며 ”법을 바꿔서 해야 되는 문제를 정부가 편법으로 하려고 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기조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정부는 통상업무 시 국회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국회에 사전에 보고하는 정도로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정부는 올초부터 쌀시장 개방 관련 공청회와 토론회 등을 열어 농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는 했지만 대부분 파행을 빚거나 농민단체와의 입장차이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일본은 쌀 시장 개방 당시 이를 결정하기 전 정부·여당·농민의 3자 합의를 거쳐 고관세를 매기고 농가소득보전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관세율 유지 가능할까


WTO 농업협정 규정에 따르면 관세상당치는 1986~1988년 당시 실제 수입 쌀가격과 국내 도매가격의 차이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여기서 UR협상 감축분인 10%를 차감해 관세율을 최종 확정하게 된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나라는 쌀 수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쌀가격 자체가 없다. 이에 따라 중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의 수입 가격을 쓸 수밖에 없는데 어떤 나라의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관세율이 나오게 된다. 경제관련 연구기관들은 300%에서 500%대까지 내놓고 있다.


미국쌀과 중국쌀이 우리쌀에 비해 절반 정도 수입가격이 저렴하더라도 300~500%의 높은 관세율을 적용하면 우리 쌀이 가격경쟁력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계산이다. 정부는 WHO 검증과 상대국들의 수용가능성을 고려해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관세율을 검증받는 과정에서 우리는 미국과의 협상에 직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주요수출국인 미국은 우리나라의 의무수입물량 40만톤 중 5만톤을 쿼터제를 통해 수출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쌀관세화를 하게 되면 쿼터제가 없어지면서 미국은 5만톤에 대한 쿼터를 잃게 된다. 이에 대해 미국은 FTA 등을 통해 자신들의 5만톤에 대한 쿼터를 유지해 줄 것을 요구하거나 공식적인 관세율은 높게 매기고 미국쌀에 대해서는 저관세율을 매길 것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 초 발표된 미국무역대표부의 ‘국가별무역장벽보고서’에는 5만톤의 쿼터에 대한 보상대책을 한국 정부와 협상할 것이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우리 정부가 만약 고관세율을 확정짓는다 하더라도 이를 유지하는 데는 국제분위기 또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자유무역협정(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상(TPP) 등을 통해 관세율을 낮추거나 관세를 아예 폐지하는 국제적 흐름 속에서 고율관세를 언제까지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관세 인하 및 철폐 등으로 쌀 수입가가 폭락해 저가의 쌀이 밀려들어온다면 국내 쌀시장이 위태로울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FTA와 TPP 등 협상에서 쌀을 양허(관세철폐 또는 인하) 대상에서 제외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며 수입물량이 급증하면 특별긴급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호언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시뮬레이션을 짜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장경호 부소장은 “일본이 관세화할 당시에는 FTA의 영향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고관세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며 “그러나 우리나라는 FTA 등 관세를 철폐하는 협약들의 영향권 안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이런 상황을 다 알면서도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교해 관세율을 이야기하는 것은 국민들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꼬집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한중 FTA의 경우 그래도 맞교환식으로 관세철폐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TPP의 경우에는 ‘관세를 없애자’는 주의”라며 “정부가 이런 리스크에 대한 분석이나 대처에 미흡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송기호 변호사도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민들에게 고관세율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을 솔직히 털어놓고 이에 대한 대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특별긴급관세는 국내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을만큼 수입가가 떨어졌거나 수입 물량이 증가했을 때 즉각적으로 현재 매겨진 관세의 3분의 1만큼 더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관세다. 이 관세 또한 우리만 휘두를 수 있는 ‘보검’이 아니며 무역보복을 당하게 되면 속수무책이라는 지적이 있었으나 이에 대해 여인홍 농림부 차관은 한 방송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WHO ‘한중마늘’ 당시 우리나라가 발동한 특별긴급관세에 대해 중국이 무역보복을 한 것이 아니라 협정문에 대한 논란으로 인해 보복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법개정 조치들


이처럼 고관세율을 유지하는 방안에 대한 우려들이 높은 가운데, 협상 등을 통해 관세율을 조정하고자 할 경우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는 내용을 법제화하는 작업이 국회에서 진행 중이다. 김승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쌀 관세화와 관련해 쌀 관세율을 정하거나 협상할 때 국회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쌀관세율결정에관한특별법’ 발의를 위해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김승남 의원실에 따르면 이 법안에는 국회와 정부, 농민단체가 추천한 위원들로 구성된 쌀관세 합의기구를 통해 쌀 관세율을 합리적으로 정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를 통해 내년부터 진행될 쌀 관세화를 체계적으로 대비해 국내 쌀시장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의원실 관계자는 “이를 통해 내년부터 쌀 관세화를 할 경우 국민들의 수입쌀 관세율에 대한 걱정을 덜고 정부의 쌀개방 정책에 대해 신뢰를 가질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대해서도 반대입장을 보였다. 여인홍 농림부 차관은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농산품 품목이 많은데 (쌀에 대해서만 법을 만드는 것은) 법리적인 차원에서 적절치 않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 우려 해소 노력해야


정부가 내년부터 쌀시장 개방을 하겠다고 한다. 정부는 고관세율을 통해 우리 쌀시장을 보호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협상 노력 없이 관세화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하다. 또 관세철폐를 요구하는 국제 환경 속에서 어떻게 고관세율을 지켜낼 것인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 이 뿐 아니라 관세 문제를 법적인 절차로서 보장하라는 요구에도 시큰둥하다. 정부는 “쌀 관세화 반대여론은 국민 일부의 목소리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물론 일부의 주장일 수 있고 불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그들의 우려를 해소하려고 노력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 아닐까 우선 생각해 볼 일이다.


김승남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는 쌀 관세율 결정 관련 국회 동의 절차를 법제화해야 한다”며 “그래야 다른 나라와 협상 시 관세율에 대한 명분을 바로 세우고 국내 쌀 시장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는 국내 쌀시장이 피해를 막고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좀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MeCONOMY Magazine August 2014

박영신 기자 rainboweye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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