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 한국경제의 세 가지 열쇠

  • 등록 2025.06.22 11:4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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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상용 주필

 

트럼프 대통령과 세계와의 관세전쟁을 벌이는 한 자유무역의 축소는 피할 수 없다. 최근 미중 대결이 봉합됐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일 뿐이다. 글로벌 공급망 체인은 이제 선별적이 될 것이다. 신냉전 시대가 완연하게 접어든 것 같다. 느슨한 무역이 이뤄지나 기술과 자본의 이동은 극히 제한되고, 미국이 선호하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주로 혜택을 볼 것이다. 한국도 글로벌 사우스와 같은 스탠스는 아닐지언정 유사한 외교가 필요하다.

 

◇국가 경제 생태계의 생존 조건 3가지: 기술, 자본, 시장

 

한 국가의 경제생태계는 기술과 자본, 시장 등 세 가지 요소를 필요로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자국의 거대한 ‘시장’을 가지고 각국과 흥정을 벌이는 셈이다. 아무리 기술이 첨단이고 가성비가 좋다고 해도 팔 수 없는 시장이 없으면 고스란히 과잉 생산이 되고 재고로 남는다. 차라리 비첨단 일반 제품이거나 럭셔리 고가품이라도 팔 데가 있으면 생산한 기업들은 버틸 수 있고 고용을 유지할 수 있다.

 

막대한 자본 투자를 하면 기술이 순조롭게 향상될 거라는 관측도 실제와는 거리가 멀다. 첨단기술은 헝그리 정신과 절박한 필요성, 창의성에 의해 가능하다. 특히 헝그리 정신과 절박한 필요성만 있으면 창의성은 나타나기 쉽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중국에 대해 반도체 기술과 장비 수출을 제한하는 정책을 계속 실행하는 것은 중국의 반도체 기술 추격을 도와주는 결과를 빚어낼 공산이 크다.

 

중국은 기술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으나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거라고 본다. 중국의 놀라운 첨단기술 발전은 보조금 효과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미국의 압박과 봉쇄에 대한 반발 심리와 위기의식에 의한 효과가 더 크게 기여하고 있을 것이란 짐작이다. 다만 중국의 첨단기술과 관련한 리스크는 시장 고립에 따른 갈라파고스 현상이다. 또 막대한 보조금과 정부의 보호는 일단 기술이 정상에 오르면 그때부터는 정체 및 쇠퇴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소련이 걸어갔 던 길을 중국이 밟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당장은 자국 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것이 이득이 될 듯 하지만 세계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벌이도록 하는 것이 자국 기업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유지하는 길이다. 중국 은 너무 오랫동안 보조금 방식으로 기업들을 육성해 왔고, 그 효과를 얻었기 때문에 정부도 기업도 ‘안전망’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어느 나라도 초기 산업 육성 과정에서는 정부의 지원이 없었던 나라는 없었다. 자국 기업이 세계 경쟁력을 갖추고 난 뒤에도 정부의 측면 지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정도의 문제다. 중국의 공산주의 체제는 사실 국영 기업과 민간기업의 구분이 애매하고 모든 민간기업은 공 산당 조직을 통해 통제되는 까닭에 기업의 자율 경영, 글 로벌 시장에서의 공정 경쟁 노출은 체제상 불가능한 측면 이 있다. 중국의 가장 큰 문제는 체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무역에서 ‘자본’이 가지는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무역은 달러로 거래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가 필요한 자원이든 부품이든 제품이든 뭐든지 달러가 없으면 수입할 수 없다. 바로 이런 이유로 미국에 수출 하는 것이 달러 획득에 가장 유리하고 다른 나라에 수출 하더라도 수출 대금은 달러를 받아야만 한다. 이런 사실이 무역 상대국으로서 미국과 중국과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들은 미국과의 무역이 필수이고 중국과의 무역은 선택이다. 바로 이것이 국제 통화인 달러의 위력이고 엄연한 현실이다.

 

요즘 달러의 위상이 예전만 같지 못하다고 해도 달러의 가치가 완전히 무너져 새로운 제1의 국제 통화가 등장할 때 까지는 달러의 위상은 유지될 것이다. 만약 흔들리는 달러 위상을 보고 말을 갈아타려다간 큰 곤욕을 당할 우려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20일 새로운 우주 방위 시스템인 골든 돔 설치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이 이처럼 막대한 군사비를 투입해 압도적 군사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도 달러의 위상을 지키려는 속셈이 있음을 눈치챌 필요가 있다. 과연 골든 돔시스템이 가능하겠느냐는 논쟁이 있으나 그것은 본질이 아니다. 미국의 힘을 보여주는 효과가 있으면 추진된다.

 

경제생태계에서 기술과 자본, 시장이란 3요소 외에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는 특히 안보 요소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22일 주한미군 4천500명을 괌이나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철수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미국방성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 국방부와 우리 국방부도 즉각 부인했지만, 우리로선 방심 할 수 없는 문제다.

 

미국의 주한미군 감축 및 철수 언급은 주요한 외교적 메시지 중의 하나다. 이러한 메시지는 반드시 공식 입장만이 아니고 미국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관계 당국이 즉각 부인한다고 해도 미국 언론에서 주한미군 감축 및 철수를 보도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북한, 일본, 중국 등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들어 한국의 방위 기술 속도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럴수록 외부 의 압력과 선택 강요는 그 수위를 높여갈 것이다. 우리 정 부는 트럼프 정부에 한국의 안보적, 기술적, 경제적 가치를 제고하는 동시에 자주국방을 위한 절박한 노력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

 

◇미국, 중국 양측 진영 가르기와 보복 압력 거세져

 

미-중 간 관세 협상이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데, 90일간의 유예기간이 끝나면 다시 격화될 것으로 예상될 수 있다. 지금 예상으로는 중국은 견디기 어렵기 때문에 미국에 양보하고, 미국도 인플레 압력이 크기 때문에 적정한 선에 타협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양측의 근본적인 대결은 불식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양측은 다른 나라들이 어느 한쪽에 분명히 설 경우 보복을 할 것으로 전문가들이 분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 어느 때보다 유 연한 통상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소 간의 냉전은 베를린 공수작전, 쿠바 미사일 사태 등 위기가 있었지만, 양국 간 직접 충돌을 회피하는 암묵적 합의를 지켰다. 현재 미-중 간 신냉전은 대만을 둘러싸고 미-중 간 직접 충돌, 주한 및 주일 미군 참전의 시나리오가 그럴듯하게 거론되고 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핵보유국들끼리는 충돌을 회피해야 한다. 최근 중국 권력층 내부의 이상 현상은 강경파와 온건파간 노선 투쟁과 관련돼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 다. 중국 지도층은 세계 평화와 무역 정상화를 위해 온건 한 대외 노선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런 상황을 놓고 볼 때 무역 시장 다변화는 이제 국가 생 존이 달린 생명선이다. 그간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단일 거대시장에 너무 안주해 온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저 가격이 싸고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로 중국의 공급망에 지나치게 의존해 왔다. 다양한 무역 상대국의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다 보면 혁신도 일어날 수 있고 단일 거대시장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경제정책이나 통상 외교 정책이나 그 시대에 맞는 것이 최상일 뿐, 시대를 초월해 항상 타당한 정책은 없는 것 같다. 한때 풍미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이 오늘날 경제학자들이 입만 열면 ‘동네북’처럼 비판을 받는다. 레이건과 대처 정부, 그 시절에는 그런 정책이 타당했을는지 모른다. 당시에 아무리 좋은 정책이고 적절한 수단이었다고 찬사를 받았다고 해도 그것이 환경 변화 속에서 혁신의 기회를 놓쳐버 리고 관성을 띠면 나쁜 정책으로 둔갑한다.

 

왜냐하면 우 리의 경제 환경은 끊임없이 달라지고 세대로 이어지면서 각 경제 주체 스스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런 변수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어떤 경제정책을 본래부터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본다.

 

지난 대선 때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누가 보수당 후보인지, 진보당 후보인지 분별하기 어렵고 본인들도 잘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는데, 아무튼 과거의 낡은 이념에 끼여 맞춘 정책을 고집스럽게 주장하고 집행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선진국 경제로 진입하면 경제적 변수는 더욱 복잡해지고 풀어내기가 어려워진다. 선진국 경제의 요인 중 가장 복잡 하면서 풀어내어야 할 시급한 과제는 노동문제와 인재 육성 및 교육 문제이다. 오늘날 선진국의 경제 구조가 활력을 잃고 나라에 따라 산업 공동화의 함정에 빠져 있고, 다 수의 시민들이 심한 좌절감 속에서 양극화에 신음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노동문제와 인재 육성 및 교육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세계 각국의 경제정책은 미국의 주류 경제학에 영향을 받고 있다. 근래 미국의 경제학은 수학에 의해 점령돼 있다. 수학적 경제학은 분석엔 능할지 모르나 해결책을 내놓은 데는 무능력하다. 특히 미국식 경제학은 노동과 교육 문제 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설사 관심을 둔다고 해도 역시 숫자놀음을 하고 있다. 경영학 쪽에서 노동과 교육 문제에 접근하긴 하나, 경영학자들은 정책에 발언권이 약한 것 같다.

 

노동과 교육 문제는 인간의 논리적, 수학적 세계가 아니다. 소박한 꿈과 이글거리는 욕망과 비논리적인 감정이 요동치는 인간 본성의 세계이다. 윤석열 정부의 의료 개혁이 실패한 것은 의사들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냉철하기만 한 분석에 경도된 정책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노동과 교육 문제는 학자들에게 맡기지 말고 통찰력 있고 감각 있는 정치가와 관료들이 머리를 맞대어 좋은 정책을 마련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미, 일, 유럽의 기업들이 겪어온 어려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한때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칭송받던 구글이 2~3년 전부터 직원들을 추수철에 볏단 베듯이 자르고 있다. AI 투자 자금을 모으려는 목적으로 짐작되는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사람들을 그렇게 ‘헌신짝’처럼 취급한다는 게 참 기가 찬다. 구글을 최우수 모범 경영이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경영학자들은 지금 모습에 대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애플도 마찬가지다. 자사품의 모든 제조를 중국에게만 맡겨놓았다는 것 자체가 ‘도박’에 다름없다. 팀쿡 최고경영자는 미국 제조업은 안중에 없고 오직 주주 이익만을 위해 경영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기 집권 시기부터 애플의 제조를 미국에서 하라고 요구했는데, 트럼프의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장기적 고용을 보장한 일본과 독일 기업경영 모델도 문제가 결코 작지 않다. 이와 같은 안정 위주 모델은 ‘혁신’ 기운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 결과 중국의 추격에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결국 고연봉과 고용 보장의 동시 충족은 기업경영 수익상 불가능하다는 사실과 어느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친 모델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요즘 선진국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은 그 중간 지점에서 각각 기업들의 형편에 맞게 유연한 경영을 하면 될 것 같다. 시대를 초월한 경영 모델이라든지, 특정 경제 환경에 적합한 모델이란 것은 없다는 얘기다.

 

기술과 자본, 시장, 안보가 한꺼번에 흔들리는 트럼프 시대, 새 정부의 현명하고 유연한 사고가 요구된다. 시대에 적합지 않은 세계관과 경제관에 기울어지지 않도록 정치 지도자에서부터 기업인, 노동자, 시민에 이르기까지 균형감을 가지고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히 할 때다.

 

이상용 주필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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