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언제나 멀리서 시작되지만, 그 파장은 늘 가장 일상적인 생활에 미친다.
미국과 이스라엘 대 이란의 중동 전쟁이 한 달을 넘어가고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면서 비료와 면세유에 이어 농자재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석유화학의 핵심 소재인 나프타의 경우, 한 달 만에 가격이 두 배 이상 치솟았다.
나프타는 원유에서 추출하는 물질이다. 플라스틱, 비닐(필름) 제품 소재인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 등에 필수로 들어간다. 영농철을 앞둔 농민들에게 전쟁은 더 이상 뉴스 속의 사건이 아니다. 영농 비용으로, 생계의 무게로 떨어지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단순한 가격 상승이 아니라 공급망 자체의 취약성이다. 세계 석유 수송의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이 흔들리자, 이를 우회할 대안들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얀부항 확장을 통해 홍해로의 수출을 늘리고, 한때 폐쇄됐던 트랜스아라비아 파이프라인을 활용해 북쪽으로 물량을 돌리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역시 합산-푸자이라 파이프라인을 통해 호르무즈를 거치지 않는 출구를 확보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경로는 ‘부분적 대안’일 뿐,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대규모 유조선 운항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 세계는 다시 새로운 생산지로 눈을 돌릴 것이다.
남미의 가이아나, 수리남,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미개발 유전 지대, 그리고 러시아, 북극권, 아프리카, 북미의 신규 생산 가능 지역들이 다시 ‘기회의 땅’으로 호출되리라. 공급망 다변화라는 이름 아래, 세계는 더 깊이, 더 멀리 석유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여기서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왜 언제나 ‘더 많은 석유’를 전제로만 해법을 찾으려 하는가? 석유가 흔들리면 다른 산유지를 찾고, 해협이 막히면 다른 항로를 뚫는 방식의 대응은 결국 같은 문제를 반복할 뿐이다.
과연 우리는 석유 없이 살 수 없는가? 물론 당장 모든 것을 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선택은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 농업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화학비료와 농약, 비닐하우스, 농기계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농업은 석유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 석유의 공급망에 이상이 생기면 전방위로 가격이 오른다. 이는 곧 식량 가격으로 이어져 식량안보에 치명적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석유에 덜 의존하는 농업, 즉 생태농업이나 순환농업은 왜 더 주목받지 못하는가를 말이다. 한가한 소리라고? 필자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자연의 순환을 활용하고, 외부 투입을 줄이는 방식은 단순히 ‘친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공급망 위기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대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전쟁이 나도 가격이 흔들리지 않는 농업,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식량안보가 아니겠는가?
마찬가지로 일상의 선택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왜 여전히 자동차에만 의존하는가? 짧은 거리조차 기름을 태우며 이동하는 생활방식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자전거 한 대는 그 모든 구조에서 벗어나는 가장 단순하고도 강력한 선택이다.
최근 필자는 한 지인으로부터 ‘일본은 자동차보다 자전거, 한국과 일본 출근기’를 비교한 영상을 받아봤다. 사람보다 자전거가 더 많은 건널목도 보였다. 일본의 많은 도로가 자전거 타는 사람을 배려해 안전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석유 한 방울 쓰지 않고도 이동할 수 있는 자전거는 위기의 시대에 결코 가벼운 의미가 아니다. 어째서 우리나라 도심의 자전거 도로는 일본과 다르게 안전하지도 않고 관리도 안 되는 것일까?
극단적으로 말하면 석유가 없어도 살 수는 있다. 다만 불편할 뿐이다. 그러나 물과 식량이 없으면 생존이 흔들린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석유의 공급망에만 집착한다. 식량의 자립과 지속가능성에는 상대적으로 무심하면서 말이다.
전쟁은 우리에게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진짜 중요한가?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에너지 위기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에 의존하며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민낯이다. 이제는 ‘어디서 더 가져올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덜 의존할 것인가’를 고민해야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