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빅파마' 특허만료 임박... K-바이오 만능공장 '플랫폼' 몸값 치솟는다

  • 등록 2025.07.22 11:15:20
크게보기

알테오젠·에이비엘바이오·알지노믹스, 올 상반기 수조원대 '기술 수출' 성과
9건 중 3건 플랫폼 수출...향후 5년 2200억달러 손실 예상 빅파마의 러브콜

 

의약품 산업에서도 ‘플랫폼(Platform)’이 뜨고 있다. 플랫폼은 문자 그대로 기차역의 승강장을 의미하지만, 산업 분야로 오면 온라인에서 생산·소비·유통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지칭한다.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지만, 최근에는 인터넷 또는 모바일 사용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지면서 쿠팡과 같이 상업적 거래가 이뤄지는 애플리케이션을 가리키는게 대세다.

 

의약품 산업에서도 플랫폼이라는 용어가 통용된다. 하나의 '기반 기술'을 의미하는데, 가령 알약 제형을 피하주사제로 전환하는 기술을 플랫폼이라고 부른다. 최근 의약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플랫폼 기술은 ADC(항체·약품접합체)다. 항체에다 강력한 약물을 붙여 병든 세포만 정밀 타격할 수 있다. 항체 종류나 약품 조합을 바꿔 다양한 치료제 개발이 가능하다.

 

플랫폼 하나로 여러 약을 만들 수 있어 개발 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다른 기업에 기술을 수출해 큰 수익(마일스톤, 로열티)을 낼 수도 있다. 기존에 약물을 개발하는 방식과 비교해 효율성·사업성 측면에서 장점이 있고, 신약 개발 성공 가능성도 높은 다목적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의약품 플랫폼 기술을 ‘레고블록’ 또는 ‘만능 공장’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 알테오젠 ALT-B4 적용한 키트루다 SC, 올 FDA 승인 기대

 

22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다수의 바이오벤처 기업들이 플랫폼 기술을 글로벌 대형 제약사에 수출하는 성과를 내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집계한 결과를 보면, 올 상반기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전체 기술수출 규모는 비공개 계약을 재외하고 87억6,000만 달러(약 11조9,556억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역대급 실적이라는 평가다. 지난해 상반기(4조6000억원)보다 약 150% 증가한 수치로 이미 지난해 연간 기술수출 총액 55억4,6000만 달러(약 7조5,697억원)를 넘어셨다.

 

총 9건의 기술수출이 일어났으며 이중 플랫폼 기술수출은 3건이다. 알테오젠이 인간 히알루로니다제(hyaluronidase) 원천기술 'ALT-B4‘을, 에이비엘바이오가 뇌혈관 장벽(BBB) 셔틀 플랫폼 '그랩바디-B(Grabody-B)', 알지노믹스가 리보핵산(RNA) 편집 플랫폼 기반 기술 등을 수출했다. 수출 규모는 각각 1조9,553억원, 4조1,000억원, 1조9,000억원으로 전체 기술수출의 절반을 훌쩍 넘긴 66.54%를 차지했다.

 

알테오젠과 에이비엘바이오는 국내 대표적인 플랫폼 기술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글로벌 빅파마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알테오젠의 ’ALT-B4’는 정맥주사(IV) 제형을 피하주사(SC) 제형으로 전환하는 자체개발 플랫폼으로 아스트라제네카의 자회사 메드이뮨에 기술수출 했다. 메드이뮨은 ALT-B4를 적용해 자사 항암제를 SC 제형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일반적으로 정맥주사는 투약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환자가 내원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 하지만 피하주사는 앝은 피하층에 주사하는 것으로 투약이 간편하고 혼자서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약물의 체내 흡수다. ALT-B4는 피하층의 밀집된 히알루론산 장벽을 뚫고 약물이 림프계 및 혈관계에 침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약 300종 이상의 재조합 단백질 모델을 설계한 뒤, 구조적 안정성과 기술적 활용성이 가장 우수한 후보를 최종 플랫폼으로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기술은 미국 할로자임(Halozyme)의 ‘엔헨즈(Enhanze)’이 독점하고 있었지만 알테오젠은 독자 기술로 차별적 경쟁력을 입증해 시장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이번 기술수출에 앞서 지난 2020년 6월 알테오젠은 ALT-B4를 미국의 글로벌 빅파마 MSD에 약 5조5560억원 규모의 기술 수출한 바 있다.

 

주목할 점은 ALT-B4를 적용한 MSD의 항암제 키투르다 SC가 임상을 완료하고 올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키투르다는 글로벌 매출 1위 항암제로 처방 가능한 암종만 30개 이상이나 된다. 2023년 252억 달러(약 33조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2030년에는 연간 30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이 기대되는 의약품이다.

 

알테오젠는 2019년부터 현재까지 ALT-B4로 전 세계 7개 기업과 기술수출 계약을 맺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이 플랫폼 기술 하나로 코스피 이전 상장까지 점쳐지고 있다. 김선아 하나증권 연구원은 “알테오젠은 분기 당 로열티 수익으로 수천억원의 영업이익이 발생되고, 영업이익률은 분기당 50%를 초과할 수 있는 사업모델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 한 개 플랫폼으로 여러개 파이프라인 확장 가능

 

에이비엘바이오가 지난 4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에 기술수출한 그랩바디-B는 뇌혈관장벽(BBB) 뚫고 탑재한 약물을 전달하는 셔틀 플랫폼이다. 기존 항체나 약물이 뇌에 전달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설계됐으며 이중항체 구조를 가지고 있어 이중항체 플랫폼이라고도 불린다. 이 기술은 퇴행성 뇌질환(알츠하머, 파킨슨 등)의 고용량 치료제가 아니어도 최소한의 용량으로 충분히 뇌 속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회사가 플랫폼 단독으로 기술 이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회사 관계자는 “예전에 비해 BBB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이번 기술이전을 계기로 플랫폼 사업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랩바디-B 이외에도 그랩바디-T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

 

그랩바디-T는 면역항암제 개발을 위한 이중항체 플랫폼으로, 주로 4-1BB(면역세포 활성화 수용체)와 특정 암 항원을 동시에 타깃해 항암 효과를 극대화 한다. 에이비엘바이오는 플랫폼 단독 기술수출뿐만 아니라 플랫폼에 기반한 신약 파이프라인을 점차 확대해 간다는 계획이다.  

 

RNA 편집 플랫폼 기업 알지노믹스는 지난 5월 미국 일라이 릴리와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이 회사는 RNA 치환효소 기반의 독자적 플랫폼 '트랜스 스플라이싱 리보자임' 을 통해 간세포암, 교모세포종, 유전성 망막질환 치료제를 개발 중이며, 이 중 2개 파이프라인은 FDA로부터 희귀의약품 및 패스트트랙 지정을 받은 상태다.

 

 

◇ 한국 의약품 플랫폼 기술, 세계 무대서 입증 

 

의약품 개발에서 플랫폼 기술은 신약 개발의 효율성과 성공 가능성을 크게 높이는 핵심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업계에서는 “바이오텍 입장에서는 후보물질 한두 개로는 경쟁력이 없지만, 플랫폼 하나로 수십 건의 파이프라인을 구성하면 애기가 달라진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매출 수조원대에 이르는 블록버스터 신약을 가진 글로벌 제약사들 사이에서는 특허 만료가 도래한 자사 제품이 늘어남에 따라 매출을 이어가거나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플랫폼 기술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경우는 알테오젠이 기술수출한 MSD의 키투르다가 좋은 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플랫폼 기술이 가치를 가지려면 해당 기술을 적용한 컴파운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입증을 거듭해야 한다”면서 “이런 측면에서 알테오젠, 에이비엘바이오가 이룬 기술수출 성과는 매우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기업의 기술을 활용한 의약품들이 미국 FDA의 승인을 거쳐 블록버스터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노철중 기자 almadore75@m-economynews.com
Copyright @2012 M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회사명 (주)방송문화미디어텍|사업자등록번호 107-87-61615 | 등록번호 서울 아02902 | 등록/발행일 2012.06.20 발행인/편집인 : 조재성 |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대로72길 4. 5층 | 전화 02-6672-0310 | 팩스 02-6499-0311 M이코노미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무단복제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