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제어하는 법-나라가 없는 세계로 변하고 있다

  • 등록 2025.11.04 19:3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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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국제 정세를 미국과 중국, 러시아, EU 간 ‘신냉전’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소 간 냉전 시대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당시는 미국이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압도적으로 강력한 우위를 보였으나 지금은 모든 면에서 흔들리고 있다.

 

미국의 군사력은 여전히 군비 규모, 첨단군사 기술, 전쟁 경험에서 다른 강대국들보다 앞서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핵전력 면에서는 러시아와 비슷하고, 중국의 해군력과 공군력이 미국을 바싹 추격하고 있다. 한 나라의 군사력은 경제력이 뒷받침해 주는데, 미국 경제는 지금 위태위태하기 짝이 없다. 관세와 감세 정책을 동원한 트럼프 대통령의 기상천외한 경제 처방이 과연 성공할지 실패할지 경제전문가들은 물론 세계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중국 경제도 과잉생산, 부동산 침체 지속, 공산당 일당 체제에서 비롯된 경직된 경제운용과 체제 위기 등의 이유로 진통하고 있다. 중국 경제의 미래는 근본적 모순을 개혁하는 것 자체가 체제 위기를 불러올 수 있어 더욱 불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은 국제 정세의 진원지이긴 분명하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사실은 국제 판도의 근원적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냉정히 말하면 미국과 중국은 각각 극단적인 내부 분열과 저성장 경제와 체제 위기 등 자국 내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벅차다.

 

◇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 재무장 유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땅의 일부를 뺏으려고 하다가 유럽 전체를 재무장시키는 결과를 빚어냈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서 러시아 군사력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이 그간 러시아 군사력에 대해 갖고 있었던 막연한 두려움을 걷어낸 점이 무엇보다 의미가 있다고 본다.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군사력의 약점을 파악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은 지난 6월 정상회담에서 2035년까지 GDP의 5%를 방위비에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유럽의 GDP는 러시아보다 어림잡아 10배 크기 때문에 GDP의 5% 군비 증강은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이와 함께 유럽의 핵전력 보유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핵전력의 정비와 훈련, 확장에 적극나서고 있다.

 

1,2차 세계대전의 주역이었던 독일도 사실상 본격적인 재무장에 들어갔다. 러시아의 직접적인 위협을 받는 폴란드,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루마니아 등 동유럽과 북유럽의 나라들은 군사력 증강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국 방산은 폴란드와의 협력을 함으로써 점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드론과 같은 비대칭무기가 부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드론을 우크라이나가 훨씬 잘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러시아군도 드론을 운용하고 있다. 드론의 전장 등장의 의미는 군사 강대국의 우위가 사라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다시 강조하면 핵전력을 사용하지 않는 한, 군사 강대국들과 적어도 중견 국가들이 붙어볼 만하게 됐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 점을 트럼프 대통령도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 마디로 군사 강대국의 프리미엄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최첨단 기술은 아닐지라도 군사기술의 확산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또 값비싸고 공급이 늦은 강대국 무기 대신에 이스라엘, 스웨덴, 한국과 같은 국가들로부터 첨단무기 공급의 선택지도 늘어난 점도 있다. 앞으로 일본도 이 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월 17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백악관 회의에서 러시아에게 점령당한 돈바스 지역을 넘겨주라고 압력을 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토마호크 미사일을 줄 것 같았던 트럼프는 결국 자신의 중재력을 과시하기 위한 전쟁 조기 종식에만 관심이 있다는 속셈을 드러낸 셈이다. 트럼프와 푸틴의 계산과는 별개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앞으로의 전쟁 양상에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지금 젤렌스키 대통령의 상황은 6.25전쟁 시기에 휴전을 반대하고 북진 통일을 줄기차게 주장했던 이승만 대통령과 오버랩된다. 당시 미국은 한국전쟁의 종전을 서둘러 원했다는 점에서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과 유사하다. 그러나 그때와 다른 점은 당시 이승만 정부의 군사력은 오직 미군에게만 의지해야 했지만, 현재의 우크라이나는 어느덧 약골 군대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무기 지원이 여전히 필요하지만, 유럽의 지원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EU는 올해 들어서도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패키지를 추가 발동했다. 또 EU가 동결하고 있는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을 활용한 1400억 유로를 일으켜 우크라이나의 전쟁 복구비를 조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정도의 규모라면 우크라이나가 앞으로 2~3년을 더 전쟁을 치를 수 있으 것으로 전문가들이 보고 있다.

 

상황 전개가 이렇게 돌아가는데도 러시아는 아직도 승리할 수 있다고 여기는지 소모전에서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 강대국의 숨겨진 속성 이해해야 대처 가능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강점인 힘을 과시하고 실제로 군사력을 사용하고자 하는 충동이 강하다. 강대국들은 속성상 국가 간 정의나 국제 윤리, 규범, 규칙보다 힘의 논리에 끌리고 자국 중심주의를 바탕으로 전략을 마련한다.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판단되는 상대국에 군사력을 행사한다. 아무리 강대국이라고 해도 상당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는 나라를 먼저 공격하지는 않는다.

 

미국과 소련은 군사적 약체라고 여겼던 베트남, 아프간을 공격했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그리고 푸틴의 러시아도 우크라이나를 단기간에 전쟁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라고 자신하고 침공했으나 3년 반 넘게 전쟁 수렁에 빠져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러난 사실은 강대국이 군사력으로 한 나라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었던 시대는 요원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베트남전과 아프간전쟁에서 보듯이 침략한 나라는 아무리 막강한 무기와 공군력을 가지고 있어도 기초적인 무기와 화력을 지닌 것에 불과한 민병 수준의 병력과 기나긴 게릴라전에서 패배했다.

 

그게 더욱 어렵게 되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무기 수준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미사일의 자체 생산도 가능해졌다. 러시아 국경에 가까운 유럽 나라들의 군사력은 급속히 증가하고 있으며 중국의 위협을 두려워하고 있는 대만과 필리핀,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최대한 이른 시일 내 군비 증강을 목표로 국력을 집중하고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총리를 맞은 일본도 본격적으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변모할 것으로 보인다.

 

◇ 대의명분 약한 전쟁은 장기전에서 패배

 

어떤 전쟁도 타국을 침략하는 나라의 명분은 침략을 당한 나라의 방어 명분보다 약하다. 특히 강대국의 침략은 전쟁 초기에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공격을 당한 약소국이 자기의 땅과 가족을 지키려는 명분과 의지는 전쟁이 길어질수록 점점 ‘붉게’ 활활 타는 의지로 강해진다.

 

가자 전쟁을 보더라도 가자 반군들의 테러로 이스라엘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음에도 전쟁이 길어지고 가자 인들의 참혹한 굶주림에 동정적인 국제 여론이 비등해졌다. 결국 유럽 각국들이 잇달아 그간 유보했던 팔레스타인 정부를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미국과 소련이 베트남전과 아프간전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온 것은 개전 명분이 약한 상태에서 전쟁이 길어지자 회의감이 점점 짙어졌던 이유가 가장 크다고 본다. 강대국의 병사들은 ‘우리가 왜 이 전장에서 억울하게 죽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던지면 전쟁 수뇌부는 떨어진 군대 사기, 엄청난 전비에 내몰리게 된다.

 

여기에 국제적 여론이 악화되고 내부 분열도 극심해지면서 결국 종전 협상도 제대로 못하고 서둘러 철수하게 된다. 그 바람에 무기도 내팽개치고 현지 통역병과 지원병도 버려둔 채 자국 군인들만 빠져나오는 끔찍한 뒷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군사력만 믿고 전쟁을 벌이는 강대국들은 상대국에 대해 잘 모르기 마련이다. 현지 외교관이나 관련 학자들, 싱크탱크 연구원의 말만 듣고 전쟁을 벌이면 큰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그들이 아는 것이라곤 과거에 일어난 일에 관해서 극히 일부를 아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나라 국민도 자국을 알기 어려운데, 어찌 강대국이 만만하고 우습게 보는 나라들의 속사정을 알 수 있겠는가.

 

 

◇ 전쟁 없는 세계 평화를 위해 한국의 역할 찾아나가야

 

미-중-러시아, 그리고 재무장을 본격화하고 있는 유럽의 나토국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불안한 국제 정세가 전개되고 있다. 푸틴이 죽기 살기로 핵을 쓰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만약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이 계속되고 미국와 유럽의 맞대응이 격화될 경우 제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이 현실화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를 중국에서 떼어내려는 심산으로 우크라이나 종전을 서두르는 모습이다. 즉 푸틴의 체면을 살려주는 선에서 협상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듯하다. 러시아와 중국의 밀착을 일단 틀어막으면서 중국에만 집중하려는 복안으로 보인다. 미국은 중국의 대만 점령과 남중국해 야욕을 꺾는 것이 가장 시급한 목표다. 이를 위해 미국은 국방부를 전쟁부로 바꾸는 등 전쟁 태세를 철저히 준비하고 있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우리나라의 방위산업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발전의 도약을 마련했다. 외부적 요인뿐만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 이래 자주국방에 힘쓴 결과 KF-21 전투기의 기술 향상에서 볼 수 있듯이 국방 기술이 날로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단계에서 한국의 방위산업은 단순히 무기 수출국이란 평판에 만족하지 말고 세계 평화를 위한 자주국방 협력이란 대의명분을 추구해야 한다고 본다.

 

그간 세계적 규모의 전쟁은 모두 강대국 간의 패권 다툼에서 시작됐다. 패권 국가들은 이웃 군소 나라들을 자신의 세력권에 두려고 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군사력으로 위협하고 궁극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행태를 보여왔다. 한국은 이들 군소 국가들을 모두 도울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한 방위 협력을 통해 패권 국가들의 위협에 맞설 만큼의 자주국방의 구축을 돕는다. 강대국이 부당하게 패권을 추진하려는 의지를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한국 방위산업은 지금 모든 면에서 착실히 발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선진 국방 국가들과의 협력을 마다하지 않는 자세가 돋보인다.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평화는 공허하다. 우리나라는 식민지 지배와 6.25전쟁이라는 뼈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유엔의 감독 아래 새 나라를 건국한 바 있다. 그런 까닭에 군사력이 약한 나라를 지원함으로서 진정한 세계 평화를 이뤄나가는 데 기여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은 나라로서 마땅한 보답이자 사명이 아닐 수 없다.

이상용 주필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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