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기술전략의 교차점과 대한민국의 기술 생존 전략

  • 등록 2025.09.14 11:4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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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패권의 시대, 선택 아닌 생존의 산업정책

 

미국의 대중 고관세와 기술 규제, 중국의 기술굴기, 일본의 기술주권 수호전략은 모두 하나의 공통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것은 바로 “기술은 무기이며, 산업정 책은 국가 생존전략”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 「공대에 미친 중국」은 중국이 어떻게 대학, 기업, 정부를 유 기적으로 연결하여 첨단기술 자립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지를 보여줬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 이상 기술을 수입하거나 차용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제 기술 주권은 국가의 안보, 성장, 그리고 자존을 좌우 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가 되었다. 기술 패권 시대에서 한국이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한국은 기술 전쟁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어떻게 이길 것 인가?” 일본과 중국의 전략을 통해 그 해답을 유추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국만의 생존 전략을 재정립해야 한다.

 


일본·중국, 기술 자립을 위한 국가적 집념


 

최근 일본은 제조원천기술과 현장력에 기반한 ‘모노즈쿠리 재정비’를, 중국은 민영경제촉진법을 제정하며 기술 자립을 위한 제도적 정비를 꾀하고 있다.

 

2025년 일본은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백서’를 통해 ‘제조 강국'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대전환에 나섰다. 핵심은 ‘디지털 제조(DX)’와 ‘경제 안보’를 동시에 달성하는 전략 이다. 고령화, 인력 부족, 에너지 고비용이라는 3중고를 디지털 기술과 녹색 전환(GX)으로 돌파하며, R&D 세제 강화, 산학연 협력 고도화, 중소기업 현장 DX 지원 등을 포괄한다.일본은 세계 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하는 소재 · 부품 기술 270여 개를 ‘국가기술자산’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 공급망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전략적 입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전략은 단순한 산업 유지가 아닌, 첨단기술 시대에 맞는 ‘제조의 재해석’이며, 일본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을 현실화하고자 하는 전방위적 노력이다.

 

특히 일본 정부는 민관 공동의 장기 투자와 기술 인프라 확 대를 통해 전통적인 제조 현장의 경쟁력을 첨단화하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중국은 2025년 ‘민영경제촉진법’을 제정하면서 5,800만 민간기업이 기술 굴기의 주역이 되도록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 법은 공정경쟁 보장, 금융지원 확대, 기술 혁신 권장, 정부 책무 명문화 등 4대 축을 중심으로 한다. 그 목적은 민간 기술 역량을 국가 전략에 통합하여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모델 속에서 자립적 기술 생태계를 완성하는 데 있다.

 

특히 중국은 기초연구-응용기술-상용화까지의 전주기 체계를 공공과 민간이 공동으로 책임지는 ‘공공-민간 기술 블록’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기술 패권을 되찾기 위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실행 구조이다. 이와 함께 중국 정부는 민간기업의 창의성과 자본을 활용하여 혁신을 주도하고, 국가가 전략적으로 조율하는 혼합모델을 통해 기술 자립과 경제 안보를 동시에 달성하려 한다.

 


한국, 기술 주권 확보를 위한 4가지 대응 전략


 

한국의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산업은 세계 최상위권이다. 하지만 핵심 장비·소재·부품은 여전히 많은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이 구조는 외부 리스크에 매우 취약하며, 언제든 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일본과 중국처럼 기술 공급망을 내부화하기 위해선 대·중소기업 간 공동 R&D 체계 강화, 국내 장비 테스트베드 구축, 원천기술 내재화가 시급하다.

 

첫째, ‘기술 카르텔’이 아닌 자생력 있는 수직적·수평적 연대구조, 즉 기술 생태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대기업은 혁신 수요를 제시하고 중소기업은 기술 공급을 담당하는 구조적 분업체계가 확립되어야 하며, 정부는 이들 간의 위험 분담과 초기시장 형성을 위한 촉매 역할을 해야 한다.

 

둘째, 기술 외교와 공급망 외교를 분리하는 멀티트랙을 구사하여야 하는데, 한국은 반도체 공급망 동맹(Chip4), IRA,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대중국 수출 규제 사이에서 복잡한 외교 환경에 놓여 있다. 일본은 G7 중심 의 기술동맹과 경제안보법을 통해 전략적 방향을 명확히 설정했으며, 중국은 외부 의존도를 낮추고 내수 중심의 기술 생태계를 구축 중이다.

 

한국은 이들과 달리 기술 외교와 공급망 외교를 별도로 분리해 전략적으로 다루는 ‘멀티트랙 외교’를 추진해야 한다. 첨단 선도기술개발·연구협력은 미국, EU, 일본과 협력 하되, 핵심 광물과 저비용 소재 확보는 호주, 동남아, 중남미 등 자원 부국과의 실리외교를 강화해 복원력 있는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한다.

 

셋째, 기술 정책의 ‘거버넌스 대전환’을 추진하여야 한다. 현재 한국의 산업기술정책은 산업부, 과기정통부, 중기부, 교육부 등 부처별로 분절되어 있으며, 정책 간 조정기능이 미흡하다. 반면 일본은 모노즈쿠리 백서를 통해 통합된 국가 전략을 설계하고, 중국은 민영경제촉진법을 통해 국가 차원의 명확한 비전을 법제화했다.

 

한국도 산업·기술·인재·공급망 정책을 통합 조율할 수 있는 대통령 직속 ‘산업기술전략위원회’를 신설하고, 범부처 거버넌스를 수평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또한 국회 차원에서도 ‘기술경제안보특위’와 같은 상설조직을 운영하여 장기적 비전 아래 정책의 일관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넷째, 공학인재, 기술장인, 디지털 전문가 양성을 국가 프로젝트화하여야 한다. 중국의 공대 열풍은 단순한 교육 트렌드가 아니라 기술국가 전략의 핵심이다. 한국은 반도체고, AI대학원, 마이스터고 등을 운영하고 있으나, 교육과 산업현장 간 괴리, 청년의 제조업 기피, 중소기업의 인재 부족 등 구조적 문제가 여전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기술-장인-현장-디지털을 융합한 인재 양성 전략이 필요하다.

 

즉, 첨단기술 교육-실습-현장경험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공학 인력 재배치 프로젝트’를 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 우수 인력에 대한 처우 개선, 기술직 무시 문화를 타파하는 사회적 인식 개선도 병행되어야 한다.

 

앞서 살펴본 일본과 중국의 산업기술 정책에서 한국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하다. 기술 패권 시대에는 민간의 혁신역량과 정부의 전략 지원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민간 제조기업의 변화를 정부가 백서를 통해 이끌고, 중국은 법률로 민간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도 민관 파트너십을 한층 공고히 하여 정부는 방향을 제시하고, 민간은 창의와 기민함으로 실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취해야 한다.

 

다음은 산업정책의 초점은 기술 자립과 공급망 안정에 두어야 한다.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특정국 의존형 산업 구조는 곧 취약성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핵심기술은 국내에서 확보·보유하고, 필수 소재와 부품은 다변화된 공급선을 통해 안정 조달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한 지속적인 투자와 협력이 뒷받침된다면,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 는 산업안보 측면에서 담대한 경제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 첨단산업을 이끌 인재와 현장의 숙련공,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교육·훈련 시스템이 없다면 어떤 전략도 실행되기 어렵다. 결국 인재 양성, 일자리 질 개선, 교육혁신이 산업정책의 근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이 이러한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하고 추진해 나간다면 얻을 수 있는 기대효과는 많다. 우선 첨단 제조업 경쟁력 강화로 세계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위상이 높아지고, 수출 증대로 경제성장이 촉진될 것이다. 또한 공급망 리스크 완화로 인해 대외 충격에 대한 산업계의 복원력이 향상 되고, 이는 곧 국민경제 안정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산업 분야에서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력 제고도 기대된다. 나아가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신뢰할 수 있 는 생산거점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면, 국제 협상력과 경제 안보에서도 한층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될 것이다.

 


기술 주권 없는 주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술은 더 이상 경제성장의 수단이 아니라 국가 생존의 인프라다. 일본은 60년간의 제조 현장 노하우를 디지털로 진화시키고 있으며, 중국은 민간의 창의성과 정부 전략을 결합해 기술 굴기를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은 이들과의 기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술 주권, 인재 주권, 공급망 주권을 확보해야 하며, 이를 위한 전략적 산업정책과 실행 거버넌스의 대전환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기술 정책을 산업 정책의 하위 개념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핵심축으로 끌어 올리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기술은 국경을 넘어 자본과 이념보다 더 빨리 움직인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는 것은 언제나 한 국가의 철학과 의지다.” 대한민국은 지금, ‘산업기술 패권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 앞에 서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대응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먼저 움직이면 도약할 수 있다. 그 분기점은 바로 지금이다.

 

오한석 한양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① 한양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2025. 3~현재) ② 단국대학교 과학기술정책융합학과 전담교수 (前), R&D전략센터장(前)(2021.5~2025.2) ③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청렴옴부즈만위원회 위원 (2016~현재) ④ 월드클래스기업협회 자문교수(2021. 5~현재) ⑤ 한국산업기술진흥원 부품·소재 기술개발 센터장, 기획실장, 중견기업단 단장 등 역임 (2005.9~2021.4 근무) 2016 국무총리 표창(중견기업 육성 공로), 2019 대통령 표창(소재·부품기업 육성 공로)

편집국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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