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 경영 공백 장기화 여파…‘민영화론’ 부상

  • 등록 2025.09.19 09:5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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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공석 길어지며 올해 대형 입찰서 연이어 고배
2분기 매출 뒷걸음질…KF-21 양산 등 일정 차질 ↑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최고경영자 자리가 두 달째 비어 있으면서 주요 사업 일정이 잇따라 차질을 빚고 있다. 방산업계 전반이 호황을 이어가는 가운데, KAI만이 실적 부진과 사업 지연 우려로 내부에서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사장 인선이 늦어지며 ‘낙하산 인사’ 논란이 재점화됐고, 일부에서는 민영화 필요성이 다시 힘을 얻는 분위기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KAI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852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4.7% 증가했다. 그러나 매출은 8283억 원에 그치며 7.1% 감소했다. 같은 기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현대로템, LIG넥스원 등이 두 자릿수 이상 매출 성장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업계는 이 같은 성적 부진을 방산 수출 계약 지연과 리더십 공백 탓으로 보고 있다. 지난 7월 강구영 전 사장이 물러난 뒤 차재병 부사장이 직무대행 체제를 이어가고 있지만, KF-21 전투기 양산 준비와 FA-50 수출 협상, 수리온 헬기 정비·MRO 사업 등이 모두 지연되고 있어서다.

 

게다가 대형 입찰전에서도 연속 실패를 겪었다. 방위사업청이 발주한 9613억 원 규모의 UH-60 성능개량사업은 대한항공이, 천리안위성 5호 개발사업은 LIG넥스원이 따냈다. 현재 KAI는 한화시스템과 손잡고 1조8000억 원 규모의 전자전기 체계개발 사업 수주에 도전 중이지만, 대한항공·LIG넥스원 컨소시엄과의 경쟁이 치열하다.

 

◇ 반복된 경영 공백과 인사 불안정… KAI 민영화 논의 재점화

 

이런 가운데 내부에서는 민영화 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강 전 사장 퇴임 이후 실시된 내부 설문에서 민영화 찬성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과거에는 노조와 직원들 사이에서 민영화 반대 의견이 70~80%에 달했지만, 최근 내부 조사에서는 찬성 여론이 55%까지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복되는 경영 공백과 낙하산 인사,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피로가 누적된 결과다.

 

민영화 필요성을 주장하는 쪽은 글로벌 경쟁 환경을 먼저 지적한다. 세계 항공우주 시장은 2022년 약 445조원 규모에서 2032년 940조원대로 커질 전망이지만, 한국의 점유율은 1%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군용 중심 사업에 매달리는 현재 구조로는 한계가 뚜렷하며, 민간 항공기·위성·드론 등으로 영역을 넓히지 못한다면 시장 확대 국면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는 빠른 의사결정과 책임 경영이 필수적인데, 정부 주도의 지배구조에서는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익명을 요구한 전 KAI 임원은 M이코노미뉴스에 “정부 낙하산 구조가 유지되는 한 KAI는 성장할 수 없다”며 “민영화의 본질은 수출입은행 지분을 민간 기업에 넘겨, 실질적 운영 능력을 가진 기업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KAI는 지난 수십 년간 정부 물량에만 의존해 개발만 반복했을 뿐, 미래를 준비하는 연구 기능은 전무했다”며 “만약 제대로 된 민영화가 이뤄졌다면 한국 항공산업도 반도체나 자동차, 조선업처럼 세계 시장을 주도할 기회를 잡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또 정권 교체와 함께 반복된 CEO 교체, 줄 세우기식 보직 이동, 잦은 징계와 좌천으로 직원들이 큰 정신적·물리적 스트레스를 받아왔음을 지적했다. 그는 “직원들도 더 이상 이런 구조를 감내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주인’을 요구하고 있다”며 “민영화 지연은 단지 KAI만의 손실이 아니라 국가 항공산업 전체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 KAI 민영화, 글로벌 항공우주 경쟁력 도약 분수령 될까

 

전문가들은 KAI 민영화가 단순한 소유권 이전이 아니라 산업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는 “한화가 대우조선을 인수한 뒤 저가 수주 관행이 사라지고, 수익성과 기술 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전략이 자리 잡았다”며 “민영화는 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높이고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이끌 수 있는 현실적 해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치적 논리에서 벗어나 민간의 역동성과 책임경영을 접목해야 한국 항공우주산업이 치열한 국제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정부 주도의 올드 스페이스 시대에서 벗어나 민간이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문 교수도 “한국이 지금처럼 정부 주도 방식을 고수한다면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 확대는 불가능하다. 민영화를 통해 글로벌 기업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경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영화가 본격화될 경우 인수전은 한화·현대차그룹·LIG넥스원 등 국내 방산 대표 기업들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방산 시장은 록히드마틴, RTX, 노스럽그러먼 등 미국 메이저 기업들이 사실상 과점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KAI가 주요 경쟁사 대비 상대적 부진을 보이는 것은 공기업 체제의 한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는 평가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호황기에 리더십 공백과 지배구조 논란이 겹치면 글로벌 협상에서 KAI의 입지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민영화 여부와 관계없이 지배구조 개혁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결국 KAI 민영화 논의는 단순한 기업 매각을 넘어, 한국 항공우주산업의 체질 개선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문근식 교수는 “민영화는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선택”이라며 “정치적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산업의 미래를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은주 기자 kwon@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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