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법의 벽을 넘어 마음의 평화를 찾아서

  • 등록 2025.10.14 17: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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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렇게 모든 일에서 의견이 갈리는 걸까? 정치에서 예술에서 심지어 식탁 위 반찬 취향에서도 의견충돌은 피하기 어렵다. 세상은 무수하게 복잡한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우리의 사고는 여전히 ‘옳다-그르다’, ‘우리-그들’의 단순한 이분법에 갇혀 있다.

 

이분법적 사고는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원초적인 방법이었다. 음양, 남녀, 선악처럼. 우리는 대조를 통해 세상을 구분하고 질서를 세웠다. 그 덕에 과학도 제도도 사회도 발전했다. 나아가 더 넓은 세상에서 우리는 동맹과 적을 구분한다.

 

우리는 각자 지지하는 정당이 있지만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때로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하고 이상주의자이기도 하며,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기도 하고 신앙심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는 때론 자부심으로 자기팀 유니폼을 입고 상대 팀의 색깔을 비웃는다. 프로이트가 "사소한 차이에 대한 나르시시즘"이라고 부른 것에 빠져 이분법을 계속 유지해 간다. 그렇다고 이분법적 사고가 항상 파괴적인 것은 아니다. 이분법은 복잡한 상황을 명확하게 하고, 방향을 잡고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생각이 이분법으로 지나치게 굳어질 때, 우리는 어려움을 맞는다. 흑백의 경계선에서 회색을 보지 못하는 순간, 조잡하고 무감각한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고 갈등을 조장해 타인을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한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반철학자인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1930년~2004년)는 이분법의 문제점을 인식했다. 그는 단순하고 이원론적인 사고를 적으로 여겼다. 그가 해체주의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이분법적 사고의 한쪽 측면이 어떻게 그 반대편에 있다고 추정되는 사람들의 가치와 가정(假定)에 의해 형성되고 있는가? 였다. 데리다는 모든 것에서 반대를 찾는 강박적인 이분법적 사고는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데리다의 말이 약간 머리 아프다면, 애플TV 플러스에서 방영되는 드라마<테드 래소,Ted Lasso〉의 초자 축구 감독, 레드 래소의 말, "판단하지 말고 호기심을 가져라"를 떠올리면 된다. 호기심이야말로 데리다로 하여금 어떤 대상의 정신, 생각, 의식을 분석하고 의미를 자유롭게 긍정적으로 부여하게 하였다. 그는 대립하는 것들의 긴장에 기반하지 않고, 끊임없이 확장되는 풍부한 연상(聯想)의 그물망식 사고방식을 주장했다.

 

가장 서양적인 사상가 중 한 명인 프로이트는 사람들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적대감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대부분 자신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하지만 동양의 위대한 경전인 힌두교의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 힌두교의 경전)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라면 다르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가장 좋은 마음 상태는 모든 창조물, 특히 타인을 바라보며 역지사지로 "나도 그렇다"라고 자신에게 말할 수 있는 상태다.

 

우리는 모두 한 존재의 일부이며, 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반대나 갈등을 조장하지 않는다. 편을 가르거나 다툼을 일으키지 않고,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불교학자이며 달라이 라마의 번역가인 제프리 홉킨스는 우리가 마음속 깊이 단순한 진실을 품고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버트런드 러셀이 경쟁 철학자를 만났을 때처럼 "내가 그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면 그가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은 고통받고 있다. 그는 행복하기를 바란다"라고 속삭이라는 것이 제프리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이분법적 사고를 포기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이분법적 사고는 인류가 업적을 성취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재판에서 양측은 종종 정의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이분법적 사고가 우리의 유일한 사고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어느 순간부터 뉴스를 읽고 보기가 싫어졌다. 매일 누가 옳고 누가 그르냐는 공방이 반복되고 분노와 비난이 쏟아지는 지면과 화면 속에서 마음이 편치 않았기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바뀌었다. 싫어하는 사람이 나오더라도 저 사람도 고통받고 있겠지, 그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마음속으로 되 뇌이다보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낀다.

 

이분법적 사고를 잠시 내려놓고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가 아니라, 우리 모두 행복하길 바란다”고 생각해 보자. 그 순간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하고 자기 자신도 조금은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국정감사장이라고 해서 다를 게 있으랴만.

 

윤영무 본부장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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