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삼척 ESS 시험·연구단지...국제 인증 가능성은?

  • 등록 2026.01.05 14:5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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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Energy Storage System, 에너지저장장치)는 생산된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한 시기에 공급해 전력계통 운영의 유연성을 높이는 설비다. 그러나 시장의 발목을 잡는 것은 배터리 가격만이 아니다. ‘화재 리스크’가 산업 확장의 가장 큰 제약으로 자리 잡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늘고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질수록 계통 변동성은 커진다. 낮 시간대 남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피크 시간대에 공급하는 ESS는 이제 “있으면 좋은 설비”가 아니라 “없으면 운영이 불안한 설비”가 됐다.

 

문제는 한 번의 대형 화재가 곧바로 인허가 강화로 이어지고, 수출시장에서는 인증 기준이 더 높아진다는 점이다. ESS 산업의 승부처가 기술 개발뿐 아니라 시험·인증 인프라로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 변화가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강원 삼척이다.

 

◇30MW급 ‘대용량 이차전지 화재 안전성 검증센터’...삼척서 본격 운영

 

삼척에는 2023년 9월 본격 가동에 들어간 ‘대용량 이차전지 화재 안전성 검증센터(30MW급)’가 구축돼 있다. 대형 ESS 화재를 가정한 시험을 국내에서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운영은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과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이 공동으로 맡는다.

 

기업 입장에서 의미는 분명하다. 그동안 미국·유럽 등 해외 시험기관에 시료를 보내며 물류비, 일정 대기, 언어·절차 부담을 감당해야 했다. 삼척 인프라는 최소한의 ‘시험 수행’을 국내에서 소화할 수 있는 창구가 된다. 열폭주 전파 평가, 대용량 화재시험, 소화설비 성능 등 핵심 시험을 국내에서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 인증기관이 요구하는 시험성적서 확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실증 플랫폼’ 착공...셀에서 ‘시스템 안전’으로 무게중심 이동

 

삼척에서는 2024년 11월 ‘ESS 화재 안전 실증 플랫폼’도 착공됐다. 총사업비 244억원 규모로 11종 장비를 구축하고, 2026년 말 준공을 목표로 한다는 계획이 제시됐다.

 

검증센터가 ‘대용량 이차전지 화재시험’에 초점을 맞춘다면, 실증 플랫폼은 △ESS 화재 상황을 가정한 종합 소방·방재 성능 검증△설치·운영 단계의 안전성 평가 △해외 인증 지원 기능 등을 포괄하는 구조다. ESS 안전의 무게중심이 ‘셀 자체’에서 ‘설치·운영·대응까지 포함한 시스템’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2019년부터 이어진 민관 합동 ESS 화재조사 활동 역시 화재가 단일 원인으로 설명되기 어렵고(과전압, 보호시스템 미흡 등 복합 요인), 결국 설치·운영 전반의 안전 관리 체계가 중요하다는 방향으로 시장 인식을 바꿔왔다.

 

 

◇“대기업은 당장 불편 없다” vs “SI·중견은 화재 한 번이 사업을 멈춘다”

 

삼척의 ESS 화재안전 검증 인프라를 ‘거점화’하는 효과를 두고 업계의 온도차는 뚜렷하다.

 

해외 지사·공장을 가진 대기업들은 “해외 인증을 받는 데 당장 큰 애로는 없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국제 인증은 결국 현지 요구 절차를 따라야 하고, 전담 조직을 운영하는 기업은 해외 시험기관 활용이 상대적으로 익숙하다는 이유다.

 

M이코노미뉴스와 통화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국내에서 받은 ESS 화재 안전성 시험 성적서를 어느 국가 범위까지 대체할 수 있느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와 관련해 M이코노미뉴스는 KCL 측에 △삼척 ‘대용량 ESS 화재 안전성 검증센터’ 시험성적서의 해외 인증 연계 국가 범위 △향후 ‘ESS 화재 안전 실증 플랫폼’ 완공 시 해외 인증 지원 계획과 대상 국가 △삼척 거점화의 차별화 전략 등을 질의했으나 여러 이유를 들어 답변을 보류했다.

 

업계에서는 이런 맥락에서 삼척 검증센터가 특정 인증 체계(북미 UL 계열 등) 중심의 시험 수요에 우선 대응하는 형태로 운영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현장에서 ESS를 설치·운영하는 시스템통합(SI) 중견 사업자의 체감이 다르다. 신성이엔지 관계자는 “정부가 ESS 안전 기준을 명확하게 내놓지 않는 상황에서 설비는 현장에 급하게 깔리는 것이 문제”라며 “화재가 크든 작든 시장이 바로 위축된다”고 말했다.

 

화재 관련 보도 한 번이 발주처 의사결정과 주민 수용성을 흔들고, 태양광과 결합된 현장에서는 “태양광+ESS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덧씌워지기 쉽다는 얘기다. 그는 또 “배터리 제조사는 자동차·산업용 등 다양한 수요처가 있어 ESS 화재가 ‘단일 사업의 생존 문제’로 직결되지는 않지만, SI는 설치·운영 책임이 곧 매출과 신뢰로 연결된다”고 덧붙였다.

 

◇시험·인증 인프라가 ‘리스크’를 ‘관리 가능한 비용’으로 바꿀 수 있나

 

삼척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ESS 화재 안전 실증센터 거점화의 의미는 ‘시설을 크게 짓는 것’에만 있지 않다. 화재 리스크를 시험과 인증으로 ‘관리 가능한 영역’으로 옮겨오는 전환이 핵심이다. 그 전환이 가능해질 때 ESS는 기술 산업을 넘어, 인허가와 수출이 동시에 돌아가는 ‘정상 시장’으로 복귀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국내 시험 인프라가 해외 인증과 어떤 방식으로 연계되는지, 시험 성적서의 활용 범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등 ‘국제 인증 대체 가능성’에 대한 명확한 로드맵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에는 답이 필요해 보인다. 

 

조승범 기자 jsb21@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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