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농업은 기후위기와 고령화로 구조적 위기에 직면하면서, 당면 과제를 해결할 핵심 열쇠로 AI 기술이 떠오르고 있다. 이에 AI 농업 현실을 진단해 실행 가능한 대응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12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AI시대 농산업의 현주소와 미래 대응 방안’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박영호 숙명여대 인공지능공학부 교수는 기조연설을 통해 “농업 AI는 단순한 자동화나 기계 고도화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농업이 ‘더 빨리, 더 많이 생산하는 기술’이었다면, 앞으로는 판단 중심 농업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AI의 핵심은 딥러닝으로, 결국 가중치(weight)의 집합"이라며 "데이터가 입력되고 결과와 실제 값의 차이를 계산한 뒤, 그 오차를 줄이기 위해 가중치를 반복적으로 조정하게 되는 데 이 과정을 통해 남는 것이 바로 ‘학습된 판단 구조’, 즉 AI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농업 데이터를 공공 자산으로 개방하고 민간과 농업인이 활용할 수 있게 하자”며 "이렇게 되면 큰 비용 없이도 다양한 농업 서비스와 기술 혁신을 촉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는 문제가 발생한 뒤 대응했다면, 이제는 미리 예측하고 회피하는 농업으로 가야 한다. 농기계 중심 농업에서 플랫폼과 의사결정 중심 농업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농업 AI 정책을 장비 중심 정책에서 탈피해 농업 노하우의 데이터 공동 자산화와농업인 주도형 AI 구조, 그리고 AI 추천 결과에 대한 책임 구조의 명확화"를 강조했다. 박 교수는 "입법 측면에서는 농업 데이터 공동 자산화 법제화와 AI 기반 의사결정 지원 체계 법제화, 추천 서비스의 투명성과 안전성 확보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농업 AI 정책은 생산성 향상만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정책를 설계함에 있어서 실패 확률을 낮추고, 판단 스트레스를 줄이며 경험 격차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농업인의 경험을 보호하고 AI가 판단을 보조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우리 농업 AI 정책의 방향이어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 AI 기반 스마트농업, 단순한 기술 도입이나 자동화 차원 넘어
이어진 발제에서도 ‘스마트 농업의 핵심;은 '데이터’가 중요하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이덕민 농림축산식품부 스마트농업정책과 과장은 “세계적으로 스마트농업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핵심은 농업 경영 과정에서 생성되는 생육환경 정보, 경영 정보, 작업 데이터 등 AI 기반이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기술 도입이나 자동화 차원을 넘어 농업의 구조와 운영체계를 데이터 중심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지난해 기준 스마트 농업은 약 157억 달러 규모다. 오는 2029년 스마트 농업은 234억 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성장을 주도하는 게 AI 기반 정밀농업 분야다. 땅덩이가 작은 네덜란드가 세계 2위 농산물 수출국이 된 것은 바로 스마트팜의 힘이다. 네덜란드는 유리온실 중심의 첨단 시설농업을 전 밸류체인에 적용하고 있다. 미국 역시 대규모 농업을 기반으로 정밀농업과 기후 스마트농업을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물론, 일본과 중동 국가들 역시 법과 제도를 정비해 실증과 상용화를 병행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이 과장은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스마트농업 확산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향후 정책 방향으로 스마트농업을 중소농과 고령농까지 확대해 나가고, 전체 경지 면적의 96%를 차지하는 노지 농업 분야의 스마트화를 본격 추진할 계획도 밝혔다.
이 과장은 “고비용 구조의 스마트농업 특성을 고려해 임대형 스마트팜, 장기 임대형 스마트농업 육성지구 등을 통해 청년농과 신규 진입 농업인의 실패 위험을 최소화하겠다. 중소규모 비닐온실에 적합한 보급형 스마트농업 모델을 개발해서 확산시킬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AI 환경제어와 품목별 맞춤 솔루션, 농업 데이터 공유 체계를 강화해 국가 농업 AX 플랫폼 구축으로 민간 투자와 혁신을 촉진해 나가겠다는 설명으로 읽힌다.
그는 또 “AI 기반 스마트농업은 단순한 기술 정책이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 농촌 인구구조 변화, 식량안보를 포괄하는 국가 전략 과제다. 정부는 현장의 농업인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단계적인 스마트농업 확산을 통해,농업의 지속가능성과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부연했다.
◇ 영상·이미지·기상·시장 정보 등 다양한 비정형 데이터 결합하는 멀티모달 데이터 활용
이어진 발제에서도 AI 없이는 농업의 구조적 한계를 돌파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윤용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자문역은 “스마트팜, 스마트농업은 IoT 센서와 자동제어 기술을 중심으로 한 ‘관리고도화’ 단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데이터를 수집하면 이를 사람이 해석하거나 단순 알고리즘에 따라 제어하는 구조인 AI 기반 지능형 농업은 이제 AI가 스스로 학습하고 추론해 판단하고 수행하는 농업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AI 적용 가능 영역과 실제 사례에 대한 설명도 나왔다. 전통적 육종은 수년에서 수십 년이 소요되는 고비용·고위험 과정이었다. 그러나 AI 기반 예측 모델은 방대한 유전체 데이터를 분석해 원하는 형질을 단기간에 설계하고 검증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수개월 내 품종 후보를 도출해 내는 사례도 등장했다.
농장 운영과 재배 분야에서 AI는 이제, 센서 데이터뿐만 아니라 영상·이미지·기상·시장 정보 등 다양한 비정형 데이터를 결합하고, 병해충 발생 예측, 생육 진단, 작업 판단까지 자동화된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이 과장은 "농작물의 수급 및 가격 안정은 AI 기반 예측 모델을 통해 선제적 대응이 가능해질 수 있다. 자율주행 농기계·작업 로봇·선별 자동화 시스템은 노동력 부족 문제가 심각한 농업 분야에서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그는 "다만, 현재 우리나라는 농산업에 AI 적용이 초기 단계이고, 생성형 AI를 활용한 보조적 활용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단계에는 도달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전면 적용’보다는 기반 구축과 단계적 확산이 핵심 과제"라고 덧붙였다.
또 “현재 농업 데이터가 양적으로 부족한데다 기관별로 분산되고 단절되어 있더 표준화가 미흡한 실정"이라며 "AI 모델이 즉시 학습 가능한 표준화된 AI 레디 데이터 구축이 가장 시급한 정책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개별 농가나 민간 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정부 주도의 체계적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이와함께 농식품부 내 전담 조직과 품목별 자조금 단체 등 현장 기반 조직의 참여, 데이터 수집–활용–환류가 가능한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그는 “특히 자조금 단체는 수급 관리와 데이터 축적 측면에서 AI 농업의 핵심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또, 농업의 특화 AI 모델 연구와 전문 인력 양성, 농업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 등이 함께 구축돼야 하고, 전국 단위 확산 이전에 시범 단지 중심의 단계적 실증을 통해 현장 적합성을 검증해 나가는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노동희 한국전자기술연구원 팀장은 “그간 농업 현장에 자동화 농기계와 자율 작업 장비 등이 도입됐으나 사전에 입력된 경로나 시나리오에 따라 작동하는 반자율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노 팀장은 “특히 과수원, 노지, 경사지 등 비정형 환경에서는 기상 변화, 지형 조건, 작물 생육 상태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기존 기술의 적용이 제한적”이라며 “현재 농업 로봇과 자율 농기계는 상대적으로 정형화된 환경(온실, 평지, 단순 작업)에 최적화되어 있으나 비정형 노지 환경에 대한 대응 능력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수의 기술이 단일 작업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파종, 제초, 수확 등 농작업 전반을 통합적으로 수행하기 어렵고 작업 간 전환 시 사람의 개입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기상 변화와 작물 상태 변화 등 예외 상황에 대한 능동적 판단이 불가능해 현장 적용 시 안전성과 신뢰성이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농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와 비정상 상황 데이터의 확보가 어려워 인공지능 학습과 고도화에 구조적인 제약이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농업 자율 시스템 ...인공지능 중심으로 전환 중
최근 글로벌 농업 로봇 및 자율 시스템 개발은 하드웨어 중심 경쟁에서 소프트웨어 및 인공지능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해외 주요 사례를 살펴보면, 휴머노이드 로봇은 사전 학습되지 않은 작업에 대해서도 상황에 맞는 행동을 스스로 생성하고 있으며, 자율주행 시스템 또한 단순 주행을 넘어 행동의 이유를 판단하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농업 분야에서도 고속 주행 중 잡초만을 선별 제거하는 제초 로봇, 다수의 로봇 팔을 활용한 동시 수확 시스템, 드론 및 음성 인식 기반 농업 로봇 등 다양한 형태의 지능형 농업 로봇이 상용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향후 농업 기술 경쟁력이 하드웨어 성능이 아닌 인공지능 기반 자율 판단 능력에 의해 결정될 것임을 시사한다.
피지컬 AI 기반 농업 로봇 및 자율 농기계 기술은 농업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대안이자, 향후 농업 생산성 및 경쟁력을 좌우할 전략 기술인 것이다. 이에 인공지능의 농업 적용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 과제로 인식되어야 하고 정부 차원의 선제적 연구개발 투자와 제도적 지원을 통해 조기 상용화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 사람의 개입 없이 AI만으로 작물 재배...초기 비용 부담 너무 커
AI 기반 예측 모델을 활용해 토지 특성, 기후, 작물 적합도를 분석하고, 종자 선택 및 시설 배치를 추천하는 서비스가 이미 상용화되고 있다. 네덜란드 바헤닝언 대학이 주관하는 AI 재배 경진대회에서는 실제 온실 환경에서 사람의 개입 없이 AI만으로 작물을 재배하는 실험이 지속되며 정밀 농업 기술의 가능성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미국 존디어(John Deere)는 트랙터에 비전 AI를 탑재해 작물과 잡초를 실시간으로 구분하고, 잡초에만 제초제를 선택적으로 살포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제초제 사용량을 약 70% 이상 절감하는 성과도 거두며 환경 오염 감소와 비용 절감이라는 이중 효과를 달성했다.
농업에서 병해충 관리는 노동 부담이 가장 큰 영역인데, 현재 국내에서도 농업인이 병해충 의심 사진을 업로드하면 전문가가 진단하는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비전 AI를 활용해 이미지를 자동 분석하고 병해충을 진단하는 기술이 도입되며 신속성과 접근성을 크게 향상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김진만 팜러닝 이사는 “과일 수확은 노동 강도가 높고, 숙련도가 요구되는 작업으로, 비전 AI는 과일의 숙도와 손상 여부를 인식해 최적의 수확 시점을 판단함으로써, 미숙 과실 수확으로 인한 생산 손실을 줄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과일 수확 후 선별 및 품질 판별, 포장 및 상품화 단계, 유통·판매 및 농가 직접 활용할 수 있고, 최근에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 그래프, 도면 등을 함께 학습하는 멀티모달 대형 언어모델(LLM)도 등장했다"면서 "이는 농업 AI의 지능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기반 기술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스마트팜과 같은 시설 농업은 초기 투자 비용이 수억 원에 달해 토지 조건과 시설 배치의 오류는 회복이 어려운 손실로 이어질 수 있고,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접근하기에는 높은 장벽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토론에 참여한 패널들의 다양한 의견도 나왔다.
주영섭 서울대학교 특임교수는 “최근 전 산업 분야에서 이른바 ‘AI 대전환(AX)’이 핵심 화두로 부상하고 있지만, 디지털 대전환은 충분히 축적된 이후에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AI 기술은 농업, 축산업, 수산업 등 모든 먹거리 산업 전반에 걸쳐 구조적 변화를 야기할 것"이라며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산업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농업 역시 IoT, 센서, 스마트 농기계 등의 연결이 전제되지 않으면 데이터 축적이 불가능하다”며 “단일 산업이 아닌 복합 산업인 농업의 가공·유통·서비스까지 포함한 전 가치사슬 전반에 AI 대전환을 적용한다는 의미로 확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농산업에서 AI 대전환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생산성 향상'을 들었다. 동일한 인력으로 더 많은 생산을 가능하게 하거나, 기존에 다수의 인력이 필요했던 작업을 최소 인력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고령화와 인력 부족이 심화되는 농촌 현실에서 이는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다.
둘째는 혁신을 통한 '신산업 창출'을 들었다. AI 기반 농기계, 로봇, 자동화 시스템 등은 단순한 생산 도구를 넘어 새로운 산업 영역으로 성장할 수 있으며, 이는 농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셋째는 '지속 가능성의 제고'를 들었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중 농업·축산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9%에 달하며, 이는 운송 부문보다도 높은 수치다.
다시 말해서, 농업의 생산 방식과 구조를 어떻게 혁신하느냐에 따라 탄소중립 달성 여부가 크게 좌우될 수 있고, AI를 통한 정밀 농업과 자원 효율화가 지속 가능성 문제 해결의 핵심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 교수는 “궁극적으로 농업의 AI 대전환은 생산성 향상, 산업 경쟁력 강화, 지속 가능성 확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면서 “이러한 혁신 성과를 산업화하고 수출 산업으로 발전시킬 경우, 농업은 내수 산업을 넘어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미래 전략 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빅테크 기업·농산업 AI 스타트업·솔루션 기업 등 참여하는 개방형 생태계 조성
농산업 AI 정책의 가장 기초적인 과제는 기술 보급 이전에 AI 리터러시 제고를 위한 체계적인 교육과 인식 개선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박용선 네이버 클라우드 이사는 “현 시점에서 농산업에 즉각적으로 적용 가능한 AI 형태는 단일 초지능 모델이 아니라, 목적별 특화 모델이 에이전트(agent) 형태로 작동하는 구조”라며 “이러한 에이전트는 특정 작업을 수행하며 향후 로보틱스, 농기계, 자동화 설비 등과 결합돼 물리적 행동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대형 생성형 AI 모델은 이러한 다수의 에이전트를 오케스트레이션하고, 인간과의 인터페이스 역할을 수행하는 중추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빅테크 기업, 농산업 AI 스타트업, 솔루션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개방형 생태계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향후 농산업 AI는 피지컬 AI, 즉 로봇과 농기계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며 "농산업의 경우 작물 수확, 운반, 관리 등에서는 작업 목적에 최적화된 전용 로봇이 훨씬 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제조업 분야에서 운영 중인 스마트공장, AI 솔루션 경진대회, 도입 보조금 지원과 같은 정책은 농산업 분야에서도 충분히 참고할 수 있는 모델”이라며 “농산업 AI 전환은 단일 부처 차원보다는 범부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는 현장 이해 부족하고, 농업인은 AI기술 접근 어려워
농업현장에서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농기계 제조업체인 대동 이광욱 플랫폼사업 본부장은 “데이터 수집과 분석은 AI 전환의 출발점일 뿐,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라며 “농업은 본질적으로 ‘작업’의 산업으로 분석 결과는 경운, 파종, 이식, 관리, 수확이라는 물리적 행위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농업과 AI의 융합 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 요인은 양 분야 간의 이해 격차”라면서 “AI 전문가들은 농업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농업 전문가들은 AI 기술을 어떻게 접근하고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적 이해가 충분하지 않아 AI와 농업의 융합이 구호에 그치며 실제 구현 단계로 이어지지 못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고 아쉬움을 털어 놓았다.
그는 "국내 농업의 약 95%가 노지 기반이라는 점에서 노지농업의 AI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핵심 과제"라며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데이터 기반의 취약성"이라고 지적했다.
시설농업은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통해 환경 센서 데이터가 일정 수준 축적되어 있는 반면, 노지농업은 체계적인 데이터 수집 인프라가 거의 구축되어 있지 않다는 설명이다.
그는 “AI 분석과 피지컬 AI로의 확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데이터가 필요하며, 노지농업에서는 이를 위한 현실적 수단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 현 시점에서 가장 실효적인 데이터 수집 도구는 드론"이라며 “우리 농업이 과거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농기계 촉진법이라는 강력한 정책적 기반이 존재했다. 이제 ‘스마트 농기계 촉진’ 단계로 정책이 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마트 농기계를 통한 데이터 수집, 피지컬 AI 기반 농기계·로봇 개발, 밭작물 기계화 촉진까지 포괄하는 제도적 틀이 법과 시행령에 구체화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 AI, 인간의 판단 보조하고 정밀화하는 수단으로 접근해야
성주참외 유통을 책임지고 있다는 이광식 성주조합공동법인 대표는 “농업 AI는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의사결정을 보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지원하는 ‘고도화된 통계 도구’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충북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진과 약 3년간 공동 연구를 진행한 결과를 언급하는 그는 “기상 변수가 안정적일 경우 생산량 예측 정확도는 95% 이상에 달했다"며 "그러나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 변동성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날씨 예측의 불확실성이 생산량 예측 실패로 직결되는 문제가 발생했으며, 실제로 예측 결과를 신뢰하고 마케팅 전략을 수립했다가 대규모 손실을 경험하며 3년 만에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농업 데이터 수집과 표준화는 농업인 개인이나 민간 기업에 전적으로 맡겨서는 안 된다"며 "농업인은 생산에 집중해야 하며 데이터 체계 설계와 표준화는 농업기술센터, 농촌진흥청 등 공공 전문기관이 주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실제로 과거 민간 업체에 데이터 수집을 위탁한 이후, 공공 활용을 위해 데이터를 요청하자 별도의 데이터 이용료를 요구한 사례도 발생했다"며 "이는 농업 데이터가 공공재로 활용돼야 한다는 원칙과 상충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품목별 전문가가 참여해 데이터 수집 기준을 설정하고, 공공기관이 이를 관리·축적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하며 민간은 이를 기반으로 서비스와 기술을 개발하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국내 농가, 센서 데이터 비교적 개방...생육 데이터, 제어 데이터 서로 분절
이인규 글로벌스마트팜연구소 소장은 “국내 농가의 경우, 센서 데이터는 비교적 개방되어 있는 반면, 작물 생육 상태에 대한 기록과 영농 조치 데이터는 농가가 가장 제공을 꺼리는 영역으로 남아 있다”며 “이로 인해 환경 데이터, 생육 데이터, 제어 데이터가 서로 분절된 상태로 관리되고 있으며, 이는 AI 학습의 근본적인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 소장은 "네덜란드 프리바 시스템이나 호겐도른(HoogenDorn) 등 선진 농가의 사례를 보면, 이 세 가지 데이터가 하나의 시계열 구조로 통합되어 축적되고 있고, 이러한 데이터 구조가 구축되어야만 AI가 실질적인 학습과 예측을 수행할 수 있다"며 "정부와 연구기관, 기업의 노력으로 스마트팜 관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 수준은 상당 부분 향상되었으나, 문제는 이러한 기술을 실제로 운영하고 활용할 수 있는 농가의 역량과의 격차가 지나치게 크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업 데이터는 결국 현장에서 생성되며, 혁신은 땅과 신뢰할 수 있는 제도가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며 "농업 AI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부가 제도 개혁과 생태계 조성에 있어 보다 적극적으로 역할을 수행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박흔동 지농 대표이사는 “우리나라 농업에는 지역농협, 산지유통센터(APC), 농업기술센터, 도 농업기술원, 농촌진흥청 등 다양한 공공·준공공 조직이 존재한다"며 "여기에 농기계, 농약, 비료 등 농자재 기업과, 이들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농업 IT·플랫폼 기업들이 농업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어 이들이 AI 시대를 맞아 얼마나 실질적인 전환을 준비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품목 표준화 역시 여전히 큰 과제로 남아 있다"며 "성주 참외처럼 특정 지역이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품목조차도 등급·용어·분류 기준이 통일되지 않은 상황인데,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AI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접근하는 것은 오히려 주객이 전도된 논의”라고 꼬집었다.
그는 “현재 농업 데이터는 기관별·사업별로 산재되어 단편적으로 축적되고 있다”고 지적한 뒤 “농촌진흥청을 중심으로 기상 정보, 병해충 예찰, 토양 분석, 농약 안전 정보, 위성 데이터, 드론 기반 작황 조사 등 다양한 데이터가 존재하지만, 통합적 활용에는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 실제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데이터 확보가 가장 큰 장애 요인
농업 데이터 활용 촉진을 위한 ‘농업 데이터 바우처 제도’ 도입에 대한 제안도 나왔다. 김형수 농업회사법인 수그룹 대표는 민간 IT 기업과 협력으로 AI 기반 의사결정 모델을 구축한 경험을 언급하며 “기술이나 모델 자체보다도 실제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과정이 가장 큰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수의 농업기술센터 및 현장 기관을 직접 방문해 API 연계 및 데이터 활용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실질적인 연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AI 농업 생태계가 확장되기 위해서는 대기업이나 공공기관뿐 아니라 1인 기업, 스타트업 등 신규 진입 주체들이 자유롭게 실험하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또한 “과거 관광·위치정보 분야에서 시행된 데이터 바우처 사업과 유사하게 농업 분야에서도 공공·민간 데이터를 일정 범위 내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바우처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청년 인재와 소규모 혁신 기업의 농업 AI 분야 진입을 촉진하는 현실적인 수단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지역 여건을 반영한 ‘지역 특화형 농업 AI·ICT 모델’ 육성 필요성도 제시했다. 전국 단위의 표준 모델이나 대규모 프로젝트 중심 접근은 지역 간 농업 여건의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일부 지역은 ICT를 접목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해당 지역에 적합한 모델이 부재하여 정책과 현장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며 “농업 여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하거나 산업 기반이 약한 지역을 대상으로, 지역 단위에서 실증·확산 가능한 특화 모델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