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미래연구원(원장 김기식)은 27일 연구보고서 ‘민족공동체통일방안 평가와 발전 방향’을 발간했다. 보고서는 지난 30년간 역대 정부가 추진해 온 통일정책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과거 노태우, 김영삼 정부에서 여야 합의에 기반해 공식화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급격한 환경과 조건 변화로 그 한계가 분명해지고 있다며, ‘평화공존의 제도화’를 중심으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보고서는 최근 국제환경, 남북관계, 국내정치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통일정책을 둘러싼 도전적인 대내외 환경이 조성되면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수립되었던 탈냉전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기존 통일방안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환경 측면에서는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북·러 관계 밀착 등으로 역내 진영화 위험이 고조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더욱 증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남북관계 차원에서도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바탕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공고화하고 ‘적대적 두 국가론’을 제기함에 따라, 통일방안이 전제해 온 통일지향적 민족 내부 특수관계론의 유효성이 근본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국내정치 차원에서는 세대·진영 간 통일 인식의 분화가 심화되고, 특히 1990년대 이후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통일 무관심층이 확대되면서 통일정책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약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1989년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서 출발해 1994년 김영삼 정부에서 공식화된 이후, 역대 정부의 기본 통일 구상으로 유지되어 왔다고 평가했다.
역대 정부는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로 이어지는 3단계 통일 과정을 토대로, 정치적 상황과 외교 환경에 맞추어 대북․통일정책을 수립·집행하며 최소한의 정책적 연속성을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권 교체 때마다 정책 철학과 이행 수단이 단절되는 문제가 반복되었고, 남북 합의가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해 제도화되지 못했으며, 2010년대 이후 북한 핵문제가 심화되면서 안보·비핵화·평화협력 간 딜레마가 구조적 제약으로 작용해 왔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국민의 통일 인식 약화와 남남갈등 심화 등 국내정치적 제약 또한 통일방안의 실행력을 제한해 온 요인으로 분석했다.
보고서는 통일과 관련한 주요 쟁점으로 다음과 같은 사안들을 제시했다.
첫째, 헌법상 ‘평화통일’의 의무는 명시되어 있으나, 변화된 환경에 부합하는 통일 개념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둘째, ‘남북연합’의 위상과 관련해, 이를 통일로 가는 과정으로 볼 것인지(기능주의), 아니면 평화 공존을 위한 제도적 출발점으로 볼 것인지(연방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논쟁은 궁극적으로 단일 통일국가(1체제 1국가)를 목표로 할 것인지, 연방제나 다층적·복합적 네트워크 형태의 ‘열린 결말’을 수용할 것인지의 문제로 확장된다고 부연했다.
셋째, 북한을 반국가단체이자 평화통일의 동반자로 동시에 규정하는 헌법 및 국내법의 이중적 지위 문제가 지속되고 있으며, ‘1991년 체제(남북기본합의서)’가 인정한 사실상의 두 국가 체제가 국내 법체계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해 통일방안과 정책 집행 과정에서 법적·현실적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내법상 북한과의 조약 체결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국회 비준 동의를 받지 못한 남북합의는 정권 교체 시마다 이행 동력을 상실하는 제도적 취약성이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회가 통일방안 재설계를 위한 사회적 합의기반을 주도적으로 구축하고, 평화 공존의 제도화를 선결 과제로 추진하며, 남북 통합 법제를 정비하는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첫째, 통일 미래상 도출을 위한 국내 사회적 합의 기반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이 무엇인가’, ‘왜 필요한가’와 같은 한반도 미래에 대한 근본적 질문에 대해, 변화된 국민 인식을 반영하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며, 흡수통일 중심의 단선적 시나리오를 넘어 연합・연방제, 다층적 네트워크 통합 등 다양한 미래상에 대한 열린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둘째, 남북연합 단계에 앞서 평화 공존 체제를 제도화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 핵심 의제로 부상한 한반도 현실을 고려할 때, ‘평화공존의 제도화’를 남북연합 단계 또는 그 이전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존 기능주의적 접근의 한계를 인정하고, 정치·군사적 신뢰 구축과 평화체제 합의를 선행하거나 병행하는 전략에 대해 초당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셋째, 통일방안의 지속가능한 이행을 위해 법제를 정비하고 미래지향적 남북 법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단기적으로는 남북 합의서에 대한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의무화하거나 법제화해,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합의 이행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평화체제 구축과 연계해 기존 남북관계 법제를 정비하고 ‘(가칭)남북관계 및 평화통일 기본법’과 같은 남북 통합 법제의 제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넷째, 국회가 공론화와 전략 플랫폼 구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법제 정비와 입법을 통해 세대․이념․지역을 아우르는 ‘평화·통일정책 공론화위원회’를 국회 주도로 설치해 협의주의적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아울러 ‘(가칭)한반도미래위원회’를 신설해 한반도 문제 해법과 관련한 중장기 국가전략과 로드맵을 제시하는 초당적 전략기구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이를 통해 행정부의 단기적 정책 변동을 견제하고, 통일방안이 일관되고 지속가능한 국가 전략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국회가 입법과 제도화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