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판결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은 “무기징역은 법정 최저형으로 국민의 법 감정에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증언의 신빙성, 절차적 공정성 등에 의문이라며 항소심에서 바로 잡혀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어떤 판결이든 의견이 둘로 갈라지는 장면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기에 이러한 논쟁은 다
시 진영의 언어로 굳어가리라.
‘세상사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갈 법도 한데 이번 재판을 지켜보며 유독 한쪽이 쓰렸다. 왜 그랬을까? 분열에 익숙해져서거나 재판이라는 제도가 갈등을 잠재우는 마지막 판결문이 되어 공동체를 설득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1심 판결이 나온 후 필자는 마음의 평정을 얻기 위해 약 2000년 전 철학자인
에픽테토스를 떠올렸다. 노예였다가 주인으로부터 풀려나 철학자가 된 그는 로마 제국, 특히 스토아 철학이 크게 번성하던 때 활동했다. ‘세상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나누어 생각하라’고 가르친 그의 철학적 힘을 빌리면, 세상의 저울이 미세하게 기울어진 느낌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의 가르침은 제자인 아리아노스(Arrian)가 그의 강의를 모은 《에픽테토스 담론’(Discourses)》과 《엥케이리디온(Enchiridion)》이라는 짧은 교본으로 만들어 전해지고 있다. 그는 《담론》에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판결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그 판결을 어떻게 해석하고 규정하느냐가 우리의 고통 크기를 결정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세상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으니 이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 역시도 우리의 힘 밖에 있는-즉 통제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판결을 대하는 우리의 감정이라든가 태도라든가, 혹은 분노를 키울지, 평정을 지킬지 등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하므로 어떤 판결이라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황제가 네 몸을 결박할 수는 있어도, 네 의지를 결박할 수는 없다”고 극단적인 상황을 상정해 인간의 마지막 자유는 자기의 판단과 선택에 있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분노의 감정은 자신의 전부가 되도록 허락해서 결박이 풀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걸음 물러서서 내 의지를 결박할 수 없다면 결박에서 풀려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 만약 그 선택을 에픽테토스에게 하라고 하면 그는 당연히 후자를 권하면서 속삭일 것이다. “세상은 네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네 뜻대로 세울 수 있다. 누군가가 너를 모욕하거든, 그가 너를 모욕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네 판단임을 기억하라”고 할것이다.
즉,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라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법정의 망치 소리는 잠시 울리고 사라지겠지만, 그 소리를 어떻게 기억할지는 내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법원의 판결문에서 완벽한 정의를 내려주길 기대한다. 그러나 법은 사람의 손으로 쓴다. 그래서 에픽테토스는 완전한 제도를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완전해지려는 한 인간의 태도를 강조했다. “당신이 감옥에 갇히거나 사형선고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당신의 몸에 일어나는 일일 뿐, 당신의 선택과 판단까지 파괴할 수는 없다.” 에픽테토스는 ‘감옥에 갇혀도 의지는 자유롭다’고 말한사람이다.
사형선고 앞에서도 존엄을 말하는 사람이다. 그는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에서조차 마음의 평정을 잃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면 정치적 실망과 언어의 충돌 앞에서 품위를 지키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물론 철학적 사유가 갈라진 진영을 한순간에 화해시키지 못하지만, 각자의 내면에 작은 간극을 만들 수는 있다.
그 틈은 각자의 감정과 판단 사이의 여백이다. 그 여백이 있을 때 우리는 즉각적인 비난 대신 한박자 늦춘 사유를 선택할 짬이 생긴다. 설령 이번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것을 판단하려 하기보다는 언어의 품위를 잃지 않는다면 우리의 공동체는 희망이 있다.
에픽테토스는 노예였지만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법적으로 자유로운 우리가 감정에 사로잡히면 각자에게 주어진 자유를 속박하는 꼴이 된다. 그러나 내면의 자유권을 지키는 한, 어떤 정치적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는 일이 없고, 그어떤 판결문을 듣고도 마음의 평정을 지킬 수 있다는 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그가 주는 철학의 위안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