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이란 혁명, 폭풍 전야의 침묵

  • 등록 2026.03.05 19: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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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란 사태를 이해하려면 ‘왜 자원 부국이 어떻게 어려운 길로 들어섰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흔히 이란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네덜란드병’이다. 천연자원 수출이 급증하면서 통화 가치가 상승하고, 제조업과 농업이 약해지며 경제 구조가 왜곡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 말은 네덜란드에서 1960년대 천연가스가 발견된 이후 나타난 경제 현상에서 유래했다.

 

이란 역시 석유라는 축복 속에서 비슷한 함정에 빠졌다. 1970년대 이란은 겉으로 보기에 번영의 나라였다. 석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막대한 외화가 유입되었고, 수도 테헤란에는 고층 건물과 현대식 도로가 들어섰다.

 

당시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 국왕은 이란을 중동의 산업 강국으로 만들겠다며 대대적인 근대화 정책을 추진했다. 그것이 ‘백색혁명’이었다.

 

백색혁명은 토지 개혁, 여성 참정권, 교육 확대 등 겉으로는 매우 진보적인 개혁처럼 보였다. 그러나 토지 개혁은 농민에게 충분한 생산 기반을 제공하지 못했고, 많은 농민이 생계를 유지하지 못한 채 도시로 떠났다. 이들이 도시 변두리에 모여 살며 거대한 빈민층을 형성해 나중에 혁명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특히 석유에서 나온 돈은 사회 전체로 퍼지기보다 왕실과 소수 특권층, 군부, 그리고 정권과 가까운 기업들에 집중되었다. 겉으로는 국가가 부유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아래에서는 불평등과 인플레이션이 조용히 쌓여가고 있었다.

 

여기에 전통 상인 계층인 ‘바자리’는 이란 경제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 온 상인 공동체였지만, 왕실 중심의 경제 정책 속에서 점차 주변으로 밀려났다. 서구식 대기업과 국가 주도의 경제 구조는 그들의 기반을 약하게 만들었고 결국 이들은 종교 세력과 결합해 정치적 반대 세력의 핵심이 되었다.

 

결국 겉으로는 화려했던 경제 성장의 이면에서 쌓인 불만이 폭발했다. 그 결과가 1979년의 이란 혁명이었다. 혁명은 왕정을 무너뜨리고 종교 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신정 체제를 탄생하게 하였다.

 

그러나 혁명 이후의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혁명 직후의 혼란,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 그리고 장기간의 국제 제재는 이란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석유 의존 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고, 정치적 긴장과 폐쇄적 경제 구조는 산업 다변화를 가로막았다.

 

혁명 47주년, 그러나 이란 경제는 여전히 높은 인플레이션과 청년 실업, 그리고 국제 고립이라는 삼중의 압박 속에서 전쟁까지 치르게 되었다. 석유는 여전히 풍부하지만, 그것이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는 못했다.

 

전후의 이란이 어떻게 될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혁명의 배경이 되었던 불평등과 소외를 해소할 포용적 경제 구조를 만들고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국제 관계 회복에 나서야 한다.

 

미 스탠포드 대학교 이란학 연구소의 「아바스 밀라니」 소장은 오늘(5일)자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기고문에서 ‘1979년 이란 혁명은 사실상 혁명이 아니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교묘하게 꾸민 속임수였다.

 

이란 국민은 근대 시민의식과 사회 계약이라는 이념에 기반한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 자유, 독립, 그리고 성직자 통치가 없는 이슬람 공화국을 원했다. 그러나 호메이니는 이란 국민과 서방 열강이 그토록 듣고 싶어 했던 말만 앞세우고 결국 반혁명을 주도했다’라고 썼다.

 

그래서 달라진 게 오늘의 이란일까?

 

강남의 테헤란로는 70년대 중동 건설 붐과 석유 경제의 힘을 배경으로 우리나라가 그 지역과 교류하고 영향력을 확대하는 의미를 담아서 만든 도로명이다. 한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란에 가서 돈을 벌어 왔다. 이란이 지정학적으로 우리나라와는 다르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이란이 석유에 의존하다 그 취약성이 드러난 것처럼 우리나라 역시 반도체나 특정 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그렇게 될 수 있다. 더구나 수만 명의 시위대가 사망하는 것을 본 국민들이 지금 나서지 않는다고 해서 현 체제를 인정하는 건 아니라, 는 점이다. 침묵은 때로 폭풍 전의 고요일 수 있다.

 

이란의 굴곡진 역사는 국가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권력이 오래가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윤영무 본부장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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