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권리금 법제화의 딜레마

  • 등록 2014.11.13 13: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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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했던 상가권리금이 법제화될 전망이다. 세입자들 뿐 아니라 전문가들도 임차상인들의 권리 보호 차원에서 권리금을 제도화한다는 데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상가건물의 재건축 또는 리모델링 시 상가권리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내용이 빠져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상가권리금 제도화에 앞서 쟁점과 개선점들을 짚어 봤다.

 

 

사각지대 있던 권리금 ‘법 안으로’

법무부는 지난 9월23일 상가권리금 법제화를 골자로 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상가임대차의 경우, 임대인의 재산적 가치와는 별개로 임차인의 영업활동의 결과로 영업적 가치가 형성되고 임차인들은 그 영업적 가치를 권리금 거래를 통해 회수해 왔다. 현재 권리금이 있는 임대차는 55%에 달하고 임차인 85%가 권리금을 받고 나가겠다고 응답하는 등 권리금은 엄연히 실체가 있음에도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임차인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권리금 규모는 33조 원이며 회수 방해 등에 따른 피해액 또한 1조3천억 원 가량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임대인이 임차인이 권리금을 회수할 수 없도록 이들을 일방적으로 내쫓고 권리금을 새로운 임차인에게 지급받는 등 임대인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 기회를 빼앗고 부당이익을 취하는 사례들이 있었다.
권리금 회수기회를 갖지 못한 임차인은 영업을 폐지하고 새로운 영업의 시작을 위해 시설비와 권리금 등을 재투자해야 하고 기존 매출을 회복하기 위해 상당한 영업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법 개정내용에 따르면 건물의 시설·입지·고객 등 유무형의 이익과 관련해 주고받는 금전적 대가로서 권리금의 법적 개념을 규정한다. 또한 권리금 회수에 대한 임대인의 협력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해 권리금 회수를 방해할 시 임차인이 임대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임대인은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위한 협력의무기간(임대차계약 종료 2개월 간/임대인이 임대차계약 종료 3개월 전 갱신거절의 통지를 한 경우에는 종료 시) 동안 임차인이 주선하는 새 임차인과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단 건물의 파손·멸실·재건축·안전 등의 사유로 계약갱신이 거절된 경우 등에는 임대인의 협력의무가 면제되며 또한 임대인이 상가건물을 1년 이상 영리목적으로 제공하지 않는 경우 등에도 이 의무가 면제된다.
또 세입자 대항력을 높이는 조치도 등장했다. 건물주가 바뀌더라도 세입자는 5년간 계약기간을 보장받는다. 지금까지는 건물주가 바뀌면 계약기간을 보장받지 못해 세입자의 권리금 회수가 쉽지 않았다.

 

서울의 경우 환산보증금(보증금+(월세×100)) 4억 원 이하만 보장받았지만 앞으로는 환산보증금 규모에 관계없이 계약기간을 보장받게 됐다. 이와 함께 세입자와 상가 주인 간 분쟁 예방을 위해 ‘권리금 거래 표준계약서’도 도입된다. 광역시도 산하에 상가권리금분쟁조정위원회를 두고 저렴한 비용으로 상가권리금 분쟁을 조정 합의할 수 있도록 한다. 권리금분쟁위 조정 시 적용할 상가권리금 산정기준은 국토교통부가 마련한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이 시행되면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를 통해 약 120만 명의 임차인이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을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을 통해 의원발의하고 연내에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 대해 상가부동산 시장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이번 발표로 상가건물 매매시장이 주춤하고 있다”며 “임대인들은 이중규제에 지나친 재산권 침해라고 불만을 토로한다”고 전했다. 윤 대표는 “임대인들은 기존 세입자가 주선한 새 임차인을 받게 되면 점포 업종을 고를 수 없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흥업소, 안마업소 등 건물주들이 기피하는 업종도 ‘울며겨자먹기’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재건축·재개발 시 보상돼야

세입자들은 상가권리금 법적보호가 숙원이었던 만큼 이번 개정안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장사가 잘 되는 가게의 건물주가 임차인을 쫓아내고 자신이 영업하거나 주인이 바뀌어 권리보증금 한 푼 회수하지 못하고 쫓겨나야 하는 문제가 해소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입자들은 이번 정부안대로라면 여전히 상가건물의 재개발·재건축 시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는 문제가 남게 돼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안에는 임대인의 협력의무 면제조항으로 임대인이 계약갱신을 거부할 수 있는 단서조항중 하나인 재건축·재개발을 두고 있다. 엄홍섭 라떼킹 대표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직장에서 쏟아져 나와 창업시장에 뛰어들고 있다”며 “나 또한 퇴직금과 예·적금, 대출금 등 다 털어서 바닥권리금 1억6,200원과 시설·인테리어비용 등 총 2억8천만 원을 투자해 강남에 커피전문점을 열었다”고 말했다. 그는 “장사한 지 2년도 안 됐는데 건물주가 3층짜리 건물을 14층으로 올리기 위한 재건축을 한다며 나갈 것을 요구했다”며 “장사하는 사람한테는 가게 하나가 전 재산인데 권리금 한 푼 못 찾고 나가면 다른 곳에서 다시 장사를 시작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엄 대표는 “차라리 영업적인 수완이 없어서 망하거나 노름을 해서 망하는 것이라면 개인의 잘못이니까 당사자가 책임져야 한다지만 이 경우는 세입자가 억울하게 쫓겨나도 보호받지 못하고 임대인이 세입자의 재산권을 보장해주지 않아도 책임이 없도록 한 법·제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경우 세입자에게 이전비와 4개월치 영업손실금을 보상해 준다. 건물주가 개별적으로 하는 재건축과 형평성 문제도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권구백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대표는 “재건축· 재개발로 인한 권리금 피해사례가 60~70%에 달한다. 법이 통과되더라도 대부분의 피해는 보호하지 못하게 돼 유명무실한 법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 근교에 4층짜리 상가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백모(52) 씨는 “원래 상가보증금이라는 것은 임차인들끼리 주고받는 금액이지 임대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몇몇 임대인들이 악행을 저지른다고 해서 상가권리금을 전체 임대인들에게 보장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 재건축·재개발 시 법적인 의무가 없던 것을 갑자기 임대인에게 물어주라고 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명운 한국법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상가법에 재개발·재건축 시 상가권리금 보상규정을 넣게 되면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과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우선 상위법인 공익사업법에서 상가권리금 보상이 규정되고 난 이후 상가법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상가권리금이라는 개념이 아직 법적으로 제대로 규정돼 있지도 않은데다 공익사업법상 상가권리금 보상을 규정한다 하더라도 상가권리금 추정액 또한 큰 액수여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 연구원은 “아직까지 사회적 풍토가 오래 영업한 상가에 대한 자부심보다는 건물의 경제적 가치에 더 중점을 두는 분위기”라며 “법이 사회를 너무 앞서가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영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상가법상 보상문제는 민간 차원의 보상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보상문제와 충돌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임대건물의 재개발·재건축으로 인해 세입자는 귀책사유도 없는데 영업가치를 잃게 되므로 임대인이 이 부분을 보상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는 법이 오히려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던 것뿐이며 피해를 보호하는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이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야 실효성이 있다는 논리다.

이어 그는 “영업가치는 퇴거 당시 영업가치를 감정평가를 통해 산정하거나 공익사업법처럼 몇 개월 치의 영업손실금으로 정하거나 같은 업종, 같은 규모 점포를 얻을 때 필요한 금액으로 환산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남주 민변 변호사는 “공익사업법과 도시정비법상 상가세입자 보상은 이주비와 영업손실금에 불과해 상가권리금 수준으로 현실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환산보증금 유지, 의미 있나

 

이번 법안에 따르면 건물주가 바뀌더라도 환산보증금 4억 원(서울시 기준) 이상의 상가도 5년간 임대차계약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현행은 새 임대인이 임대차계약을 인정하지 않으면 쫓겨나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환산보증금 개념이 남아 있어 임대인이 임대료를 2~3배 이상 마구잡이로 올려 받는 데 대해 아무런 제재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환산보증금은 지난 2002년 상가법 제정 당시 영세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일정기준 이하의 임대료 인상폭을 9% 이하로 보장한 데서 시작됐다. 그러나 서울시에 환산보증금 4억이 넘는 점포가 70%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환산보증금 4억 원이라도 부자상인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구백 맘상모 대표는 “4억 원 이하 영세상인들에게는 건물주인이 바뀌어도 임대료가 승계되는 반면 4억 원 이상 상가들은 임대인이 임대료를 대폭 인상했을 때 쫓겨날 수밖에 없다”며 “환산보증금 개념을 남겨두는 것은 세입자로 하여금 계약갱신을 못 하도록 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산보증금에 대한 개념을 없애든지 별도의 임대료 인상에 대한 기준을 두든지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영우 나사렛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환산보증금제도 유지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건물주인이 임대료를 마음대로 올릴 수 있는데 대항력을 인정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며 “도대체 왜 환산보증금을 남겨뒀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분쟁위, 실효성 있나

 

정부가 17개 광역시·도 산하에 두기로 한 상가권리금 분쟁조정위원회는 권리금 및 상가임대차 관련 분쟁 발생 시 법적 구제절차 이전에 분쟁사항을 조정·합의하는 곳이다. 분쟁조정위는 위원장을 포함, 9명의 법·경제·부동산 등의 전문가들로 구성되며 비상근으로 분쟁사건 발생 시 활동한다. 이 분쟁조정위의 결정사항에 대해 법적인 구속력은 없으며 법원 판결 시 참고사항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국토부는 상가권리금 산정기구를 두고 권리금 분쟁 발생 시 시설·영업가치 등 상가의 유·무형 가치에 대해 원가법, 수익환원법, 거래사례비교법 등 방법을 통해 상가권리금을 산정하게 된다.

 

정명운 책임연구원은 “분쟁위의 결정에 대해 사법기관이 내리는 결정과 똑같은 권한을 주게 되면 법원의 권한을 침해한다는 의견에 따라 합의·조정 기능까지만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남영우 교수는 “분쟁위 결정에 대한 법적인 구속력이 없으면 사회적인 논란을 해소하는데 미흡한 점이 있다”며 “한 쪽이 불복하면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아 분쟁위의 실효성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상가권리금 관련 증세논란도 일고 있다. 봉천동에서 화장품 가게를 하고 있는 이모(45) 씨는 “상가권리금에 법적인 근거가 생긴다는 것은 좋지만 중·장기적으로 권리금에 대한 세금부과가 진행되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 씨는 “권리금의 성격이 영업기간 동안 쌓아온 무형 자산에 대한 돈이며 나중에 다른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돈인데 세금을 매기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김승종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현행 세법상 권리금을 거래하는 경우 거래당사자는 부가가치세(10%)와 소득세(4.4%, 지방소득세 포함)를 내야 하지만 정부는 이번 대책과 관련해 새로운 세목을 신설하지도 않았고, 납세를 강제하기 위해 권리금 거래 신고의무를 부과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남 책임연구원은 “이번 대책은 그야말로 권리금이 새롭게 법제화되는데 대한 시장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상가임차인의 권리금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향후 상가권리금 제도가 안정화되고 과세하지 않는 데 대해 문제가 발생하면 과세대상에 포함될지는 모르겠지만 과세를 염두에 두고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며 과세가능성을 열어뒀다.


‘사회적 합의’ 급선무

 

상가임대인 대 세입자 뿐 아니라 세입자들 사이에서도 상가권리금 법제화에 대한 적지 않은 논란이 일고 있다. 재건축에 의해 상가권리금을 못 찾고 상가를 내줘야 하는 세입자와 다른 세입자들 사이에서 법제화시기를 놓고 이견이 발생하는 것이다. 재건축 사례 세입자들은 재건축에 대한 보상규정이 들어가야 법의 실효성이 있다는 입장인데 반해 일반세입자들은 상가권리금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법제화 후에 개정하는 방안이 낫다는 입장을 펴고 있다. 봉천동 화장품 가게 주인 이 모씨는 “상가주인이 언제 임대료를 올려달라고 할지 몰라서 걱정”이라며 “임대료를 못 올려줘 상가를 나가게 되더라도 권리금 회수는 하고 나가야 되지 않겠나. 빨리 법이 통과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윤홍섭 라테킹 대표는 “상가임대차 문제에 대해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법이나 정부의 갈등조정기능이 없다”며 “재건축 문제에 있어서도 임대인이 왜 세입자의 상가권리금을 보장해야 하는지, 세입자가 왜 보상을 받지 못하고 내쫓겨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와 합의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방치한다면 상인들을 몰락시켜 하층민을 양산하는 꼴이 되고 만다”며 “이제 단순히 개인적인 거래가 아닌 사회가 안고 가야 할 문제로 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명운 책임연구원은 “아직까지 권리금을 영업가치라고 인정하기 보다는 영업을 위해 투자하는 돈이라고 생각하는 추세”라며 “우선 영업가치로서 권리금에 대한 개념부터 바로 서야 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권리금 보장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부가 세입자들의 상가권리금 미회수에 따른 피해를 줄이겠다며 내놓은 대책이 상가세입자들의 권익과 아울러 임대인들의 재산권 등을 함께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적인 합의안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MeCONOMY November 2014

 

박영신 기자 rainboweye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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