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 폐해, 해법 없나

  • 등록 2014.11.13 12:5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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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과 명절을 앞두고 상품권 선물이 늘고 있는 가운데 상품권 관련 소비자들의 피해도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다. 상품권은 공식적인 등록절차와 소비자 피해 구제규정이 없거나 강제력이 약해 피해가 발생해도 보상을 받기가 어렵고 각종 리베이트 등 불법거래에도 악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모바일상품권이 등장하면서 상품권 시장이 더욱 혼탁해지고 있다.

 

지난 추석명절 당시 한 온라인쇼핑몰이 명절에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을 조사한 결과 상품권이나 현금이 50.8%를 차지해 1위로 꼽혔다.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실시한 선물 선호도조사에서도 상품권(22.1%)이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상품권은 소비자에게 구입물품 및 시기의 선택 가능성을 넓혀주는 편리성으로 인해 선물 선호도 1위에 오르고 있으며 선물로 애용되고 있다.


한국조폐공사가 올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공사가 상품권 발행업체로부터 위탁받아 찍어낸 종이상품권 발행규모는 2009년 1억5,495만2천장에서 2013년에는 2억6,038만5천장으로 56%나 증가했다. 특히 백화점, 대형마트 등 유통사 상품권 발행이 2009년 8,541만5천장에서 2013년 1억8,664만5천장으로 늘어나 상품권 공급량 증가를 주도했다.


금액 규모로는 2009년 3조3,883억 원에서 2013년에는 8조2,796억 원으로 연평균 25% 성장해 왔다. 특히 유통사 상품권 발행금액은 2013년 7조3,255억 원으로 전체 상품권 발행금액의 88%를 차지하고 있다. 상품권으로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사용처가 광범위한 유통사 중심으로 상품권의 대중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지난 해 상품권 발행금액은 전년대비(6조2,191억 원) 35.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이러한 증가추세라면 올해 상품권 발행금액 규모는 10조원을 넘을 것으로 금융권은 예상하고 있다.

최근에는 백화점·대형마트·주유·도서·외식·문화 상품권 등의 가맹점 범위와 종류가 확대되고 있다. 국민관광상품권은 고객들의 사용편의를 높이기 위해 호텔, 식당, 면세점 등 기존의 사용처 이외에도 점차 백화점들과 가맹점 제휴를 맺고 있으며 주유상품권도 발행 주유소 체인 이외에 백화점, 리조트, 호텔, 식당 등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 이 뿐 아니라 온누리상품권과 같은 정부주도형 상품권도 유통되고 있으며 종이형상품권을 넘어 모바일과 온라인상의 각종 물품·금액상품권, 지류·온라인 겸용상품권, 신용카드 형태의 상품권 등으로 종류가 다양해지고 유통경로도 진화하고 있다.


온라인상품권은 문자메세지로 전송받은 핀(PIN)번호 또는 지류상품권면에 기재되어 있는 핀번호를 온라인상에서 입력하여 해당금액으로 전환 후 온라인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모바일상품권은 주로 소액의 상품권으로 커피전문점, 편의점 등에서 해당 물품으로 교환할 수 있거나 해당 금액만큼 물품을 구입할 수 있다. 상품권의 유동성이 현금에 가까워질 정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상품권 사기 급증…지하경제 확대 우려도


상품권 시장이 고속성장을 거듭하면서 이로 인한 소비자피해도 갈수록 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상품권 관련 소비자상담은 2010년 1,065건, 2011년 3,352건, 2012년 2,139건, 2013년 6월까지 1,092건으로 3년6개월 동안 총 7,648건에 이른다.


소비자원이 같은 기간 피해구제 신청된 545건의 피해유형을 분석한 결과 사업자가 대금을 지급받고도 상품권을 제공하지 않은 ’상품권 미제공’이 324건(59.4%)으로 가장 많았다. 소셜커머스 등 온라인을 통해 높은 할인율로 소비자를 유인하여 판매하거나 현금결제를 유도한 후 약속한 상품권을 제공하지 않은 사례들이다.


다음으로 ‘유효기간 경과 후 사용 제한’이 88건(16.1%), 상품권 발행업체 폐업·가맹계약 해지 등으로 ‘상품권 사용 불가’ 60건(11.0%), ‘상품권 구입대금 환급 지연·거부’도 43건(7.9%)으로 나타났다.


상품권의 유형은 백화점·주유·문화상품권 등 ‘종이형상품권’이 267건(49.0%)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온라인상품권 211건(38.7%), 모바일상품권 61건(11.2%), 카드형상품권이 6건(1.1%)이었다. 종이형상품권의 소비자피해가 많은 것은 모바일상품권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권면금액이 커 소셜커머스 등을 통한 높은 할인율에 소비자들이 쉽게 현혹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모바일상품권의 경우 소액으로 편리하게 선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유효기간 연장이나 일부 환급 요구를 거절당하는 사례도 일어나고 있다. 또 일부 대형업체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하청업체나 협력사 대금 지급 시 자사 상품권으로 결제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한편 대체거래수단으로서 상품권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소비자피해도 늘 뿐 아니라 자금유통을 불투명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구입하고 상품권 환전소에서 다시 할인된 가격에 팔아 현금을 마련하는 이른바 ‘상품권깡’과 이로 인한 탈세 및 비리, 거래업체에 대한 상품권 강매 등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최근 50만 원 이상의 고액상품권 발행이 늘면서 리베이트, 뇌물 등 범죄나 지하경제에 악용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분석한 한국조폐공사 국감자료에 따르면 유통사의 30만 원 고액상품권 발급건수는 2012년 69억5천장에서 2013년 112만6천장으로 62% 증가했으며 50만 원 상품권 발급규모도 2012년 157만4천장에서 365만4천장으로 132%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초고액 상품권 중심으로 발행량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는 양상이다.


고액상품권은 운반 시 현금에 비해 용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대규모 현금거래에 동원될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상품권은 현금과 마찬가지로 은행이나 카드사 등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으므로 자금의 원천이나 사용이 불법적이라고 해도 이를 추적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고액상품권 발행 증가와 5만 원권 환수율 하락이 맞물리며 지하경제 규모 확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지난 8월 적발된 제약회사 리베이트 사건에서 제약회사 직원 4명이 2010년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총 15억6천만 원 상당의 상품권과 현금 등 리베이트를 379개 병·의원 의사와 약사에게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들은 회사 돈으로 상품권을 구입한 후 이를 현금화하는 수법으로 리베이트로 제공할 현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품권법 폐지 후 사실상 ‘방치’


이처럼 상품권 관련 피해와 범죄 악용 우려가 늘고 있음에도 현행 법·제도상으로는 이것을 규제할 만한 대책이 미약한 게 현실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1999년 정부가 경기회복과 규제완화의 일환으로 1961년 제정된 상품권법을 폐지해 상품권 발행·유통 등에 관한 감독 및 규제를 없앴기 때문이다.
이 법은 상품권 발행관련 인가·등록 규제, 상품권 발행보증금 공탁 의무 및 시·도지사의 공탁명령권, 상품권 할인판매·위탁판매 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당시 정부는 사적계약의 결과인 상품권 발행에 대한 정부의 개입과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고, 현재의 행정조직으로는 규제의 한계가 있으며 법이 추구하는 소비자보호문제는 소비자 스스로가 합리적인 선택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한다는 이유 등을 들며 이 법을 폐지했다. 즉 상품권관련 영업이 자유로운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상품권법이 폐지된 이래 1만 원 권 이상 상품권 발행시 납부하는 인지세를 제외하면 사실상 상품권 발행 관련 등록절차가 없다. 백화점이든 정유업체든 권면금액 1만 원 50원, 1만 원~5만 원 200원, 5만 원~10만 원 400원, 10만 원 초과 800원 정도의 인지세만 내면 얼마든지 상품권을 찍어낼 수 있는 것이다.

현행 상품권 관련 법령은 상품권에 관해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법률이 없고, 상품권 발행자와 소비자 사이의 사적계약관계로서 간접적으로 규율하는 법령만 존재한다. 이 법령들은 법적 구속력도 약하다.


상품권 관련 대표적인 규제로서 상품권의 유효 기간, 발행자의 최종적인 책임과 의무를 규정한 ‘상품권 표준 약관’, 소비자보호를 위해 상품권 권면에 표시해야 할 사항 등을 규정한 ‘표지·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상품권 잔액 환급에 관한 기준 등을 담은 ‘소비자기본법’이 있다.

 

이밖에 상품권 인지세 납부 대상과 금액 등을 다룬 ‘인지세법’, 전자 화폐 및 선불전자지급 수단의 발행 권면 최고 한도 등을 규정한 ‘전자금융거래법’ 등 10여개 법령이 제한적이고 산발적으로 상품권 관련 규제를 맡고 있다. 소관부처 또한 공정거래위원회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5개 기관에 산재돼 있어 관리 혼선도 우려된다.

조폐공사의 경우. 상품권 디자인 및 위조방지를 위한 보안요소 설계, 발주 수량 제공 등 역할만을 수행하고 있다. 조폐공사가 국회 기재위에 제출한 상품권발행건수 등 자료는 위조방지용 상품권 종이를 공급하면서 집계된 자료일 뿐이며 조폐공사로부터 종이를 공급받지 않고 발행한 상품권을 감안하면 총 발행규모는 더 많을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즉 정확한 상품권 발행·회수규모 등을 파악하기 어렵다. 상품권 규제가 허술함에 따라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공탁의무제도가 없어지면서 부실하거나 사기성 소규모 업체들도 상품권 발행을 남발해 소비자들이 상품권 사기나 상품권 발행업체 폐업으로 인한 상품권 사용 불가 등 피해에 노출되는 것이다.
또한 온라인·모바일 상품권은 발행처별로 사용 방법, 잔액 환불 기준, 유효 기간, 별도의 상품권 등록 기한 등 이용조건 및 보상기준이 달라 소비자들의 불만과 피해가 야기되고 있다.


한편 2009년 안효대 새누리당 의원이 상품권 제도에 관한 합리적이고 통일적인 기반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상품권법을 발의한 바 있으나 기업들의 반대로 폐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품권 발행업체들은 자유로운 상품권 발행으로 인해 큰 이익을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매출을 미리 실현할 수 있는데다 상품권 분실 및 멸실, 유효기간 내 미사용 등으로 인한 낙전수익도 꽤 짭짤한 편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한국문화진흥(문화상품권) 해피머니아이엔씨(해피머니상품권), 한국도서보급(도서상품권)을 대상으로 조폐공사에서 공개한 상품권 발행현황과 기업의 감사보고서 등을 토대로 낙전수익을 추정한 결과를 지난 10월23일 발표했다.


2012년 상품권 소멸시효경과이익은 한국문화진흥 54억9천만 원, 해피머니아이엔씨 41억500만 원, 한국도서보급 18억1,900만 원이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최근 5년간 낙전수입은 한국문화진흥 223억 원, 해피머니아이엔씨 169억 원, 한국도서보급 79억 원 등 총 471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낙전수익에 대해 기업들은 회계처리상 잡수익 및 기타수익으로 처리하고 있을 뿐이다.


상품권법 부활해야

 

최근 상품권 유통의 건전한 질서를 확립하고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상품권 관련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제도에 관한 통일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박종상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상품권 시장 현황과 감독의 필요성’ 보고서에서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있는 고액상품권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상품권의 화폐대체성이 높아지고 50만 원 권 등 고액상품권이 등장함에 따라 뇌물수수 등 비리와 직결될 수 있다”며 “상품권으로 인한 불투명한 자금유통이 야기하는 부정적 결과가 더 커지기 전에 고액상품권을 당국에 등록 후 발행토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연구위원은 ▲고액상품권 발행 전 등록 의무화 ▲고액상품권 발행단계에서 의심거래보고, 고액확인제도 등 기본적인 자금세탁방지의무 도입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훈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내 상품권 시장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통합된 상품권 관련 법규 제정을 촉구했다.

정 연구위원은 “정확한 상품권 시장규모 파악이 어렵고 상품권 관련법령 소관부처 또한 5군데로 산재해 있어 관리의 혼선이 우려된다”며 “상품권 관련 소

비자의 혼돈과 피해의 예방, 소관부처 간 업무 중복 및 공백의 방지를 위해 보다 효율적이고 통합된 상품권 관련 법규 제정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실련도 “현행 다수의 기관 및 법률로 간접적으로 규제받고 있는 상품권은 기업의 리베이트 및 비자금, 횡령 그리고 상품권을 현금화하는 소위 상품권깡과 같은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높다”며 “상품권 발행 및 관리에 대한 직접적인 법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성천 소비자원 연구위원은 ‘상품권거래와 법제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최근 종이형 상품권 뿐 아니라 모바일상품권, 선불카드 등 상품권 유형이 다양해짐에 따라 이러한 선불지급수단에 대한 포괄적인 규제방안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김 연구위원은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등 소비자보호규정과 균형을 맞추어 상품권 등의 선불지급수단거래상 소비사권리가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법에 소비자피해보상을 위한 공탁, 보험계약, 공제계약 등 소비자피해보상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며 상품권이 불법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행정규제와 형사규제 관련 내용 ▲선불지급수단의 수요확대, 판매촉진 등 업계의 자율성이 침해되지 않도록 하는 규정 등 선불지급수단에 대한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규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물론 상품권법 부활이나 상품권 규제 강화에 대해 기업들의 반발이 거센데다 전문가들도 내수경기 회복에 부정적이고 규제완화 기조에 역행할 것이라며 반대하는 입장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법적 근거도 없이 유동성을 무제한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불투명한 유통구조로 인해 폐해가 심각한 만큼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상당한 설득력이 실리고 있다. 15년째 경기활성화 등을 이유로 방치돼 있던 상품권 시장에 대한 규제가 이제는 고삐를 당겨야 할 때는 아닌지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MeCONOMY November 2014

박영신 기자 rainboweye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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