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금요일, 술 대신 책을 쥔 새로운 인류의 등장

  • 등록 2016.08.05 20:5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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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이코노미 이홍빈 기자>불타는 금요일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귀에 익숙해 진지도 벌써 오래다. 불타는 금요일은 소위 불금으로 불리며 전 국민의 주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불금이면 대한민국의 거리는 한 주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위해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인다.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들은 불금을 맞아 밖으로 나온 손님을 잡기위해 고군분투한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주점의 문을 두드려 흠뻑 취할 곳을 찾는다. 그렇게 불금이면 사람들은 한껏 취해 집으로 돌아가 달콤한 주말을 맞이한다.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모습이다. 하지만 최근 주점 대신 서점, 술 대신 책을 찾는 이른바 북금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책 읽는 금요일 북금, 그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강남, 대한민국에서 책 하면 생각나는 그 서점을 찾아갔다. 8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서점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즐기고 있었다. 도서관처럼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만들어 둔 좌석은 이미 한 권씩 책을 펼쳐든 사람들로 가득했고,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서점에서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 중에는 방금 일을 마친 듯 헐겁게 넥타이를 매고 있는 직장인, 편안한 옷차림의 학생, 부모님과 동화책을 읽고 있는 어린아이도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저마다 한 권의 책이 펼쳐져 있었고, 무언가 골똘한 표정을 지으며 빠르게 눈을 움직였다.광고대행사에서 일하는 최대균(28세)씨는 서점을 돌다가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았다며 즐거워했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정체기가 찾아온 것 같아 답답하기도 하고 자기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서점을 찾았다”라고 이야기했다. 한 잔의 술이 그립지 않느냐고 묻자 “이제 금요일 저녁이면 술 마시는 일도 지겹다”며 “술자리에 가면 항상 만나는 사람과 만나야 하고 대화의 주제도 매번 비슷하다”면서 불금이라고 술을 마시는 일을 상투적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또 재미없는 주제로 진부한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책과 대화를 나누는 편이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영감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은 특별한 약속도 없고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덕에 늦게 까지 책을 읽을 수 있겠다”고 말한 뒤 책장을 넘겼다. 

자격증 관련도서로 가득한 코너에는 최현주(27세)씨가 꼼꼼히 책을 고르고 있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뒤 시간에 쫓겨 서점을 자주 찾기 힘들다는 그는 “오늘은 2~3달 만에 찾아온 기회”라며 기뻐했다. 올해로 5년차 직장인인 그는 과장을 달고 난 뒤 더욱 바빠졌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스펙이 요구 되는 가운데 자신만 뒤쳐질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을 쪼개서라도 서점을 들러야 한다”고 전했다. 아래로 흘러내리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소설을 읽고 있는 권지연(28세)씨도 바쁜 가운데 서점을 찾았다. 시간이 나면 종종 서점을 찾는다는 그는 “오늘도 술 한 잔과 책 한권 사이에서 갈등을 벌였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금요일 저녁 서점을 찾을때 마다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그녀는 직장인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에 대해 “책을 읽고 싶지만 바쁜 일정과 과중한 업무에 도저히 책을 읽을 시간적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책 이외에도 스마트폰처럼 손에 쥐고 즐길 수 있는 물건이 많다”고 설명했다.



외국 서적들로 가득한 책장 근처에도 자리를 잡고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자 친구를 기다리며 서점을 들렀다는 박영진(27세)씨는 “한국에는 아직까지 대형 서점이 많이 남아있다”며 미국의 서점 현황에 대해 들려주었다. 미국에서 5년 가까이 유학생활을 한 그는 “최근 미국에서 대형 서점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라며 “대부분 온라인 시장에 자리를 내어주고, 태블릿PC나 스마트폰을 활용한 전자책이 인기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활성화가 되지 않았지만 책을 읽어주는 어플리케이션도 미국에서는 일반적이라며 “종이 책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이런 현상이 많이 안타깝다”고 슬퍼했다. 서점에 앉아 책을 읽는 일이 낙이라는 그는 오프라인 서점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현상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날 서점에는 책을 멀리할 것 같았던 젊은 직장인들이 서점을 가득 메운 채 책 읽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젊은 직장인 독서자들 틈으로 중년의 독서자들도 책을 고르고 있었다. 경영 관련 책장에서 이리저리 책을 뒤지던 김재호(69세)씨는 나이가 있는 만큼 불금을 즐길 군번이 아니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2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서점을 찾는 그는 농업경영, 일반경영, 생산관리 등의 서적을 주로 찾아 읽고 있다고 말했다. 책을 자주 읽느냐는 질문에 “연 200권 가량 읽는다”며 자신을 따라 책을 읽기 시작한 직원들이 많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책이나 신문을 손에서 놓지 않는 다는 그는 책에서 읽은 좋은 문구를 메모지에 써서 직원들에게 나눠주거나 읽어볼 만한 서평을 신문에서 쭉 찢어 공유하고 있었다. 신문을 오리거나 메모지로 좋은 글을 퍼 나르는 그는 “자신을 아날로그 세대라며 이해 못하는 직원들도 있는 반면, 고마워하는 직원들이 있어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며 즐거워했다.

책 읽는 신데렐라를 위한 심야서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금요일 저녁 서점을 찾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20~30대 직장인들이 매우큰 폭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정이 넘어가기 전까지 궁전을 빠져나와야 하는 신데렐라처럼 저녁 10시가 지나면 책을 읽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한껏 취하고 싶은 사람들을 반기는 주점들과 달리 책에 취하고 싶은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 곳이 없는 씁쓸한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신데렐라들을 위한 공간이 생겨나고 있다. 저녁 10시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운영되는 심야서점이다. 심야서점이 오픈하기 한 시간 전 9시께 북티크 박종원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밤을 지새우며 심야서점을 지켜야 하는 만큼 체력 안배가 중요하다”며 그는 소파에 앉아 편한 자세를 취했다. 심야서점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그는 “줄곧 심야서점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을 해왔고, 해외에는 많이 있다고 들었다”며 “늦은 새벽시간까지 독자들이 책을 읽을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심야서점을 만들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책을 읽고 싶고 책과 친해지고 싶은 독자들 가운데 한 명이라는 그는, 자신을 “책을 깊이 있게 읽거나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라고 낮췄다. 이어 그는 “어떻게 하면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책과 친해질 수 있을까 매일 고심 한다”며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시간, 심야서점에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지난2월 타계한 움베르토 에코의 저서 ‘장미의 이름’을 읽고 있던 홍수연(38세)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심야서점을 찾기 위해 애쓴다. 이날은 다른 독서모임을 파하고 미쳐 다 읽지 못한 책을 마저 보기 위해 심야서점을 찾았다고 전했다. 그는 “어린시절 ‘장미의 이름’을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 이해가 되지 않던 부분이 이제는 조금씩 이해된다”며 즐거워했다.

처음 심야서점을 들린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지인의 추천을 받아 이곳을 찾았다는 정슬기(가명, 33세)씨는 “늦은 저녁시간 직장인들이 찾아갈 곳이라고는 술집 밖에 없는데 가끔 술이 당기지 않을 때도 있다”며 심야서점의 존재에 반색했다. 한 잔 술의 유혹을 떨쳐내고 심야서점을 찾은 이용현(33세)씨도 처음 이 곳을 찾은 사람들 가운데 한 명 이었다. 최근 들어 책을 읽지 못했다는 그는 휴식을 위해 여행을 자주 떠나지만 여행을 갈 수 없을 땐 책을 읽으며 간접 여행을 떠난다고 말했다. 답답하고 갈증이 생길 때면 책을 꺼내 읽는다는 그는 바쁜 직장인이지만 최근 에세이 한 권도 써냈다며 쑥스러워했다. 그는 또 “다양한 방식으로 책 읽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것 같아 행복하다”고 미소 지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카페 안쪽 구석에서도 조용히 자신만의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은혜(36세)씨는 이곳에서 열리는 한 독서모임의 회원이었다. 그는 “예전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 모임을 찾게 되었다”며 “오늘은 새벽까지 책을 읽고 싶어 모임이 열리는 날이 아니지만 심야서점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최근 읽고 있는 책 두 권을 가져 왔다는 그는 “오늘 몇 시까지 책을 읽으며 밤을 샐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을 계기로 자신을 시험해 보고, 다음에 찾아올 때는 몇 권의 책을 준비해야 할지 알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가방에 항상 한 두 권의 책을 넣어 다닌다는 그는 “종교, 역사, 문화 등 다양한 책을 읽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공포소설과 추리소설은 손이 안 간다”며 배시시 웃었다.

독서 문화의 확산

금요일 저녁 책을 읽는 북금족이 늘어나는 한편, 주말에도 거리로 나와 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카페였다. 하지만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떠는 일반 카페가 아니었다. 그 곳에는 수많은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있는 ‘북카페’였다. 토요일 오후 취재원이 찾아간 홍대입구역 근처 북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한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대학가 근처에 있다는 특성 때문인지 카페를 찾은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학생들이었다. 대학원생인 신종훈(27세)씨는 일주일에 2~3번 정도 이곳을 찾는 단골이다.
조용한 분위기와 다양한 책들에 매료되어 북카페를 자주 들린다는 그는 최근 인문학 책들을 탐독하고 있다고 했다. 컴퓨터 과학을 전공하는 그는 “5개월 전부터 이곳을 찾게 되었는데, 분야별로 다양한신간들이 많이 있어 한 권씩 읽어 왔고, 어쩌다보니 지금은 인문학도가 되어 가고 있다”며 웃었다.

여느 카페처럼 노트북을 켜 놓고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이정아(가명, 34세)씨는 “더운 여름이면 카페를 많이 찾는데, 북카페는 조용한 매력이 있어 자주 찾게 된다”며 이곳에서 번역작업을 하거나 연구 자료를 많이 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한국인들이 책을 많이 안 읽는다고 이야기 하는데 미국 사람들 보다 더 많이 읽는 것 같다”며 놀라워했다. 여러 무리의 학생들 사이로 독서를 즐기며 달콤한 주말을 즐기고 있는 젊은 직장인들도 눈에 띄었다. 올해로 7년차 직장인이 된 강정인(33세)씨는 매주말 마다 북카페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용히 흘러나오는 음악에 다들 집중해서 책을 읽고 있는 분위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책을 읽고 있다”고 말한 뒤 책으로 빠져들었다.



가족이 함께 책을 읽고 있는 테이블도 보였다. 올해 9살이 된 심유찬군은 아빠, 엄마와 함께 북카페를 찾았다. 평소 습관적으로 책을 보는 유찬이의 엄마 조정숙(41세)씨는 “매일 집에서 책만 붙잡고 있으니 유찬이가 ‘엄마는 책만 좋아한다’며 핀잔을 줄때도 있다”고 부끄러워했다. 유찬이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조정숙씨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고 했다. 그는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아이가 궁금해 하고 필요로 하는 지식과 경험을 들려주기 위해 책을 읽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 아이에게 책 읽는 습관을 만들어주기 위해 4년 전 부터는 집에서 TV를 없애고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답했다. 가족과 함께 북카페를 자주 찾는지 질문하자 그는 “혼자 책을 읽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책을 읽고 있는 북카페와 같은 공간도 있다는 사실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다”며 자주 오기위해 애쓰고 있다고 대답했다.

책과 멀어지는 대한민국

반면 국내 한 대형서점의 관계자는 “종이책 판매량이 매년 감소하고 있다. 대부분의 서점이 비슷한 처지에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취재원이 바라본 책을 읽는 사람은 과거에 비해 늘어나고 있었지만 실제 우리나라의 독서 실태는 취재 결과와 반대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10월부터 11월까지 실시한 ‘2015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독서율과 독서량은 과거에 비해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2015년 연간 독서율은 성인65.3%, 학생 94.9%로 2013년에 비하면 성인은 6.1%p, 학생은 1.1%p감소했다. 다시 말해 지난 1년간 만화, 수험서, 잡지 등을 제외한 일반도서를 1권도 읽지 않은 사람이 성인의 경우 3명중 1명꼴이었다. 연간 독서량도 함께 하락했다. 성인의 경우 연간 9.1권, 학생은 29.8권을 읽고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책 읽기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성인·학생 공통적으로 ‘일·공부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응답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책 읽기가 싫고 습관이 들지 않아서’라는 대답이 뒤를 차지했다.

한편 독서 문화에도 양극화가 점차적으로 심화되고 있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문체부는 보고서를 통해 성인의 경우 연령이 낮고 학력과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독서활동이 활발하다는 의견을 내 놓았다. 2015년 성인의 연평균 종이책 독서량은 9.1권으로 2013년보다 0.1권 줄어들었지만 독서자 기준 평균 독서량은 14.0권으로 2013년 12.9권에 비해 오히려 증가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은 증가하는데 반면 책을 읽는 사람은 더 많은 책을 읽으면서 ‘독서 양극화’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독서 관련 시설과 프로그램의 확충

명저 데미안의 저자인 헤르만 헤세는 ‘집안에 책의 향기가 늘 피어나게 만들어라’는 격언을 남기며 독서를 권장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1/3이 넘는 가운데 헤세의 권고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개인이 게을러서 책을 읽지 않는다고 단정 짓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과거에 비해 심각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책을 읽기 원하는 사람들은 독서환경 조성을 위해 ‘책 읽는 직장 만들기’, 독서 문화가 생활화 되는데 ‘독서교육과 독서 프로그램 보급’ 등을 요구하고 있었다. 부디 부의 양극화만큼 독서 양극화 현상이 심각해지지 않도록 우리 주위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하루 빨리 퍼져나가기를 기대한다.

 MeCONOMY Magazine August 2016
이홍빈 기자 lhb0329@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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