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포지션 경제학(26) 한국 조직문화, 이대로는 안 된다

  • 등록 2021.07.05 09: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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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5일 한국에서 가장 선망받는 직장 중의 하나인 네이버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메모를 남기고 자살하는 일이 일어났다. 네이버 노조는 자체 진상조사 결과 가해자의 무리한 업무와 직장 내 괴롭힘을 확인함은 물론 경영진이 이 같은 상황을 비호 했다고 말했다.

 

1999년에 서비스를 시작한 네이버는 2002년 지식 검색 서비스로 크게 성장해 지금은 온라인 쇼핑, 웹툰, 라인, 클라우드, AI 등 전방위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성장의 그늘이 깊다는 것이 노출됐다. 기업의 성장은 결국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키우고 동기를 부여하고 그 조직에서 일하는 보람을 느끼느냐’에 달려 있다. 주가가 오르고 국내외로 무섭게 성장하는 것 등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 안으로 썩으면 다 부질없다.

 

한국 IT 개발자가 힘든 이유

 

한국의 IT 개발은 선진국의 기술을 그대로 도입한 가운데 정부와 공공기관, 대기업의 하청으로 시작했던 문화가 현재도 남아 있다. 이런 하청 문화에서는 고객이 원하는 대로 맞춰주는 일 방식이다. 개발자의 전문성과 창의성이 발현되기보다는 클라이언트의 목표에 무리하게 맞춰줘야 하는 관행이 배어 있다. IT 개발은 첨단 산업인데 전통적 산업인 건설사의 관행과 유사하다. 또 우리나라는 국산 패키지 제품이 드문 점, 또 글로벌 패키지 제품보다 국산 패키지 제품에 대해선 과도하게 요구사항과 수정 요청이 많은 관행도 국내 개발자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이런 하도급 문화 속에서 개발자의 위치는 굉장히 취약하고 군기가 강하고 명령식 근무 행태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금은 군대에서도 없어진 ‘엎드려뻗쳐’가 남아 있다는 게 어이가 없기도 하고 외국에 알려질까 참! 창피한 일이다.

 

미국의 IT 문화는 IT 개발이 태동하고 난 뒤에 기업 업무에 적용해왔기 때문에 개발자의 위치가 독립적이고 확고하다. 한국은 미국의 IT를 그대로 도입하다 보니 발주 기업이 ‘갑’이고 개발사는 ‘을’인 문화가 여전히 강한 편이다. 미국과 일본은 설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개발자에게 분명한 role, 미션이 주어진다. 그러므로 다툴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한국은 설계가 부실하고 분명하지 않아 개발자가 계속 물어봐야 하고 이 과정에서 설계자인 윗사람이 ‘이것도 몰라? 공부 더해!’라는 식의 폭언이 나온다고 한다. 한국의 IT 개발 능력이 아직은 미숙하고 협업이 서투르다 보니 갈등 발생 문화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고 한다.

 

네이버 비즈니스 모델과 조직문화도 갈등 원인 제공

 

네이버는 IT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회사이지 엄밀한 의미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전문기업과는 거리가 있다. 네이버에서 개발자들은 개발 부서에 소속돼 있으면서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에 따라 계속 개발해야 하는 처지다. 마치 은행이나 공공기관 내의 전산실과 같은 위치라고 할 수 있다. 네이버는 창사된 지 20년 남짓 되는 동안에 급성장해왔고 수많은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가며 개발자뿐만 아니라 많은 외부 인력을 필요할 때마다 충원해왔다. 이질적인 인력이 뒤섞인 상태에서 바람직한 조직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자고 나면 변하는 경쟁 환경, 이에 따른 내외부의 요구는 고스란히 개발자들에게 ‘푸쉬’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비대면 확산으로 개발자 몸값 상승, 근무 문화 바뀔까?

 

네이버가 연봉 1.5배를 주고 개발자 스카우트 싹쓸이했다. 길게 보면 개발자들이 귀한 몸이 되고 있기 때문에 개발자를 혹사시키는 문화는 차츰 사라질 거라고 낙관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문화란 쉽게 변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 우리나라의 상명하복 문화는 2030의 MZ세대가 주류 세력으로 올라설 때까지는 사라질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민주적 조직 문화로 조기에 바꾸기 위해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기업부터 솔선해서 조직문화를 혁신하는 모범을 보이는 수밖에 없다. 물론 사회와 언론도 ‘일하기 좋은 조직문화’ 만들기를 진작하고 동참하고 포상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특히 말로만 포상하고 외부에 보여주기식은 사회를 속이고 자신을 속인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더불어 한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업을 산업화시켜야 한다. 현재는 개발 기업 수준이 중소기업 규모에 불과한 ‘업종’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선 정부가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인식을 일신할 필요가 있다. AI와 클라우드 시대를 맞아 바야흐로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삼성과 LG, SK, 현대차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나타나야 한다. 개발업의 분류도 체계화해서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육성시킬 필요가 있다.

 

한국 조직 역량의 전문성 향상 시급

 

직장에 오래 근무한다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일의 타성에 익숙해져 편향적, 비혁신적 고착성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래서 아래로부터 ‘개뿔도 모른다’라는 비아냥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 조직은 고참이 잘 가르쳐주지도 않고 아는 체하는 권위의식에 젖어 있거나 불합리한 관행을 답습이나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할 때가 됐다. 고참일수록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네이버 사태는 네이버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조직 전반의 문제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조직 내에서 오래 근무했다고 나이 많다고 전문성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에서는 조직 간 이동이 굉장히 어려워 일단 ‘괜찮은’ 조직에 들어가면 붙박이로 있다. 전문성은 자기의 전문적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이직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확보하게 된다. 한 직장에서만 몇십 연간 근무하면 오히려 전문성 향상엔 도움이 안 된다. 또 전문가가 되려면 이론과 실무를 골고루 잘 알아야 하는데, 한국에는 이론만 알거나 실무만 알거나 둘 중의 하나만 알고선 전문가인 체하는 이들이 많다. 이론이란 말 대신에 원리와 매뉴얼이라고 바꿔 불러도 된다. 어떤 일의 원리와 매뉴얼은 개념과 기초부터 상급 단계까지 꿰뚫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풍부한 실무 경험을 해봐야 한다. 이론과 실무를 어렴풋이 안 상태이니까, 아랫사람들에게 분명한 지시를 못 내린다. 잘못되면 부하 탓, 타 부서 책임으로 떠넘긴다.

 

인간이 경험을 통해서만 안다고 하면 아무리 좁은 분야라도 경험해야 할 일이 산적할 것이다. 원리를 알면 경험해보지 않은 경우도 유추를 통해서 실마리를 찾아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또 원리를 알아야 새로운 현상의 모순을 찾아내고 모순을 해결한 창조성도 얻게 된다. 원리를 모르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실무 경험이란 것도 대충하면 늘 그저 그런 능력밖에 보여주지 못한다. 정규직으로 30년을 근무해도 일을 대충하면 루틴한 노동자로 끝난다. 기술이 계속 발전한다고 보면 오히려 실무 능력은 퇴보한다고 보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한국은 조직 경영을 못 한다. 특히 대기업일수록 그렇다. 오히려 최근 뜨는 강소기업들은 민주적 조직 경영을 한다. 기존 대기업들은 예전 군대식 획일 문화를 답습하고 있다. 재벌 그룹 대기업들은 해외유학파 3~4세 오너경영체제로 교체되면서 과거 획일 문화가 불식되고 있는데 네이버와 같은 신생 대기업들에 획일적 잔재가 남아 있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성공한 창업 1세대의 자부심과 기존 대기업 등에서 스카우트 돼온 임원들과 간부들의 지나친 성과주의와 조급증이 어우러진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상의하달 조직문화가 100%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지금 시대에는 안 맞다. 한국 조직에서는 일 능력자가 대체로 승진하여 간부를 한다. 그리고 그 간부에게 전권이 주어진다. 그런데 일 능력자는 일은 잘할는지는 몰라도 성격이 괴팍하고 오만하고 편협할 가능성이 있다. 일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부장이 될 필요가 없는 구조와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부장은 관리자 역할을 하고 프로젝트의 지휘는 팀 리더가 하는 식으로 분리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부장과 팀 리더는 팀에서 투표를 통해 선출하고 돌아가면 한다. 부장과 팀 리더는 당연히 높은 연봉을 받는 형태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다. 일 잘하는 사람이 연봉을 더 높게 가져가는 식으로 구조를 짜면 부장 또는 팀 리더의 횡포는 사라질 것이다.

 

구글처럼 팀에 두 사람의 리더를 두는 방법도 있다. 일 리더는 코칭으로서 역할만 한다. 매니저는 상담자 역할을 한다. 매니저와 리더는 1년짜리의 짧은 임기로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맡도록 한다. 조직의 효율상 일 성과에 대한 평가는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팀 리더, 동료 평가, 관계자 평가 등 다면 평가로 하면 되지 않을까 한다. 선진국 기업의 경우 리더는 평가할 때 그 사람의 능력과 문제에 대해 조용히 리포트를 제출하면 끝이다. 우리처럼 폭언을 일삼는 방식은 없다고 한다.

 

21세기는 인재 제일(talent-first) 조직이 아니면 생존 못 해

 

한국 조직은 일하는 것보다 사내 인간관계가 더 힘들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요즘 세대들이 그런 불만이 많다. 부서 갈등을 불필요하게 증가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술 문화다. 여성 근무자들이 늘고 가정을 가진 여성 직원들이 많은데 늦게까지 술 마시고 노래방까지 가는 건 정말 고역이다. 한국의 과도한 직장 내 술 문화는 사기를 높이기는커녕 파벌 만들기, 갈등 유발, 휴식 뺏기, 피로 누적 등의 폐해만 가져온다. 한국의 술 문화를 일찍 고칠수록 좋다.

 

사실 한국의 조직들을 살펴보면 어느 곳이든 갈등 많고 문제 많은데 그 원인의 근본 뿌리는 각 조직에 전문가다운 상사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위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지시를 내리면 윽박지를 일도 없고 따라서 갈등이 일어날 여지가 줄어든다. 한국의 직장에 왜 전문가들이 극히 부족한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의 간부들은 ‘전투 경험’이 적다. 한 직장에서만 있으면서 승진하지 않고 자기 분야만 열심히 할 경우 기술자가 될지 모르지만, 전문가는 안 된다. 전문가는 자기 분야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하고. 기왕이면 직장을 바꿔가면서 경험해야만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다. 한국의 괜찮은 직장에서 상하 갈등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힘센 대기업과 공공기관 대 중소기업 간 갈등이 많은 것도 발주처인 대기업과 공공기관 구성원들이 중소기업 기술자들에 비해 전문성과 안목이 뒤지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중소기업 기술자들은 수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가운데 전문성을 확보하게 되나 큰 곳은 입사할 때는 우수하나 고인 물이 썩듯이 실력이 좀처럼 향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기술과 환경이 급변하는 시기에는 살아남아야 하는 중소기업 종사자와 대기업의 중간 이하 직원들이 윗사람들보다 더 나은 경우가 많아진다.

 

대기업의 고위간부들은 익숙한 기존 기술과 관념에 젖어 변화를 좇아가지 못하는 현상이 생겨난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나이와는 상관없이 실력과 안목에 따라 권한과 책임이 부여되는 인사 시스템으로 시급히 고쳐야 한다. 또 중소기업의 실력 있는 전문가들이 대기업과 공공기관으로 스카우트 되거나 전직이 자유로워질 때 전반적으로 전문성 있는 직원들이 증가할 것이고 불필요한 갈등도 점차 사라질 것이다.

 

페이스북은 2011년 무렵에 데스크톱 비즈 모델에 안주하다가 모바일 시대에 대응하지 못해 큰 위기를 맞았다. 창업자인 저커버그를 향해 곧 망할 거란 조롱 섞인 기사들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저커버그는 전사의 역량을 모바일에 집중해 2016년 수익을 2013년보다 세 배 이상 키웠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저커버그가 창업 때부터 운영해왔던 자율성과 창의성이 넘치는 팀의 문화 때문이라고 인사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기술이 문제가 아니냐 조직 문화가 성공 요인이라는 것이다. ‘기술’은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간단한 사실을 저커버그는 알았기 때문에 페이스북은 위기를 기회로 대성공을 거두는 변신이 가능했다. 조직이 커지고 힘센 대기업이 되면 관료화가 진행된다. 관료주의는 혁신에 독이 된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모바일 전환에 힘겨워하고 대성공을 거둔 신생 대기업들에서 조직 갈등들이 수면에 떠 오르는 것은 권위주의적 관료 문화 때문으로 보인다. 관료화는 상사에게 권한과 보상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의 인사 시스템처럼 팀장이 되는 것과 보상을 분리시켜야 한다. 사장보다, 팀장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는 팀원들이 얼마든지 가능할 때 그 조직은 ‘파닥파닥’ 살아 있는 조직이 된다. 미국 기업에만 있는 얘기가 아니고 극히 드물지만, 한국의 강소기업들에서도 그런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곳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조직문화는 이제 대변신을 서둘러야 한다. 

 

MeCONOMY magazine July 2021

이상용 기자 media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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