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혼돈에 빠졌다. 12월 3일 늦은 밤에 대통령을 갑자기 느닷없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했고 시민들은 두려움과 혼돈에 빠졌다. 한밤의 아수라장은 시민들의 용기있는 행동과 국회의 지혜로운 처신으로 겨우 진정은 시켰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혼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후 위기, 저출산, 불평등, 지역소멸 등 우리 사회에 놓은 중첩된 위기는 모든 것이 휘발되어 버렸다. 당분간은 계엄과 탄핵의 정치가 모든 사회적 이슈를 삼켜 버릴 듯하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또 위기를 맞이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그 원인은 권력이 위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즉, 무게의 중심이 위에 있기 때문이다. 무게중심이 위에 있다면 작은 충격에도 쉽게 쓰러지고 만다. 하지만 아래에 있으면 웬만한 충격에도 쓰러지지 않거니와 쓰러져도 금방 일어선다. 오뚝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오뚝이의 회복탄력성이 큰 것은 무게중심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왜 위기에 빠졌는가?
무게중심 이론은 다른 국가에서도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국민의 권한이 강한 나라다. 발달한 직접민주주의 제도 덕분에 국민의 직접 헌법이나 법률을 제안할 수 있고, 이를 국민투표를 통해 개정으로 이끌 수도 있다. 외국인에게 스위스 국적을 부여할지는 국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 주민들이 주민총회에서 결정한다. 왜냐면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바로 이웃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막강한 국민의 권한 때문에 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면서도 가장 역동적인 국가로 자리잡고 있다.
멀지 않은 대만의 경우에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와 비슷한 역사 경험을 가진 대만은 2018년까지만 해도 민주주의와 경제력에서 대한민국에 뒤처졌다. 2006년부터 매년 발표하고 있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기관 EIU의 세계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촛불 시민혁명을 통해 집권한 문재인 정부 초기에 20위(2017년), 21위(2018년)를 기록해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올라섰지만, 대만은 33위(2017), 32위(2018)로 ‘결함이 있는 민주주의’ 국가였다.
하지만 2018년 대만은 국민이 직접 국민투표를 제안할 수 있는 국민투표법을 획기적으로 바꾸면서 대만 민주주의의 위상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주요 사회적 현안에 대해서 대만 유권자의 1.5%가 동의하면 국민투표를 발의할 수 있고 유권자의 25%가 찬성하면 정부가 관련 입법을 하고 국회는 통과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스위스에 비해 불완전한 국민 발의-국민투표법이지만, 2018년 한 해에만 일본 후쿠시마 농산물 수입 여부 등 10건을 국민투표로 결정했다. 2021년 민주주의 지수에서 대한민국은 역대 가장 높은 17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대만은 국민투표법의 영향으로 북유럽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8위에 올랐다.
올해 발표된 23년 민주주의 지수에서 대한민국은 22위로 완전한 민주주의 상태에서 겨우 턱걸이를 유지했지만, 대만은 세계 TOP10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제도 하나가 한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스위스식 국민발안 제도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헌법에 국민도 헌법과 법률 개정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하자는 원포인트 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됐다. 국회에서 1/2의 동의로 국회발의는 했지만, 개정을 의결할 수 있는 2/3까지는 이르지 못해 개헌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시민사회에서는 헌법에 국민의 발의 조항을 넣자는 개헌안을 끊임없이 제안하고 있지만, 현재의 정치구조로는 쉽지 않다. 1987년 같은 혁명적 상황이나 돼야 헌법개정의 가능성이 열리는데, 비상계엄-탄핵-대통령 선거로 이어질 정국은 헌법개정의 마당으로 이어질 듯하다.
국민발안과 국민투표 등 국민주권을 강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시민의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시민의회는 국민 모두가 공론장에 참여할 수는 없기에 인구 대표성을 고려한 작은 공중(mini public)을 구성해 무작위로 선출된 시민들이 숙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사회적 엘리트·기득권들로 구성된 대의민주제의 한계를 보완하고, 직접민주주의가 가지는 실현 가능성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융복합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시민의회를 통해 현재의 난국의 극복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효율적인 방법이지만, 자신들의 권한을 침해한다고 보는 기성의 정치권은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은 있다.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 설득해야겠지만, 만약 기성의 정치권이 수용하지 않는다면 시민사회의 힘으로 직접 진행해 볼 필요가 있다. 예산, 집행 기구 등 풀어야 할 문제는 적지 않다. 하지만 시민들의 집단지성을 모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위기의 한국 사회, 시민들의 집단지성 ‘시민의회’로 극복을!
시민의회가 자리를 잡는다면 한국 사회의 갈등 비용은 현저하게 줄어들 수 있다. 정확한 추산은 어렵지만 우리 사회는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연간 2~300조에 달한다고 한다. 엄청난 비용이다. 우리 사회 개개인들의 낮은 행복감과 복지, 최저의 출산율과 최고의 자살률 등은 이런 갈등과 사회적 비용의 종합적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만약 겨울과 봄 사이에 탄핵이 이뤄지면 봄과 여름 사이에 대통령 선거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리고 1년 뒤에는 지방선거가 있다. 한국 사회가 갈등과 혼란의 소용돌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선거를 좌우해 권력의 무게중심으로 아래로 낮춰야 한다. 가능한 한 많이 국민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서 무게중심이 위로 올라가지 않도록 해야 위기에도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설령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빠른 시간에 회복할 수 있다.
현재의 상태로는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하지 않다. 불평등, 불균형, 기후 위기 등 다종다양한 위기를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극복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쉬운 과제는 아니지만, 결국 해법은 정치에 있다. 우리 국민은 위기에 빛나는 순간들을 보여주었다. 위기는 항상 기득권층이 불러왔으나 그 위기를 극복한 것은 수많은 국민이었다. 이번 계엄과 탄핵의 위기 상황에서도 집단지성과 지혜를 보여주었다. 특히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나서면서 한국 사회의 미래가 어둡지 않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기후 위기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직접·숙의·추첨 민주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시민의회를 도입해 보자. 시민의회는 권력의 무게중심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고, ‘민주주의자가 있는 민주주의’를 만드는 가장 확실하고, 근본적인 처방이다. 겨울 광화문에서 서로에 대한 비난과 온라인에서 키보드 난타전 대신에 모두가 평등하게 참여하고, 공정하게 합의를 만드는 시민의회를 도입해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기회로 만들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