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25년 전, 당시 미 재무부 장관이었던 래리 서머스는 하원 세입 위원회 청문회에서 “경제학자 5명에게 질문을 하면 10가지 다른 답변이 나온다는 말이 있다”면서도 그는 “위원회에서 논의한 문제에 대한 답은 단 하나만 있다”고 했다.
그것은 곧 “중국을 WTO(세계무역기구)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이면” 여러 경제학자가 보장하듯 “미국인들에게 더 나은 일자리와 더 큰 번영을 안겨다 줄 것”이라는 거였다. 하지만 약속한 대로 되지 않았다.
미국 근로자의 운명을 개선하기보다는 미국 정부가 기업에 호의를 베풀어 그들의 생산시설을 임금이 싼 여러 나라로 옮기도록 고무했을 뿐이다. 그 결과는 경제학자들의 예측과 사뭇 달랐다. 미국의 산업 생산량은 2000년대 중반 이후 계속 정체되어 있는 게 고작이었고, 제조업 부문 근로자의 생산성은 10년 이상 떨어졌다.
미국은 반도체부터 배터리, 상업용 항공기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다른 나라에 뒤처졌다. 최고 전성기였을 때 인텔의 최고경영자였던 앤디 그로브와 같은 기업 리더들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무역 적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새로운 시장에 접근하면 이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되었던 첨단 기술 제품의 적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전국적으로 지역 사회가 붕괴하고, 절망으로 인한 사망자가 급격히 늘었다.
미국은 오판했다. 2000년 3월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중국의 WTO 가입을 강력하게 지원하자고 이렇게 연설했다.
“처음으로 미국기업은 제조시설을 중국으로 이전하거나 귀중한 기술을 이전하지 않고도, 미국에서 미국 근로자가 만든 제품을 중국에서 판매 및 유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일자리를 뺏기지 않고도 제품을 수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중국의 WTO 가입은 단순히 우리 제품의 더 많은 수입에 동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소중한 가치의 하나인 경제적 자유를 수입하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중국이 경제를 자유화할수록 중국 국민의 잠재력, 즉 진취성, 창의성, 놀라운 기업 정신이 더욱 자유롭게 해방될 것입니다. 그리고 개개인이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면 그들은 (중국 정부에) 더 큰 발언권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중국은 2001년 12월 11일 WTO 회원국이 됐고 미국 의회에서 무역관행에 대한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의 지위를 얻었다. 그러나 중국은 WTO 가입할 때 약속했던 많은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고 WTO라는 기구를 자신들의 방패 막으로 이용했다.
결국 미국은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중국을 WTO 가입시켜 줌으로써 중국의 내부 개혁이라든가 자유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촉진한 게 아니라, 20년 뒤 미국 경제를 위협하는 거대한 호랑이로 키우고 말았다.
일찍이 워런 버핏"은 “우리는 농장의 일부를 팔고 우리가 아직 소유하고 있는 농장을 담보로 대출만 늘려준 꼴"이라고 경고했듯이 미국은 이 과정에서 수백만 개의 생계 수단을 잃었다.
이를 잘 아는 바이든 대통령이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중국에 대해 거친 압박을 가하리라는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런데도 경제학자들은 요즘도 도널드 트럼프의 관세 제안에 반대하기 위해 잘못될 수 있는 경제적 가정과 모델을 들먹인다.
보수적 경제 싱크탱크인 「American Compass」의 수석 경제학자인 오렌 카스(Oren Cass) 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의 관세 제안이 "재앙"이고 "매우, 매우 나쁜 결과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 미국기업 연구소의 마이클 스트레인과 "광기"이고 "끔찍한 것”이라 한 미국의 싱크 탱크인 「피터슨 국제 경제 연구소」의 회장인 애덤 포슨을 소개했고 아울러 월스트리트 저널이 조사한 39명의 학계 경제학자는 모두 트럼프의 아이디어에 "강력히 반대"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신빙성을 잃은 경제이론 체계(framwork)에 헌신해 온 경제학자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그 위에 구축된 모델에 의존하고 있는 듯하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G-Cubed”라는 모델을 사용하여 미국이 2000년에 중국에 부여한 영구적이며 정상적인 무역 관계를 철회하면 가격이 상승하고 소득이 감소하면서 제조업 생산량이 감소하리라 예측했다.
사실상 경제학자들은 1990년대부터 이 모델을 사용하여 자유 무역이 모든 측면에서 항상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는 것을 보장하는 연구를 수행해 왔다. 예일 대학의 예산 연구소는 “글로벌 무역 분석 프로젝트 모델”을 사용하여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최근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연구에서는 이 모델이 이전의 무역 협정 결과를 예측하는 데 있어 "근본적으로 예측 정확도가 전혀 없다," 라고 경고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대표적인 미국의 소설가 코맥 매카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암살자 안톤 치거(Anton Chigurh)가 다음 희생자인 카슨 웰스에게 "당신이 지켜온 규칙이 당신을 여기까지 오게 했다면, 그 규칙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다시 말해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 주장이나 이론이 지금에 와서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렇지만 특정 이론에 자신의 명성을 걸고 있는 전문가의 마음을 바꾸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는 듯하다.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그래서 가장 객관적인 분야에서도 "새로운 과학적 진실은 반대자들을 설득하고 그들이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자들이 결국 죽고 그것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가 성장함으로써 승리한다," 고 지적했다.
요즘처럼 어수선한 시국 또한 토론이나 설득 없이 그렇게 될까 우려스럽다. 하지만 모든 사건의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는 법, 그때 가서 자기 자신이 부끄럽지 않도록 말과 행동에 신중해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문득 내 머릿속으로 24년 전 WTO에 가입한 중국경제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상하이 등지를 취재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중국경제에 대해- 특히 중국에 대해 잘 모르면서 잘난 척하며 프로그램을 만들지나 않았을까? 하는 자괴감이 든다. 아~ 그래서 사람들이란 여러 가지 거짓 답변이나 변명을 준비하는 것이구나!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