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늪 한국호, 혁신 경제만이 탈출구

  • 등록 2025.03.02 16: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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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뱅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가 2011년 이후 2~3%대의 경제성장률을 보여오다가 작년에 1.4% 성장했다. 올해 전망치는 2% 성장률도 간당간당해 이러다가 1~2% 사이의 저성장 늪에 빠지는 건 아닐지 우려된다. 경제의 틀과 방향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하고 새판을 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상공회의소 회장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폭적 관세 부과 등을 이유로 수출주도형 경제모델이 한계가 왔다고 언급했다. 최 회장의 말에 타당한 부분이 있으나 수출주도형 모델은 내수가 작은 한국 경제에선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본다. 다만 수출주도형 모델에서 그간 대기업이 주체였다고 하면 앞으로는 중소기업이 주체가 되는 변신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성장률이 3%대 아래로 내려앉은 데는 제조업 중심의 대기업 제품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수출 경쟁력 저하의 가장 큰 요인은 범용 기술의 제조업에서 중국 세가 급증한 까닭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첨단 기술에선 미국과 일본에게 치이고 범용 기술에선 가성비 와 물량에서 중국에게 밀리는 상태가 지난 10여 년간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 대기업들은 기존 타성대로 첨단기술 을 쫓아가기에도 벅차다. 근래 삼성전자의 부진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까. 반도체와 가전, 스마트폰, 디스플 레이 등 모든 제품군에서 중국과의 경쟁에서 힘든 경쟁을 하고 있다.

 

예로부터 유망한 중소기업에서 첨단기술과 창조적 혁신 제품으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경우는 있어도 대기업에서 첨단기술과 혁신 제품을 계속 시현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지금 미국 빅테크 기업들과 실리콘 벤처기업들은 AI와 로봇과 양자컴퓨팅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한국 대기업들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AI 분야 국내 스타트업들이 주목을 받는 곳들이 있다지만, OpenAI의 생성형 AI가 막 출현한 초기에 시장을 선점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네이버와 카카오, LG 등이 현재의 AI 열풍에 앞서 수년 전 부터 막대한 기술 투자를 하고서도 미국 기술기업들이 새로운 서비스를 하루가 멀다고 내놓는 데에 대해 별다른 대응 못 하고 있다. 생성형 AI 시장 분야에서 안방을 다 내놓아야 할 판이다.

 

휴머노이드 로봇도 국내 대기업들은 관망만 하다가 이제야 삼성이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최대 주주로 등장하면서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창업자인 오준호 카이스트 명예교수를 미래 로봇추진단장으로 영입했다. 지금 회고해보면 우리 정부가 잘못한 것은 레인보우로보틱스와 같은 스타트업 로봇 기업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해서 그들 중에 대기업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하지 못한 것이다.

 

반도체를 보더라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두드러져 보이고 중소기업들의 생태계가 발전되지 못해 그들 중에서 대기업급 반도체 부품기업들이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우리나라 반도체업계가 가지고 있다. 바로 이 부분의 약점 때문에 대만과 반도체 기술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고성능 칩인 HBM 납품이 계속 지연되면서 체면을 구기고 있는 실정이다.

 

양자컴퓨팅에서도 미국은 IBM, 구글, MS 등 빅테크들과 아이온큐 등 중소기업들이 골고루 선전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은 이제 걸음마 수준이다. 지난해 11월 연세대가 IBM으로부터 양자컴퓨터를 도입해 가동한 게 빅뉴스에 속할 정도다. 국내 대기업들은 미래를 거의 준비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경제의 반면교사, 일본은 왜 혁신 경제 시스템을 이루지 못했나

 

본격적인 글로벌 경제레이스는 2차 대전 이후였다. 2차대 전 이전에는 유럽과 미국 등 서구 국가들끼리의 경쟁이었다. 2차 대전 이전에는 서구 국가들과 비서구 국가 간 격차가 너무 컸다. 결정적인 차이는 과학기술과 기독교 정신과 철학을 비롯한 학문이었다.

 

비서구권 국가 중에서 서구권에 도전할 첫 번째 후보는 동아시아권이었다. 동아시아권은 유교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학문을 숭상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한-중-일 3국 중에서 한국이 가장 강한 학문 숭상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동양의 학문은 과거의 유교적 지식을 공부하고 윤리를 고수하는 성격이고 새로운 사실과 진리를 탐구하는 성격의 학문은 아니었음도 알아야 한다. 달리 말하면 동양의 학자는 유학에 기반한 인문 사회학적 성격이어서 이공계적 성격은 없었다.

 

동아시아권의 서구 문명은 일본이 바다를 통해서 맨 먼저 도입했다. 당시 일본은 벤치마킹 대상을 영국과 독일로 삼았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미국의 잠재적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명치유신 당시는 아직 미국의 진정한 가치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을 타깃으로 삼지 못한 것 같다.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을 벤치마킹하여 진일보한 체제와 시스템, 문화를 만들어 냈기에 1차대전 무렵에는 세계 리더국으로 위치를 잡아가고 있었다.

 

일본은 2차 대전에서 미국과 전쟁을 벌이고 원자폭탄을 맞으면서 패배했다. 일본은 그 이후 패배감으로 미국을 진심으로 벤치마킹하지 못했고, 서구의 보편적 스탠더드를 완전히 모방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청 말부터 지금까지 동도서기론이란 인식 아래 오직 서구로부터 과학기술만 받아들이고자 했다. 중국은 경제가 크게 성장하자 중화주의로 퇴행하고 말았다. 중화주의는 서구의 뛰어난 철학과 학문 등 정신문화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으로, 중국식 사회주의 사상이란 게 그런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 문명사를 조망해 보면 후발국이 문명 선도국을 추격하고 선도국을 앞서나가려면 두 단계를 거쳐야 한다. 첫 단계는 선도국의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을 100% 벤치마킹하여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둘째 단계는 선도국을 계속 모방하다 보면 어느 순간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것을 만들 수 있다. 그 혁신적인 것은 선도국의 장점에다 자기만의 창조적인 것이 합쳐진 것이다. 일본과 중국은 첫 단계에서 도중하차했다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아의 가장 후발국인 한국은 일본의 것은 물론 미국과 유럽의 장점들도 모두 철저히 벤치마킹해 왔다. 한국은 첫 단계를 거의 완료하고 이제 둘째 단계의 시험대에 올라서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지금 세계를 풍미하고 있는 한류가 뚜렷한 증거다.

 

K팝에서 시작된 한류가 첨단기술과 AI, 로봇, 양자컴퓨팅 등 새로운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K 바람을 일으킬 때 둘째 단계의 국가 발전에 진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문명 선도국은 자부심과 자존심, 교만심의 복합적 요인 때문에 추격자들의 것을 배우지 않는다.

 

미국은 유럽을 벤치마킹해 1등 강대국이 되고 난 뒤에는 스스로 자아도취 해 후발국인 일본과 독일에서 배우지 않았다. 더욱이 한국에게서 배울 리도 없고 중국에 대해서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어서 배우지 않는다.

 

중국도 원래 서구로부터 문명을 배울 의사가 없었고 과학 기술 분야에서는 미국과 유럽에 대해 대등한 수준으로 올라서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에서 배우지 않고 제 갈 길로 가고 있는 듯하다. 한국은 언제든 배울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앞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여지는 충분하다. 어떻게든 나아가야 할 것이다.

 

 

◇선진 국가 및 선도 기업의 발전 원리는 오직 혁신 시스템뿐

 

선진국의 선도기업의 경쟁 우위, 즉 그 기업이 가지고 있는 경쟁적 우위를 전문성의 기준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전문성은 시간적으로도 달라지는데, 이것을 ‘고정성’과 ‘변화성’ 이란 개념으로 설명해보자. 전문성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시장에 한계가 있어 한계효용의 법칙이 작용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전문성 대신에 기술이란 용어로 설명해 보자. 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기술의 시장 가치는 사라진다. 반면에 높은 수준의 기술적 전문성을 유지하려면 고급 인력의 임금과 고가 장비 등 코스트가 상승 하기 마련이다. 이런 고비용을 감당하면서 수익을 내기란 점점 어려워진다. 아무리 전문성과 기술이 높고 고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도 시장 전체를 독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기 시장이 축소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제한된 시장 수요에서 언제나 경쟁자들과 추격자들이 존재하기 때 문이다.

 

추격자들은 항상 가성비의 이점을 가지고 시장을 잠식해 오다가 마침내 기술 선도자들을 코너에 몰아넣는다. 선도자들은 처음에는 기술적 우위를 가지고 추격자들을 따돌 릴 수 있지만 추격자들의 기술력이 선도자들을 거의 따라 잡으면 그때부터는 코스트 경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선도자들 대부분이 코스트 경쟁에서 패배함으로써 시장에서 밀리다가 결국 퇴출되고 만다.

 

선도자를 물리친 추격자는 이제 자신이 선도자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데, 그도 한동안은 선도자의 이점을 누리지만 역시 후발 추격자들에게 내몰리는 똑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이것은 전문성과 기술 시장의 법칙이라고 할 만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전문가와 기술자, 기업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전문성은 고정성과 변화성이란 상호 모순된 두 가지 속성 을 가지고 있음을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문성은 체계적인 프로세스와 품질 관리, 지식과 기술과 기능의 숙련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전문성은 시장에서 유용성이 입증되 는 동안에는 고정성을 지닌다. 그러나 시장의 수요가 변하고 경제 환경이 바뀌고 새로운 기술이 출현하거나 추격자 들의 집요한 공격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도자가 전문성의 변화성을 나 타냄으로써 생존하느냐 도태되느냐의 갈림길을 마주하게 된다.

 

기업의 경우는 후발 추격자가 선도기업을 따라잡는 데에 대략 30~40년 걸리는 것 같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전자 산업을 일본이 쫓아가는 데는 20년 정도밖에 안 걸렸다. 한국이 일본 전자 산업을 배우고 추월한 기간은 30년쯤 필요했던 것 같다. 중국이 한국의 전자 산업과 동등한 수준에 이르는 데 어느 정도의 기간이 필요한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비슷한 기간이 걸릴 것이다. 일본의 추격 기간이 짧았던 것은 일본의 기술적 기반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선도기업이 후발 기업에 추격당하는 위기에 처하면 대부분 기존의 기술을 고도화하고 품질 향상을 꾀하는 프리미엄 전략으로 대처하려고 한다. 기존에 우위를 가지고 있는 기술을 더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이므로 쉬운 길이기도 하지만, 그와 같은 프리미엄 전략으로는 곧 한계를 드러낸다. 기술 향상이 순조롭지 않으면 디자인과 마케팅 프리미엄으로 대응하려고 하지만, 디자인과 마케팅은 쉽게 따라 할 수 있으므로 효과가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에 때마 침 노조의 지속적 임금 인상 압력이 거세지고 장기화하면 쇠락의 길을 걷는다.

 

잠시 프리미엄 전략으로 대처할 수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혁신 전략으로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스마트폰의 선도자인 애플과 삼성전자는 프리미엄 전략으로 중국 세에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실정이다. 선도자의 대응 전략은 혁신 전략이 유일한 방법이다. 이것은 기업이나 국가나 변함없이 적용되는 원리인 것 같다.

 

혁신성의 배다른 쌍둥이를 창조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혁신성과 창조성은 경제 뿐만 아니라 정치와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필요하다. 오래된 것은 족쇄가 되고 썩기 마련이다. 혁신성과 창조성 은 새로운 생명을 탄생하는 것에 비유해도 틀리지 않을 듯하다. 도전하는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첨단기술과 AI와 같은 신기술 분야에서 K-혁신이 만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이상용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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