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다극적 국제 질서를 원할까?

  • 등록 2025.03.29 15:5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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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과격 외교 행보는 참으로 해괴하다.

 

주변국을 포함해 자신의 관심 영역에 들어온 국가를 상대로 무분별하게 관세를 부과하면서 지구촌 통상 질서를 파괴하고, 세상을 온통 혼란의 불구덩이에 빠뜨리고 있다. 특히 동맹국을 상대로 상식을 뛰어넘는 공격을 감행하면서 미국이 패권국 지위를 스스로 포기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런 의견들은 지난 10여년 동안 미국 쇠퇴론을 주장해온 국제 정치 분야 전문가들에게 기존 주장을 강화하는 논거로 활용되고 있다. 즉 1991년 냉전 종식을 계기로 미국을 유일한 패권국가로 하는 단극 국제질서가 성립됐는데, 2008년 전후 발생한 세계금융위기를 전환점으로 해서 다극 질서로 변경됐다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이런 주장은 신중하게 제기돼야 하고, 검토돼야 한다.

 

과거 인류 역사를 보면 국제 질서 변경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다. 국제 질서는 외교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 중에 하나다. 그러므로 국제 정세 분석에서 오류가 발생하면 외교 정책에서 오류를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다극질서 논란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우선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다극 질서를 원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과격 행보를 보면 패권국 지위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트럼프 발언을 분석하면 트럼프가 원하는 것은 다극 질서가 아니라 오히려 매우 강력한 미국 중심의 단극 질서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트럼프가 원하는 것은 미국이 자국 이익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주저하지 말고 감행해서 미국의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는 단극질서냐, 다극질서냐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관심사는 미국이 위대한 나라로 모든 나라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데, 민주당을 중심으로 기존 엘리트들이 외교정책을 잘못하는 바람에 미국이 국제사회, 특히 동맹국들의 호구가 돼서 국익 증대가 아니라 국력 축소 경로를 걸어왔다는 인식이다. 그래서 자신은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전개하고 국익을 증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극 질서속에서 미국이 여러 개의 강대국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모든 나라를 압도할 수 있는 절대 강국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트럼프 대통령이 과격한 외교 정책을 펴는 것을 다극 질서를 선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심각한 방향 착오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가 원하는 것과 상관없이 트럼프 정책이 미국의 쇠퇴를 유도하고, 그러므로 다극 질서는 필연적이라고 주장하는 논리도 있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미국은 냉전 종식 이후 자유무역을 핵심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지침, 또는 세계화 전략을 전개하면서 엄청난 이익을 챙겨왔다.

 

현재의 국제 질서는 미국의 이익에 최대한 봉사하는 구도인데, 트럼프가 추진하는 정책은 기존 질서를 허물기 때문에 미국 이익이 줄고 미국 위상이 추락하면서 다극 질서가 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매우 큰 나라고 큰 나라는 단지 한 사람에 의해 미래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트럼프의 정책은 미국의 이익을 축소하는 자해 의미가 크기 때문에 미국의 다른 엘리트 집단이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의 정책, 특히 관세 정책은 국내 물가 인상 요소가 되기 때문에, 망나니처럼 관세의 칼을 휘둘러대는 트럼프의 행보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 아마도 올해 가을이 되기 전에 트럼프는 미국 안팎의 충격파에 반응하면서 타협책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의 정책이 변경될 것으로 보는 배경 중에는 중국의 세계 전략 변화가 초래하는 다양한 역동성에 대한 계산도 포함된다. 종합적인 국가 역량을 고려할 때 중국은 언젠가 미래에 미국을 대체해서 차기 패권국을 꿈꿀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현재 트럼프가 추진하는 정책은 대부분 중국이 반사이익을 얻기에 적절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사실 중국은 최근 수년 동안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장애 요소에 직면하면서 40년 이상 지속했던 발전 추세가 주춤하는 국면에 들어 있었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중국 때릭, 즉 미중 전략 경쟁, 다른 한편으로는 시진핑 주석 중심의 유일지도체제를 정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모순이 중국 발전의 걸림돌이었다. 이런 상태로 중국이 4,5년을 보낸다면 중국은 아마도 유일 지도체제를 안정화시키지 못하고 정치 분야 통합성이 심각하게 균열하는 시나리오를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과격 정책으로 중국은 미국의 압박에 힘들어하는 세상의 많은 나라들과 협력하고 연대하면서 다시금 신뢰할 수 있는 거대국가 이미지를 되찾을 수 있게 됐다. 이런 상황을 미국의 다른 엘리트들이 방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 기득권 엘리트들의 득실 계산을 고려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일탈은 1,2년 내에 중단되고, 미국의 패권국 지위가 흔들리는 양상도 2,3년 이내에 멈출 것이다.

 

미국 요소를 살피는 것과 더불어 다극 질서의 축을 형성하는 다른 강대국 사정도 검토를 해야 한다. 미국과 더불어 다극 질서의 축이 될 수 있는 나라는 중국을 필두로 해서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를 거론할 수 있고, 다음 단계 강대국으로 독일과 일본, 한국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나라도 지구촌 차원에서 국제 질서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이나 의지를 가진 나라는 없다.

 

중국의 종합국력이 앞서 있지만, 국제 사회에서 존경과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중국 국내 정치 차원에서 불만이 누적돼 있고, 경제적으로도 개인 소득 부문이나 복지 분야에서 국제 질서를 주도하기에는 자기 코가 석자인 상황이 달라지기 어렵다. 러시아 역시 서방 진영 강대국들과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점을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증명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국가 경제 발전이나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이나 중국과 체급이 다르기 때문에 국제 질서를 토론할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없을 것이다. 독일과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 이미지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 질서 지도국이 되기에는 거부감이 많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신흥 강대국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강대국 경험이 거의 없고, 분단국이라는 취약성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에 국제 질서를 만들거나 변경하는 역량을 보여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를 대신해서 미국과 중국이 병립하는 다극 질서, 또는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한국 등이 참여하는 다극 질서가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은 개연성이나 가능성 차원에서 고려할 수는 있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 미국 외에 다른 나라들이 다극 질서 구축의 필요성을 깨닫고 구체적으로 새로운 질서를 추진한다고 해도 5년 이상의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이다.

 

반면에 미국은 늦어도 내년 11월 중간선거 이후에는 패권국 모드로 되돌아갈 것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중대 오판에 따라 현재 느슨한 미국 주도 단극 질서는 더욱 느슨해지고, 세상의 혼란은 더욱 커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국 중심의 단극 질서가 더욱 느슨해지겠지만, 다극 질서로 변경됐다거나 변경된다는 정세 평가가 전망은 지난친 단순화 오류 가능성이 내재한다. 정세 진단에서 오류가 있다면 효과적인 전략과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극 질서 도래를 전제로 대외 정책 변화를 촉구하는 분석이나 평가는 여전히 시기상조다.

 

 

편집국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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