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해의 또 다른 위험성
기후변화와 재해가 반복되는 현실이다. 단기적 복구를 넘어 장기적 회복력과 지역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2022년 경북 울진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이후 충분한 대응책이 마련되었다면, 이번 의성·안동 등 경북 동북부 지역에서의 초대형 산불 피해를 일정 부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아쉬움이 크다. 울진의 경험은 단순한 지역적 사건이 아니라, 한국 산림과 농촌 전반에 대한 위기 경보였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진 산불이 울진 산불이다. 2022년 3월 4일 울진에서 시작되어 강원 삼척까지 번진 초대형 산불인데, 213시간 43분 동안 지속되며 약 2만 헥타르의 산림을 태웠다. 이 산불은 열흘 만에 진화됐다. 당시에도 진화의 결정적인 변곡점이 된 것은 예상치 못한 비였다는 점에서, 자연 의존형 대응의 한계를 다시 한번 드러낸 사례로 기록되었다.
이번 경북 산불은 약 149시간 동안 지속되었으며, 산림 4만 5천여 헥타르가 불에 탔고, 3,285채의 주택과 1,142곳의 농업시설이 전소되었으며, 7,000명에 가까운 이재민이 발생했다. 26명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었고, 산불 영향은 단순한 환경적 피해를 넘어 지역 사회 전체의 붕괴로 이어졌다. 이 지역은 또한 국내 사과 주산지 중 하나로, 산불로 인해 사과 재배지의 피해도 심각한 상황이다. 청송군만 해도 연간 약 8만 톤의 사과를 생산하며, 이는 전국 생산량의 약 10%를 차지한다.
◇재해・기후와 사과 경제
산불 피해 이후 사과나무가 전소되거나 생육 환경이 악화되면서, 단기적인 생산량 감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농산물 가격 동향을 살펴보면, 산불 발생 이후 3월 말부터 상품 등급에 상관없이 후지 사과 10개 묶음의 소매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이는 단지 일시적인 가격 변동이 아니라, 사과 공급의 불안정성이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가격 상승이 장기적으로 소비자 물가에 악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다는 점에 있다.
사과 가격은 향후 더 큰 폭으로 오를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재고 감소 때문만이 아니다. 사과나무는 특성상 한 번 전소되면 다시 수확 가능한 단계로 자라기까지 최소 4~5년이 걸린다. 이 기간 동안의 공급 차질은 지속적인 가격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과수고품질시설현대화사업 등을 통해 피해 농가에 묘목을 보급하고 있으나, 단기적인 수급 불안 해소에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기후변화는 사과 농업 전반에 구조적인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1912년부터 2020년까지 우리나라의 연평균 기온은 10년마다 0.2도씩 상승하는 추이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전 세계 평균보다 약 3배나 빠른 상승 속도다. 특히 2024년의 연평균 기온은 14.5도로, 11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기온 상승과 함께 초봄 평균기온도 오르면서 사과의 개화 시기도 평년보다 약 4일 앞당겨지고 있어 개화 시기와 늦서리(이상저온) 사이의 충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실제로 꽃이 핀 직후 기온이 영하 1도 내외로 떨어지는 일이 발생하면, 꽃이 얼어 수분이 어렵고, 열매가 맺히더라도 냉해로 낙과하는 등, 결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품질과 수량이 모두 감소한다.
최근 몇 년간 충청, 경상, 전라 지역의 사과 농가들은 반복적으로 이 같은 이상저온 피해를 겪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위험성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이 반복될수록 사과 재배 농가의 생산성은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전체 시장의 가격 불안정성을 가중시키게 된다.
이러한 기후·재해 복합 피해로 인해 사과 생산량이 급감할 경우, 가격 폭등은 단기 현상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농가 손실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들의 가계 부담 증가, 대체 수입 과일 의존도 확대, 유통시장 교란 등 연쇄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사과는 명절 선물 세트와 제수용 수요가 높은 품목인 만큼, 가격 불안정은 시장의 혼란으로 직결된다. 사과값 폭등은 단순히 경제적 안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일상의 과일이 ‘고급 식품’으로 변모하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과 가격 안정 방안
지금부터라도 사과 가격 안정을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첫째, 정부는 산불 피해 지역 사과 생산량의 감소를 감안하여 공공 비축물량의 확보 및 시장 안정 장치를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주요 농산물 수급 불안을 완화할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개입해야 하며, 가격 급등 시기에는 물가안정기금을 활용한 보조금 정책을 활성화할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지역 농협과 생산자 단체는 산지 유통 체계를 정비하고, 품질 기준에 따라 가격 변동 폭을 조절할 수 있는 시장 연동형 유통 계약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스마트 유통시스템을 도입해 수요 예측 기반의 출하 조절이 가능하도록 정보 제공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소비자 대상 캠페인을 통해, 품질은 유지되지만 외관이 손상된 ‘비상품과(菓)’ 소비를 장려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 중인 친환경 소비 흐름과 연계해, 비품 과일을 ‘환경을 살리는 착한 소비’와 연결하는 마케팅도 유의미한 접근 방안이다.
넷째, 유통 다변화를 통해 과잉된 ‘수요 집중’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온라인 직거래, 농가-소비자 직배송 시스템, 지역 농산물 꾸러미 사업 등을 확대하면, 대형 유통망에서 발생하는 가격 왜곡을 일정 부분 차단할 수 있다.
◇재해・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지속가능 전략
가격 안정화 노력은 단기적 대응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장기적인 회복력 확보와 지역 기반의 지속가능한 대응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전략이 요구된다.
첫째, 산불 진화 시스템의 근본적인 전환이 시급하다. 산림 구조를 개선하고, 고령화된 나무와 낙엽 제거를 위한 숲 가꾸기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 산불 진입이 가능한 임도(산림도로) 확충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임도 확충에 대해서는 생태계 훼손, 산사태 위험, 바람길 조성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환경단체들의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따라서 제반 문제를 고려해, 물리적 접근 방안에만 의존하기보다 과학기술 기반의 대체 수단도 함께 도입해야 한다.
둘째, 인공강우 기술의 개발 및 확충을 통해 기후 조건을 일부 제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인공강우는 구름씨를 살포해 강수량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산불 예방과 조기 진화에 매우 효과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중국 등에서는 이미 실효성이 입증된 바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2028년까지 인공강우 실용화를 목표로 관련 기술 개발이 추진 중이다. 인공강우는 산림의 습도를 높여 산불 확산을 억제하고 초기 진화를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야간이나 험지, 헬기 운용이 어려운 환경에서 매우 유효한 대응 수단이 될 수 있다. 또한 건조기 사과 생육 안정성 확보에도 기여할 수 있다.
셋째, 농업 생산과 농민 보호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농작물재해보험의 보장 범위를 확대하고, 사과 등 과수 작물의 이상기후 피해를 보다 신속하고 현실적으로 보상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기후변화에 강한 신품종 개발 및 대체 작물 연구도 병행해야 한다.
넷째, 농촌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다변화 전략이 필요하다. 사과 단작(單作) 구조에서 벗어나 농촌 관광, 로컬푸드 직거래, 청년 창농(創農) 유치 등 복합적인 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다섯째, 정부 부처 간의 통합적 거버넌스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산림청, 농식품부, 기상청, 행정안전부 등 관련 기관 간의 협력체계를 강화하고, 지방정부의 대응 권한과 자원을 확대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기후변화와 재해가 반복되는 현재의 농업 환경에서 사과 농업은 심각한 위기 국면에 놓여 있다. 산불은 단지 하나의 재해로 그치는 게 아니라, 가격 폭등이라는 또 다른 경제적 재난을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사과 가격 안정을 위한 선제적 대응과 정책적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농업의 회복력과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선제적이고 입체적인 대응이 지금 당장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