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공항은 자본주의 경제의 필연적 현상이다. 공황의 원인은 때마다 여러 가지 지목되지만 ‘과잉생산’이 근원적이고 공통적인 뿌리다. ‘과잉’이란 말이 암시하듯 시장의 수요가 사라지거나 부족해지면 과잉생산이 벌어진다. 어떤 생산품의 과잉이 일어나면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고 종업원들은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자본주의 경제는 항상 생산자들이 정확히 수요를 예측할 수 없고 경쟁자들이 있으므로 과잉생산을 한다. 한동안 잘 팔리던 생산품은 어떤 시기를 만나면 ‘수요급감’이라는 절벽으로 떨어진다. 미국에서 20세기 초 대량생산 체제가 확립되면서 과잉 생산의 규모가 더욱 커져서 공황의 영향은 그만큼 더 극심해졌다. 산업혁명의 발상지였던 19세기 영국에서 맨 먼저 공황이 주기적으로 발생했다. 그때는 대량생산 체제가 아니어서 공황의 규모가 크지 않았고 보통 자국 내에 한정됐다.
그러나 1929년 미국을 덮친 대공황은 그 이전 영국의 경 제공황 규모와는 급이 달랐다. 20세기 이후 세계적 경제 공황이 왜 미국에서 많이 일어나는가 하고 의아할 수 있는데, 세계적 공황은 항상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하고 경제 규모가 큰 나라에서 먼저 발생한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의 모순인 과잉생산도 미국에서 먼저 일어나고 글로벌 무역망이 미국을 중심으로 전 지구촌에 펼쳐져 있어 그 충격은 전 세계적으로 전파할 수밖에 없다.
1914년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미국은 1917년 전쟁 막바지에 끌려 들어간다. 유럽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대서양 건너편에 있었던 미국의 공장 시설은 온전 했을 뿐만 아니라 전시 특수를 누렸다. 세계대전 후 일시적으로 전쟁 후유증으로 인한 불황을 겪었다. 그러나 1921년부터 미국 경제는 마치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며 미친듯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국내적으로는 포드의 콘베이어 벨트 조립 방식에 의해 자동차의 대량생산 체제로 인해 값싼 대중차 시대를 열었다. 뿐만 아니라 도시화로 인한 도로망과 주택 및 고층건물 건설 붐이 일었다.
유럽은 전후 피해를 어느 정도 털어내고 경제 회복의 길로 들어서자, 미국으로부터 대량 생산된 공산품 수입이 증가했다. 이 모든 수요들은 과잉생산을 누적시켜 나갔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터무니없는 낙관론에 근거한 부동산과 주식 투기 광풍이었다. 실물 경제의 수요가 꺼져갈 무렵에 불어닥친 부동산과 주식 투기는 시장 수요의 짙은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대공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쿨리지 미 대통령은 장밋빛 경제전 망에 고무되고 있었다. 마침내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 뉴욕 증시는 대폭락을 맞이하면서 대공황이 일어났다. 미국의 대공황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하는 1930년대 내내 미국을 괴 롭혔다. 1920년대 중후반, 대공황 직전의 미국은 당시 세계의 공장이었다. 중국은 코비드-19 봉쇄 직전까지 세계의 공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
중국이 세계 공장 역할을 해온 지는 족히 30년에 가까울 것이다. 1929년 미국의 제조업은 자동차와 가전품 등 몇몇 생산품 에 한정돼 있었다고 한다면, 오늘날 중국의 생산품은 초저 가품에서부터 첨단제품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거의 모든 제조업 품목을 무차별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들은 내수용은 매우 한정적이고 대부분 수출하고 있다. 중국의 과잉 생산물이 쏟아지자 전 세계의 무역 파트너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미국이 해마다 쌓여가는 무역적자로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다. 미국은 1980년대부터 국제수지 적자가 쌓이기 시작해 지금은 연간 적자가 1조 달러에 이른다. 이 적자의 30~40%를 중국 수출이 차지하고 있다. 무역의 일반적 이론에 따라 일부 논자들은 미국이 수입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수입이 늘어도 미국에 이익이 된다는 주장을 편다. 이는 정치와 안보 등 여러 요인과 결과를 고려하지 않는 주장이다.
미국의 막대한 수입은 달러 기축 통화국의 지위에서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특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미국으로 하여금 국가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민들의 소비성향도 지나치게 높여놨다. 한 마디로 국가 전체가 ‘달러’라는 기 축통화 덕택에 그간 ‘돈 잔치’를 해온 셈이다. 달러를 찍어 내서 수입품을 흥청망청 써오다 재정이 바닥난 것이다. 미국으로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긴축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고 지금 트럼프 2기 정부가 작심하고 그 일을 하고 있다.
미국의 달러 의존 타성은 자국의 제조업을 붕괴시키는 요인이 됐다. 달러 가치는 항상 다른 화폐보다 높아 돈은 미국으로 몰리는 반면, 미국에서의 생산은 고비용 구조를 가지게 된다. 여기에다 미국 기업가들은 뼈를 깎는 품질개선이나 혁신보다는 저임금 국가로 공장을 이전하는 손쉬운 선택을 해왔다. 최대 수혜자는 중국이었다.
미국은 또 세계 경찰 역할을 하느라, 베트남전,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에 뛰어드는 바람에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를 누적해왔다. 지금도 후티 반군과 소규모 전투 상태이다. 전 세계에 수백 개의 군사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이것들이 모두 재정을 고갈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경제학자들이나 무역전문가들의 말만 들으면 트럼프의 관세 전쟁에 대한 판단을 크게 그르칠 수 있다.
◇중국 수출품의 구매자인 미국과 유럽의 경제력이 탈진된 상태
미국 경제의 쇠퇴는 돌이킬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제품이 워낙 싼 값에 들어오다 보니 미국의 저소득층이 구매하고 있고 물가안정에도 기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의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고 중소기업들의 비명이 극에 이르고 있다. 미국의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지도자들은 이제 이를 외면할 수 없게 됐다. 유럽도 쇠잔해질 대로 약해졌다.

유럽 각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복지비를 줄이고 군사력 무장이 발등 에 떨어진 불이 됐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사회주의가 강해 자국의 산업과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포기할 수 없다. 따라서 중국의 수입을 감당할 수도 없다. 유럽이 중국으로부터 수입을 감축시키는 것은 미국보다 더 절박한 현실이다. 무역을 바라볼 때 글로벌 시장을 하나의 단일 생태계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수출업자가 있으면 구매자가 있다. 중국의 대량생산이 아무리 가성비가 좋고 게다가 온 갖 첨단기술로 장착돼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사줄 만한 나라들이 구매할 형편이 안 된다 것이 현재의 무역 문제의 본질이다. 이것을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전쟁이라느니, 제품의 가성비와 기술로만 분석하는 것은 큰 숲을 보지 못하는 미시적인 해석이 된다. 지금의 글로벌 무역 문제는 중국에서 대량생산된 제품을 팔 수 없게 된 상태, 즉 수요가 없는 과잉생산이 핵심이다. 1929년 대공황의 원인과 본질이 같다는 얘기다.
1929년의 대공황은 미국에서 일어났지만 오늘날 대공황이 일어난다면 중국에서 일어날 것이고 그 여파는 전 세계에 미칠 것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은 1929년 대공황을 경험했던 나라들이기 때문에 중국의 대량생산을 일찌감치 경고해 왔고, 수년 전부터 경고의 강도가 점점 높아져왔다. 1929년부터 거의 10년간 진행됐던 대공황 당시 중국은 내전 중이었고 경제 규모도 보잘것없어 대공황의 실상을 경험하지 못했다.
◇중국의 수출 모델, 이제 바꿔야 할 때
중국의 국가 경제 발전 모델은 한국의 박정희 개발 경로를 그대로 모방했다. 하루빨리 저개발상태에서 경제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서 한국 모델이 매력적으로 보였고 실제로 한국의 수출성장 전략을 벤치마킹했다. 그 결과, 한국보다 더 높은 경제성장의 기적을 달성했다. 문제는 중국의 규모가 너무 크다는 데에 있었다. 제2차 대전 이후 일본과 독일 두 나라가 미국에 ‘소나기’ 수출할 때도 미국은 견디지 못해 결국 독일보다 더 센 일 에 플라자합의를 강요했다. 그 덕분으로 미국경제는 위기를 모면했다.
한국과 대만의 경제성장은 일본과 독일에 비해 수출 규모는 훨씬 적었다. 하지만 중국의 수출 규모는 그간 급속한 경제성장을 해왔던 모든 나라들을 몽땅 합친 것보다 몇 배나 많은 물량을 미국과 유럽으로 쏟아 내고 있다. 중국의 대량 수출이 세계의 골치거리로 전락해 버린 셈이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은 이제 막 시작에 불과하다.

미국은 각종 관세율과 비관세장벽 협상을 통해 앞으로 상대국들이 하는 것을 봐가며 대처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수년에 걸쳐 장기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언제까지...? 국제수지 적자가 균형을 맞출 때까지는 계속될 것이다. 이것은 공화-민주 어느 당이 집권해도 기조를 바꾸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미국의 모든 분야, 계층의 사람들이 병들대로 병든 미국의 현 경제 상태를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의 공장들이 조업을 단축하고 문을 닫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청년 실업자들이 늘어난 것도 수요 없는 과잉생산의 영향으로 일어난 것이다. 한국과 같은 중견 규모의 나라들은 수출 지향 모델이 적합하다. 하지만 14억 인구를 가지고 있고 미국처럼 큰 땅덩어리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당초부터 내수 발전 모델을 택했어야 했다. 또 급격한 발전보다 사회 개혁을 추진하면서 점진적으로 경제 발전을 추진했어야 했다. 중국과 같이 큰 나라가 대도시 집중 개발을 하면 대도시로 농촌 인구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다. 중소도시를 전국 곳곳에 고르게 발전시켜 나가면서 농촌 지역과 동반 성장하는 모델을 선택 했어야 했다.
중국 정책 당국은 한국을 벤치마킹했으면서도 한국의 부동산 투기 광풍에서 교훈을 전혀 배우지 못했다. 지방정부가 ‘땅 장사’로 예산을 마련하는 것과 같은 ‘상식 밖의’ 제도를 고치지 않았다. 어찌해서 부동산 광풍까지 갔다고 하더라도 시진핑 체제는 부동산 개발사의 대출을 갑자기 끊는 대실책을 범했다. 부동산 투기는 초기에 잡든가, 이미 상당한 거품이 부풀려 있을 때는 서서히 조절하면서 식혀야 한다. 중국 당국은 부동산 정책에 관해 시종일관 실패했다.

중국은 미국의 관세 압박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진짜 회복되고 있는 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세계는 중국이 이제 자신들의 임금과 자산을 갉아먹는 수출을 지양하고 내수를 키워나갈 것을 바라고 있다. 21세기 글로벌 무역 환경은 더 이상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시스템을 용인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인류의 소중한 터전인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현재와 같은 자원 낭비형 경제를 더 이상 지속해 나갈 수 없다. 자국의 경제가 일방적으로 성장하고 첨단기술을 발전시켜서 이웃 나라를 궁핍화시키고, 혼자서 저 멀리 앞서간다고 해서 자국의 무역 및 경제 생태계를 유지할 수 없다.
아담 스미스가 가정한 시장은 발전상 순서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근원적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생태계다. 미국의 국제수지적자를 보면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의 적자 해소를 위해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미국에서 수입할 것은 수입하는 게 마땅하다고 본다. 오늘날 관세 전쟁의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면 앞서 지적한 바대로 미국이 주요한 원인 제공자임이 분명해 보인다.
미국이 거대한 적자의 바벨탑을 세우고 아시아 국가들을 비롯해 세계의 대미 수출국들이 공조를 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 누구도 ‘나는 책임이 없다’고 손을 씻을 수는 없다. 미국과 중국 등 세계 각국은 새로운 무역 질서, 상생의 무역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