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빈곤과 노동문제의 올바른 해법

  • 등록 2014.06.05 18: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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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해도 소득이 충분하지 않아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 즉 도시근로자 가구 중 경상소득이 중위소득의 60%에 미치지 못한 가구를 말하는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은 201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빈곤통계연보에 따르면 약 16.6%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근로자 중 근로빈곤의 잠재위험군으로 분류되는 월 100~200만 원인 근로자는 38.3%이고, 근로빈곤층과 근로빈곤의 잠재위험군을 합한 규모는 전체 근로자의 51.8%에 이른다.

 

비정규직 및 저임금 근로자의 현황과 문제


정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근로자 규모는 2013년 8월 기준 594만 6천 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32.6%를 차지하며, 노동사회연구소가 발표한 비정규직 근로자 규모는 2013년 8월 기준으로 818만 2천 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46.1%나 된다. 어느 쪽 수치를 보더라도 그 규모가 매우 크고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임금 비율은 56.1%에 불과하고, 최근 10년간 그 격차가 더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정규직 근로자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81.2%였으나 비정규직은 39.2%에 불과했고, 직장건강보험 가입률도 정규직 근로자는 83.5%였으나 비정규직은 46.2%에 그쳤으며, 고용보험 가입률도 정규직은 80.6%였으나 비정규직은 43.6%에 그쳤다.

 

비정규직이나 저임금 근로자와 그 가구의 소득수준이 낮아 구매력이 떨어지고 소비가 위축되면서 내수경제의 침체를 야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 근로자의 46%나 되는 800여만 명의 근로자가 정규직에 비해 연간 1,000만 원 정도를 덜 받게 되면서 이들 가구들의 가처분 소득 감소규모가 연간 92조 원에 이르는 등, 전체적으로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저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하의 글에서는 이러한 근로빈곤 문제의 해법을 강구해본다.

 

고용율 제고와 근로시간 단축 등의 일자리 정책

첫째, 고용율을 높여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2017년까지 고용률 70% 달성’을 국정과제로 제시하였다. 고용률을 70%로 끌어올리려면 청년과 고학력 여성의 일자리를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시간 단축과 공무원 증원 이외에도, 청년고용할당제 등을 통해 청년층의 눈높이에 맞는 양질의 일자리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여성의 경력단절을 최소화함과 동시에 기혼여성이 다시 노동시장에 진입하려 할 때 주어지는 일자리의 질도 높여야 한다.

 

둘째, 연간 노동시간을 1800시간 이하로 단축해야 한다. 이것을 달성하려면, 일차적으로 ‘근로기준법상 초과근로시간 한도 지키기, 휴일근로 초과근로시간 산입, 근로시간 특례업종 축소, 장시간 근로를 강제하는 교대제 개편 등’의 대선공약을 철저하게 이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공약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예컨대, 공약에서 열거한 정책수단들을 동원해서 주52시간을 초과하는 탈법적인 초과근로를 모두 없앤다 하더라도, 연간 노동시간은 2,247시간(주43.1시간)에서 2,164시간(주41.5시간)으로 83시간 줄어들 뿐이다. 주5일제를 전면 실시하고, 근로기준법상 초과근로시간 한도를 주12시간에서 8시간으로 단축하고, 휴일휴가를 확대하는 등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셋째, 비정규직 비율을 35%로 축소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상시·지속적 업무는 정규직 고용관행 정착’을 공약했다. 공공부문에서 상시·지속적 업무는 2015년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민간부문 대기업은 고용형태별 고용현황 공시제도 등을 통해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상시·지속적 업무 정규직 전환’ 공약을 이행하려면, 사용기간 2년에 구애받지 말고 상시·지속적 업무는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청소·경비 등 간접고용도 정규직으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지금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은 일시·간헐적 업무와 정규직 전환예외 조항을 너무 넓게 허용해 왔는 바, 전면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이밖에도 공공기관 정원의 합리적 조정, 인건비 총액관리제와 국·시비 매칭 사업 재검토, 경영평가와 기관장 평가에 정규직 전환 실적 반영, 무기계약 전환자에 적합한 직급체계와 임금체계 신설, 합리적 근거 없는 민간위탁사업의 공공부문 직접 시행 등도 함께 추진해야 할 것이다. 2013년 8월 현재, 정부는 비정규직 비율을 32.6%로 추정하고, 노동계는 46.1%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2017년 비정규직 비율 25%(정부 기준) 또는 35%(노동계 기준)’를 목표로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감독 강화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중장기적인 적정 최저임금 수준의 목표치는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하는 ‘평균임금의 50%’로 하되, 최저임금의 최저인상률 가이드라인은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소득분배 조정치’로 하여 최저임금 수준을 현실화하면 될 것이다. 공약대로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하고 근로감독 행정도 대폭 강화해야 한다.

 

‘가사사용인과 수습사용 중인 자, 감시단속적 근로자는 최저임금을 100% 적용’하고, ‘정신 또는 신체의 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는 노동부장관의 인가를 얻어 감액 적용’하는 식으로 최저임금 적용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하고 대기업부터 일벌백계를 하는 식으로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최저임금 전담 근로감독관을 두고, 명예 근로감독관을 운영해야 한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최저임금을 위반한 사업주의 명단 공개(3진 아웃), 최저임금 위반 신고 시 구비서류 등의 간소화, 최저임금 준수에 대한 사용자 입증 책임, 최저임금 위반 적발 즉시 과태료 부과, 최저임금 체불임금의 노동부 ‘선 지급 후 대위권’ 행사 등의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경제성장에 상응하는 실질임금의 인상

우리나라는 지속적으로 경제성장(생산성)에 못 미치는 실질임금 인상이 이루어지면서,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하고 임금불평등이 증가하고 있다. ILO(2012)가 선진국에서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한 원인을 실증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금융화가 46%로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고, 다음으로는 제도변화(복지국가 축소, 노조조직률 하락)가 25%, 세계화 19%, 기술혁신이 10% 순이었다.

 

노동소득분배율 하락에 대한 대안으로는 생산성에 상응하는 실질임금의 인상, 교섭력의 균형 회복, 최저임금 인상, 금융규제, 세제와 사회보장 개혁을 들고 있다. 성장에 못 미치는 임금인상은 불평등의 심화와 내수기반의 잠식으로 이어진다. 결국, 우리는 비정규직의 남용과 차별을 해소함과 더불어 매년 임금인상률을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소득분배 조정치’를 기준으로 책정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노동현장의 탈법과 불법으로부터 노동인권 보호


역대 정부는 중소영세업체 비정규직 등의 취약계층에게 가해지는 각종 탈법은 눈감으면서,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을 유난히 강조해 왔다. 지금까지의 경과를 보면, 박근혜 정부도 ‘법과 원칙’을 강조하면서 역대 정부의 전철을 밟을 소지가 크다. 정부는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취약계층을 보호함과 동시에, 노동인권을 신장하는 방향에서 ‘법과 원칙’을 적용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요즈음 노동현장은 각종 탈법과 불법으로 얼룩져 있다. 법정 최저임금조차 못 받는 노동자가 170만 명(전체 노동자의 9.6%)이고, 주52시간을 초과하는 탈법적인 장시간 근로자가 380만 명(21.8%)에 이른다. 법으로 금지된 유해위험작업을 사내하청에 떠넘겨 억울한 죽음이 잇따르고, 부당노동행위와 용역폭력,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 체불임금, 사업장내 폭력·폭행·성희롱, 정리해고 남용과 부당해고 등 무법천지가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근로감독행정을 강화하고 기업의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대기업부터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중앙-산업·지역-기업’의 중층적 노사관계 구축


헌법으로 보장된 단결권은 노동자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이다. 하지만 지난 60년 동안 노조 조직률이 10%대를 넘어선 적이 없다. 앞으로도 노조 조직률이 10%대를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1987~89년처럼 노동운동이 폭발적으로 고양된 정치·사회적 격변기에도 10%대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고, 그때와 같은 정치·사회적 격변기가 다시 찾아오기도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행 노사관계 체제에서는 앞으로도 전체 노동자의 80~90%가 노조 가입조차 배제된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될 전망이다.

 

노동조합에는 가입하지 못해도 단체협약은 적용받을 수 있도록 ‘단체협약 효력 확장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현행 노동조합법 제36조(지역적 구속력) 제1항 ‘하나의 지역에 있어서 종업하는 동종의 근로자 3분의 2 이상이 하나의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게 된 때에는 행정관청은 당해 단체협약 당사자의 쌍방 또는 일방의 신청에 의하거나 그 직권으로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얻어 당해 지역에서 종업하는 다른 동종의 근로자와 그 사용자에 대하여도 당해 단체협약을 적용한다는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사실상 단체협약 효력 확장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에 대해서는 ‘노사 쌍방이 초기업 수준에서 체결한 단체협약에 대해 노동부장관은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얻어 해당 부문에 확대 적용할 수 있다’로 개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처럼 ‘단체협약 효력 확장 제도’를 개정한다 해도 기업별로 단체협약을 체결한다면 그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앙에서는 유명무실한 노사정협의체를 재정비하고 의제별로 노사정 교섭·협의를 활성화함과 동시에, 산업·지역 등 초기업 수준에서는 단체교섭과 노사(정)협의를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

기업별 교섭을 강제하는 교섭창구 단일화 강제조항은 삭제하거나, 초기업 노조를 교섭창구 단일화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향에서 노동조합법을 개정하고, 공공부문의 산업별 교섭은 정부가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기업 수준에서는 노사협의회를 종업원 대표기구로 재편하고 노사협의와 공동결정을 촉진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리하여 ‘중앙-산업·지역-기업’을 잇는 중층적 노사관계가 구축된다면, 한국 노사관계 시스템의 역기능은 줄고 순기능은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겸 운영위원장

 

박영신 기자 rainboweye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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