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 키우는 ATM 수수료

  • 등록 2014.07.07 09: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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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거래에 있어서 입출금, 계좌이체 등 간단하고 일상적인 업무는 자동화기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ATM 이용 시 500원에서 2000원까지 발생하는 수수료는 서민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을 주고 있다. 소비자들은 주·야간 수수료가 차등 부과되는 문제에 있어서도 합리적인 근거도 모른 채 그냥 내라면 내야 하는 식인데 대해 은행에 대한 불신을 표출하고 있다.


"ATM을 돈 벌려고 만든 거였나? 은행들이 인건비 줄이려고 만든 것 아닌가, 은행이 내 돈을 받아서 마음대로 쓰면서 돈 찾을 때는 수수료 떼먹는 장사하는 곳이었나, 돈 넣을 때 이자는 조금 주면서 수수료는 만원 찾아도 꼬박 꼬박 빠져나간다, 수수료 받고, 내 정보도 팔고, 은행들 진짜 마음에 안 든다."

 

한 방송에 소개된 ATM수수료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이다. 이처럼 소비자들은 ATM기기를 이용할 때마다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수수료에 대해 심한 부담을 갖고 있다. 게다가 은행들이 ATM기기를 영업 전략과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운영하면서 수수료를 고객들에게 부과한다는 데 대해 불합리하다는 생각과 함께 불쾌감마저 갖는 모습이다. 그러나 은행들은 자동화기기를 통해 받는 수수료로는 유지비용도 감당하기 힘들어 적자가 난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ATM기기 한 대당 연간 166만 원의 손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6개 시중은행들은 2009년 3만2,902대였던 ATM을 최근까지 6천대 이상 줄였다. 소비자들의 불편보다는 자신들의 이익과 손해에만 급급한 것이다. 이 같은 금융소비자-사업자 간의 괴리와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ATM은 골칫덩어리


국내은행의 자동화기기는 출금만 되는 CD기와 요즘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ATM이 있다. 자동화기기는 주로 은행 지점 내 설치돼 있으며 총 5만851대가 운영되고 있다(2012년 기준). 조사결과 시중은행(6,092대), 특수은행(2,339대), 지방은행(1,163대), 외국계은행(1,062대) 순으로 나타났다. 현재 자동화기기 인출수수료는 거래은행 기기를 이용할 시 은행 영업시간(9시~오후 6시) 내에는 면제지만 영업시간 외(야간시간대)에는 500원에서 600원까지 받고 있다. 타행 이용 시 주간 600원~900원, 야간 900원~1,000원 대의 수수료를 받는다.


CD공동망이란 자동화기기를 활용한 은행 간 거래를 말한다. CD공동망을 이용한 타행의 경우 계좌개설 은행이 CD기 보유은행에 지급하는 은행간수수료는 450원이다. 전체수수료(주간 600원~900원, 마감 후 700원~1,200원)에서 은행간수수료를 빼고 나머지는 개설은행이 추가수수료 명목으로 기타 비용보전 등으로 챙긴다.


수수료를 책정하는 비용항목을 살펴보면 ATM 및 부스삼각비, 일괄관리 용역료, 임차료 등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개별은행들의 수수료를 책정하는 원가는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비공개에 붙여지고 있어 가격 책정이 합리적인 것인지는 분석하기 어렵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연구원이 지난 해 발표한 ‘자동화기기 수수료의 적정성 연구’에 따르면 2012년 기준 국내은행들은 자동화코너를 운영하면서 약 844억 원의 손실을 입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해 전체 자동화기기가 5만851대일 때 기기 한 대당 166만 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김 연구원의 계산에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손실액인 844억 원이 어떻게 산출됐는지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으며 특히 자동화기기 이용으로 인한 인건비 절감 부분은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2013년도 기준 은행들의 수수료수입은 3조1,032억 원으로 2011년(4조 4,116억 원)에 비해 9.04% 감소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권우영 금융분석실 수석연구원은 수수료수입 감소 원인으로 ▲인터넷뱅킹 등 비대면 채널 거래비중의 확대(2010년 26.6%→2013년 34.2%) ▲금융당국의 수수료 체계 개선 노력에 따른 ATM수수료 40~50% 인하(2011년 10월 ‘은행별 수수료 체계 개선 방안’ 시행) 등을 꼽았다.


권우영 수석연구원은 “저성장-저금리 환경에서 국내은행의 수익성 제고를 위해 수수료수익 기반의 확보가 필수적”이라며 “그러나 ATM 수수료 등은 서민생활과 관련성이 높아 은행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인상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김우진 연구원도 “사실 은행이 ATM기기를 통해 굳이 수익을 챙겨야 할 이유가 없다. 비대면 채널은 비용모델이지 수익모델이 아니다”면서도 “수수료 인하압력이 거세지면 자동화코너를 확대할 유인이 줄어들고 금융소비자의 불편이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근거 없는 수수료 ‘싫어’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ATM수수료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을까. 한국소비자원이 2010년 1월부터 2012년 4월까지 은행에서 현금 입출금, 이체 경험이 있는 20세 이상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금융거래 경험을 조사한 결과 소비자가 가장 자주 이용하는 현금입출금 수단은 인터넷뱅킹이 36.8%, 은행설치 ATM기기가 27.8%를 차지했다. 이들 소비자들은 현금 입출금과 관련해 ▲주말 야간 등 수수료 인하(58.0%) ▲보이스피싱, 해킹 등에 대한 안전장치(20.9%), 은행별 수수료 이자정보 확대(12.6%) ▲ATM기기 확대 등 서비스 확대(6.8%) 등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기헌 소비자원 연구위원은 ▲금액에 따른 인출, 계좌송금 수수료 차등부과 ▲VAN사 ATM이용 시 높은 수수료 부과 등이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연구위원은 “소비자들은 ATM수수료에 대해 수수료 금액 자체는 크지 않지만 하루에도 몇 회씩 자주 이용하기 때문에 가격민감도가 높은 것으로 보여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도 소비자들은 은행이 소비자가 예치한 자금을 활용해 다양한 수익을 취하고 있는 바, 은행입출금 관련 서비스에 별도의 수수료 지불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수수료 관련정보 공시 또한 법적으로 의무화돼 있지 않아 소비자들이 수수료 정보를 통해 ATM이용여부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소비자원이 17개 은행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의 수수료정보 표시실태를 조사한 결과 산업은행만이 초기화면에서 수수료정보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또 은행수수료 정보내용에 대해 소비자가 추가적으로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문의할 수 있도록 연락처가 표시된 곳은 2개 은행에 불과했다. 또 은행의 ATM이외에 편의점, 지하철 등에 설치된 VAN사의 ATM이용 시 수수료 정보를 표시한 곳은 단 1곳에 불과했다.


특히 4개 도시의 125대의 VAN사 ATM 이용수수료 표시여부를 조사한 결과 사전에 확인할 수 있도록 표시된 ATM 기기는 18.4%에 불과했다. 법적으로 보장된 공시사항은 은행과 거래, 투자하고자 하는 사업자, 소비자 등을 대상으로 투자대상 기업으로서 은행의 재무상태 및 자금운용 등에 관한 것이어서 은행별 관련 제반 이자 및 수수료의 비교사항은 누락되어 있는 실정이다. 전국은행연합회가 개별 은행별로 ①예적금과 현금입출금 관련 수수료 ②대출상품 관련 각종 비용, 수수료 ③외환수수료 ④기타수수료(펀드, 방카슈랑스 관련) 등을 제공하고 있지만 이는 법적인 의미의 공시는 아니다.


한편 소비자들은 은행거래 당사자로서 수수료 결정에 참여할 수 없으며 수수료 관련사항의 변경내용이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의견반영이 배제되는 것에 대해 부당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현재 은행의 수수료가 어떤 과정 및 근거를 통해 결정되는지 밝혀진 것은 없으며 또 변경 시 사전공지 방법, 매체, 기간 등에 대해 특별한 지침이나 규준 등이 없어서 소비자는 그저 은행이 결정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기본적으로 ATM을 포함한 금융수수료는 은행 자율이며 시장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결정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과도한 수수료 압박은 은행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은행연합회도 “금융기관의 수수료 등 서비스의 가격 결정에 정부, 시민단체 등 외부기관이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금융 산업 발전을 저해할 뿐 아니라 서비스 산업의 발전을 통한 성장제고와 일자리 창출에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은행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산업 선도적인 역할로 공급자 위주로 정책을 수행해 왔고 제한적인 경쟁을 하고 있어 순수하게 시장경쟁에 맡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은행은 정보력과 가격 협상력의 우월적 지위에서 수수료를 책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강 국장은 “은행이 경영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국민의 세금인 구제금융을 받기도 했다”며 “따라서 은행은 영리를 추구하는 상법상의 법인이면서도 공공성을 띠고 있으며 사회적인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기헌 연구위원도 “금융상품 거래에서 금융소비자는 또 하나의 거래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관련정책에서 금융소비자 정책의 비중과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낮다”며 “금융상품 선택정보, 거래조건 결정에 있어서 협상여지 및 발생된 피해에 대한 보상 등이 미흡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최근에는 정부의 금융정책 방향이 소비자 중심방향으로 선회하고, 금융소비자보호 강화를 위해 금융소비자보호처 설치 등 조직 재정비, 금융분야 소비자 정보제공이 활성화되고 거래조건도 소비자지향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며 “수수료 문제도 이러한 차원에서 정부와 은행의 인식변화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수수료 인하보다는 투명성 확보가 우선


소비자들의 요구가 단순히 수수료를 인하하거나 없애라는 게 아닐 것이다. 수수료가 어떤 기준으로 결정되며 결정요소 및 과정은 합리적인지, 그리고 어떻게 변동됐는지 등에 대해 소비자들이 알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기헌 연구위원은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은 은행수수료 조건 결정, 변경 등에 있어 공정한 운영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정, 운영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며 “소비자들의 알 권리를 위해 거래정보 비교공시와 관련한 법적인 근거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등 5개 금융업협회는 지난 2011년 “수수료를 인하하고 복잡한 수수료체계를 개편하겠다”며 금융권의 사회적 책임 강화방안에 대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은행들이 당시의 다짐을 실현한다는 생각을 갖고 우월한 위치에서 일방적으로 가격결정을 해 온 방식에서 벗어나 소비자를 거래당사자로서 인정하고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면 소비자들도 은행에 대한 막연한 불신이나 반발에서 벗어나 신뢰로서 거래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MeCONOMY Magazine July 2014

박영신 기자 rainboweye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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