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제 확대

  • 등록 2014.07.07 09:40:12
크게보기

최근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안전사고 피해구제를 위한 집단소송제 도입이 지방선거 공약으로 제시된 바 있다. 카드3사의 개인정보유출사건 발생 당시에도 집단소송제는 뜨거운 감자였다. 그러나 이 제도에 대한 찬반이 극명히 갈려 도입을 위한 움직임이 더디다.


피해자면 다 배상받는 ‘공평한’ 제도


집단소송제란 기업이나 특정인의 잘못에 대해 다수가 피해를 입었을 경우, 피해자 중 일부가 전체를 대표해 소송을 제기하고 피해에 대한 배상 또는 구제를 전체 피해자가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이 제도는 위법행위 등에 따른 집단적인 피해를 효율적으로 구제하고 기업의 경영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집단소송과 비교할 수 있는 제도로는 단체소송, 공동소송·선정당사자소송 등이 있다. 단체소송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전적 예방 차원에서 단체에 의해 제기되며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는데 목적이 있다면 집단소송은 집단적 피해의 사후적 보상을 위해 개인(집단대표자)에 의해 제기되며 소액피해 구제와 집단적 권리구제에 용이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 공동소송은 같은 피해자집단이라도 소송에 응하는 개별 노력에 따라 소송결과가 차이가 나며 선정당사자소송은 피해 당사자의 선출행위에 의해 선출된 자가 전체를 대표해 소송을 제기한다. 그러나 집단소송은 대표가 되는 당사자가 집단구성원들의 선출행위 없이 스스로 대표가 될 수 있으며 판결의 효력이 같은 피해를 입은 집단전체에 미친다는 점에서 다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집단소송법이 증권관련 사건에 대해서만 도입돼 있다.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은 경제계의 묵은 관례였던 분식회계를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공감대에 따라 2005년 1월1일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9년 동안 7건의 소가 제기되는데 그쳤다. 이 중 단 1건만이 화해로 종결됐으며 1건은 소송불허가결정, 2건은 2013년 9월에서야 허가결정을 받았다. 이에 대해서는 증권집단소송법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측과 이 법이 기업들의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는 밑거름이 됐다는 긍정적 평가가 엇갈린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증권집단소송법이 집단소송 대상을 분식회계·불공정거래·미공개정보 이용 등으로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고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총 발행주식의 1만분의 1 이상을 보유해야 하는 등 요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지적을 제기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불공정사례로 확대 추진


최근 증권집단소송법의 소송범위를 확대하고 소송요건도 완화하는 제·개정작업이 추진 중이다. 여기에는 증권집단소송법이 유명무실해져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작용했다. 무엇보다 3대 카드사의 개인정보유출사건 등이 발생함에 따라 소비자 보호 문제가 또다시 화두로 떠오른 데다 금융감독원이나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 규제의 한계 또한 이러한 움직임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증권관련 집단소송 개정위원회’를 꾸려 지난 3월 증권집단소송법 집단소송 대상에 기업의 가격·입찰·담합 등 불공정 거래행위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도 포함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 초안을 마련했다.
이 안에 따르면 법률 명칭을 ‘증권관련집단소송법’에서 ‘금융투자상품 및 공정거래 집단소송법’으로 변경하고 집단소송 범위를 기업어음이나 파생상품을 비롯한 각종 금융상품의 불건전 영업행위와 공공부문 입찰 비리를 비롯한 기업 간 담합행위로 확대한다. 집단소송 제기요건 중 소송인단 요건도 20~30명 수준으로 완화하고 소송인단의 증권발행 보유 비율도 더 낮춘다.


앞서 서영교, 박민식, 우윤근 의원이 각각 ‘소비자집단소송법안(2014. 2)’, ‘증권관련집단소송법 개정법안(2013. 9)’, ‘집단소송법안(2013. 8)’을 발의한 바 있다. 서영교 의원의 법안은 집단소송의 적용범위를 ‘소비자보호법’, ‘제조물책임법’,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등에 관련한 피해발생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로 규정했다.


박민식 의원의 증권집단소송법 개정안은 집단소송의 적용범위로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 부당한 공동행위 및 재판매가격유지행위 등을 포함함에 따라 법률명을 ‘증권 및 공정거래관련집단소송법’으로 바꾸도록 했다. 우윤근 의원안은 집단소송 소송대리인의 변호사강제주의를 채택했다.


최근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생한 세월호 참사에 대해 대규모 안전사고 발생 시 피해 구제 강화를 위해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이 있었다. 이렇게 되면 피해 당사자 혹은 가족 일부가 국가나 사고 책임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통해 배상액을 받아내면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배상이 적용돼 피해 구제가 용이해진다. 또 지난 2월 개인정보유출사건 당시에도 이러한 사건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대안으로 집단소송제 확대가 강력하게 거론됐었다. 집단소송제가 확대되면 동양사태 때 빚어졌던 기업어음 불법판매로 인한 피해, 이른바 ‘남양유업’ 사태로 불린 제품 밀어내기에 따른 피해도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재계 등에선 기업경영 위축을 이유로 들어 반대하고 있다. 집단 소송 남발로 기업 경영에 큰 부담이 될 것이며 기획소송 변호사만 넘쳐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반대로 인해 의원발의된 3개의 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며 지난 3월 초안이 나온 법무부의 안이 아직도 확정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전경련은 “집단소송제 범위를 확대하거나 소송요건을 완화하는 것은 글로벌 추세와 반대 방향”이라고 밝혔다. 또 이들은 “집단소송제는 미국만 채택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조차도 잦은 소송으로 인한 집단소송의 폐해가 워낙 심해 소송요건을 엄격하게 하고 소송 범위를 축소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만 이를 강화하는 것은 기업 활동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경우, 1990년대 초 유방 확대 수술에 사용하는 실리콘 젤의 부작용과 관련된 집단소송에 대해 법원이 200만 명의 피해자들에게 30억 달러가 넘는 배상금을 주라고 판결했으며 해당회사는 파산신청을 했다. 한편 제도의 부작용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개인정보 유출 등 사건이 터지는데 편승해 제도를 서둘러 도입하려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 바 있다.

투명경영과 소비자보호 위한 첩경


그러나 집단소송제 확대는 이와 같이 우려스러운 점보다는 긍정적인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소송남발로 인해 기업에 막대한 피해를 주어 기업 경영을 위축시키는 규제로만 볼 문제인지는 따져봐야 된다. 이미 도입된 증권집단소송법의 경우, 남소가 아니라 제도의 사문화를 걱정해야 할 처지인데다 우리나라는 아직 피해액의 3~4배를 물리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지 않아 기업에 배상금 폭탄이 떨어질지 어떨지는 모르는 일이다. 오히려 이 제도가 기업들의 경영 투명성을 높여 비슷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가장 확실한 제재효과로 작동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 경제적으로 더 큰 손실을 피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내부 통제 시스템을 충실히 구비하도록 하는 유인책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시장 건전성을 증진시킬 수 있으며 투자자-기업-소비자 간 신뢰를 회복하고 윈윈(win win)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이 제도는 피해를 입은 모든 소비자들이 소송에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피해구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소비자의 권리를 온전히 구제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란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규제당국이 기업의 불법행위 적발 시 그에 따른 과징금은 모두 정부에 귀속되며 피해당사자가 구제를 받기 위해서는 별도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그러나 정보유출사건처럼 피해액에 비해 소송비용이 크고 법정다툼이 3~5년이 걸릴 경우 소비자는 소송을 포기하게 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2년까지 5년간 교복값 라면값 휘발유값 등 각종 담합행위를 한 기업 970곳을 적발해 3조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이러한 담합행위의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받기는 소송 자체가 너무 어렵고 힘든 것이 현실이다. 2001년 YMCA가 교복업체들을 대상으로 교복값 담합에 대해 제기한 소송의 경우, 피해소비자에게 1인당 4~5만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기까지 7~8년이 걸렸다. 또 2010년 택시노조가 정유사들의 LPG·휘발유 가격 담합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을 당시 법원에 제출해야 하는 손해액을 상정하는 감정비용만 10억 원이었다.


집단소송제 확대의 또 다른 장점은 정부의 기업 규제를 소송을 통한 자율적인 분쟁해결수단에 맡길 수 있다는 측면이다. 다양하고 복잡해지는 기업들의 불공정거래 등 불법행위에 대해 정부가 적절하게 규제하기 어려운데다 ‘규제만능주의’로 치닫는 것이 오히려 기업의 자율적인 성장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어 왔다. 또한 이러한 규제가 소비자 피해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기업들이 공정위나 금감원 등 규제당국의 눈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될 뿐 아니라 규제에 걸려 내는 과징금보다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이 훨씬 더 클 경우 이러한 행위를 멈출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배상금 부담 때문에 자체적인 자정작용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소비자들의 권익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으로 집단소송제만한 대안이 없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렇다면 집단소송제 확대 시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가장 중요한 점은 집단소송제 확대가 단순히 소액피해자들의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한다는 데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기업들의 자정작용을 유인할 수 있는 대책으로서 마련돼야 한다는 데 있다. 또 남소와 기업도산 우려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과잉 소송을 막을 수 있도록 법원이 소송 초기부터 적극 개입해 소송 제기 요건에 합당한지를 걸러내는 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패소할 경우를 대비해 변호사 비용 등을 담보로 제공하도록 하는 담보제공명령제도 또한 남소를 막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집단소송이 가능한 담합행위와 불공정행위 등의 성립요건을 공정거래법 등 관련법보다 더 엄격하게 정하는 것도 고려돼야 한다.

경제민주화 핵심제도


집단소송제 확대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 공약이었다. 집단소송제를 통해 불공정거래를 방지하고 이로 인한 손실을 보상토록 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약속이 반드시 현실화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법 도입 시 이익집단들의 의견에 좌우되기보다는 경영 투명성 확보로 경제흐름을 선순환할 수 있는 도구로서, 공정사회와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장치로서 측면을 더 세세히 짚어봐야 할 것이다.


MeCONOMY Magazine July 2014

박영신 기자 rainboweye07@hanmail.net
Copyright @2012 M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회사명 (주)방송문화미디어텍|사업자등록번호 107-87-61615 | 등록번호 서울 아02902 | 등록/발행일 2012.06.20 발행인/편집인 : 조재성 |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대방로69길 23 한국금융IT빌딩 5층 | 전화 02-6672-0310 | 팩스 02-6499-0311 M이코노미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무단복제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