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아이들에게 미래설계는 없다

  • 등록 2014.07.10 16:14:34
크게보기

아동들은 나라의 미래이자 국가경쟁력이다. 그리고 국가는 아동들의 권익을 보장할 의무를 가진다. 그러나 부모나 돌봐줄 가족이 없어 사회에 맡겨진 아동들은 부실한 식단으로 배를 채워야 하며 제대로 된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동들의 꿈을 키운다거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은 너무나 요원하다. ‘친환경 무상급식’이 친숙해진 지금 시설아동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정책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때이다.

시설아동들의 열악한 급식문제가 2012년 무렵부터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아동양육시설 아동들의 1식 단가가 김밥 1줄 값도 안 되는 1420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돌봐줄 가정이 없어 시설에 맡겨진 만큼 더 많은 돌봄이 필요한 아동들인데도 말이다. 이렇게 책정된 이유는 아동양육시설이 국민기초생활법상 보장시설 생계급여의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보장시설 생계급여는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 당시 최저생계비와도 관계없는 별도 기준으로 책정돼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기계적으로 적용돼 왔으며 인상률도 해마다 100원 정도가 인상되는데 그쳤다. 이 금액은 저소득층 아동들을 돌보는 지역아동센터 등에 지자체가 권고하는 3,500원(1식 기준)과 비교해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이며 일반 기초생활수급자들의 식료품비 기준인 2,049원(최저생계비x33.7%)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이 급식비로 무엇을 먹일 수 있었을까? 성장을 위해 단백질과 칼슘 섭취가 필요할 나이지만 고기는 일주일에 한두 번 오르는 게 전부다. 우유나 과일 등 간식은 거의 구경하기 힘들다. 한창 성장기에 제대로 먹지를 못하니 발육도 다른 아동들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2013년 임종한 인하대 교수가 아름다운재단의 의뢰를 받아 시설의 유치원생, 초중고생 등 115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아동보호시설에 있는 초등학생은 5학년 남학생을 제외하곤 남녀 모두 평균보다 1~13.8㎝ 작았다.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의 키(중앙값)는 124.7㎝로 또래 평균(138.5㎝)보다 13.8㎝ 작았다. 초등학생 4학년 남학생은 131.7㎝로 또래 평균(139.1㎝)에 7.4㎝ 못 미쳤다. 중학교 1학년과 2학년 남학생은 또래 평균보다 각각 5.1㎝, 5.8㎝ 작았고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은 또래보다 7.7㎝ 작았다. 고교 2학년과 3학년 남학생의 키는 각각 4.9㎝, 3.6㎝씩 평균에 못 미쳤다.


이들의 평균 몸무게도 또래와 차이가 있었다. 보호시설의 중학교 2학년 남학생 몸무게 평균은 44.5㎏으로 또래 평균인 56.7㎏과 비교해 13.1㎏이나 덜 나갔다. 같은 학년의 여학생은 44.7㎏으로 평균보다 7㎏ 미달했다.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은 또래보다 8㎏ 적었다. 보호시설에 있는 청소년의 정서 상태도 또래보다 불안한 것으로 나타나 시설의 초등학생 가운데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의심되는 비율은 32.7%로 전국 평균(13.5%)의 두 배 이상이었다. 최근 1년간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는 시설의 중학생은 15.4%로 일반 평균(6.7%)보다 그 비율이 높았다.

500원 인상 “살림 좀 나아지셨습니까”


아름다운재단은 2012년 연말부터 두 달에 걸쳐 아동양육시설 한 끼 식사를 3,500원으로 올리자는 범국민운동 ‘나는 아이들의 불평등한 식판에 반대합니다’ 캠페인을 벌였다. 이 캠페인에서 시민 5천 명의 참여로 3억 7,600만 원의 기금을 모아 2개 아동시설 120명의 아이들에게 1년간 1끼당 2천원(적정단가(3,500원)-현재단가(1,500원))씩 지원했다. 아름다운재단은 지원 전후 아이들의 영양실태조사를 벌여 이를 토대로 국회청원 등 정책변화를 이끈다는 계획이다.


최동익 새정치민주연합(당시 민주통합당) 의원은 2012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시설아동의 급식단가 문제를 지적한 데 이어 지난 해 4월에는 ‘한 끼에 1,527원 당신의 아이라면?-생활시설아동 급식 단가 상향을 위한 대책마련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정부는 2013년도 식비단가를 전년대비 100원 올리는 데 그쳤다. 그러나 신문, 방송 할 것 없이 매서운 질책이 쏟아지자 정부는 같은 해 하반기부터 보장시설 생계급여를 일반수급자 식료품비 기준(최저생계비x37.7%)으로 지급하기 시작했다.


1인당 급식단가가 30인 이하 시설은 2,263원, 30~100인 시설은 1,978원, 100~300인 시설은 1,947원, 300인 이상 시설은 1,941원로 된 것이다. 2년 전에 비해 약 500원이 오른, 획기적인 변화를 이룩한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친환경 무상급식이 너무나 친숙해진 세상에서 시설아동들은 여전히 최저가격의 수입산 식재료를 이용해야 한다. 2천 원이라는 금액은 학교급식법이 정하고 있는 초등학교(3,300원)·중학교(3,500원) 급식 단가에 견줘 여전히 1천 원 이상 적다. 간식비가 별도로 지원되는 서울 등 대도시를 제외하곤 지방에서는 별도의 간식을 먹이기도 힘들다. 식품의 양 또한 적을 수 밖에 없다. 영양상으로 두 토막씩 줘야 하는 생선을 한 토막씩 밖에 줄 수 없는 식이다.


경북기독보육원 관계자는 ”2,000원으로 굶을 정도는 아니지만 식재료 질을 따지는 요즘 같은 때에 비싼 식재료는 쓰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메뉴도 비슷하고 단순하며 영양수준도 여전히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다른 아동들이 간식으로 먹는 과일쥬스만 해도 1~2천 원대”라며 “먹거리 수준을 특별한 대우는 아니더라도 다른 아동들과 평등한 수준까지는 해 줘야 하지 않나”고 지적했다.

급식비 놓고 정부-시설 간 갈등


정부는 시설아동 급식문제에 대해 다른 시설이나 기관과 동일한 수준을 맞춘다는 데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역아동센터의 경우 인건비가 20% 정도 포함되며 결식아동의 경우 외식기준이다. 이처럼 각 급식대상들에게 지원되는 요건이 다른데 단가만 놓고 문제 삼는 것은 세밀하게 검토해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정부 측은 학령기의 시설아동들이 하루 1식은 학교급식을 하는 데 대해 이중지원 문제도 꺼내들고 있다.


관악지역아동센터와 동명아동복지센터(양육시설)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 동명아동복지종합타운 김광빈 원장은 “지역아동센터의 경우, 평균 4천 원의 급식비 중 800원을 인건비로 쓸 수 있고 3,200원은 주·부식비로 사용하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원장은 “지역아동센터와 생활시설 아이들이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하지만 식사시간이 되면 지역아동센터 아동들은 3,200원 짜리 식사를, 양육시설 아동들은 2천 원 짜리 식사를 한다”며 “아이들에게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을 심어주는 게 어른들의 할 일인가”고 힐난했다.


아울러 김 원장은 “그나마 학교급식이 있어서 저렴한 단가로나마 아동들에게 3첩 이상의 식단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라며 “91식 중 학교급식을 하는 20식을 뺀다고 해도 지역아동센터 등 다른 시설 급식비의 60% 수준에 그치는 건 명백하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후원자들도 아이들 급식비 문제는 정부가 해결할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있어 생계비 후원을 거의 하지 않는다”며 “대부분의 후원이 지정기탁 방식으로 치료프로그램 지원이나 1대1 결연 또는 봉사활동 위주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곳이 받은 후원내역을 살펴보면, 지정후원금의 경우 행사비와 프로그램 사업비, 아동결연비 등이 90%를, 비지정후원금의 경우 공공요금, 의료비, 물품구입비 등이 76%를 차지하고 있으며 식비나 식료품을 지원하는 후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편 정부는 재원 활용의 경직성 문제를 해결한다는 취지로 주·부식비와 피복·신발비 등으로 나뉘어 지원하던 생계급여를 지난 해 7월부터 통합지원 방식으로 바꿨다. 그러나 시설들은 이러한 지원방식의 변화가 실제 돈을 쓰는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의류, 속옷 운동화까지 구입해야 하는 피복비가 겨우 2만원에 불과해 새 옷 한 벌 사기 힘들 정도로 부족한데다 식비 또한 겨우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정도다. 부족했으면 부족했지 남는 항목이 없어서 융통성 있게 활용하고 말고 할 게 없다는 것이다.


김광빈 원장은 “통합지원이라는 형식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한 것일 뿐 사실은 탁상행정의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김 원장은 “만약 시설아동들이 당신들의 자녀라면 이렇게 먹이고 입히겠나 생각해 볼 일”이라고 비판했다.

급식비문제 넘어 통합지원으로


시설아동들의 차별적인 급식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개정안이 발의됐다. 지난 1월 전순옥 의원이 발의한 ‘아동복지법’ 개정안은 지역아동센터와 양육시설 급식단가의 차액을 정부와 지자체가 보조하도록 했으며 박남춘 의원이 지난 3월 발의한 법안은 정부가 아동복지법상 모든 아동들에게 적용되는 아동급식최저단가를 정하고 이를 근거로 급식을 지원토록 했다.


손병덕 총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아동과 장애인, 노인 등 여러 계층들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설수급대상으로 묶어 놓고 각각의 특성을 반영하는데 인색했다”며 “그러나 장애인의 경우도 장애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시설 아동들은 원 가정에서 이혼, 학대, 방임, 유기 등의 과정을 통해 심리·정서·사회성·인지발달에 있어 심각한 어려움을 경험한 아동들이 많다. 게다가 진학과 취업 등 사회진입에서도 상당한 소외에 노출되어 있다”며 “빈곤의 되물림에 빠질 가능성이 높고 사회진입 이후에도 취약계층에 남아있게 될 수 있으므로 최상의 양육지원을 통해 심리·정서·사회성·인지발달을 도모하고 향후 건강한 사회진입이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제도상으로는 시설수급자로서 공통적인 부분은 국민생활기초법으로 지원하고 아동의 특성에 따른 특수한 지원들은 아동의 권리를 규정하고 있는 아동복지법으로 가져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동복지법은 아동복지시설의 장은 보호아동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야 하고 그의 성장시기에 맞추어 건강하고 안전하게 양육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국가와 지자체는 아동의 보건·복지·보호·교육·치료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통합서비스를 실시토록 하고 있다.


김광빈 원장은 “시설아동들은 대부분 학대 방임피해 아동이어서 정상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치료프로그램이 시급한데도 여전히 먹거리 문제로 왈가왈부해야 되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고 한탄했다. 이어 그는 “현재 치료프로그램은 이곳저곳에서 후원을 받거나 또는 기업의 사회공헌 담당부서 같은 곳에 제안서를 넣어서 받고 있다”며 “아동들의 치료문제 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몫 아닌가. 우리 정부는 언제쯤 급식비를 넘어서 치료지원까지 해 줄 수 있나”고 다그쳤다.


또한 김 원장은 “가정위탁에 맡겨진 아동이 1만5천명에 달할 정도로 많아졌고 그룹홈 또한 점차 확대되고 있다”며 “현재 아동양육시설은 아동들의 인권 문제 등 이유로 대규모시설에서 소규모시설로 변화되고 있으며 가정위탁 또는 그룹홈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양육시설들은 치료지원 및 자립심 고취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라며 “정부가 이러한 시설변화에 손발을 맞춰주기를 바란다”고 제언했다.


건강한 성장지원 위한 주춧돌 마련해야


부모가 없고 돌봐줄 가정이 없는 아동이라고 해서 못 먹고 못 입는데다 꿈을 찾을 수조차 없다면 과연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는 국가일까. 이제 생활시설 아동들에 대한 정책은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논의돼야 하며 먹는 것, 입는 것을 넘어서 아동들의 심리·정서적인 건강과 사회성 발달, 그리고 진학 및 취업 등에서 소외당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설아동정책이 국민기초생활법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될 것이며 아동이라는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해 치료와 교육지원 등 통합적인 지원체계를 갖춰나가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법과 제도라는 고정된 틀에 맞춰 아동들을 재단하려고 했던 어른들의 태도부터 바꿔야 할 것 같다.

 

MeCONOMY Magazine July 2014

박영신 기자 rainboweye07@hanmail.net
Copyright @2012 M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회사명 (주)방송문화미디어텍|사업자등록번호 107-87-61615 | 등록번호 서울 아02902 | 등록/발행일 2012.06.20 발행인/편집인 : 조재성 |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대방로69길 23 한국금융IT빌딩 5층 | 전화 02-6672-0310 | 팩스 02-6499-0311 M이코노미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무단복제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